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bie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00
뉴비가 너무 강함 200화
AND-타르하
“정말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지?”
팔라함이 팔짱을 끼고는 자신의 아내, 샬레에게 물었다.
샬레는 관심도 없다는 듯 등을 돌린 채 요리에 열중이었지만.
“며칠, 아니, 이제 한 달이 넘어가는데, 계속 똑같은 소리만 할 거예요?”
샬레가 그럴만도 했다.
팔라함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저 소리였으니까.
그래서 대체 뭘 기억하지 못하냐고 물으면, 팔라함은 검은 머리의 여행자에 대해 얘기했다.
“꿈이라니까요. 그러니까 아침마다 그러지.”
“어허, 계속 같은 꿈만 꾸는 경우가 어딨나?”
샬레가 스프 그릇을 탁 소리나게 테이블에 놓고는 으름장을 놓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제 채신 좀 차려요. 당신 나이가 있지. 언제까지 밖에 쏘다니기만 할 거예요?”
쏟아지는 잔소리에 팔라함은 끙 앓는 소리만 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스프만 입에 넣었다.
밖에선 태양의 전사장이었지만, 여기서만은 그도 한 가정의 남편이었으니.
게다가.
“오늘 의료원에서 확진 받았어요.”
“설마.”
팔라함이 설렘과 걱정이 담긴 샬레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고개를 살짝 내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샬레의 배였다.
“이제 당신은 하나가 아니라, 둘을 책임져야 하는 ‘진짜’ 가장이에요.”
“……어쩔 수 없군.”
“네. 그러니까 제발, 날아다니면서 쿵 쿵 거리지 마요. 저 혼자 놀라는 건 상관없지만…….”
“암. 그래야지.”
팔라함이 씨익 웃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샬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껴안은 후 천천히 등을 쓸어내렸다.
“당신 몸은 괜찮은 거요?”
“걱정일랑은 하지 마요. 제가 누구 아내인지 잊었어요?”
몇 번의 유산이 있었는가.
팔라함은 그 호언장담 속에 담긴 슬픔을 알기에, 그저 꽉 껴안아 오는 샬레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가봐야죠.”
샬레가 뒤꿈치를 들어 팔라함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미소 지었다.
“다녀오리다.”
털옷을 챙겨 밖으로 나온 팔라함은, 헥헥거리며 다가오는 개를 쓰다듬었다.
“옳지. 이 녀석.”
가져온 육포를 따라 빙그르르 돌다가 팔라함의 손짓에 따라 앉는 모습은 퍽 똑똑해 보였다.
피식 웃고는 육포를 멀리 던져주자 개는 쏜살같이 멀어졌다.
차오르는 햇빛을 따라 산으로 고개를 돌렸고.
“…….”
산등성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꿈이었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도 하나같이 모른다는 얘기뿐이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잊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창문 너머로 샬레의 콧노래가 들려왔다.
신의 장난에 놀아난 꿈에서처럼, 무채색의 울음소리 대신 말이다.
‘일정이…….’
꿈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면, 또 저번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을 터.
팔라함은 금세 상념을 떨쳐버리고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오후에 제국의 사신이 방문하니 여왕에게 들러야 하고.
그전까진 딱히 이렇다 할 일이 없었다.
‘순찰이나 돌아야겠군.’
정확히 말하자면 순찰을 빙자한 산책이었지만.
발에 힘을 주어 단숨에 언덕을 내려갈 생각이었던 팔라함은, 곧바로 발에 힘을 풀었다.
샬레의 당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채신이라니, 참.”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팔라함은 울타리를 지나 내리막길로 향했다.
“집을 잘못 받았어. 이런 언덕길이라니. 다시 건의를 해야겠군.”
그러면서도 툴툴대는 건 멈추지 않았지만 말이다.
팔라함은 제일 먼저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성벽을 떠올렸다.
항상 거기서 마력 포를 쏴대던 게 생각났기에 습관처럼 들르던 곳이었다.
하지만 생각에 그쳤다.
‘계단이 몇 갠데.’
얌전히 걸어 올라갈 생각을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결국 목적성을 띄지 않은채 이리저리 걷다, ‘진짜’ 순찰을 돌던 두 전사와 마주쳤다.
“전사장을 뵙습니다!”
“고생이 많군. 성문 경비 교대 후 순찰인가?”
“예.”
팔라함은 곧바로 이상함을 눈치챘다.
오른쪽에 있던 전사가 발을 절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별거 아닌 척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네만, 발목이 평소보다 두 배는 부어있는 것 같은데. 순찰보단 의료원을 가보는 게 좋겠어.”
두 전사는 세심한 지적에 벙찐 표정을 짓다가, 결국 솔직하게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게, 경비 중 이상한 여행자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타르하에 말이지?”
“예. 용케도 밖의 눈보라를 뚫고 들어와 신기하게 생각했죠.”
“그래서?”
“무슨 일이냐 물으니, 여왕님에게 볼일이 있다더군요.”
“수상하군.”
“예. 그래서 누구냐 물으니, 언질이 있을 테니 여왕님에게 물어보라 하더군요.”
“오호. 당찬 자로고.”
거기까진 이상할 일도 없었다.
“근데, 왜 다친 건가?”
발목을 다친 전사가 우물쭈물대자, 옆에 있던 전사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여행자도 딱히 막무가내였던 건 아니라…… 보고 후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녀석이 깐죽거려서 말입니다.”
“왜?”
“그, 여행자가 제국의 코트를 입고 있어서 말입니다.”
팔라함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혼자 왔다고 했지?”
“예.”
“사절단은 아닐 테고.”
“네. 말 그대로 본인이 여행자라 그랬으니 말입니다.”
팔라함은 대충 상황을 눈치챘다.
발목을 다친 전사는 평소 제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녀석이다.
본인이 여행자라 그랬으니 시비를 걸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을 터.
“그래서 때아닌 내기가 벌어졌습니다.”
“오호. 무슨?”
“이 녀석이 여행자와 결투를 해서 이기면, 여행자를 업고 여왕님에게 모셔가겠다고 말이죠.”
“하하! 여행자가 잘도 그 내기를 수락했군.”
“거절한다면 겁쟁이라고 소문을 내고, 여왕님을 만나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게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통에…… 면목이 없습니다.”
발목을 다친 전사는 자신의 추태보단, 결투에 진 게 더 분했는지 얼굴을 푹 수그렸다.
“여행자가 꽤 강했나보군.”
“반칙입니다!”
주먹을 부르르 떨던 전사가 고개를 팍 들고는 소리쳤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 녀석, 코트가 제멋대로 꿈틀대더니 순식간에 제 발차기를 튕겨냈습니다.”
팔라함의 동공이 커졌다.
“방금, 뭐라고 했나?”
심상치 않은 기세에 발목을 다친 전사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그, 코트가 너무 단단해서…… 그걸로 결투가 끝이났-”
“아니. 그 전에, 코트가 꿈틀거렸다고?”
“네, 네.”
“그 여행자 지금 어디 있나?”
“네, 분명. 여왕님께 바로 간다고.”
“알겠네.”
팔라함은 두 전사의 인사를 받는둥마는둥 하며 빠른 걸음으로 둘을 지나쳤다.
‘설마, 설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팔라함은 뛰는 심장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팔라함 님?”
수련장에서 빠져나온 듯, 땀을 식히던 르토와 마주친 팔라함이 빠르게 물었다.
“혹시 이 길로 여행자 하나가 지나가지 않았나?”
“아, 네. 기억합니다. 수련장 안으로 직접 들어왔으니까요.”
“안에 들어갔다고?”
팔라함이 쳐부술듯한 기세로 수련장으로 몸을 틀었으나.
“네. 제가 다른 전사와 대련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더니, 정신을 차리고보니 사라졌습니다.”
“이것 참!”
이어진 르토의 말에 짜증을 삼키곤 다시 방향을 거리로 틀었다.
“무슨 급한 일입니까?”
“아닐세. 나중에 얘기하지!”
팔라함은 답답한 마음에 뛰어서, 아니 날아가고 싶었다.
‘약속한 게 아침인데.’
하지만 곧 샬레의 당부를 떠올리곤 고개를 털었지만.
그래도 빨리 걸은 탓인지 곧바로 내성에 들어섰다.
“전사장을 뵙습니다!”
“그래. 여왕님은 어디 계신가?”
“회의실에서 준비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맙네.”
팔라함은 대충 인사를 받고는 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긴 복도를 지나, 회의실에 문을 벌컥 열자 회의 자료에 고개를 박고 있는 여왕이 보였다.
혼자서 말이다.
“여왕!”
여왕은 팔라함의 큰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란인가?”
“여행자가 다녀가지 않았소?”
“그 정신 없는 화법은 변함이 없어.”
“그게 문제가 아니오.”
어지간히 급해보이는 표정에, 여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말한 여행자라면, 한참 전에 떠났네.”
“무슨.”
“나한테 전해줄 안부가 있어서 온 거라, 딱히 나눌 얘기가 없었거든.”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 했소이까?”
“모르지. 지금 타르하 밖을 나섰을 수도 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데 말이오?”
“그 눈보라를 뚫고 들어온 사람인데, 반대라고 안 될 게 있겠는가.”
팔라함이 안타까움에 탄성을 터트리다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닫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여긴 왜 왔는지 알고 싶은데, 혹시 무례가 아니라면 말이오.”
“공손한 척 무례한 건 언제 고칠 셈인지.”
팔라함은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내 손자가 보냈다더군.”
“손자라면…….”
“그래. 조금 있으면 황제가 될 녀석 말일세.”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오.”
“아니. 말 그대로 안부만 전해달라더군.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말이야.”
팔라함은 자기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 말 몇마디를 전하고자 눈보라를 뚫고 타르하까지 왔단 말인가?
“서신으로 전해도 될 얘기 같은데…….”
여왕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더 볼 일이 없다면 나가보게. 자네 얼굴을 보는 건 오후만으로 충분하니.”
팔라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탈한 심정에 더 묻기도 뭐했던 탓이다.
‘착각인가.’
분명 기억 속 여행자라면, 자신을 먼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착각이겠지.’
왠지 지치는 느낌에 팔라함은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곤 터덜터덜 걸었다.
그러다 어느새 도착한 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걸 깨달았을 쯤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거, 참.”
정신없는 오전이었다.
결국은 자신의 착각이라는 허무한 결론만 내놓은, 그런 오전 말이다.
마당에 멍하니 서있자니, 개가 슬며시 다가와서는 혀를 내밀어 헥헥 거렸다.
“…….”
팔라함은 무릎을 숙여 개를 쓰다듬고는, 피식 웃었다.
“사람들은 네 이름도 잊은 모양이야.”
개의 이름을 물어보니, 모두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름이었냐고, 되묻기까지 하니 자신이 미친 건가 싶었기도 했고.
하소연을 할 데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에게 말을 털어놓는 자신이 있었다.
“네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말이다. 네가 원체 안 짖는 놈이다 보니, 꼭 필요할 때만 짖으라고 그렇게 지었단 말이다.”
분명 그랬다.
자신들이 찾는 대전사가, 꼭 나타났을 때 크게 짖어 모두에게 알리라고.
그렇게 지어준 이름이다.
콜-라찬타.
팔라함은 빤히 개를 쳐다봤다.
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냉정한 녀석.”
피식 웃은 팔라함이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자신의 집으로 몸을 돌렸다.
한순간의 꿈이었으니, 이젠 현실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순간.
왈! 왈! 왈!
팔라함의 귀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문고리를 잡은 팔라함의 손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이내 천천히 몸을 돌리자.
언덕 너머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아주 익숙한 얼굴로 말이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내 그럴리가 있나.”
팔라함은 자연스럽게, 가슴을 두 번 치고는 고개를 숙였다.
“라찬타. 영광은 찾았나?”
“네. 아마도요.”
팔라함이 고개를 들자, 환하게 웃고 있는 그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