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52
052화
「’소영역:새’를 얻었습니다.」
새는 괜찮은 소영역이었다.
플레이어들이 흔히 ‘정찰’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영역을 통한 지역 탐색에 유리했다.
그리고 ‘까마귀의 지능’과 ‘올빼미의 지혜’라는 지능을 올려 주는 두 가지 축복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미 축복을 받은 캐릭터들에게 축복을 다시 내리는 건 낭비야.’
따라서 새로운 축복은 새롭게 태어나는 다음 세대에게 적용될 터였다.
‘리자드맨은 독 저항을 까마귀의 지능으로, 인간은 활력을 올빼미의 지혜로 교체해야겠다.’
성운은 그 다음 솔롱고스의 소영역을 확인했다.
‘바위’의 소영역을 가지고 있는 걸 확인했었기 때문에 바위가 나와 주길 기대했지만, 정작 나온 소영역은 ‘늪’이었다.
‘늪? …쓸모없다고 하진 않겠지만 활용도는 낮아.’
아마 솔롱고스가 흉신을 통해서 얻은 마이너 소영역으로 보였다.
켄타우르스를 지배하고 황야를 돌아다녔던 솔롱고스에게도 큰 쓸모가 없는 영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가치가 없어 보이는 소영역들도 중반이 지나 플레이어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 쓰임새가 생겨나곤 했다.
‘다음은…’
성운은 우선 서쪽을 바라보았다.
성운은 메뚜기 떼를 통해 대륙 중앙에서 거대한 싸움이 시작된 것을 알았다.
모두 파악한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다섯 명의 플레이어가 크게 세 개의 세력으로 나눠진 싸움이었다.
그들은 서로 접한 국경을 통해서는 서로 싸우면서도, 뒤로는 대륙에 점령되지 않은 빈 땅들을 하나하나 점거하고 있었다.
‘조만간 이쪽으로 오는 놈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 전까지는 얌전히 놔둘 생각이었다.
서로 싸우며 힘을 빼고 있는 좋은 상황에서 괜히 성운이 외부 세력으로 끼어들 경우, 운이 나쁘면 이들이 힘을 합쳐 성운에 대항해 싸울지도 몰랐다.
성운은 북해안을 바라보았다.
성운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반도 북쪽의 경우, 검은 비늘 리자드맨들이 부족들을 모두 파괴하거나 내쫓았기에 다른 종족은 없었다.
하지만 솔롱고스와 임춘식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NPC 부족들을 복속시키거나 노예로 부렸기에 북해안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들었다.
‘어차피 고블린 무리들이 대부분이니 상관은 없어.’
성운은 이번엔 동쪽을 바라봤다.
동쪽에는 야트막한 산맥이 있었고, 그 너머로 대륙의 동쪽 해안이 존재했다.
아마 몇몇 NPC 부족이 있겠지만, 플레이어가 자리할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이쪽은 산맥을 건너기보다 바다로 진출하면 배를 통해서 해안선을 점령하는 식이지. 상인이나 모험가들을 통해서. 고대 유적이 좀 나오겠지만 당장 별로 중요하진 않아.’
초반에 중요한 건 역시 땅의 넓이였다.
지구의 역사가 보여 준 것처럼, 특정한 나라들이 그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보통 그 지역에 계속 나라가 남는다.
이 게임의 ‘초반’이 끝나는 시기가, 더 큰 전쟁으로 발전하기 전 대략적인 국경선이 정해지는 때였다.
이후로는 전쟁이 아니면 극적인 확장이 어려웠다.
성운은 마지막으로 남쪽을 바라보았다.
반도의 북쪽은 이제 성운의 땅이었다.
성운이 라크락을 통해 자동성과 황야, 북해안에서 싸움을 치루는 동안에도 정주민인 검은 비늘 부족 리자드맨들이 땅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아래가 완전한 미답지인 것도 아니었다.
성운의 종족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벌레 창조물들은 그 땅에 있었다.
몇 개의 NPC 부족들이 있었는데, 문명 정도는 낮지만 별다른 피해 없이 정복하기 위해서는 라크락을 데려와야만 했다.
‘동쪽이나 서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지만, 북쪽과 남쪽은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데 라크락은 두 곳에 존재할 수 없단 말이지.’
고민하던 성운은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이래서 팀플이 필요한 거지.”
화상 채팅 너머로 엘다르가 맹하니 물어왔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냐.”
“뭔가 기분 나쁜 예감이…”
“착각이야.”
─┼
성운은 엘프들을 다시 올려보냈다.
겨우 새로운 정착지에 적응하기 시작했으므로 반발이 있었지만 리자드맨들의 창날 앞에 딱히 힘을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직 고향을 잊지 못한 엘프가 많았기에 엘프들은 얌전히 북쪽으로 향했다.
다만 엘프가 살던 지역은 이미 리자드맨들이 점령 중이었다.
반도 북쪽에 살던 정주민들 중 일부가 이주한 것이었다.
이들은 신이 점지한 비옥한 땅을 찾아 온 것이었는데, 실제로 엘프가 살던 마을은 강 하류 마을에 두 개의 큰 산이 찬 공기를 막아 기후도 위도에 비해 따스한 편이었다.
당연히 리자드맨과 엘프 사이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그들의 신이 기적을 보여 주고 재해로부터 보호해 주는데, 엘프의 신인 엘다르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엘프들은 더 북쪽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엘프들은 북해안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엘프는 추위에 약하진 않았지만, 역시나 겨울이 긴 땅이었다.
오우거들은 농경 기술을 발달시키기보다 고블린 노예를 부리거나 문명 정도를 발전시켜 다른 종족에게서 얻는 방식을 택했기에 땅도 새로 개간해야 했다.
게다가 방해꾼도 많았다.
노예였던 고블린들은 새로운 정주민들을 탐탁지 않아 했고, 그 수가 많지 않지만 무리를 잃은 오우거 개체도 떠돌고 있었다.
이 오우거들은 특히 위험했다.
신이 사라져도 축복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엘프들은 자신의 신인 엘다르에게 기도를 올렸다.
왜 자신들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엘다르는 답을 줄 수 없었다.
자신이 욕심을 내서 자동성을 공격하게 했고, 그게 성운의 심기를 거스른 결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임춘식과 솔롱고스를 격퇴하고 난 이후에는 성운의 뒤끝이 남아서라기보다 그냥 땅을 개간하고 개척하는데 자기 부족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아서 엘프들을 북쪽으로 보낸 것이었다.
엘다르 생각에 다른 신의 강압에 휘둘리는 게 들통 나면 그날로 모든 신앙을 다 잃고 석상이 될 터였다.
하지만 신이 되어서 기도하는 신도들에게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엘다르는 성운의 다음 행동에 따라 신탁 하나를 자신의 제사장에게 내렸다.
새로운 부족장이자 새로운 제사장으로 선택된 녹안 부족 엘프 리오나르는 제단 앞에서 신탁을 받았다.
엘프를 도울 귀한 존재가 남쪽에서 온다는 것이다.
리오나르는 이 소식을 엘프들에게 알렸다.
곧 엘프 정찰대가 돌아와 소식을 알렸다.
“인간들 무리가 오고 있다고?”
리오나르는 자신의 이전 부족장이 인간 부족을 공격하려다 무리를 비참하게 만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의 말을 믿었다.
‘하사디안은 오만한 멍청이었다. 분명 춤추는 그림자신께서 그런 거친 공격을 명하셨을 리 없거늘. 자신의 욕심을 앞세워 전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 나는 그런 전처를 밟지 않겠다.’
리오나르는 그리 많지 않은 엘프의 형편에도 인간 무리를 제대로 대접할 준비를 했다.
준비가 끝날 쯤 해서 말을 탄 인간 무리가 도착했다.
리오나르는 말에서 먼저 내리는 이의 얼굴을 바로 알아봤다. 구면이었기 때문이다.
“자동성… 성주?”
“오, 그러니까… 누구더라? 아니. 분명 만났던 사람인데. 기억해 낼 수 있어요. 잠시만요. 리오나르. 리오나르, 맞죠?”
“예, 맞습니다.”
리오나르는 어색하게 웃었다.
휘경은 몇 년 전 시장에서 만났던 리오나르를 기억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만나게 된 장소도, 두 사람의 처지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 사이 좀 야위었군요? 별 탈 없냐고 묻고 싶은데 저도 소식을 들어 알음알음 알고 있으니 그건 넘어가죠. 아, 참고로 저는 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고 싶어 한 상인들이 많았는데, 무역로가 막힌 걸 알고 자동성에서 거래를 끝내고 가 버렸거든요. 그네들은 손해를 좀 봤겠지만… 미안합니다. 너무 내 이야기만 했죠?”
“아뇨. 일단 안으로 드시죠.”
“그러죠. 여긴 추우니까. 잠깐만요. 내 친구 좀 불러오죠.”
휘경이 뒤를 돌아보자 리오나르의 시선도 뒤를 향했다.
이제 보니 말이 아닌 코카투가 한 마리 있었다.
코카투에서 내리는 것은, 당연히 인간이 아닌 리자드맨이었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그 모습에 엘프들 사이에선 작게 비명이 터져 나와, 리오나르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단속했다.
리자드맨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엘프, 이 움막 안에 다른 자객이 없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리자드맨.”
움막으로 들어가던 리자드맨이 돌아보았다.
“제 이름은 사이란 무엘입니다. 사이란이라고 부르시죠.”
“좋습니다, 사이란.”
리오나르는 사이란이라는 리자드맨이 엘프를 싫어하기 때문에 언짢은 기색을 보이는 걸까 걱정했다.
하지만 움막 안의 온기에 표정이 풀리는 걸 보고 그냥 추위 때문인 것을 알았다.
리오나르는 차를 마시는 휘경을 바라보았다.
휘경의 뿔은 이제 완전히 자라서, 옆에서 보기에도 무거워 보일 정도였다.
각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뿔들은 최종적으로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리오나르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어떤 일로 오신 겁니까?”
“어떤 일이랄까, 글쎄요. 엘프들도 신을 믿고 있죠?”
신에 대한 이야기에 리오나르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예. 저희는 춤추는 그림자신을 믿습니다. 그쪽, 사이란과 휘경 당신은 푸른 벌레신을 믿고요.”
“네. 저는 사실 신과 신앙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요, 가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신탁이란 게 오거든요?”
“신탁, 말입니까?”
“예예. 신께서 정확히 뭐라곤 안 하시는데 뭘 하라거나 아니면 저기 뭐가 있다고 모호하게 말씀하시고 가 보면 돈이 될만한 게 있다거나.”
리오나르 생각에 휘경은 너무 세속적인 부분이 있어 보였지만, 아무튼 신탁을 받는 이로서의 유대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탁 때문에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뭐, 그런 셈이죠?”
“구체적인 내용은…?”
“신탁이란 게 또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뭔가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넘어가고.”
“아, 네.”
“아무튼 중요한 건, 저희 푸른 벌레신께서는 약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도우신다는 겁니다.”
“예에…”
리오나르는 움막 주변을 돌아보며 이 결과물을 만든 게 바로 당신의 신이라고 쏘아붙일까 고민했다.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휘경의 말에 따르면, 신의 뜻이 어땠는지는 별개로 눈앞의 인간은 자신을 돕겠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도움이라고 한다면…?”
“무기랑 농기구, 추운 데서도 잘 자란다는 곡식 종자를 좀 가져왔어요.”
예의 곡식 종자는 휘경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엘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본래 엘프 마을에서 곧장 이 위로 올라왔다면 모를까, 당장 엘프들이 가진 것은 반도 북쪽에서 얻은 추위에 약한 종자들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번 가을에 추수를 할 수 있겠지만, 운이 나쁘다면 그 씨앗들뿐만 아니라 엘프들도 함께 죽을 터였다.
그것을 보고 리오나르가 화색을 띄었다.
“정말 감사합…”
“가격은 싸게 쳐줄게요.”
“…예?”
리오나르의 황망한 물음에, 휘경이 또박또박 답해 주었다.
“엘프들이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했으니까, 값을 싸게 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