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죽이는 자
투욱.
쿨렁, 쿨렁.
지켄의 남은 하관에서 피가 콸콸 쏟아진다.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모든 사람이 오싹함을 느낀다.
“히, 히이이익!!”
“우웨에엑!”
시우는 단도에 묻은 피를 지켄의 옷에 슥, 슥, 닦아 냈다.
이래서 검은 편하다. 뒤처리도 깔끔하고.
“이제 넷 남았다.”
그의 눈에서 서늘한 살기가 검날처럼 번져 흘렀다.
“도, 도망쳐!!”
“이 씨발!”
살아남은 자들이 냅다 출구를 향해 발을 놀렸다. 그들은 속으로 되뇌었다.
‘저건 사람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야! 살아 있는 악마 그 자체다!’
【역시 좁밥이다. 싸우다 도망치는 거 전사의 수치다. 우리 종족은 저런 놈들 없다. 너네 종족 다 저 모양이다.】
“시끄러.”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는 신발 앞코를 바닥에 툭툭 쳤다.
단전의 마나가 그의 다리 근육 사이를 파고들며 에너지를 뿜어냈다.
시우의 신형이 사라지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이트클럽 내부에 흘렀다.
휘ㅡㅡㅡ이ㅡㅡㅡ잉
퍼거억!
스거어억!
콰드득!
연이어 들리는 오싹한 소리.
달리던 조직원들의 목이 하나씩 따이며 피 분수가 일었다.
그것도 거의 같은 순간에 벌어진 일.
“허억, 허억, 흐윽!”
제일 앞서 뛰어가던 조직 막내가 다리를 접질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쿠당탕.
그가 넘어지고 난 뒤, 뭔가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덜덜 떨리는 얼굴로 뒤를 돌았다.
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혀, 형님들······?”
“없어.”
그의 옆으로 시우가 섰다.
막내는 한숨도, 한탄도 아닌 이상한 숨을 쉬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이한 소리.
나름 큰돈을 벌고자 마음먹고 들어와서 했던 조직 생활.
2년간 시다 짓을 하고, 불과 얼마 전에야 정직원이 되어 배지를 달게 되었다.
E급 각성자인 그로서는 헌터를 해 봤자 마나석을 채굴하거나, 몬스터 사체를 운반하는 일이 전부.
꿈은 화려한데 현실은 시궁창인 셈.
그래서 제 능력껏 크게 달려보고자 들어왔던 곳이 케르베로스였다.
이대로 5년, 10년만 하면 정직원 중에서 꽤 높은 간부가 될 줄 알았는데, 고작 이런 곳에서···.
“야.”
“······?”
“현실은 소설이랑 달라.”
“사ㅡ!”
스거억.
막내는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몸을 뉘었다.
핏물이 그의 등을 적셔나갔다.
이따금 몸이 꿈틀거린다.
시우는 검에 묻은 피를 닦고 다시 검집에 넣었다.
터벅, 터벅.
그는 기절한 강호를 향해 몸을 숙였다.
우ㅡ웅
금빛 찬란한 섬광이 강호의 머리를 에워싼다.
또다시 상처가 아문다.
일반 힐러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속도와 완성도.
시우는 발로 놈의 머리를 걷어찼다.
거센소리가 발끝과 머리통에서 튕겨 나왔다.
“끄아아악!! 뭐, 뭐야!!”
“야.”
강호는 그 목소리에 흠칫, 몸이 굳었다.
본능적으로 몸이 떨려 온다.
마치 호랑이 포효 소리에 강아지의 몸이 굳듯,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으으··· 아아아···.”
“뭐라는 거야, 병신이.”
강호는 입에서 침까지 질질 흘렸다.
지금까지 맞아서 흘린 피에 침이 섞이며 끈적하게 옷을 적셔 갔다.
시우는 강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B급 헌터인 강호의 시선으로 채 따라잡지 못할 엄청난 속도였다.
뻐어어억!
“커··· 어··· 억!!”
강호는 숨을 쉬지 못하겠다는 듯 배를 움켜쥐고 새우처럼 바닥에 뒹굴었다.
“얼른 일어나. 반 죽여 버리기 전에.”
“그어··· 아···.”
그 섬뜩한 협박에 강호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일어났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게 복부를 맞아서인지, 아니면 이자의 무시무시한 압박감 때문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게이트 등급이 바뀌어서 예상치 못한 몬스터가 나왔을 때도, 다른 헌터와 시비가 붙어 목숨을 건 싸움을 했을 때도, 상대 조직과의 전쟁에서 혼자 남았을 때도.
이렇게 공포스럽진 않았다.
이 자는 완벽한 포식자.
완벽한 괴이.
‘나는 그저 먹잇감이다.’
강호는 한 마리의 새끼 임팔라처럼 다리를 후들거렸다.
“내가 왜 이렇게 할까?”
시우는 차갑고 냉랭한 눈짓으로 물었다.
평온한 말투도 그가 말하면 절대 일반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 모, 모르겠, 스, 습니···.”
“너 처음에 나 몇 대 때렸냐.”
“예······??”
강호는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듯 시우를 쳐다봤다.
그걸 세고 때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스물세 대.”
시우는 또박또박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말했다.
“내가 스물세 대 너한테 처맞았다고.”
“······예.”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그만큼 맞아야지.”
“예????”
시우는 언제나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걸 원칙으로 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새끼들은 시준이가 등장하는 바람에 똑같이 해 주질 못했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기브 앤 테이크를 해 줄 수 있는 상황.
“그럼 시작한다.”
“자, 자, 잠깐ㅡ 커어억!”
뻐억! 뻐어억!
시우는 다시 주먹으로 강호의 몸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주먹이 아니라 흉기로 내리치는 것처럼 둔탁한 타격음이 났다.
강호는 손을 들어 막기도 하고, 가드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막으려 올린 손만 주먹에 박살 날 뿐이었다.
“크허어억! 끄어억!! 제, 제발, 사, 살려ㅡ.”
“걱정 마. 치료해 주잖아. 혀 잘리기 싫으면 아가리 여물어라.”
“끄으윽! 윽! 어억!!”
***
시우는 숨을 골랐다.
몸이 개운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뻥 뚫린 기분이다.
정확히 스물세 대를 때리고 멈췄다.
강호는 바닥에 누워 토사물과 피, 온갖 분비물에 몸을 섞은 채 누워 있다.
여덟 번.
놈의 상처를 여덟 번 치료했다.
자고로 여덟은 강호가 기절한 횟수와도 같다.
막판으로 갈수록 시우는 마력을 조금씩 늘려 가격했다.
그래 봐야 진심 어린 공격에는 터무니없이 못 미쳤지만.
“맷집 키우면 좋잖아.”
이러면서 펀치 한 번에 강호의 허벅지를 터뜨리거나 카프 킥 한 대에 정강이뼈를 으스러뜨리고는 했다.
일반 힐러라면 꿈조차 꿀 수 없을 능력으로.
강호의 혈관과 근육, 세포 따위를 모두 회복시킨 뒤에 말이다.
그러고는 다시 기절시킬 때까지 두들겨 패기를 반복.
마지막 스물세 대가 끝나자 시우는 강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출구로 향했다.
이번에는 치료하지 않은 채였다.
놈은 사지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럴 힘도 없을뿐더러 이미 멘탈 자체가 갈가리 찢겨 나갔기 때문.
“미, 민시우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황정구가 뛰어와 물었다.
그를 비롯한 HMCS 팀원 네댓 명이 서성이다 몰려왔다.
모두 시우의 지시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
보통 이런 상황에는 탱커와 근접 딜러, 원거리 딜러, C.C 서포터 혹은 힐러가 한 조가 되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인데.
시우가 자기 혼자 가겠다며 황정구에게 명령(?)을 내린 탓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자, 두목급 한 명.”
시우는 강호의 머리채를 잡고 휙 하고 던졌다.
황정구 앞에 철퍼덕 떨어진 강호는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죽··· 었습니까?”
“아냐. ‘걔’는 살았어.”
황정구는 눈짓으로 다른 팀원들에게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잠시 뒤 나온 팀원들.
그들의 안색은 희멀겋게 질려 있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조직 리스트를 보고 추정해 본 결과, 무혈사신 쪽은 중상자만 있으나 케르베로스 쪽은 사망자만 일곱입니다.”
“뭐? 이놈도 케르베로스 맞지? 방패인가 뭔가 하는 놈이라고 얼핏 본 것 같아.”
“맞습니다. 거기 행동대장이라서 넘버 투예요.”
팀원의 말에 황정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자 리스트에 나와 있는 강호는 B급 헌터.
조직에서 제법 구른 놈이기도 하고, 다른 조직원들도 각성자란 것을 참고하면 상황 자체가 순탄한 건 아니었을 거다.
‘더군다나 이 자식 스킬이 대인전에서 좋다고 알려져 있지.’
몬스터전에서 위력을 더하는 스킬이 있는가 하면, 대인전에서 위력을 보이는 스킬이 있다.
강호의 스킬은 대인전에서 효율이 더 좋은 케이스.
‘하기야, 상대가 민시우인데 대인전이고 나발이고 뭔 소용이겠어.’
황정구는 혀를 차며 강호의 아픔에 동정을 표했다.
“다 죽였는데 상관없지?”
물에 적신 수건으로 피를 닦아 낸 시우가 묻는다.
다른 팀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황정구를 바라본다.
“기본적으로는 체포가 우선이지만··· 제압이 불가능하거나, 상대에게 부상을 입었을 경우엔 사살해도 좋습니다. 이건 세계 HMCS 공통 사항입니다.”
“그래? 그럼 나 부상 보이지? 여기 증거물로 피.”
시우는 피가 묻은 수건을 다른 팀원에게 건넸다.
“나 중상이었어.”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차마 뱉지 못한 말이다.
“오늘 사건 더 있어?”
“아니요, 없습니다.”
“그래, 그럼 나 볼일 보러 간다. 괜찮지?”
“아, 잠시만! 장착했던 바디캠은 잘 찍혔습니까?”
바디캠.
〈HMCS 국제본부〉에서 요원들의 안전 및 범죄의 증거확보를 위해 새롭게 실시한 제도였다.
현재는 시범운영인 단계였고, 황정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우에게도 장착해 달라 부탁한 것이다.
“그거 깜빡하고 안 켰는데.”
시우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황정구는 바디캠을 떼려다 말고 손을 거뒀다.
“괘, 괜찮습니다! 혹시 다음에 전투를 하시게 되면 꼭! 바디캠부터 켜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뒤처리는 다 할 테니 살펴 들어가십쇼. 내일 뵙겠습니다!”
“오냐.”
황정구가 90도로 인사를 하자, 다른 팀원들도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고 신입에게 인사했다.
“팀장님, 도대체 저 신입이 누구길래···.”
“묻지 마라. 그냥 심기만 거스르지 마.”
황정구는 애꿎은 강호의 뒤통수를 때리며 차에 실었다.
***
홍콩.
갑자기 생성된 B급 게이트 안, 수십의 헌터들이 몬스터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홍콩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적광 길드]
.
그 가운데서도 유독 움직임이 돋보이는 한 사람. 새빨갛게 물들인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거구의 사내.
그의 오른 주먹부터 팔꿈치까지 감싼 푸른 갑옷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점차 푸른 열기가 더해지는 갑옷.
“다들 떨어져.”
거구의 사내가 탁한 목소리를 내뱉더니 오른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쿠가가가!
시퍼런 발톱이 대지를 휘갈기듯, 수십의 몬스터들이 흔적조차 사라지고야 말았다.
“역시! 1조 단장님이십니다!”
“단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으하하! 이 기세를 몰아서 모두 쓸어 버리자!!”
사기가 살아난 [적광 길드]의 헌터들이 앞으로 내달렸다.
그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거구의 사내, 거트.
그는 빨갛게 흩날리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머리를 다시 묶었다.
이마에 난 기다란 흉터가 드러난다.
“저, 단장님··· 한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게이트 밖에서 [적광 길드]의 헌터가 들어오더니 거트에게 소식을 알렸다.
거트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급한 소식이 맞겠지?”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게이트 안에서 레이드를 뛰고 있는 헌터를 불러내지는 않는다.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서는 당연히 지켜 줘야 할 룰.
“그게···.”
말단 헌터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전화기만 거트에게 건넸다.
“전화 바꿨습니다.”
-거트 헌터 맞습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다.
“그렇습니다.”
거트는 낯선 이의 전화에 표정이 더 굳었다.
-혹시 지켄 씨의 형제 되시는 분 맞습니까?
“······네.”
거트는 오랜만에 듣는 형의 이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같은 각성자면서도 범죄의 길을 택한 지켄.
등급이 그리 높지 않은 지켄이 범죄에 손을 뻗은 건 다름이 아니었다.
동생인 거트와 다른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택한 악수.
실제로 지켄은 가족을 다 먹여 살렸다.
그 후 거트가 각성을 하게 되면서 거트는 형에게 길드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지켄은 거절했다.
이미 자신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며, 거트 너만이라도 훌륭한 헌터의 길을 걸으라고 말이다.
형의 소식은 간간이 들려왔다.
차마 웃으며 듣기엔 끔찍한 내용뿐이었다.
조직 케르베로스는 그만큼 악랄하기 그지없는 놈들만 모인 곳이었으니.
차라리 자신과 함께 있으면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편하게 헌터 생활을 했을 텐데.
– 이런 소식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지켄 씨가 사망하셨습니다. 현재 유일한 가족으로···.
그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악다문 턱이 씰룩였다.
거트는 전화기를 말단 헌터에게 도로 건넸다.
이제껏 보아왔던 그의 표정 중에서도 가장 차갑고 무시무시한 얼굴에 말단 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벅. 저벅.
“다, 단장님? 레, 레이드 아직 안 끝났는데요?”
게이트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걷는 거트에게 직원이 후다닥 뛰어가 물었다.
“길드장님께는 따로 보고하겠다.”
“무엇을 말입니까?”
“나는 오늘 한국으로 간다.”
“예?? 지, 지금이요? 무슨 일 때문이신데 그렇게 급히?”
거트는 갑옷이 덧씌워진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 이내 주먹을 꽉 쥐고는 낮게 읊조렸다.
“사람 피를 묻히러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