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46
046화
휘경으로서도 물이 흐르는 힘이 정확히 어떻게 진흙 병정을 움직이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 원통형 기구까지는 알겠어. 물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기구의 각 바구니에 물을 채우고,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아래로 기울면 기구가 도는 거지. 기구가 돌면서 기구의 축도 함께 회전하고 그리고 축이 돌면서 저 부품들이 돌고…’
각 기계 부품에 시선이 가던 휘경은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에서 멈췄다.
‘됐어.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하면 되는 거야.’
사이란이 말했다.
“그러니까, 물이 흐르는 힘을 이용한다는 겁니까?”
“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휘경이 진흙 병정의 방 한쪽을 가리켰다.
“어차피 여기 수원지의 수량은 충분해. 그래서 저 벽을 뚫어서 물길을 하나 내는 거지. 여기는 자동성에서 꽤 높은 위치니까, 물을 흐르게 하면 물이 떨어지는 힘을 꽤 많이 이용할 수 있을 거야. 저 넓적한 원통 모양 기구를 여러 개 설치할 수도 있겠지.”
“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저 기구를 층마다 하나씩 놔둘 수 있을 거야. 축이 돌면, 저기, 축과 축이 만나는 지점의 부품들을 봐. 마치 사람이 서로 다른 손으로 돌리듯이 돌잖아. 실제론 물이 흐를 뿐인데도.”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는 말이군요.”
휘경은 머리를 긁었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어때? 분명 나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거야. 토가 사람들이라던가.”
“제 생각에도 분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부족에서도 관심이 있을 만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좋아. 그 대신 라크락 몰래여야 해.”
“그러죠.”
사이란은 휘경의 구상안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역대 성주 중에 휘경이 이런 생각을 한 첫 사람인 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뭐가?”
“왜 지금까지 성주들은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겁니까? 고대의 기술을 이용해 볼 생각. 사실은 이런 고대의 기술에 손을 대면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거나 하는 전승이 있었는데, 중간에 잊힌 건 아닐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고대인들의 경고가 있었다던가…”
“글쎄.”
휘경은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엔 그냥 겁쟁이들이었다는 생각도 드는데. 옛날에 만들어진 것들이니 이해할 수도 없고, 괜히 손을 댔다가 망가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적기도 했어. 지금까지 성주라곤 몇 명 있지도 않았고, 그 전까지는 그냥 잊힌 폐허였는데.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그냥 지금까지 없었던 거지. 아니면…”
“아니면?”
휘경은 주머니에서 라크락이 의뢰한 철편을 꺼내 들었다.
“이 단단한 철편을 이만큼 녹여야 할 성주는 내가 처음일지도 모르고.”
─┼
휘경은 자신의 양쪽 볼을 쥐고 있는 리자드맨을 올려다봤다.
리자드맨은 휘경이 아니라 휘경의 양 뿔에 관심이 있는 듯, 코를 킁킁대거나, 휘경의 머리를 이리저리 밀고 당기며 뿔의 모양새를 살폈다.
휘경은 곁눈질로 사이란을 바라봤다.
“…이분이 누구시라고?”
“자올 님입니다.”
라크락의 지어미 자올 또한 자동성에 들어와 있었다.
자동성과 검은 비늘 부족이 대규모 거래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물품을 확인하고 수량을 맞추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자올이 중얼거렸다.
“신기하군요. 뿔이 자라는 인간은 처음 봅니다. 아니, 뿔이 자라는 사람을 처음 보죠. 뿔 비슷한 게 자라는 걸 보긴 했었지만 그건 버섯이거나 질병이었는데, 이건 진짜 뿔이군요.”
뿔은 자라나고, 뿔 끝은 그만큼 신경이 무뎌지기 때문에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휘경은 방금 자올이 뿔 끝을 핥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휘경은 사이란에게 말했다.
“자올 님은 이 행동이, 그… 하나의 부족을 이끄는 사람에게는, 조금… 무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시나?”
“아마 깜빡하셨을 겁니다.”
자올은 사이란의 헛기침에 고개를 돌렸다.
그 다음 자신이 붙들고 있는 휘경과 눈을 마주쳤다.
“미안합니다, 자동성주.”
“아닙니다, 자올 님.”
“무슨 이야기 중이었죠?”
“아무 이야기도요. 막 인사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아.”
자올은 휘경을 놓아주었다.
“못 보던 걸 보면 관심이 가서 말입니다.”
휘경은 자올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작업에도 관심이 많을 터였다.
역시나 휘경이 자올을 진흙 병정의 방으로 데려가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자올은 휘경의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식당으로 돌아온 그들은, 베껴 그린 기계 장치를 두고 어떤 식으로 설계를 이어나갈 것인지 검토했다.
자올은 목탄을 놓으며 말했다.
“실제로 움직여지는지는 완성품을 확인해야겠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많은 사람을 써야 할 겁니다. 저 일은 당장 해낸다고 음식을 보장해 주지 않으니 대체할 만한 임금을 주어야 할 거고요. 그럼 많은 재물이 있어야겠죠. 그리고 역시나 이 일을 해내는데 많은 나무들이 필요 할 겁니다. 이 주변에서 충분히 단단한 나무는 구하기 어려우니 다른 곳에서 구해 와야겠지요.”
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돈이 들겠지만, 그것도 계산해 보니 가능합니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값비싸게 치르더라도 자동성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자올은 그 말이 아니라는 듯 가로저었다.
“감당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이 일에 그만큼의 비용을 치렀을 때, 그만큼의 보상으로 돌아오느냐는 문제지요.”
“아.”
“감당할 수 있더라도 이 ‘수차’ 공사가 끝났을 때, 자동성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자동성의 막대한 자산이 그냥 사라진 셈입니다. 그냥 하지 않는 게 좋은 거지요.”
자올은 비단 위에 그린 여러 도면들을 정리해서 휘경 앞으로 밀었다.
“과거에 어떤 자동성주가, 아니면 다른 고대인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처럼 계산을 해 보고 수지에 맞지 않다고 여겨 포기했을지도요.”
“없는 건 없는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예.”
휘경은 자올의 말대로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게 나은지, 아니면 자신이 떠올린 이 공사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강행할지 고민했다.
휘경은 돈이 많았지만 그 돈 중 자신이 벌어들인 것은 없었다. 상인으로서는 초보였다.
‘미래를 알 수는 없나?’
-내가 알아차리는 미래는 바로 눈앞의 순간 밖에 없다.
‘그럼 내가 보는 미래를 들어 봐.’
휘경은 자신의 뿔에게 말했다.
‘첫 번째 수차의 축은 비워둘 거야. 앞으로 다른 자동성주가 쓸모 있다고 판단할지도 모르니까. 두 번째 수차의 축에는 풀무를 달아 둘 거야. 풀무는 괴철로에 바람을 불어넣을 건데, 물은 쉴 새 없이 흐를 테니 괴철로 또한 계속해서 불타겠지. 세 번째 수차의 축에는 망치가 달릴 거야. 사람이 두드리지 못하는 쇠를 납작하게 펼 수 있게. 마지막 네 번째 수차의 축은 맷돌을 돌릴 거야. 곡식을 빻거나 찧을 수 있게.’
-괜찮군.
‘그게 다야?’
-내가 볼 수 없는 미래다. 내 생각엔, 괜찮아 보인다.
‘괜찮아 보인다고?’
휘경은 창밖으로 자동성을 내려다보며 목탄을 탁상에 툭툭 두드리다가, 자올을 돌아봤다.
“해 보죠.”
─┼
성운은 휘경과 자올이 계산하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인부를 고용하는데 많은 자산이 들지만, 결국 그 인부들은 자동성 내부에서 돈을 쓰게 되리란 것이었다.
먹고 자고 마시는데 돈을 쓰게 되니, 인부들에게 쥐여 준 재물들은 결국 자동성의 상인들에게 돌아갔다.
자동성의 상인들이 부유해지니 자동성으로 들어오는 상인들이 많아졌다.
더 많은 재물들이 거래되니 그에 따른 차익이 휘경의 재물로 환원되었다.
따라서, 휘경은 거대한 수차 공사를 위해서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오히려 돈을 벌고 있었다.
‘토목 공사라는 게 그렇지. 거대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면 더 큰 시장이 형성되고 더 큰 돈이 오가는 거야.’
인부들에게 일관된 고용 비용을 지급하기 위해 철편이 지급되었고, 철편을 구분하기 위해 검은 비늘 부족의 문자를 찍어 내면서 일종의 통화로 쓰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륙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보이는 노란 상태창, ‘컨티넌트 메시지’가 떠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3 대륙 최초의 기축 통화 ‘편’이 성립되었습니다.」
「(알 수 없음) 부족에 의해 기축 통화 편이 성립되었습니다. 해당 통화는 현재 ‘6’개 부족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신뢰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컨티넌트 메시지를 치우자 아래에 일반 메시지 창도 떠 있었다.
「당신의 문명이 해당 통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신의 문명은 통화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고, 통화를 사용하는 문명은 당신의 문명과 거래를 할 때 더 강한 신뢰를 느낍니다.」
성운은 별 감흥이 없었다.
‘부족이나 종족들은 신뢰를 느끼겠지.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경계할걸. 다행스러운 점은 당분간은 다른 플레이어들도 누가 만든 돈인지 모를 거란 점이지.’
아직까진 각 부족 사이의 국경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상황이다.
바로 옆에 있는 부족끼리 신경 쓰느라 멀리 있는 성운에게 관심을 쏟기는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떠오른 컨티넌트 메시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제3 대륙 최초의 문자 ‘충문’이 성립되었습니다.」
「(알 수 없음) 부족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 ‘충문’이 성립되었습니다. 이 문자는 ‘표의 문자’로 주로 ‘돌’과 ‘정’, 또는 ‘비단’과 ‘목탄’ 위에 쓰이고 있습니다. 해당 문자는 현재 ’12’개 부족에 의해 쓰이고 있으며,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의 문명이 해당 문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문자를 사용하는 문명들은 서로 호의와 유대 관계를 느껴 외교를 할 때 더 강한 신뢰를 느낍니다.」
최초로 만들어 낸 것에 대한 보너스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크다고 할 수도 없었다.
통화와 문자는 하나의 문명이 열심히 사용한다고 이득을 보는 게 아니었으니까.
‘통화나 문자, 결국 남 좋은 일만 시켜 줄 게 아니면 경제나 문화를 발달시켜야 한단 말이지.’
다행이라면 성운은 두 쪽 모두 쓸 만한 카드를 얻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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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예상하지 못한 난국들을 넘어야 했다.
최초의 수차는 너무 거대해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무너진 수차에 깔려 스무 명의 인부가 죽었다. 휘경은 인부들의 가족을 찾아내 보상금을 지급했다.
나무를 사기당하는 일도 있었다. 수십 그루나 되는 곧은 나무를 거래했는데, 정작 수레에 실려 온 것은 다 말라 가는 장작이었다. 사기꾼들을 추적하기 위해 검은 비늘 전사들이 고용되었고, 대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설계상의 실수가 있기도 했다. 세 번째 수차까지 완성되어 올라갔지만, 계산대로라면 네 번째 수차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휘경은 세 개의 수차로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으나, 과감하게 지금까지의 공사를 모두 무르기로 결정한다.
다시 한 번 세 번째 수차가 올려졌을 때, 다음의 메시지가 성운 앞으로 떠올랐다.
「’스킬:제철’이 2레벨로 올랐습니다.」
「당신의 문명은 이제 더 높은 단계의 철을 생산해 낼 기술과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당신의 문명은 강철을 원하는 대로 제련해 낼 수 있고, 더 단단하고 오래가는 철기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해당 기술은 전체 플레이어의 평균 문명 발전 속도 보다 ‘아주’ 빠릅니다.」
목표로 하던 일이 성사되었지만, 성운은 이제 와서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