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43
043화
리오나르가 미소를 잃어버리고서 황급히 상자를 주웠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다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휘경도 그 모습을 보고 내심 생각했다.
‘다행이다. 안 깨졌나 본데.’
휘경이 짐작하기로서니, 상자 안의 보석을 물어줄 돈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화내는 모습 한 번을 보여 주고 날리기엔 아까울 돈이었다.
리오나르는 상자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어 내곤, 다른 엘프 상인에게 상자를 넘겼다.
리오나르가 아까보단 차가워진 어조로 말했다.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글쎄…”
휘경은 손톱으로 손거스러미를 뜯어내며 말끝을 흐렸다..
리오나르는 휘경의 다음 말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휘경은 잘 손질된 손등을 내려다본 다음 리오나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이렇게 뇌물까지 건네주면 정작 너희가 얻는 이득은 크지 않을 건데? 게다가 이 지역에서 제일 힘이 강한 건 나야. 언제든지 약속을 뒤집을 수도 있어. 이 주변에 엘프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지. 저런 보석은 먹고 째도 그만이라고.”
리오나르는 다시 눈가에 미소를 되찾았다.
“그야… 당신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지요. 그걸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손해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
휘경은 더는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나랑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고? 앞으로 계속 거래를 하게 될 거라서? 하지만 엘프는 그 이전까지도 자동성까지 오는 일이 잘 없었어.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나?’
북해안과 자동성은 정보가 교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휘경은 정보를 보류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빛나는 돌멩이에는 관심 없어. 비싸게 되팔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저런 걸 구매할 사람을 수배하기도 어렵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음… 좋습니다.”
“그 전까진 법도를 지켜. 과하게 굴지 말고.”
“알겠습니다.”
휘경은 겸손해진 리오나르를 보고 흐뭇해하다가 무언가를 생각해 냈다.
“참, 그리고.”
“예?”
“내게서 작은 호의를 사고 싶다면 이걸 사는 건 어때?”
휘경은 자신의 가방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리오나르는 상당히 의심쩍어하며 물건을 받아들었다.
“뭡니까, 이게?”
“푸른 벌레신의 수호자를 묘사한 목상이야.”
“…푸른 벌레신? …수호자?”
“내가 믿는 신인데 우리를 믿고 지켜 주시지.”
리오나르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죄송하지만 제게도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
“춤추는 그림자신이라고 하지요.”
“춤추는 그림자신? 흠. 신을 둘 다 믿으면 축복도 두 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휘경의 말에 리오나르가 난색을 표했다.
“아닐 것 같습니다만…”
“그럼 믿지 않더라도 사 봐. 다른 사람한테 팔면 되잖아.”
“곤란합니다. 제가 알기로, 신들께선 질투가 심하신 걸로 압니다.”
“그런가? 내 신님은 관대하신 것 같던데. 어차피 팔 물건이면 괜찮다고 생각하실걸.”
물론 순전히 휘경의 해석이었다. 성운은 자신이 관대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휘경이 결국 선심 쓰듯 가방 안에 있는 모든 목상을 털어 내며 떨이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했다.
리오나르는 물건의 가치와 가격에 혹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휘경과 대화하는 것이 낭비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목상들을 구매해야만 했다.
─┼
성운은 곧장 엘다르를 수신 차단했다.
그냥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도 물론 있었지만, 전략적인 이유가 더 컸다.
성운은 엘다르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내가 놈을 모르는 것처럼, 놈도 나를 모른다.’
성운이 놈을 모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곤충의 소영역’을 통해 이루어지던 정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진 않았다. 신체가 직접 상대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자신의 지역을 비웠다는 사실도 드러내는 데다가, 상대의 지역에서는 순간이동이라고 할 만한 ‘빠른 이동’이 불가능했다. 신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하는 상태로 빠르게 비행할 수 있지만, 자신을 믿는 개체에게 즉시 이동 가능한 ‘빠른 이동’에 비하면 의미 있는 이동 수단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위험은 놈도 마찬가지지. 그렇다고 해서 엘다르란 놈은 소영역을 통한 정찰도 시도해 오지 않았어.’
그렇다면 엘다르 또한 성운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단 말이었다.
현재 소영역을 통해서 정찰할 수 없게 되었거나, 소영역 자체가 정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거나.
성운은 ‘춤추는 그림자신’이라는 이름을 통해 후자라고 짐작했다.
‘아마도 그거겠지. 소영역 뽑기 운은 나보다도 나빴어. 하지만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는 건, 다른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야. 플레이를 하면서 처음에 얻은 메이저 소영역 말고 꽤 쓸 만한 소영역을 손에 얻었을지도.’
엘다르는 세 번째 정찰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믿는 개체들을 직접 내려 보내 정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려온 것이 리오나르와 엘프 상인들이었다.
북해안 또한 몇 개의 부족이 있을 수 있는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성운은 당분간 신경을 꺼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시비를 걸어오는 적을 만나야 했다.
성운은 자신이 상대의 요구에 따라 수신 차단이라는 적절한 반응을 했으므로 조만간 엘다르가 먼저 움직일 것이라 판단했다.
성운은 전쟁을 준비했다.
상대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성운은 일단 엘다르를 겉보기처럼 우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잘린 귀 부족과 헤게모니아가 북해안에서 나오는데 어떤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커. 자신만만함에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우기 동안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전조가 오갔다.
처음에는 시비였다.
자동성 성주인 휘경이 리오나르를 핍박했고 이에 대한 사과를 바란다는 전인(專人)을 보내온 것이다.
전인을 보내온 것은 자신을 ‘대족장 하사디안’이라 소개한 자로, 녹안 부족이란 엘프의 부족장이었다.
휘경은 상대의 날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전인에게 전할 말에 더 큰 날조를 섞어 보냈다. 겸사겸사 엘프에 대한 모욕도 섞어 보내며 꼭 제대로 전달하라고 당부했다.
하사디안은 다음으로 보낸 전인을 통해 고상한 말로 만남을 요청했는데 휘경은 만나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휘경은 그냥 그럴 수 있다는 이유로 새롭게 알게 된 엘프에 대한 욕설을 추가로 전인에게 말했다. 몇 개는 사이란이 알려 준 것이었다.
하사디안은 세 번째 전인을 보내지 않았다.
아마도 직접 휘경의 귓구멍에 대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지, 전사들을 이끌고 우기가 끝나자마자 황야로 내려왔다.
우기가 끝나고 황야에 짧은 시간 동안 풀이 무성해지는 시기였다.
성운은 벌레들을 통해 엘프들이 자신의 지역에 들어서기 전에 정찰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성운은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를 자신할 수 있었다.
‘내가 놈을 모르는 만큼, 놈도 나를 모르는 건 확실한 거 같군.’
─┼
춤추는 그림자신, 엘다르는 자신을 믿는 엘프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숫자면 그 작은 성은 충분히 함락시킬 수 있겠지.’
전사만 300명.
이후 문명이 발달하면 300이란 숫자는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문명 단계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가 훈련된 전사였다.
엘다르는 대족장 하사디안을 통해 엘프 상인들과 전인을 내려 보내면서 자동성에 대해 정찰을 성공했다.
300명의 전사면 충분히 정복할 수 있을 듯했다.
변수라고 한다면 주변에 커다란 리자드맨 유목 부족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우기 때문에 내려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같은 문명 단계에서 정주민 전사들을 데리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건 엘다르도 잘 알고 있었다. 보급 문제도 있었고, 이런 숫자가 모두 부족에서 벗어나면 부족을 지킬 이들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동성은 고대 유적이면서 불가사의야. 대형 정주민 도시기도 하고. 남하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엘다르를 믿는 부족의 부족장, 하사디안도 마찬가지였다.
하사디안은 자신의 신이 전사들을 데리고 자동성을 공격해야 한다는 예언을 내렸을 때는 당황했지만, 자동성의 전력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고는 안도했다.
자동성은 신비로운 고대의 진흙 병정들이 있다. 하지만 그 진흙 병정 외에는 야만적인 인간 무리가 살고 있을 뿐이었다.
‘성벽이 제법 높다지만, 결국 흙으로 만들었기에 리오나르는 나무를 잘 타는 전사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기어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 안의 병사는 고작해야 150명 정도. 활도 조야한 것을 쓴다고 했지.’
하사디안은 자랑스러운 자신의 장궁을 바라보았다.
80보가 넘는 과녁도 곧잘 명중하는 활이었다.
‘우선은 50보 밖의 과녁도 겨우 맞춘다는 놈들의 활잡이들을 우리가 먼저 쏘아서 숫자를 줄인다. 그리고 몸이 날랜 이들이 성벽에 붙어 기어오르고, 성문을 열게 만든다. 그럼 끝이지. 드디어 망할 자동성 성주를 무릎 꿇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사디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자동성에 가까이 가기도 전에 인간 병사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자동성으로 향하는 좁은 협곡이었다.
하사디안은 당황하며 저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라 일렀고, 전령이 부대 사이를 뛰어가며 오갔다.
“자동성의 병사들이라 합니다.”
“뭐라고? 자동성의 병사들이라면 왜 성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냐?”
“저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성 밖에 나와 있다는 거냐? 우리가 올 걸 알았으면 얌전히 성 안에 있어야 할 것 아니냐?”
“한 번 더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전령은 돌아오지 못했다.
상대가 대화할 의도가 없다는 의미였다.
하사디안은 당황했지만, 상대의 병력 숫자가 결국 자신의 전사들보다 적다는 걸 알았다.
상대는 모든 병사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라 겨우 70명 정도였다.
‘좁은 길목에서 싸우면 동수로 싸우니 유리할 거라 판단한 건가? 멍청하긴. 자동성주는 전투에 조예가 없군.’
하사디안은 자신이라면 무조건 성 안에서 항전을 할 것이었다.
구태여 성 밖에 나서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그렇지. 다른 아군이 성 밖에 있을 때 정도인가?’
하사디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뒤통수가 근질거렸는데, 마침 자신의 등 뒤로 전령이 달려왔다.
“대족장님!”
“무슨 일이냐?”
“큰일입니다! 뒤쪽에 큰 병력이 저희의 퇴로를 막기 시작했습니다!”
“뭐? 인간들이?”
“리자드맨들입니다!”
“뭐라고?”
하사디안은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비늘의 리자드맨들이 엘프들이 지나온 길을 막고 있었다.
“왜 리자드맨들이… 인간과 함께?”
그 사이 하사디안의 신, 엘다르의 앞으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문명 충돌!」
「서로 다르게 분화된 두 종족이 접촉했습니다. 두 부족 모두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경고: 상대 종족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다르는 이 상태창을 얼마 전에 봤었다.
자신의 엘프 상인들이 자동성에 막 입성했을 때였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당황한 엘다르는 급하게 성운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신 차단은 풀려 있었다.
“저 리자드맨들은 그, 그대의 동맹인가? 이 리자드맨 종족과?”
“멍청하긴. 나한테 귓말 넣기 전에 로컬 플레이어 목록부터 봐야지.”
엘다르는 로컬 플레이어 목록을 확인했다.
「플레이어 목록(1명)」
「성운」
이 주변에 다른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 말은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엘다르로선 쉽게 추리할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어, 잠깐. 그, 그대는 인간의 신이 아니었나? 난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인간의 신이지.”
성운은 부정하지 않았다.
“동시에 리자드맨의 신이기도 하고.”
결국 엘다르의 롤플레이가 부서졌다.
“뭐? 어떻게 벌써 2종족 플레이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