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4
106화〉
게이트 허트
“어이쿠, 바빠 보이는데. 그래도 실례해야 할 것 같아서.”
녹색 머리의 젊은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포털에서 걸어 나왔다.
“누구냐, 넌.”
시우는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나? 네가 들고 있는 클라운 친구인데.”
“···여기로 온 이유가 ‘게이트 허트(Gate Heart)’ 때문이 아니라 널 만나려고 그런 거였나.”
“뭐야?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네?”
남자는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신기하다는 듯, 대견하다는 듯.
“그래서 너 이름 뭐냐고.”
“내 이름이 그렇게 궁금해? 크롤이라고 하는데.”
크롤은 녹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괜찮으면 그 친구 좀 줄래? 데려가기로 했는데 그렇게 망가져 있으면 내가 혼나거든.”
“이 씨바아아알··· 쿨럭! 늦었잖아.”
류지환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크롤을 향해 나무랐다.
“후후후. 아직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니 죽진 않겠네. 이제 얼른 줄래?”
“내가 왜 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시우는 류지환의 목덜미를 쥔 손에 힘을 살짝 더 넣었다.
“커허어억! 끄어어억!”
“이런, 이런, 이런. 내가 혼난다니까?”
크롤은 품에 찼던 삼단봉을 들고 휘둘렀다.
투박하고 단단한 삼단봉의 끝이 정확하게 시우의 머리를 향해 들이닥쳤다.
시우는 곧바로 류지환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으그윽!”
크롤은 있는 힘을 다해 삼단봉을 잡아당겼다.
1cm만 늦게 반응했어도 류지환의 머리가 터져 나갔을 것이다.
“너, 싸움 좀 하는 것 같다?”
크롤은 삼단봉을 쌍절곤 휘두르듯 장난스레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클라운만 없으면 신나게 싸워도 됐을 텐데.”
“내가 너랑 왜 싸우냐.”
시우는 다른 손으로 발뭉을 꺼내 크롤을 겨눈 뒤 입매를 비틀었다.
“마족아.”
순간 크롤의 눈이 홉떠지며 강대한 마기가 신전을 짓눌러 버릴 듯 쏟아져 나왔다.
쿠ㅡㅡㅡㅡ 웅!
끼익, 끼익, 끼익.
천장 높이 걸려 있던 샹들리에가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크롤은 시우를 노려봤다.
본인이 마기를 개방했음에도 시우의 자세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이런 일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말이다.
크롤은 가볍게 심호흡을 고르더니 마기를 거두었다.
“후후후. 이거 진짜 사고 칠 뻔했네.”
“사고 치는 게 아니라, 사고 날 뻔했겠지.”
도로 대꾸하려던 크롤은 흠칫하며 본인의 목덜미를 손으로 닦았다.
아주 얇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몇 방울 흘러나와 있었다.
‘대체 언제?’
크롤은 놀라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시우를 향해 웃었다.
“재수 없게 왜 웃어.”
“후후후. 마족을 정말 싫어하나 본데.”
“딱히 좋아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가 정말 싫어하거든.”
시우는 어깨 위에 있던 작은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상한 장난감을 가지고 다니네.”
【닥쳐라, 반푼이】
프레가 짜증 난다는 듯 대꾸하자 크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반푼이라.”
오늘 놀라운 상황이 연달아 벌어지네.
그는 어떡할까 고민하다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감정보다는 이성.
지금 필요한 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보험이지 죽자 살자 달려들고 싸우는 쾌감이 아니다.
크롤은 삼단봉을 도로 품에 넣으며 미소를 지우고 말했다.
“거래를 하자.”
“내가 너랑 왜?”
“네가 손해 볼 거래는 아니라고 장담하지.”
웃음기 없는 크롤의 얼굴에서는 아까와는 다른 진지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시우는 류지환의 재수 없는 면상을 힐끗 보다가 발뭉을 칼집에 넣었다.
“거래 내용을 먼저 말해.”
“치밀하네.”
크롤은 어깨를 으쓱였다.
“첫 번째. 게이트 허트의 정확한 위치를 말해 주지.”
게이트 허트는 모든 게이트의 중심과 핵이 되는 심장을 의미했다.
이걸 파괴하면 게이트는 더 이상 마수를 생산하지 못했다.
또한 기존에 만들어진 마수들 역시도 마기를 운용할 수 없어 형체를 잃었다.
그야말로 게이트 클리어에서 치트 키 같은 존재.
그러나 헌터들은 게이트 허트를 굳이 노리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찾아내기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정부에서 탐색 헌터 열 명을 데려다 투입해서 게이트 허트를 찾아보려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다.
설령 대강의 위치를 안다고 해도 미로 안에 있다든가, 보스 몬스터가 지키고 있다든가, 혹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크롤은 말을 할지 안 할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안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마약 사업은 곧 끝날 거다.”
“왜지?”
“실험할 건 다 끝났고. 지루하거든.”
크롤은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기존 ‘실험’이 끝났다고 말해 주면서 지루하다는 표현을 덧붙인 걸 보면ㅡ 새 ‘실험’에 재미를 붙여 그런가 본데?”
“······.”
“또한 이곳의 ‘게이트 허트’ 위치를 알고 있다는 건, 적어도 〈S급 게이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단 거겠지.”
시우의 거듭된 추측에 크롤은 비지땀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많이 알아내라고 알려 준 정보가 아니었는데.
“어이. 알려 준 사람 무안하게 여기서 다 맞히려 하지 말지?”
“그런가. 알았다, 거래는 잘 받아들이지.”
시우는 류지환을 놈에게로 휙 던졌다.
사실 시우는 애초에 류지환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마력 감지로 게이트 허트를 찾았는데, 와서 보니 류지환이 있었던 것뿐.
이런 거래는 오히려 감사했다.
“어이쿠. 심하게 당했는데···.”
“그래서 게이트 허트는 어딨냐.”
“저 조각상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이게 안내할 거야.”
크롤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은 작은 초록색 풍뎅이였다.
“마력을 좀 넣어라.”
시키는 대로 마력을 붓자 풍뎅이가 붕ㅡ 날아오르며 시우 주위를 맴돌았다.
시우는 신기한 눈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조각상을 발로 걷어차 부쉈다.
“그거 밀면 되는 건데···.”
“차도 되는 거긴 하지.”
“혹시 얘 치료 좀 해 주면 안 될까?”
“거래 조건에 없는 내용이다.”
시우는 그들을 잠시 노려보다가 조끼 주머니에서 작은 포션 하나를 꺼내 크롤에게 던졌다.
“생각보다 친절한 성격이네.”
“대신에 저 가방 내놔.”
시우가 가리킨 곳에는 류지환이 가져왔던 백팩이 놓여 있었다.
뭐가 되었든 증거는 많을수록 좋다.
게다가 전투 중에도 류지환이 저 가방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꼭 가져가려 했었다.
크롤은 ‘역시’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가방을 시우에게 건넸다.
“거래 감사하군.”
“다음에 보면 광대 새끼한테 죽인다고 전해. 잘 가라, ‘반마족.'”
시우는 가볍게 인사한 뒤 지하로 사라졌다.
크롤은 그의 인사를 들은 뒤에도 잠깐 멍한 얼굴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는 진짜 희한하단 얼굴로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
“허억, 허억, 허억···!”
헌터들은 다들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피를 흘리지 않은 자가 없었고, 마력이 바닥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몬스터들은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합류했어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해서.”
최성일은 도경후와 주변 헌터들에게 사과했다.
뒤늦게 찾아온 최성일과 이예지, 그리고 수십 명의 헌터들.
사라진 김은주를 찾다가 늦어졌다고 하는데, 그들은 충분히 자신들의 몫을 해냈다.
도경후는 끌끌 웃으며 최성일의 등짝을 쳤다.
“그딴 소리 하려면 나보다 늦게 죽고 하게.”
“아니··· 도경후 헌터님이 돌아가시면 안 되죠.”
도경후는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 낸 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역한 피 냄새와 몬스터의 내장에서 흘러나온 악취로 코가 썩을 것 같았다.
“투신이든지 광견이든지. 아쉽구먼.”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야. 힘드니까 존나게 그리운 얼굴들이 있어서.”
도경후는 마지막 남은 포션을 들이켰다.
마력이 미약하게 차오르며 약간의 활력이 솟았다.
“자ㅡ 화려하게 가 보실까.”
그의 안광에서 살기가 일렁거렸다.
만약 이 저지선에서 여기 있는 헌터 전부가 죽는다 하더라도, 2차, 3차 저지선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뭣하면 최대수도 나올 테고, 민시우도 있으니 더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유망한 헌터들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다할 것이란 것.
그는 주위에 선 헌터들에게 하나하나 시선을 던졌다.
길리온, 강여화, 최성일, 민시준, 이예지, 황정구, 추하민.
“크하하. 내가 먼저 죽을 테니까 다 따라 죽도록 해라.”
도경후는 진정한 무인처럼 거리낌 없이 외치며 다가오는 괴물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피를 흩뿌리다 죽는다면 그것 또한 검의 길!
그런데,
놈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 뭐지?”
다른 헌터들도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천 마리가 넘는 모든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미세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마법이 있나···?”
“아니, 이건 마법이 아니라ㅡ.”
그때 몬스터들이 몸이 한 마리씩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드드득.
한 줌 재로 변하는 놈들의 거신이 바람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고.
곧 전방을 가득 에워쌌던 모든 괴물의 모습이 깨끗이 사라진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기적, 기적입니다!!”
“아니야! 진정해 봐 혹시 이것도 놈들의 기술이면 어떡해!”
헌터들에게서 제각각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ㅡ 게이트 허트를 찾은 게 아닐까요?”
누군가 질문을 던지자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잠해졌다.
“그런데 그걸 누가 찾아?”
“혹시 김은주 헌터님 아닐까?”
“아닐걸. 류지환 헌터가 똑똑하니까 그분 같은데.”
“도경후 헌터님! 혹시 다른 헌터에게 명령하신 적 없습니까?”
도경후는 강여화와 민시준, 길리온의 얼굴을 슬쩍 둘러봤다.
모두 ‘그 이름’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크하핫. 명령은 무슨. 평소처럼 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도경후는 날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검을 검집에 집어 넣었다.
***
풍뎅이가 안내한 길은 썩 매끄럽지 않은 곳이었다.
다행히 함정이나 매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까 그놈 왜 안 죽였냐?】
프레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거래했잖아.”
【살아 있는 악의 화신이 그런 것도 지키냐?】
“······닥치고 가자.”
시우는 마족을 싫어했다.
그렇다고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한 명의 헌터로서 자국을 지키기 위한 방어 규율에 따랐을 뿐.
하지만 반마족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마족 때문에 탄생한 이종.
마족도 인간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 자리한 존재.
그렇다 보니 쉽게 죽일 수 없었다.
‘물론 친한 사람 중에 반마족이 있으니 그런 것도 있지만.’
풍뎅이가 도착한 곳은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작고 어두운 방이었다.
그 중심, 두 손이 포개진 조각상 안에 새까만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시우는 [타케미카즈치]를 이용해 사위를 밝혔다.
“이게 뭐야?”
그건 아주 까만 심장이었다.
심지어 그건 살아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시우는 게이트 허트를 종종 찾아내 없애 본 적이 있는 헌터였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일반적인 게이트 허트가 아니라고.
“이 새끼들은 뭐 하는 놈들인데 이런 걸 만들었어.”
그는 새까만 심장을 조심히 들어 올렸다.
느릿느릿한 박동이 손끝에서부터 미약하게 느껴졌다.
썩은 내가 진동했고, 들어 올린 심장 아래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역겨운 마족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시우는 그 점에 동의했다.
그리고 손바닥에 불길을 모아 심장을 통째로 불태웠다.
역한 냄새가 풍겨 왔다.
새까만 마기가 되어 흩어진 심장 덩어리.
“다 태웠으니 가자. 음?”
그런데 손에 작은 보석 하나가 남아 있었다.
【여기 뭐라 쓰여 있다.】
시우는 보석 중앙에 각인된 글씨를 읽었다.
《모든것은 〈판데모니엄〉의 아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