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42
042화
리자드맨 상인은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주머니가 워낙에 작았기 때문이다.
“주머니 안을 확인해 봐도 되겠나?”
“물론.”
엘프 상인이 자신있게 대답하자 리자드맨 상인은 그 자신감의 근거를 주머니 안에서 찾을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은 그냥 철편이었다.
“…음. 미안하지만 이 정도의 철편으로는 거래하기가 힘들 것 같군.”
“…그래? 어느 만큼의 철편을 원하나?”
“적어도 여덟 배는 가져와야지.”
“뭐라고?”
엘프 상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고작 옷가지나 만드는데 쓰는 비단의 가치가 그렇게 크단 말인가?”
리자드맨 상인은 비단이 고작 그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비단으로 만든 옷은 그만큼 입기도 좋고 옷의 수명도 오래간다.
무엇보다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비단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옷을 잘 짓는 이가 비단으로 옷을 만들면 그 사람을 고귀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때문에 신분이 높은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시시때때로 증명할 필요가 없도록, 좋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는다.
하지만 리자드맨 상인은 그러한 사실을 엘프 상인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리자드맨들은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리자드맨들은 자신 앞에 멍청이가 있다면 자신의 멍청함에 나자빠지도록 놔두는 편이었다.
리자드맨 상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주변에선 그 정도 가치를 가지지.”
“이건 그냥 철이 아니야. 우리 지역에서만 나오는 아주 상등품의 철이지.”
“유감이네만, 난 그걸 알아볼 재주가 없어.”
“아니, 저기 저울이 있더군. 자네가 가진 가장 좋은 철편이랑 비교해 보면 어떻겠나?”
리자드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좋은 철편이라도 그 정도 양으로는 거래할 생각이 없어.”
“두 배를 주지.”
“비단을 사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지.”
지켜보던 휘경은 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호구라도 저런 저급한 놈들한텐 안 넘어간다 이거지?’
리자드맨은 비단 꾸러미를 들고 그냥 떠나 버렸고, 엘프 상인은 리자드맨이 떠난 다음 작게 욕을 지껄였다.
‘그거랑 별개로 저 엘프들이 뭐 하는 놈들인지는 좀 지켜봐야겠는데.’
휘경은 엘프들과 접촉하지 않고 오가면서 힐끗 바라보거나 사람을 써서 어떤 거래를 하는지 알아보게 했다.
하루를 꼬박 지켜본 결과 휘경은 엘프가 어떤 종류의 상인인지 알 수 있었다.
엘프들은 거래를 시도한 횟수는 많지만, 실제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는 아주 적었다.
하지만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에는 아주 큰 이득을 봤다.
‘완전 개호구만 낚고 있잖아?’
상인들끼리는 알게 모르게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엘프 무리에 대한 악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졌지만, 그런 네트워크에 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상인 일을 막 시작했거나, 아주 멀리서 와서 이 지역의 물건과 시세에 대해 정보가 어두운 이들을 상대로 완전 사기나 다름없는 비율로 물건을 거래했다.
‘좋지 않은걸.’
휘경은 엘프들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주변에서 볼 수 없는 복식을 입고 있는데다 낯선 종족이라는 건 그만큼 멀리서 왔다는 말이다. 멀리서 온 이상 거래를 할 수 있는 물건이 제한되어 있으니, 결국 그리 많지 않은 거래에서 높은 이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이 지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특산품을 통해서 차익을 내는 쪽이 일반적이다.
‘저 자식들은 뭔데 초짜들 물을 먹이는 거야?’
사실 따지고 보면 휘경도 상인으로서는 초짜긴 매한가지였으나, 자동성 성주는 성 주민들에게는 물론, 외부인이라면 통행증을 발급하기 위한 비용, 시장에서 좌판을 깔기 위한 비용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전 자동성 성주인 휘서는 위기의 때를 위해 꽤 많은 물품들을 비축해 두고 있었다.
휘경은 시장에서 좌판을 깔고 있는 상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부자였으므로, 사실 초짜인가 아닌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초짜 상인이지만 부자인 휘경이 거래하는 물건은 자동성의 시장 그 자체라는 부분도 있었다.
휘경은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었는데, 저런 엘프들이 성공적으로 거래를 하고 돌아가게 된다면 저런 종류의 상인이 더 많아질 테고, 그럼 초짜 상인들이 자동성에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시장에 들어서는 상인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고…
‘그럼 내 수익이 줄어든다는 말이지.’
휘경으로선 심각한 문제였다.
─┼
성운 또한 엘프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문명 충돌!」
「서로 다르게 분화된 두 종족이 접촉했습니다. 두 부족 모두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경고: 상대 종족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엘프들 뒤에도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이군.
문명 충돌 이벤트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떠돌이 한둘의 만남이 아니라, 일정한 숫자 이상의 개체가 만나야 했다.
‘엘프는 북해안에 있었지. 하지만 북해안은 정찰을 제대로 못하긴 했어.’
성운이 주로 정찰한 것은 반도와 대륙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성운이 조종할 수 있는 벌레들은 추위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리자드맨들 또한 추위에 강하다고 보긴 힘들었고, 유목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황야를 지나서 대륙 북해안 위까지 올라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북해안에서도 황야를 건너오긴 힘드니까, 당분간은 신경을 끄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성운은 ‘로컬 커뮤니티’ 탭을 눌렀다.
「플레이어 목록(1명)」
「엘다르」
닉네임을 확인한 순간 바로 다음 상태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엘다르’가 귓속말을 요청했습니다.」
이전 헤게모니아와 달리 성운은 이 대화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화를 해야 할 이유가 있나?’
헤게모니아와 대화를 해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두 사람이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퉈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성운이 입을 꾹 닫고 있었더라도 전면전까지 갈 확률은 낮았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의 전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반면에 이 엘다르라는 플레이어는 황야 너머에 있단 말이지. 적어도 이 주변에서 위협이 될 만큼 가까이에 병사를 두고 있거나 하지는 않아.’
하지만 성운은 결국 귓속말을 받기로 했다.
‘북해안의 정찰이 미흡한 게 마음에 걸려. 시시껄렁한 대화로라도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이번에는 성운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화상 채팅이 추가 요청되었다.
성운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엘다르가 말했다.
“반갑구나, 인간아.”
“……”
성운은 엘다르를 바라보았다.
엘다르는 아름다운 엘프처럼 보였다. 엘프답게 중성적인 외모 때문에 성별을 구분하기 힘들었는데, 사실 신의 외형을 설정할 때 성별은 그리 중요한 점도 아니었으므로 성운은 이미 그런 부분에 대해선 신경을 꺼 두고 있었다.
일부러 끔찍한 외형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곧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엘다르의 외형 선택은 오히려 준수하다고 할 만했다.
문제는 말투였다.
‘…설마.’
성운은 플레이어가 지구에서 온 것이 아닌 진짜 엘프… 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것도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성운이 걱정하는 건 다른 것이었다.
엘다르가 말했다.
“하, 내 아름다움을 보고 말을 잃은 것인가?”
“미친 건가?”
“……”
“아, 미안. 의도치 않게 생각한 게 입 밖으로 막 튀어나오는 버릇이 있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성운이 방금 만들어 낸 버릇이었다.
“…이 엘프의 신 엘다르는 겸허히 용서하겠노라.”
성운은 방금의 대화를 통해 엘다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RP플레이어구나.’
RP, 즉 RolePlay를 하는 이들, 게임 안에서 특정한 역할로 자신을 정체화해서 그 상황에 몰입하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컨셉충이었다.
그런 플레이를 한다고 해서 그 어떤 이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다른 플레이어들과 대화하기 불편하고 RP플레이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격당하기 십상이라 오히려 피해를 보는 플레이 방식이었다. RP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그냥 자기가 그렇게 플레이하는 게 재밌어서였다.
이 엘다르라는 플레이어는 엘프들의 신이라는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성운은 RP플레이에 별다른 유감은 없었다.
단지 성격이 그런 플레이에 맞춰 줄 만큼 유연하지 못했다.
“마침 대화를 걸어 왔으니 물어보는데, 자동성에 들여 놓은 엘프들이 가당찮은 거래를 하는 건 널 닮아서 그런 건가?”
“…신이라고 하나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진 못하느니라.”
“의도하지 않았다는 말이군.”
“그렇노라.”
성운의 생각에 그건 거짓말이었다.
엘프 상인들의 능력치는 높은 편이었고, 플레이어의 손을 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능력치였다.
하지만 어떤 거짓말은 당장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속아 넘어가 주는 척하는 것이 이득을 볼 때도 있었다.
성운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부분은 내가 신경을 꺼도 되겠고. …혹시 헤게모니아라는 플레이어 알아?”
“그… 무엄하고… 무지식한… 신 말인가.”
성운은 어째서인지 엘다르가 ‘싸가지 없고 무식한’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것 같았다.
“그 신과 야만적인 놀 무리는 내가 신성한 북해안에서 내쫓아 버렸지. 다행히 넌 ‘아직은’ 그 헤게모니아만큼 무례하진 않구나.”
“흠.”
성운은 이것은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헤게모니아는 북쪽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말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아마 모순 예언을 통한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퍽 꼬였나 보지.’
하지만 단순히 감정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 이득 없이 정보를 공유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저 말이 맞다고 하면 이 RP플레이어가 헤게모니아만큼 강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헤게모니아가 남쪽으로 내려온 이유가 설명이 안 되고.’
엘다르가 말했다.
“질문은 다했느냐?”
“당장은?”
“그럼 본좌가 왜 그대에게 대화를 요구하고, 무례한 질문을 받아 주었는지 밝혀야겠구나.”
“그래. 용건이 뭐야?”
“나의 엘프들은 대륙을 지배할 준비를 해 가고 있으나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노라. 나의 엘프들은 유능하지만 북해안은 춥고 황량한 것이다. 그러니 부족한 자원을 다른 종족들에게서 얻어야만 하노라.”
“그래서?”
엘다르의 등 뒤에서 황금색 광휘가 솟아올랐다.
“내게 공물을 바쳐라.”
성운이 버릇대로 말했다.
“돌겠네.”
─┼
다음날, 휘경은 성주답게 옷을 차려입은 다음 엘프들을 만나러 갔다.
다행히 엘프들은 충분히 분별력이 있어서 휘경을 알아보았다.
가장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던 남자 엘프가 말했다.
“자동성의 성주 휘경 님이시지요?”
“그래. 너는?”
“상단을 이끌고 있는 리오나르라고 합니다.”
휘경은 리오나르를 바라보았다.
리오나르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낯을 띄고 있었는데 때문에 마음을 읽기가 어려웠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내가 물건 파는 상인들 그냥 얼굴 구경이나 하자고 온 건 아니라는 걸 알겠지?”
“그래도 구경할 만한 얼굴들 아닙니까?”
리오나르의 말에 휘경은 마음 한 구석이 찔렸다. 엘프들은 인간과 유사 인간 종들에게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외견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성에서 어드밴티지가 붙었다.
리오나르가 말했다.
“농담입니다. 저희도 성주님이 왜 저희를 찾아오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제 했던 거래들 때문이지요?”
“그래.”
“그리고 그 거래에 불만을 가지고 계시고요.”
“맞아.”
“사실 저희는 성주님이 찾아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해 둔 물건이 있죠.”
“뭐라고?”
리오나르는 엘프 상인 하나를 불렀고, 엘프 상인은 수레 안쪽에 실린 작은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상자 그 자체도 나무를 깎아 만들고 쇠로 만든 경첩이 쓰인 보기 힘든 물건이었는데, 그 상자를 열자 휘경은 깜짝 놀랐다.
리오나르가 설명했다.
“고대 유적에서 발견한 고대의 보석입니다. 빛을 받으면 깎여진 면에 따라 수십 갈래로 빛을 찢어 냅니다. 눈으로 보고만 있어도 황홀하지요. 하나의 부족을 이끄는 수장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움입니다. 무엇보다 고대의 보석인 만큼 현재 이런 물건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을 받아 주시고 저희 거래를 눈감아 주실 수 있는지요?”
휘경은 말없이 보석이 든 상자를 받아 들었다.
이런 종류의 보석은 쉽게 거래되는 물건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 값어치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희귀함과 아름다움은 진짜였다. 휘경은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분명 상당히 높은 값어치로 팔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꼭 팔 필요도 없었다. 이런 물건을 내보이는 것만으로 성주의 고귀함을 대변할 수 있을 터였다.
휘경은 한 번 더 가까이서 상자 안의 보석을 확인해 보고는 상자를 닫았다.
리오나르가 말했다.
“어떻습니까?”
“훌륭한 물건이야. 하지만…”
휘경은 바닥에 툭 떨구었다.
“나 부자야. 뇌물? 이걸론 택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