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97
097화
가루다 마즈다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내가 마법사가 된 뒤에 석면을 배신한다고?”
“그렇다.”
“이건… 야천의 명령인 건가?”
혼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다. 이건 예언에 불과하다.”
마즈다리는 야천의 의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의 대리인을 보내 예언을 알려 주는 것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다.
‘야천은 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건가?’
마즈다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석면의 왕 데르말딘이 넘겨주는 자료들을 모아서 마법사가 된다면, 석면의 힘은 분명 무시할 수 없어질 것이다.
본래 트롤들은 강인한 종족이지만 과거에는 식량이 부족해 아이를 제대로 기르기 힘들었다. 나라를 세우고 기틀을 잡은 지금은 트롤의 수도 부쩍 늘었다. 석면은 언제나 대륙 최고의 국가 지위를 노리고 있었다. 이미 나라의 크기만 보자면 대륙에서 석면이 가장 큰 국가기도 했다.
거기다 조만간 만들어질 화약 무기와 마법사의 힘까지.
어쩌면 석면은 흑린보다 더 강성한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야천은 속선을 경계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더 직접적인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불가사의한 것인지는 마즈다리의 연금술적, 마법적 지식으로도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만큼, 마즈다리가 인식도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도록 둘 수도 있을 것이다.
마즈다리는 마침 그런 궁금증을 풀어 줄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음을 깨달았다.
“왜 야천은 내게 강제로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 거지?”
혼고는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야천께선 자유 의지를 존중하신다.”
“자유 의지?”
“다른 누군가에게 강제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마음. 그러니 너는 이곳에서 탈출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예언을 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야천이 별로 좋아하지 않겠군.”
“그건 모른다. 야천께선 자신의 예언이 맞거나 틀리는데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으신다.”
혼고가 말했다.
“그리고 예언을 전하는 나의 임무는 끝났다. 예언을 이루거나 말거나, 선택은 너의 몫이다. 다만 이번에 들은 이야기는 잘 갈무리해 두는 게 좋겠군. 속선이 너의 생각을 엿들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되면 넌 배신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겠지.”
그 말과 함께 혼고는 다리를 굽히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사라져 버렸다.
창문 너머로 풀 소리가 나더니 곧 멀어졌다.
마즈다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가 버린 건가?’
마즈다리는 꿈이라도 꾼 것인가 싶었지만 그렇진 않았다.
-정말 징그럽게 생긴 놈이군. 그렇지 않나?
‘너만큼은 아니지.’
마즈다리는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면 검게만 보이는 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더 흉측했다. 생긴 것과 달리 큰 고통이 없다는 점만이 위안이었다.
-나도 너다. 우리는 단순히 몸을 공유하는 게 아니야.
‘그럼 나만큼은 아니라고 하지.’
-뭐? …좋다. 기괴하게 생긴 놈이긴 했지만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갔으니.
‘선물?’
마즈다리의 되물음에 썩은 손이 타박했다.
-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까먹었나?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속선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 테니, 지금이 탈출할 절호의 기회잖아?
마즈다리는 이상하게 썩은 손의 말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 느꼈다.
-잠깐, 너…
‘생각이 바뀌었다.’
썩은 손이 이죽거렸다.
-신을 그토록 증오하더니 결국 신의 뜻대로 움직이겠다는 건가? 이대로 마법사가 되면 너는 배신을 하지 않게 되면 속선의 뜻대로 되고 배신을 하게 되면 야천의 뜻대로 하게 되는 셈이다.
마즈다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마즈다리는 혼다에게서 예언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신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함정이었다.’
-함정이라고?
‘내가 탈출하는 것도 신의 뜻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마성의 정령은 신들의 위대함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긍정했다.
-그야… 그렇지.
‘신의 뜻에 맞춰서 생각을 한다는 판단 자체가 잘못된 거였다.’
-그럼?
‘날 가두고 다른 연금술사들을 고문해 죽인 그 자식에게 엿을 먹여야지 않겠어?’
그 말에 썩은 손도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즈다리가 문으로 다가가 외쳤다.
“간수! 날 데르말딘에게 안내해라! 고민은 끝났다고 전해!”
─┼
사시안은 흑린의 오라즌과 마가넨, 그 중간쯤에 위치한 한적한 항구 마을이었다.
그 위치 자체는 북쪽과 남쪽에 있는 다른 항구 마을과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고, 종족 구성 또한 리자드맨이 주류가 아닌 여러 종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었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평야가 넓고 흙이 좋아 농사를 짓기에 좋다는 점이지만 사시안으로부터 강을 끼고 이어지는 평야가 있었기 때문에 사시안만의 특징이라고 들긴 힘들었다.
“…라고 알려져 있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그렇게 말하는 것은 기술대 대신 럼프였다.
그 말에 휘 라비나 무엘이 말했다.
“비밀 병기창이란 말이죠?”
그 질문에 대해 럼프는 쉽게 답하기 힘든 듯 눈가에 힘을 주고 먼 곳을 바라봤다.
럼프의 풍성한 턱수염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렸다.
오라즌에서 사시안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잘 닦여 있지 않았다.
사시안의 인구가 많지 않은 만큼 경제적인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오라즌과 사시안 사이에는 정비된 수로가 존재했고 배를 이용한 수상 교통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배에 올라타 있었다.
“단순히 무기를 만들기 위한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럼?”
“음.”
“제가 맞춰 볼까요?”
럼프가 답하기 전에 라비나가 말했다.
“불신자들의 지식이 갖춰져 있는 거죠?”
“어허, 불신자라니.”
“기술대신 님도 불신자의 지식에 관심도 많고 배우기도 하시면서, 왜요?”
“야천께서 듣겠소.”
“별로 신경 안 쓰실 것 같은데.”
럼프는 입을 꾹 다물었다.
라비나는 이 드워프 남자가 기술을 논하기엔 너무 고지식하지 않나 싶었지만, 능력을 의심하진 않았다.
라비나는 화약에 대한 제조 방법과 고대에 화약을 통해 사용했던 무기를 대략 설명했는데, 이 드워프는 그 정보를 기반으로 이미 시제품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다만 그 위험성 때문에 궁에서 실제 화약을 넣고 사용하는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모양을 봐서는 라비나는 별다른 결함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럼프가 강 끝을 보며 말했다.
“다 왔군.”
─┼
같은 시각, 해적의 수치 또한 사시안에 도착했다.
티오네 이티모는 작은 항구에 배를 정박하고 물건을 내리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배에서 내렸다가, 짜증을 내며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바센 라크 오라즌이 말했다.
“무슨 일이지?”
“실을 물건이 있다고 며칠 더 정박해 달라는데요?”
“실을 물건? 궁과 관계된 건가?”
티오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긴 한데, 저희 일이랑 관계된 것 같지는 않아요. 남쪽으로 내려갈 배들을 수배하고 있나 봐요.”
“뭘 실어야 하는 거지?”
“그건 아직 알려 줄 수 없다고 하네요.”
“그냥 며칠 쉬었다 간다고 생각하면 어때?”
티오네는 인상을 썼다.
“이렇게 되면 일정이 늦어지죠. 사실 초석 말고 거래 물건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항구에 가서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걸 여기서 다 팔고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바센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결국 돈 때문이었군.’
하지만 바센이 보기엔 해적의 수치는 할 일이 있었다.
“저것들도 어차피 넘겨야 하지 않나?”
바센은 묶여 있는 해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죠. 그런데 그건 훼사에게 맡기면 될…”
그 말에 훼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느닷없이 선언했다.
“1등 황훼사, 결심해따.”
“뭘?”
“육지 밟지 않기로.”
바센은 황당한 듯 말했다.
“바브린에선 땅을 밟지 않았나? 분명 화물 내리는 걸 봤는데.”
“결심을 잊고 이써따.”
티오네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티오네는 바센에게 속닥거렸다.
“가끔 이래요.”
“1등 항해사라는 지위 이대로 괜찮은 건가?”
“네? 당연하죠. 우리 배에는 유능한 2등 항해사가 있거든요.”
바센은 유능한 하프빈 선원을 떠올렸다.
그가 사실 이 배에서 실질적인 1등 항해사였던 모양이다.
“음…”
“아무튼 해적들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수밖엔 없어 보이는군.”
고단을 비롯한 해적들은 모두 팔은 물론 다리가 좁은 간격으로 묶여서 바센과 바센의 수행원들 정도로도 충분히 끌고 갈 수 있을 터였다. 아마 바센이 원하기만 한다면 혼자서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다른 병사들을 대동할 수도 있었지만 겨우 넷 밖에 없는 해적들을 인솔하는데 병사들을 끌고 가는 건 바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단과 그 부하들을 관청으로 데리고 가는 동안 고단은 자신이 있는 대로의 사실을 다 말해 주었으니 좋게 봐주는 게 맞느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는데, 끝까지 무시하려던 바센도 마지막에 가선 너무 피곤해져 그러겠노라 건성으로 답했다.
관청에 도착하자 리자드맨 현감이 이미 소식을 듣고 관청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이고 왕자님, 여행길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그대가 사시안의 현감인가? 여행 도중에 해적들이…”
“아차! 들었습니다. 예끼, 이놈들아. 너희가 감히 흑린의 왕족을 무얼로 알고…”
“인솔했으니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시면 현감인 제 면이 어찌되겠습니까? 왕자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간단히 자리를 마련했으니 들어가시지요.”
“……”
바센은 현감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센은 오라즌에서야 궁 밖으로 내쳐진 왕자지만, 지방에서는 여전히 왕과 같은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은 권력인 것이다.
다만 바센이 알고 있기에 사시안이 카일의 입김이 닿는 자리로 알고 있었는데, 현감 자리만큼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지. 오히려 현감에 아무나 앉혀야 했던 건가? 그래야 다른 대신들의 눈도 속일 수 있을 테니.’
그렇다면 바센은 이 현감의 아부에 적당히 맞춰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럼 한번 여독이나 풀고 가야겠군.”
“좋으신 생각입니다!”
“아, 하지만 저기 해적 우두머리는 고단이라 하는 자인데 보시다시피 아스타시디안이다. 그리고 놈은 남쪽 해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야분 해적단 소속으로 중요한 정보를…”
“예이예이, 저만 믿으십시오. 우선 들어가시죠. 얘들아! 저 해적 놈들을 얼른 옥에 쳐 넣거라!”
바센은 현감의 태도가 믿음직하지 못했지만, 현감이 워낙에 등을 떠미는 터라 제대로 돌아볼 틈도 없었다.
만약, 바센이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아스타시디안 고단이 자신의 등껍질의 꺼끌한 부위로 밧줄을 거의 다 끊어 냈음을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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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시간 뒤.
현감이 주최하는 바센을 환영하는 잔치 자리에서 현감 옆으로 병사 하나가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현감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술에 취해 있던 바센이 말했다.
“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아, 저… 별일 아닙니다. 그냥 마을의 일이니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가?”
“예, 맛 좋은 술이 더 있습니다. 더 드시지요!”
“아, 잠시. 술을 너무 마셨는지 요의가 오는군. 뒷간에 좀 다녀오지.”
“아, 그러시지요.”
바센은 비틀거리며 손을 흔들고 걸어 나오다 그대로 담벼락을 넘었다.
바센의 수행원이 옆에 서 있었다.
바센이 술을 마시는 동안 주변 동태를 알리기 위해 남겨 둔 자였는데, 방금 담벼락 너머에서 바센에게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해적 놈들이 도망쳤습니다.”
“아, 이런 무능한 현감 놈이! 내 경을 칠 것이다.”
“다행히 그리 멀리 도망가진 않았습니다.”
“어서 가자, 안내해라.”
“하지만 술을 드셨는데…”
그때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이군.”
비명 소리가 들려온 곳은 마을의 광장.
바센은 똑바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뿔이 난 인간 여자를 붙잡고 있는 해적 고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