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0
113화〉
독일
남자는 헬멧에 묻은 토를 닦아 내려 했다.
그러나 더럽고 역겨운 액체는 헬멧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비위를 더럽혔다.
“우웨에에엑!”
남자는 그 역함을 이기지 못하고 본인도 토를 쏟았다.
끼이이이!!
오토바이는 순식간에 가드레일을 처박고 저 아래로 떨어졌다.
콰ㅡ아앙!
폭탄 터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왔다.
“······.”
“······.”
라일라와 필릭스는 할 말을 잃고 조용히 전방을 주시했다.
“이런 일 자주 있지 않아?”
“아니.”
“그대··· 전혀.”
“저건 내가 독일 HMCS에 신고하지.”
【으··· 해장하고 싶다··· 얼큰한 국물이 필요한 것이다···.】
시우는 프레를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본 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베를린의 유명 호텔.
“우선 씻고 좀 쉬고 있으면 우리 직원이 데리러 올 거야.”
“오면서 있었던 일은 그대가··· 방겐하임 회장님께 설명을 해 줬으면 해. 우리 역량을 넘어섰거든.”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시우는 짐을 풀어 정리한 뒤 씻고 나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프레가 베개 위에서 숙취로 끙끙대는 모습이 보였다.
장기간의 비행으로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거기다 최근에 S급 게이트도 있어서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된 상황.
그렇게 시우는 모처럼 깊은 잠에 취해 고단했던 시간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몇 시간 뒤.
똑똑.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그의 방문을 누군가 노크했다.
문을 열고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민시우 헌터님. 〈독일 헌터 협회〉 소속 루카라고 합니다. 이쪽은 파트너 요하나입니다.”
“옙! 반갑습니다! 요하나입니다!”
“저도 처음 뵙겠습니다.”
시우는 루카와 요하나에게 마주 인사했다.
그들은 준비된 고급 SUV 차량에 탑승해 어딘가로 이동했다.
“독일은 두 번째이십니까?”
“아뇨. 아주 예전에 한 번 온 적 있습니다.”
“그렇군요. 여행으로 말입니까?”
“여행은 아니고··· 게이트 때문에 도와주러 왔었죠.”
“그러세요? 응? 최근 몇 년간은 게이트 때문에 해외 헌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주 예전이라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평범한 잡담이 오가는 사이, 어느새 차가 협회에 도착했다.
시우는 〈독일 헌터 협회〉의 규모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현대 건물이라기보다는 콘체르트 하우스나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을 가져다 놓은 듯한 어마어마한 위용.
‘이런 건물에서 일하면 없던 자부심도 생기겠네.’
요하나의 안내에 따라 협회 3층에 있는 작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잔을 들고, 각자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롤프 방겐하임도 그중 하나였다.
그의 인기는 이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한국의 〈강원 S급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막아 최대수에게 큰 빚을 지게 만든 것.
다른 하나는 전 세계에 〈독일 헌터 협회〉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 주어 인지도를 높인 것.
따라서 롤프 방겐하임의 치솟는 인기는 비단 독일 내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하하하. 이번에 미국 타임지에서 방겐하임 님께 연락했더군. 올해의 헌터 리더 20인 중 하나로 뽑고 싶다며 말이야.”
“이야, 방겐하임 협회장님 대단하십니다. 슈토프 총리도 이번 정상 회담에서 방겐하임 협회장님 덕분에 기가 살았다 하더군요.”
“다들 과찬의 말씀입니다.”
롤프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최대한 방만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려 했다.
그라고 왜 자랑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헌터의 자부심과 긍지가 있기에, 또한 〈독일 헌터 협회〉의 장이라는 위치를 생각해 롤프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독일 헌터계의 기둥이라 믿었다.
그때 요하나가 다가오더니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며 입구를 가리켰다.
‘저자가 민시우라는 남자군.’
롤프는 멀찍이서 그의 외형을 관찰한 다음 고개를 슬쩍 갸웃했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이나 행보로 봐서는 덩치가 엄청 커다란 근접 전투형 헌터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른 걸 보니 원거리형에 가까운가?’
〈나락〉진압 사건이나, 〈강원 S급 게이트〉때 커다란 공을 세우며 한국의 떠오르는 신성이 된 민시우.
물론 롤프가 의도적으로 소식을 챙겨 들은 건 아니고 라일라가 기사를 가져와 조잘조잘 떠들어 댄 걸 기억한 것뿐이지만 말이다.
‘예전에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한국이 우리한테 신세를 졌으니 서로 빚진 건 없는 거다.’
롤프는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로 시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시오! 내가 〈독일 헌터 협회〉의 협회장인 롤프 방겐하임이라고 하오.”
시우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뒤늦게 손을 붙잡았다.
“민시우라고 합니다. 현재는 〈HMCS 국제 총본부〉 소속입니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됐소? 이거 축하드리오. 총본에서도 헌터님의 활약을 지켜본 모양이오.”
롤프는 웨이터를 불러 시우에게도 샴페인 한 잔을 건넸다.
“이번 게이트 사건은 한국으로서도 엄청난 악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오. 그래도 이렇게 도와주는 우방국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결과 아니겠소? 하하하.”
그가 말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이 따라 웃었다.
개중에는 시우에게 안 좋은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급부상하여 HMCS 총본에 들어간 것 자체가 한국에서 만들어 낸 이미지 메이킹 중 하나라고 여긴 것이다.
[유성우] 같은 스킬을 혼자 쓰는 것도 말이 안 됐고, 미지의 개체인 ‘발록’을 혼자 쓰러트렸단 것도 말이 안 됐다.심지어 랭킹에도 없는 사람이란 것 자체가 거짓임을 반증하는 증거가 아니던가.
“···필릭스와 라일라 같은 헌터 덕분이죠.”
시우의 대답에 롤프는 약간이나마 진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 조카, 라일라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하오. 이번에는 필릭스도 신세를 졌다고 들었소.”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라일라 헌터나 필릭스 헌터, 모두 목숨을 걸고 싸워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과서 같은 대답에 롤프가 자부심 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기다란 소시지를 통째로 먹고 있는 인형 하나를 빼면 말이다.
【옵밥! 머부 미버 머비아!(좁밥! 너도 이거 먹어라!)】
롤프는 조심스러운 질문 하나를 꺼냈다.
“그런 의미에서 묻는 건데···.”
“네.”
“우리 조카랑은 무슨 관계요?”
“···동료입니다만?”
“그게 끝이오?”
【식량이한테 암컷 많다! 몸통 박치ㅡ! 우읍!】
시우는 프레를 잡아 구긴 뒤 옆에 있는 음식 테이블로 던져 버렸다.
롤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시우를 노려보듯이 훑었다.
그렇다면 라일라의 일방적 짝사랑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소리인데, 대체 저 애의 뭐가 못나서 이 남자는 사랑을 안 받아 준단 말인가.
아니지. 받아 주면 안 되지. 내 조카를 아무나하고 만나게 할 수는 없지. 그럼, 그럼.
롤프는 내면에서 싸우는 두 자아의 갈등을 고려하며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삼촌···! 아니, 협회장님! 시우 헌터를 왜 그리 보십니까?”
그때 라일라의 목소리가 두 헌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오ㅡ 라일라 왔구나. 안 그래도 네 이야기를 조금 했단다.”
“에, 예? 예?? 대체 무, 무슨 얘기를 둘이서 했습니까?!”
뒤늦게 온 그녀는 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채 아름다운 미모를 뽐냈다.
“그냥 이것저것 물었다. 아, 마침 필릭스도 오는 길이군.”
“안녕하십니까. 조금 늦었습니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필릭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괜찮네, 괜찮아. 그런데 조금 전에 보고를 듣자 하니··· 도로에서 스킬을 썼다면서?”
“그, 그건···.”
필릭스는 반사적으로 옆에 있던 시우를 흘깃 바라봤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건 아니었고, 심성 자체가 성실하다 보니 거짓말을 하지 못해 그랬던 것.
“제가 사용했습니다.”
“아ㅡ 그대가 말이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스킬 사용은···.”
“전 HMCS 총본 상급 헌터니까 가능합니다.”
“그건 그렇지. 물론 난 상관없지만, 과연 에드워드··· 아니, 블랙우드 경께서도 조용히 넘어가실지···.”
롤프는 은근슬쩍 친근하게 에드워드의 이름을 부른 뒤 블랙우드의 성을 팔았다.
총본에서 아무리 잘나간다고 할지라도 블랙우드의 입김 앞에선 무용지물일 터.
당연하지만 롤프 방겐하임과 에드워드 C. 블랙우드의 친분은 없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말 몇 마디 섞어 본 게 전부.
하지만 그런 내막을 이제 총본에 첫발을 디딘 신입 헌터가 알까.
“괜찮을 겁니다. 호텔에서 통화했는데 알겠다고 하더군요.”
“알겠다고 하다니? 총본과 통화를 한 것이오?”
“아뇨. 에드윈과 했습니다.”
“어ㅡ 그게 누구요?”
시우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드워드요.”
“자, 자네가 블랙우드 경이랑 통화를 했다고??”
“네.”
“······직접??”
“네.”
시우의 당당한 대답에 할 말이 없어진 건 롤프였다.
확인해 보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인정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거기다 감히 존칭도 없고 친근하게 ‘에드윈’이라 불렀다.
“블랙우드 경이 부하들에게 친근하게 대한다는 걸 들었지만, 외부에선 존칭하는 게 좋을 듯한데. 친구가 아닌 이상에야 친분 과시처럼 보이지 않겠소?”
“친구라 괜찮습니다.”
“······.”
롤프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이 없어졌다.
처음 독일 사건 때 상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헌터일 줄 알았더니, 이거야 원 허풍쟁이가 아닐 수 없었다.
‘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도 백건호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게 분명하군. [유성우] 영상이나 발록 퇴치 같은 업적도 총본에 들이기 위한 계획 중 하나였을 테고.’
그렇게 결론 내린 롤프는 시우에 대한 감정이 차게 식는 걸 느꼈다.
“흠! 그렇구먼. 나도 그리 알고 넘어가겠소. 하지만 여긴 타국이니 조심하시오. 민시우 헌터가 다치기라도 하면 우리가 곤란해질 수 있소.”
“협회장님. 초대한 사람한테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라일라가 눈치를 주며 말했다.
롤프는 그러거나 말거나 헛기침하며 자리를 이동하려 했다.
어차피 서로 빚 하나씩 진 입장인 데다가 발뭉이라는 검마저 선물했으니 독일에서도 할 건 다 했다고 여겼다.
그때였다.
“점박아.”
시우의 입에서 밑도 끝도 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대···?”
라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시우를 바라봤다.
롤프는 옮기려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뭐라고 했소?”
“점박아.”
“자네, 술이 많이 취했네. 하하하, 제가 호텔로 데려가겠습니다.”
필릭스 헌터가 나서며 시우의 팔을 잡았다.
“잠깐.”
그런데 롤프가 시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필릭스를 멈춰 세웠다.
“그 단어, 나에게 한 말 맞지? 어디서 들었나?”
롤프 방겐하임이 분노 가득한 얼굴로 시우를 노려보며 물었다.
“대체 누구한테 어떤 경위로 듣게 되었는지 묻고 있지 않은가.”
연회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비록 롤프가 격을 개방했다든가 마력을 쓴 건 아니었지만, 단순한 기백만으로도 주위 공기를 얼어붙게 할 정도는 되었다.
“누구한테 따로 들은 게 아닌데.”
“뭐, 뭐?!”
롤프는 콧수염을 씰룩이며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독일의 ‘도베르만.’
엄청난 지독함과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데에서 나온 그의 이명이 오랜만에 눈뜨는 순간이었다.
“큭크크. 젊은 헌터가 예의가 없구먼. 누구한테 까부는지도 모르고.”
롤프 방겐하임은 시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한국의 신성이 독일 협회장에게 무례를 범해 그 자리에서 호되게 당하다.」
다음 날 신문 헤드라인으로 딱인 내용 아닌가.
“내 헌터 이명이 ‘도베르만’이지. 한번 물면 누구든지 놓질 않아. 네까짓 게 감히 까불 수 있는 위치가 아니란 말이야. 진정 사회적으로 죽고 싶은 겐가?”
롤프가 으르렁대듯이 시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데 시우는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오히려 피식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알겠네.
세월이 벌써 이만큼이나 지난 건가.
“어이, kleiner Junge(애송이). Frau Professor(선생님) 얼굴도 잊은 건가?”
“뭐··· 뭐라?”
“선생님 보면 어떻게 인사하라고 가르쳤지?”
롤프 방겐하임은 눈을 껌뻑이 다가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서,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