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69
069화
뱀파이어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고,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샤이븐은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고 생각했다.
‘아직 몸집을 더 불려야 해.’
샤이븐은 영리하게도 자신이 만들어 낸 최초의 부하들과 함께 가장 공략하기 어렵다고 알려진 세 요새를 차례대로 공략할 수 있었다.
신들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이었고, 이들은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샤이븐과 뱀파이어들은 구걸하는 떠돌이로, 별 볼 일 없는 하인으로, 주인 잃은 노예로서 요새에 잠입해서 요새의 주인을 죽이거나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뱀파이어들은 그 후 대륙을 점거하고 있는 다섯 국가 곳곳에 몰래 숨어 있다.
그럼에도 샤이븐은 불안했다.
‘전면적인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니까.’
첫 3개월, 뱀파이어들은 세력을 빠르게 불리고 있지만, 다섯 국가의 합공을 받아 낼 정도는 아니었다.
샤이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다섯 나라들 모두가 공격을 미뤘다.
다른 종족들은 어디가 뱀파이어의 중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모아 뱀파이어를 공격했을 때 전혀 엉뚱한 장소에서 뱀파이어들이 튀어나온다면, 그리고 그 공격으로 각국의 중요한 거점이 공략당한다면 곤란했다.
때문에 각국은 확실히 입증된 뱀파이어 요새에서 뱀파이어들이 공격해 나오지 않도록 방어할 병력만 두고, 나머지 병력들은 각 나라에서 발견되는 뱀파이어 집단을 습격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건 위즈덤의 아이디어였다.
위즈덤이 가장 불안하게 생각한 건 ‘뒤통수’였다.
일반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플레이를 즐기지 않는 성향 때문에, 위즈덤은 알려진 뱀파이어 요새들을 방어할 병력으로 둘러싸고 나머지 병력은 각자의 나라에서 방어하자고 말했다.
이 아이디어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뱀파이어들은 일반 종족이 소비하는 식량이 아닌, 다른 종족을 통해서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에 요새를 조금만 조여도 뱀파이어들이 말라비틀어질 거라고 판단했다.
또한 군을 내부로 돌리면 각자의 나라에서 뱀파이어의 증가세를 잡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의 뱀파이어가 확실히 줄어들었을 때 뱀파이어 요새를 공략하고 숨어 있는 제사장을 죽이면 끝이 날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너무 겁쟁이의 방식이었지.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을 뿐.’
물론 위즈덤의 아이디어는 타당했다.
샤이븐에겐 전면전에 일어났을 때, 요새에서 멀리 떨어진 숨겨 놓은 뱀파이어 후속 부대들이 존재했으니까.
떠돌이나 마을의 유지, 수도의 숨은 귀족 계층으로 잠입한 이들은 점조직으로 존재했다.
플레이어들조차도 각 개체를 하나하나 확인해 봤자 뱀파이어가 늘어나는 속도 이상으로 찾아낼 수는 없으므로 의미가 없었다.
위즈덤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가장 군대가 약한 르나르의 나라, 적과부터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늦고 빠르고의 차이일 뿐. 결국 내가 피와 썩은 고기의 신에게 승리를 안겨다 드릴 것이다.’
각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제사장들에게 명령해서 뱀파이어를 찾아내려고 했다.
알려진 뱀파이어의 약점은 두 가지.
바로 태양과 은.
하지만 이 약점은 3세대에겐 단순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뿐이며, 4세대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1세대는 샤이븐 혼자이며 2세대는 그 숫자가 많지 않으므로 그 방법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 뱀파이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에 감춰져 있는 뱀파이어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샤이븐은 6개월 차에 피와 썩은 고기의 신이 요구한 숫자의 병사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 수는 무려 6천.
각 뱀파이어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모으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뱀파이어는 자신보다 한 세대 높은 뱀파이어를 주인으로 섬기는 점조직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말은 반대로 샤이븐이 2세대 뱀파이어 하나에게만 명령을 내려도, 2세대 뱀파이어는 열 명의 3세대 뱀파이어를, 3세대 뱀파이어 또한 열 명의 4세대 뱀파이어를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샤이븐이 2세대 뱀파이어 하나에게 명령하면 대략 100여명의 뱀파이어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샤이븐은 2세대 뱀파이어 중 능력 있는 이 여섯을 선별해, 장군으로 호명하고 각 장군이 1천명의 뱀파이어 병사를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세 장군은 배후에서 발호를 기다리고, 다른 세 장군은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각국의 주력 부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뱀파이어가 되면서 능력치가 다소 하락하는 4세대가 뱀파이어 군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3천의 숫자라 하더라도 다섯 나라가 합심하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는 숫자였다.
게다가 이 군대라는 것은 뱀파이어 중 신체가 건장한 젊은이를 추려 냈을 뿐, 그 이전까지 무기를 쥐어 본 적 없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다섯 나라의 주력 부대는 각국과의 잦은 전투로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었다.
문제는 그때까지 다섯 플레이어는 사태의 심각함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각 요새를 지키고 있던 병력은 대략 500으로 뱀파이어 1천을 막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요새를 둘, 하다못해 하나라도 포기하고 연합했다면 뱀파이어 부대 1천을 각개 격파해 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세 개의 요새는 서로 다른 나라에 위치했으므로, 하나를 포기한다는 건 플레이어 하나가 손해를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플레이어 사이의 사나운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으나 각 팀들은 자진해서 손해를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성운은 이때쯤 멀리서 추이를 보며 자신이 조언을 해야 할 때인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깨져 봐야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까?’
성운은 침묵했고, 샤이븐은 세 개의 요새를 포위하던 병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요새를 점령했던 병사로 소모된 병사들을 보충했다.
샤이븐은 그와 동시에 피와 썩은 고기의 신의 뜻을 받들어 트롤의 나라, 석면과 르나르의 나라, 적과에서 각 1천의 군사를 일으키도록 명했다.
그리고 샤이븐은 3천의 군대와 남은 1천의 군대를 더해 자신의 숙원이었던 닉스의 나라, 금안의 수도를 공격하도록 명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숫자는 무려 4천이나 되고 금안의 군대는 겨우 1천 3백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안의 왕은 신의 힘을 내려 받아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금안을 수호하는 거대한 괴물 또한 이겨 내기 힘든 적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신의 힘 앞에 수백의 병사가 휩쓸려 죽었다.
아무런 수를 쓰지 않는다면 4천의 병사를 가지고도 패배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피와 썩은 고기의 신 또한, 샤이븐을 버리지 않았다.
금안의 왕에게 보이지 않는 근원신이 깃든 것처럼, 장군 중 하나인 로베인에게도 피와 썩은 고기의 신이 깃든 것이다.
로베인은 그 힘으로 금안의 왕을 죽이고, 금안의 수호자에게까지 큰 타격을 입힌다.
상처 입은 수호자가 병사들의 공격으로 죽으면서 금안은 수도를 잃어버린다.
그로 인해 플레이어인 Ar1026은 레벨이 4까지 떨어지게 된다.
샤이븐은 부하들에게 병사들을 늘리도록 지시하고 건장한 닉스들을 자신의 부대에 합류시켰다.
금안은 항복하지 않았으나 주력 1천 3백이 괴멸하고 지방에 흩어진 병사가 2백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뱀파이어들이 승리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석면에서 일으킨 1천은 꽤 타격을 주었으나 트롤에 의해 전멸했으며, 적과는 겨우 4백의 병사로 적을 지연시키며 사티로스의 나라, 단염의 구원을 받아 수도를 지켜 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금안은 괴멸적인 타격을, 석면과 적과, 단염은 상당수의 부대를 잃었다.
반면에 뱀파이어는 여전히 4천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샤이븐은 자신을 흡혈왕(吸血王)으로 자칭하고 백아(白牙)라는 나라를 세웠음을 선포한다.
9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흡혈왕 샤이븐의 백아는 대륙의 패자로 떠올랐다.
샤이븐은 자신의 부하들, 2세대와 3세대 그리고 4세대 뱀파이어들에게 미래를 제시했다.
“우리는 상처 입고 방황했다. 우리를 버린 과거의 동족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최후엔 버린 신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이 땅에 열 것이다.”
샤이븐의 장군들, 즉 2세대들은 대부분 샤이븐과 같은 떠돌이들이었으므로 샤이븐의 뜻을 이해하고 호응했다.
샤이븐은 이제 다른 나라와의 국경을 확실히 나누어 백아의 존재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군대를 1천 씩 나누어 각 국경으로부터 다른 나라들을 압박했다.
병력을 나누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백악은 대륙 중앙에 위치해 다섯 나라 모두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각국은 총 병력을 동원해도 대부분 1천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샤이븐의 예상대로 플레이어들은 1천으로 나누어진 병력들이라 하더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백아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백아의 국경을 넓혀 갔다.
위즈덤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은 성운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늦은 시점이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샤이븐은 플레이어들의 토론 따위 알 방법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위화감을 느꼈다.
샤이븐이 뱀파이어가 된 지 10개월, 각 장군과 이어진 파발이 오가고 있었는데, 넷으로 나눠진 군대 모두가 일정 시점에서 정지한 것이었다.
각 장군은 나름의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샤이븐이 보기에는 정말 타당한지 의심스러웠다.
‘…왜 장군들이 움직이지 않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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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이, 다섯 플레이어에게 말했다.
“뱀파이어에겐 세 가지 약점이 있지.”
의문을 표한 것은 크람푸스였다.
“…세 가지? 두 가지가 아니라?”
“일단 두 가지를 말해 봐. 그거라도 알고 있는지 보게.”
“…다 아는 거잖아? 햇빛이랑 은.”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람푸스는 손을 들고 말했다.
“잠깐, 기다려. 남은 한 가지를 알 것 같기도 한데.”
“뭐라고 생각해?”
“…세대를 지날수록 능력이 열화된다는 점?”
성운은 가로저었다.
“그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잖아.”
“…그렇지.”
플레이어들은 상급, 중급, 하급으로 뱀파이어들을 나뉘어 보고 있었다.
상급은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햇빛과 은에 강한 타격을 입고, 하급은 반대로 약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햇빛과 은에 거의 타격이 없었다.
이 상중하의 단계는 누가 물고 누가 물렸는가로 나뉘므로, 자연스러운 추론으로 첫 번째 뱀파이어는 강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몇몇은 이미 드러난 뱀파이어 장군 중 하나가 첫 번째라고 생각했지만, 성운 생각에 아직 첫 번째 뱀파이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같았다.
위즈덤이 말했다.
“네뷸라, 굳이 우리를 놀려먹을 게 아니라면 수수께끼 풀이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
“기분 나쁘게 했다면 사과하지.”
“…퍽이나. 뭘 이제 와서.”
위즈덤은 크람푸스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래서, 뭘 시작했단 거지? 너라면 딱히 문제라고 생각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내 정찰 자원으로 볼 때 흑린은 딱히 움직임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아니라 백아에서 시작되었단 말이지.”
“네뷸라, 넌 뱀파이어의 플레이어가 아닐 텐데.”
성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뱀파이어는 스스로가 약점을 내재하고 있어. 그리고 그 세 번째 약점을 알아본 건 나뿐인 것 같고.”
“그게 뭐지?”
“우선 최근 며칠 사이 백아 군대의 진군 현황을 보자고.”
성운은 준비해 둔 창을 띄웠다.
날짜별로 나열된 지도에는 백아의 군대 위치가 적혀 있었다.
“어때?”
룬다가 말했다.
“제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다 똑같은 지도 같은데요?”
“그게 의미하는 바는?”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
“그렇지.”
“그게 약점이라고요? 하지만 그냥 정비를 위해서 멈춘 걸 수도 있잖아요?”
“네 개의 군대가 전부 한 번에?”
성운은 가로저었다.
성운은 창을 조작했다.
성운의 화상 채팅 창이 몇십 배 커져서, 성운이 서 있는 알 수 없는 산맥의 황량한 풍경이 드러났다.
뒤이어 이번에는 수십 개의 창을 띄웠다.
“각 창은 보시다시피 백아 군대의 이동 경로야. 이 군대가 정비를 위해서 멈출 일은 잘 없어. 식량 공급이나 부대원 보충 같은 걸 마음대로 못하거든. 그래서 정비를 할 때는 일정한 주기로 마을을 약탈할 때 단 한 번이야. 마침 네 개의 부대는 식량 공급을 위해 멈춰 섰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어.”
크람푸스가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이들이 멈춰선 이유가 꼭 당신이 말하지 않은 세 번째 이유와 관련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럴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엔 충분히 상관관계가 깊다고 봐.”
위즈덤이 질문했다.
“그게 뭐지?”
“간단한 거야. 너희는 처음에 뱀파이어를 좀비 대하듯이 상대했지. 좀비 역병에 대한 전략이라면 충분히 훌륭했지만, 문제는 뱀파이어와 좀비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
성운은 자신의 가면을 툭툭 건드렸다.
“바로 지능이 있다는 거지.”
“지능.”
“그래. 좀비는 그냥 명령을 받는 존재니까 개체별 차이가 없지만, 뱀파이어는 달라. 종족도 다르고 상중하의 계급 차이도 있어. 심지어 이들 중 대부분은 ‘강제로’ 뱀파이어가 되었지. 하급 뱀파이어는 중급에게, 중급 뱀파이어는 상급 뱀파이어에게 복종하는 것 같지만 이 복종조차도 하급 뱀파이어라면 질이 떨어져. 이게 뭘 의미할 것 같아?”
위즈덤이 말했다.
“그랬던 건가.”
위즈덤이 혼자 납득을 하자 룬다가 물었다.
“뭐가 그랬다는 거예요?”
“놈들에겐 명분이 없다.”
“명분?”
“네뷸라, 내가 설명해도 되겠나?”
“얼마든지.”
위즈덤이 네 플레이어에게 말했다.
“뱀파이어의 결속력은 내재된 복종심으로만 이루어진다. 지금까지는 그게 통했다. 우선 뱀파이어가 되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해쳐야만 했지. 하지만 백아는 큰 나라가 되었다. 더 이상 남을 해치지 않아도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지. 더 이상 싸워야 할 명분은 없고 복종만이 남아 있다. 그러니 뱀파이어 장군들 중 몇 명은 분명…”
위즈덤은 말을 고르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해. 그렇지. 뱀파이어 장군들은 더 이상 자신의 부하들로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아 할 거다. 우리 군대는 타격을 입었지만 신성은 남아 있으니 충분히 1천의 군대는 상대할 수 있다. 장군들은 그걸 알고, 다른 장군이 먼저 움직여 주길 바라는 거다.”
성운이 덧붙였다.
“배가 고플 땐 몰랐지만, 배가 부르고 나니 딴생각이 시작되는 거지. 눈치 게임이 시작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