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2
104화〉
마지막 물결
김은주는 한참 동안을 돌아다녔다.
이예지, 최성일과 각각 찢어져 다른 헌터를 찾기 위해 사방을 살폈던 그녀.
하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를 몬스터에 대비한 채 누군가를 찾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부회장님, 잠깐 쉬었다 가시죠.”
“맞아요.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
그녀의 보조로 나선 두 명의 헌터가 김은주에게 조언했다.
“그럴까요.”
김은주는 바닥에 앉아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을까.’
사실 그녀는 게이트에 들어와서 내내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헌터 협회 부회장의 직위로 참가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불안함.
발록이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료 헌터가 죽고 크게 다치는 걸 옆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김은주는 스킬 한 번 쓰지 못하고 도망만 다닌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뭐가 랭커이고, 뭐가 협회의 간부란 말인가.
동료가 다치는 와중에 적에게 칼 한 자루 들이밀 수 없는 존재면서.
그녀는 두 무릎을 세워 그곳에 얼굴을 묻었다.
“부회장님은 밖에 나가면 다시 바빠지시겠어요?”
그때 헌터 하나가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아··· 아무래도 그렇죠. 서류 작업도 해야 하고. 특히 이번 S급 게이트는 너무 이례적인 부분이 많아서요.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담아내려면 인터뷰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저희들 인터뷰를 다 하는 건가요?”
“그럼요. 각각 보고 들은 내용을 종합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니까요. 흔치 않은 사건이잖아요.”
김은주의 말에 두 헌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발록 이야기를 주로 보고하게 되겠네요?”
“아무래도··· 그 사건이 제일 크긴 했죠. 미국의 S급 게이트에 나타났던 그 괴물과 일치하는 것 같아요.”
“미국도 못 잡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저희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네요. 설마 누가 그런 괴물을 잡을 수 있겠어요.”
그녀의 말에 다른 두 헌터들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도 S급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나라가 되게끔 하고 싶었다.
거기다 미국에서도 놓친 발록을 한국 헌터들이 잡는다면, 그만한 영광도 없을 테고.
“도경후 헌터님이 꼭 없애 주셨으면 좋겠네요. 김은주 헌터님 생각에는 어떠세요?”
“아니지. 민시준 헌터님이나 류지환 헌터님이 상성적으로 더 낫지 않을까요, 김은주 헌터님?”
“야, 류지환은 걸러야지.”
김은주는 그들이 투닥거리며 류지환을 갖고 얘기하는 것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도경후 헌터님 옆에 내가 있어서 다 봤는데, 류지환이 먼저 말을 어기고 공격했다니까. 그래서 갑자기 처음부터 몇십 명이 죽은 거잖아.”
한 헌터가 자기가 눈앞에서 본 광경을 장황하게 설명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헌터가 이해가 안 가는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한 길드의 길드장이··· 왜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게이트 나가면 바로 HMCS 구속감 아닌가.”
“그래서 다 하는 소리가 그거잖아. [금강길드]의 수장이 굳이 왜 그랬을까.”
“어디서 좋은 오퍼라도 들어온 거겠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헌터는 동료에게 타박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크······ 읍.”
동료는 눈이 뒤집힌 채 입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살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잔잔하고,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괴팍한 기운이 류지환에게서 불꽃처럼 일렁였다.
“류···지환!!”
“오랜만이야, 김은주 헌터.”
김은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전투 태세를 갖추려 했다.
“어허ㅡ 저 친구, 인질인 거 모르나 보네.”
류지환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개의 기다란 화염의 창이 덜덜 떨고 있는 헌터의 목에 겨눠져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걸하듯 말했다.
“윽! 류지환 헌터!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미쳤습니까?!”
“크큭큭. 씨바아아알. 미치기는. 나 아주 멀쩡해.”
“그런데 왜··· 왜 [금강 길드]의 수장이나 되는 사람이 같은 동료를 죽이는 겁니까!!”
김은주는 분노에 차서 일갈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 게이트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동료에게 개죽음이나 당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란 말이었다.
“워ㅡ 그렇게 노려보지 마셔.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 같잖수.”
류지환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이미 죽은 헌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나보고 천재라느니, 2세대의 보물이라니 하는 거 아슈?”
“···왜?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졌습니까?”
“큭큭큭. 오늘따라 되게 날카롭네.”
류지환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가 싫더란 말이지.”
“······.”
“아무리 발버둥 치고 개같이 노력해도 보이지 않는 벽이란 게 있더란 말씀이야.”
” ···벽?”
“김은주, 당신은 느낀 적 없수? 최대수, 도경환, 길리온 같은 타고난 괴물들을 보노라면, 나는 한없이 작아져. 한없이 작아지고 작아져서···.”
그는 담뱃재를 시체 위에 털었다.
죽은 헌터의 눈도, 말하고 있는 류지환의 눈도 똑같이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넘을 수 없는 통에 갇힌 개미 같더란 말이지.”
후우ㅡ
담배 연기는 그의 말처럼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개소리하지 마십시오.”
그때 김은주가 류지환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지금 떠든 것과 동료 헌터를 살해한 것에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후우.”
“그리고! 누군가한테는··· 누군가한테는 당신이 벽입니다! 당신만 그런 감정에 부딪히며 사는 줄 아십니까!”
류지환은 헝클어진 금발을 쓸어올렸다.
그리곤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 몰랐던 사실을 알려 줘서 고맙수. 하지만 말이야, 당신이 한 말에 대한 대답은 둘 다 YES거든.”
“뭐라고요?!”
“큭큭. 우선 나를 보고 벽이라고 느끼는 것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살고 싶지 않수다. 인간이란 원래 서로가 타인에게 늑대 아뇨.”
“그게 대체···.”
“그리고 두 번째. 연관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 내 나름의 당위성이 있거든.”
류지환은 품에서 어떤 물건 하나를 꺼냈다.
김은주는 그 물건을 보더니 점차 표정이 굳어졌다.
“아··· 설마, 당신이…?”
“낄낄낄. 웰컴 투 〈나락〉이라는 거~!”
그의 주위로 수십 개의 화염 칼날이 이글거리며 혀를 날름거렸다.
***
“전열을 가다듬어라!! 포션을 아끼지 마라!!”
도경후는 다시 모인 헌터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따로 떨어져 다니는 동안 여러 몬스터와 싸운 헌터도 있고, 발록만 피하다 온 헌터도 있어 컨디션이 제각각이었다.
필릭스 같은 중상자들은 게이트 밖으로 대피시켰다.
도경후는 마지막이란 각오로 마력을 재정비했다.
적어도 이 게이트 안에서 가장 강한 적은 민시우가 싸워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쪽수로 덤비는 놈들이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삼존이라는 칭호가 울겠군.’
그는 검을 매만지며 호흡을 골랐다.
한때 라이벌이었던 자들이 저만치 앞에서 달려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째선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어이, 민시준헌터.”
“네? 왜 그러십니까.”
“자네 형은 더 강해진 것 같더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민시준은 최근 보아 온 형의 실력을 보고 과거와는 확실히 다르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많이 정제됐군. 하지만 무뎌진 건 아니야. 예전 미친개라는 이명이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요즘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십쇼.”
“자네 형은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가.”
민시준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으려 했건만, 도경후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한 까닭에 미소조차 지을 수 없었다.
“나도 비누로 잘 씻고, 칼로 면도를 잘하는데··· 어째서 노안 소리를 듣는지 모르겠군.”
“···그렇군요.”
“나중에 꼭 물어봐 주게. 내가 물어보면 지랄할 게 뻔하거든.”
민시준은 애써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찰 갔던 헌터들에게서 보고가 왔습니다!!”
그때 도경후를 보좌하는 헌터가 다가오며 외쳤다.
“전방 10km 지점에서부터 마수들이 돌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드디어 시작됐군. 모두 무기를 들고 준비하라!!!”
사나운 눈빛으로 일갈하자 모든 헌터들이 즉각 전방을 주시하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처음 게이트에 들어왔던 숫자에 비교하면 고작 절반.
하지만 모두 노련한 자들이니만큼, 한 사람당 일당백은 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다 문득 도경후는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있어 보좌에게 물었다.
“그런데 숫자는 대략 몇이라고 하던가?”
“그게··· 2천 정도라고 합니다.”
“하아.”
괜히 물어봤군.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도경후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기적을 믿지 않는 그조차 다른 이변이 생기기를 절로 바라게 되는 몬스터 떼에, 그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도하게 됐다.
‘얼른 와라, 민시우, 길리온.’
***
류지환은 가죽 백팩 하나를 등에 메고 터덜터덜 걸었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한 시간은 넘게 걸은 듯했다.
도착한 곳은 숲 중심에 있는 커다란 신전.
그는 비스듬히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가 가득 쌓인 예배당 내부엔 수천 개의 기다란 의자와 커다란 신의 조각상, 햇빛에 색을 입혀 신전 내부를 장식하는 천장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그는 예배당 제일 앞쪽으로 갔다.
주머니에서 양초 하나를 꺼낸 류지환은 초에 불을 붙인 뒤 조각상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그래도 신은 믿나 보지?”
중간 좌석에 앉아 있던 검은 실루엣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설마. 그럴 리가.”
류지환은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백팩을 바닥에 내려놨다.
“왜 몬스터 안 잡고 이곳에서 농땡이를 치고 있지, 〈HMCS 강북 지부〉 민시우 헌터?”
“글쎄. 그러는 너는 왜 몬스터 안 잡고 이곳에 있을까. [금강 길드]의 류지환··· 아니, 마약상 ‘클라운.'”
시우의 말에 류지환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기껏 연기를 좀 하려나 했더니만.
“씨바아아알.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은 몰랐네. 어떻게 알았지?”
류지환의 물음에 시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냐. 〈나락〉에서 탈출할 때 나한테 불꽃을 쐈잖아.”
“그게 뭐 어째서?”
“사람마다 마력의 흔적이 다르다는 거 알고 있어? 일종의 지문처럼.”
“알기야 알지. 씨바아알, 그래서 그게 뭐?”
“오늘 네가 눈알 괴물에다가 창을 박았다며.”
“설마··· 낄낄낄. 구라도 적당히 쳐야지. 마력흔 조사하려면 연구소에 보내서 며칠은 기다려야 하는데, 오늘 구현한 마력흔과 그때의 마력흔을 비교한다고?”
류지환의 냉소 어린 질문에 시우는 손가락으로 단상 위를 가리켰다.
그곳엔 노란 서류 파일 뭉치가 하나 있었다.
류지환은 파일에서 서류를 꺼내 내용을 슬쩍 읽었다.
“···가로, 세로획과 마력 회로의 방점, 불의 원소를 사용할 때 원형 귀퉁이에 새겨지는 습관적 꼬리표··· 두 인물의 일치율 99.999%··· 이게 뭐지?”
“뭐긴 내 머릿속에 있는 내용 프린트한 거지.”
“이딴 내용을 믿으라고?”
“그러면 길드장이란 새끼가 게이트 안에서 사람 죽여도 되냐?”
류지환은 분명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그들을 죽였다.
미행도 확실히 없었다.
그런데 놈이 어떻게 알 수가 있지?
시체도 다 처리했는데.
“너··· 어떻게···?!”
“그냥 떠봤어, 병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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