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99
099화
‘파괴력은 굉장하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전투를 바꿀 수 있지?’
바센 라크 오라즌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화약을 넣은 다음 포알을 넣고, 나무 막대를 꽂아 다듬고, 심지에 불을 붙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대포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선 시간이 들어. 혼란한 전쟁터에선 분명 적군 몇을 죽일 수 있지만, 그러는 사이 적들이 이미 도달해 버릴 거다. 하지만…’
바센은 대포가 가진 전력을 높게 평가했다.
‘하나가 아닌 많은 수의 대포라면 멀리 있는 적을 쳐부술 만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전사도, 하물며 아스타시디안은 물론 오우거라고 해도 대포알을 맞고 살아남긴 힘들어 보이는군. 기병은 또 어떻고? 달려오는 기병을 보병대에 닥치기 전에 거꾸러트릴 수 있단 것만으로 굉장한 성과다.’
다른 장점도 있었다.
‘공성전에선 어떤가? 약한 성곽이라면 이 정도 크기의 대포로도 충분히 부술 수 있어. 단지 무거운 무게 때문에 이동이 힘들고, 그 때문에 원하는 장소에 대포들을 배치하는 작업을 적보다 빨리 해내느냐가 관건이군.’
하지만 휘 라비나 무엘의 말에 따르면 먼저 사용하게 되는 장소가 있었다.
‘해상? 두말할 것도 없지. 화살로는 승부를 낼 수 없으니 어찌되었든 사람이 배에 올라타야 한다. 하지만 대포가 있으면 구멍을 내서 가라앉힐 수 있을지도 몰라.’
배의 구조와 강도에 대해선 정확히 아는 바가 없으므로 바센의 평가는 조심스러웠지만, 정확한 평가기도 했다.
땅 위에서라면 적은 대포를 향해 달려올 수 있지만, 바다 위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바센은 대포가 가져올 변화를 직감했다.
‘전투의 풍경이 뒤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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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안의 비밀 병기창, 지붕 위에 앉아 바센의 생각을 엿듣는 이가 있었다.
“저 말은 다 맞아.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지.”
성운이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엘다르가 말했다.
“흑색 화약을 사용하는 전장식 대포도 대단하긴 하지만… 후에 등장하는 무기들에 비하면 그렇겠지요?”
“장전 속도가 너무 느리고, 발사 후에 포강을 닦아 내기도 해야 해. 무엇보다 대포가 너무 무거워. 대포 하나에 몇 사람이나 들러붙어야 하지. 정식 훈련을 받아야 하고.”
“게다가 비가 오고 습해지면 쓰기 힘들잖습니까?”
“흑색 화약은 물기를 잘 머금으니까 굳어 버리지. 굳은 화약을 억지로 떼어 내려다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고.”
엘다르가 말했다.
“흠, 하지만 카일은 천재고 저 럼프라는 드워프도 재주가 대단하옵니다. 어쩌면 다음 단계의 화약 무기를 만들어 낼 지도요?”
고민하던 성운이 가로저었다.
“아니. 안될 거야.”
“어라,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당장은 저기서 만족할 테니까.”
“아.”
이미 대포의 등장만 하더라도, 대포를 가지지 않은 이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전술적 가치를 손에 넣은 셈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향의 기술 발전을 이루기보다는 이미 있는 기술을 보편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릴 것이다.
“기술을 최적화시킨다고 해서 다음 단계의 기술이 짠, 하고 나타나는 건 아니잖아?”
“역시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다음 기술이 나타나기까지 엄청나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진 않긴 해. 대륙 곳곳에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발판이 놓여 있으니까.”
“발판 말입니까?”
성운은 시스템 창을 조작했다.
“이런 거.”
성운이 띄운 창에는 꽤 여러 모습을 가진 대포의 시제품들이 나와 있었다.
“아하. 적이 우리와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최적화된 것 이상의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내려고 하겠지.”
“네뷸라 님은 저들이 저희와 전쟁을 한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거의.”
연금술사의 탑에서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었던 흑린이 뒤쳐지지 않게 만들었을 뿐, 제3 대륙의 각국에서도 이와 같은 대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흑린은 황야 지역 아래에서 황도 많이 난다. 속이 들어찬 질 좋은 나무도 북부에 있지. 게다가 초석 구매로도 있어. 휘 라비나 무엘이 화약 제조 비율을 조정해서 성능을 끌어 올리면 나머지 4개국보다는 나을 거야.’
성운이 말한 나머지 4개국은 룬다의 적과, 크람푸스의 단염, Ar1024의 금안, 장완의 만굴이었다.
성운은 위즈덤의 석면만큼은 쉽게 보지 않고 있었다.
‘아주 작정을 한 것 같단 말이지.’
위즈덤은 최근 석면 내부의 소수 종족들을 강하게 압력하면서 자원을 뽑아내고 있었다.
장기적인 측면에선 각 종족 내부의 불만이 쌓이게 되므로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선 쓸모가 있다.
전쟁 물자를 확충하는 것이다.
‘이제 게임은 중반부에 들어섰다고 할 만해. 계속 현재 진영을 유지하는 것도 괜찮지만, 그렇게 되면 대륙 간 싸움에서 밀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성운은 위즈덤이 승부수를 띄우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손을 안 써 둔 게 아니지.’
하지만 당장 급한 불은 남방 제도에 있었다.
“당분간은 지켜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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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해적의 수치 선상.
티오네 이티모가 멀리 난간에 기대 있는 라비나의 등을 바라보며 바센에게 중얼거렸다.
“단장님, 저기 머리에 뿔 난 인간이 위험하진 않겠죠?”
“그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 먼저 물어봐도 되나?”
“말씀하세요.”
“내가 보기에 엘프와 인간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왜 인간, 인간 하고 부르는 거지?”
“그걸 농담이라고 하세요?”
“음?”
“제가 보기에도 리자드맨이랑 프로그맨은 별 차이가 없다고요.”
“아니, 그건 아니지. 일단 생긴 것부터 다르다고.”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티오네가 자신의 길쭉한 귀를 가리켰다.
“저희도 완전 달라요.”
“…아니 그건 좀.”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두 종족 사이에선 자식이 안 나오죠. 그런 면에서 인간과 엘프는 리자드맨과 프로그맨만큼 다른 거예요.”
바센은 리자드맨과 프로그맨은 도마뱀과 개구리만큼 다르며, 반면에 인간이 점토로 귀를 만들어 붙이면 엘프와 다름없지 않은가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설명하기도 피곤한 데다 자신의 종족을 굳이 도마뱀으로 비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말했다.
“…알겠다.”
“그래서 라비나 씨는요?”
“멀쩡한 사람이다. 저주받았다곤 하지만 미친 건 아냐.”
“아니, 머리에 달린 뿔은 아무래도 좋고요. 그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잖아요.”
“뭐지?”
“저 사람, 불신자잖아요?”
바센이 퉁명하게 되물었다.
“불신자가 뭐 어때서 그런가?”
“…동생분 중에 사제가 있지 않나요?”
바센이 고개를 끄덕이곤, 이 부분은 다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해적의 수치와 군함에는 이미 대포와 화약, 그리고 해당 기술을 병사들에게 가르쳐 줄 기술대 관원들이 타고 있었다.
카일은 바센과 티오네에게 흑린의 남쪽 해안에서 군 병력과 합류하라는 밀명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밀명을 전한 것이 바로 라비나였다.
그러니 바센은 라비나에 대한 티오네의 불만을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었지만 바르지 않은 생각은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티오네 이티모 선장.”
“네?”
“나는 사소한 불신 정도는 누구나 겪는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불신?’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대장간에 돈을 주고 칼을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려 멋진 쇠칼이 만들어졌지.”
“궁에도 칼 만들 사람 정돈 있잖아요?”
“그때 나는 아주 어렸다. 위험하니 진검을 잡을 수는 없었지. 그래서 좌수관 하나를 보내서 부탁을 했던 거야.”
“그래서요?”
“그런데 정작 들고 온 칼이 엉터리였던 거지. 나무를 몇 번 내리쳤을 뿐인데 날이 상하질 않나, 얼마 못 가 금이 가서 쓸 수 없게 되었다. 아무튼 시시한 일일 뿐이지만 나는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신은 없는 건가, 하고 후회했지.”
“몇 살이었다고요?”
“아홉 살쯤이었나?”
“……”
“그 좌수관이 형편없는 장인에게 칼을 맡겼던 게 후회스러워서 그 뒤로 되도록 남에게 일을 맡기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이게 사소한 불신이다. 사소한 일로 신이 없다고 한탄할 수는 있지만 잠깐인 거지.”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티오네가 말했다.
“근데 그 이야기랑 라비나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
“라비나는 한탄할 일이 좀 많았던 것뿐이라는 말이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자신의 설득을 시원찮게 받아들이자 바센은 다소 무안했지만, 다행히 침묵은 길어지지 않았다.
돛대 위에 올라가 있던 선원이 수평선을 보며 외쳤다.
“선장님! 신원 미상의 배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돛 모양을 잘 봐! 군기는 아니야?”
“아닙니다. 속도가 빠릅니다! 이제 아래에서도 보일 겁니다.”
그 말대로 수평선 멀리에 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두 척이 아니었다.
“여섯? 일곱? 아니야. 그보다 많은데.”
그때 배 위에서 누군가 자지러지게 놀랐다.
“야, 야분 해적단이다!”
그 말을 꺼낸 사람을 향해 티오네와 바센의 시선이 향했다.
아스타시디안 고단이었다.
해적질에 인질을 잡기까지, 법대로 따지면 목숨이 붙어 있을 수도 없지만, 바센이 예상한대로 고단은 야분 해적단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바센은 현감을 잘 타일러서 고단을 남방 제도까지 데려가기로 말했다. 현감은 그것이 죄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을 봐주기 위한 거래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승낙했는데, 안타깝게도 바센은 그날 저녁 궁에다 현감을 법대로 처벌해야 된다며 편지를 부쳐 두었다.
바센이 고단에게 말했다.
“뭘 보고 야분 해적단이란 거지? 그냥 해적일지도 모르지 않나?”
“배 모양을 본 적이 있습죠. 저희가 타는 배랑은 모양이 크게 다릅니다. 저놈들은 흑린이나 단염 출신의 산하 해적단이 아닌, 저 대륙에서 온 본선입니다!”
그 말에 티오네가 수평선의 배들을 자세히 살피곤, 선원들에게 본 적 있는 배인지 물었다.
정말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배 모양이었다.
티오네가 말했다.
“정말인 거 같아요. 전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음, 잘됐군.”
“네?”
“아니, 혼잣말이야. 전투에는 예의 대포를 써 봤으면 하는데, 어때?”
티오네는 의심스럽게 배 위에 올라선 대포들을 바라보았다.
실제 사격을 보긴 했지만, 신무기에 대해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저기에 기대를 걸어 보긴 해야겠네요. 적은 전부 열 척이니 저희 두 배가 넘으니까요.”
고단이 겁에 질려서 난간 앞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난 망했다. 그냥 해적할걸.”
티오네가 호쾌하게 고단의 뒤통수를 때렸다.
“멍청한 놈아, 넌 해적한다고 했으면 그전에 죽었어.”
“아, 그렇지.”
“저기 포 옮기는 것이나 도와라.”
“옙, 누님.”
바센은 고단의 호들갑이 신경 쓰이긴 했다.
다른 대륙에서 온 데다 생긴 것이 특별히 기괴하다고 불렸다.
마치 해안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대의 딥원이란 종족과 닮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싸우기도 전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선 부닥쳐 볼 일이지.’
해적의 수치와 군함들은 도망치기보다 배를 돌려세워 최대한 많은 포들이 해적선을 향하도록 배치했다.
첫 발이 장전되자 배 위로 긴장감이 엄습했다.
해적선들이 다가오니 해적들이 저마다 약탈에 대한 기대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이 좋군! 네 척이나 되다니!”
“오늘은 야분 님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겠구나! 하하!”
“움직이질 않는군. 겁먹은 거냐, 땅벌레들아?”
그리고 실제 보게 된 해적단의 선원들 모습은 고단이 묘사한 것과 똑같았다.
어두운 심해에서나 살고 있을 것 같은 퉁퉁 부운 얼굴에 거무죽죽한 비늘, 그리고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는 뾰족뾰족한 이빨까지 사납고 공포스러웠다.
“조준!”
병사들이 모험단에 속해 있었으므로 전투 지휘도 단장인 바센의 몫이었다.
이 선단의 대장으로 보이는 붉은 두건을 두른 딥원이 선수에서 외쳤다.
“항복하는 놈은 고통 없이 죽여 주마!”
바센이 생각했다.
‘이 거리면 충분하다.’
바센은 수기를 내렸다.
“발사!”
-쾅!
첫 번째 탄환이 쏘아지더니 붉은 두건을 두른 딥원의 머리통을 그대로 으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