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1
114화〉
롤프 방겐하임
약 20여 년 전, 독일 드레스덴.
30대 중반인 롤프 방겐하임은 크나큰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게이트 현상과 그곳에서 뛰쳐나오는 괴물들의 공습으로 인류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게이트가 생겨난 곳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이 하나둘 기어 나왔고, 결국 일대는 반파되기 일쑤.
이런 식으로 부서진 마을이나 도시가 부지기수였다.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모두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즘, 각성자라는 존재가 등장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인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튀어나온 괴물들을 죽였고, 나아가서는 게이트에 직접 들어가 그 안에 있던 괴물들마저 초토화했다.
인류에게 그들은 새 희망이었다.
롤프 방겐하임도 새 희망이 될 수 있는 각성자였다.
그는 부모님의 유일한 유산인 조촐한 작은 집과 과일 가게가 전부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을에 게이트가 생기며 나타난 오우거 떼로 집이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막 시작했던 과일 가게도 오우거 새끼들이 다 처먹고 부서트렸다.
비록 각성자였다고는 하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마력이 뭔지 각자 알아서 터득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기에.
롤프는 다른 누구한테도 배울 수 없어 결국 부랑자처럼 떠돌아다니며 죽을 곳을 찾아다녔다.
희망이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 드레스덴을 지나 베를린으로 향했다.
통통했던 그는 약 30kg가 빠져 비쩍 말랐고, 자상하고 쾌활한 성격은 음침하고 의심 가득한 어두운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세상은 겨울이었고, 눈이 내렸다.
구멍 난 신발 속으로 눈이 파고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베를린은 생각보다 사정이 나았다.
바로 외부에서 각성자 용병을 데려온 것.
용병들의 국적은 다양해 보였다.
같은 유럽에서부터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각성자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 지금, 능력만 입증하면 모든 국가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였다.
각성자들도 그 수요에 맞게끔 행동했다.
그들은 왕의 대접을 받는 천한 도구였고, 거액을 뜯어내는 교활함과 목숨을 푼돈처럼 버리는 어리석은 존재였다.
몬스터를 쫓는 사냥꾼과 돈을 좇는 사냥꾼이란 뜻에서, 세계 언론은 그들을 ‘헌터’라 불렀다.
롤프는 한참 고민한 끝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차피 죽을 자리를 찾는 거, 차라리 놈들에게 복수라도 해 보자고.
그는 망설임을 그치고 그들 중 한 사람을 붙잡았다.
“저··· 저···.”
“뭐야? 거지한테 줄 돈 따윈 없어.”
모스크바 억양이 짙은 용병은 롤프가 붙잡은 팔을 거세게 빼며 차갑게 대했다.
“아닙니다! 돈이 아니라···. 혹시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중에 성공하면 그 무엇이든 다 바치겠습니다!”
“뭐···?”
용병은 그렇게 되묻더니 옆에 있던 다른 용병들과 마주 보다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하하!”
“크크크크크··· 이 미친 거지 놈을 좀 보게!”
“낄낄낄, 너 제정신이야?”
용병들은 아예 허리를 숙여서 꺽꺽거리며 웃어 댔다.
롤프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뭐, 뭐가 문제입니까? 지금 돈을 못 드려서 그렇습니까?”
“큭큭큭. 어디 시골구석에 처박히다 나왔나.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군.”
용병은 하도 웃어 눈물까지 닦아 내며 말을 이었다.
“우선 내가 너의 뭘 믿고 제자로 받아들여야 하지?”
“예? 뭘 믿고 라니···.”
“네가 게이트 안에서 내 뒤통수를 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냐는 말이야.”
“제가 왜, 왜 그러겠습니까! 저를 키워 주신 분한테.”
“글쎄? 우리도 그렇게 커 왔으니까? 몸값은 절로 올라가는 게 아니거든.”
용병들은 낄낄거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맹세하겠습니다!”
“아, 닥치고. 씨발, 우리는 그런 맹세 안 한 줄 아나. 두 번짼, 네가 성공하면 다 바치겠다고 하는데.”
“예!”
“네가 오늘이나 내일 뒤지지 않으리란 법이 있나?”
“그건···.”
“헌터 생존율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20, 30명이 게이트에 들어가면 몇 명이나 나오는 줄 아냐고!”
용병의 으름장에 롤프는 입술을 달싹였다.
어떻게서든 그들을 붙잡아 스킬을 배워야겠단 생각이 앞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배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르쳐만 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다른 용병 하나가 끼어들었다.
“어이. 아무나 가르쳐서 다 잘 될 것 같으면 학원을 차리지, 우리가 왜 이 짓거리를 하겠어. 능력이 없으면 주제 파악이라도 하고 살란 말야.”
그 용병은 롤프가 처한 상황을 신랄하게 내뱉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이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야!! 이쁜 애들을 찾았어!!”
“낄낄낄. 얼른 가도록 하마!!”
처음 대화했던 용병이 롤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마지막 말을 했다.
“참고로 번 돈은 이런 곳에 쓰는 거야. 알았어?”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 멀리 사라졌다.
롤프는 멍하니 자리에 섰다.
그들이 있던 자리로 눈이 쌓이며 발자국이 점차 흐릿해졌다.
“씨발.”
그의 볼에 닿은 눈이 녹아 흘렀다.
야윈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잠시나마 먹었던 희망이란 녀석이 거친 숨처럼 토해졌다.
고작 한 번의 시도였지만.
모든 의지가 꺾이기엔 차고도 넘쳤다.
롤프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끅끅대며 울었다.
이제 됐다.
‘나는 이 나라처럼 희망이 없다.’
그는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비척비척 걸었다.
건물이 다 무너져 폐허가 된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롤프는 잔해를 뒤적이며 밧줄이나 칼 따위를 찾았다.
그러다 작은 나이프 하나를 발견했다.
‘목을··· 그을까. 손목이 덜 고통스러우려나.’
그는 잠시 고민하다 손목을 그었다.
붉은 피가 폐허에 쌓이는 눈 위를 적셨다.
롤프는 양쪽 손목을 다 그은 다음 눈밭에 몸을 뉘었다.
영양이 결핍된 몸뚱어리는 느릿느릿 피를 흘리며 눈발에 차갑게 식어 갔다.
그때였다.
꽈ㅡㅡㅡㅡ앙!!
지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롤프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에 커다란 괴물 한 마리가 처박혀 있었다.
“어ㅡ??”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을 쳐야 하나? 아니지, 어차피 죽을 거였잖아?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1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날카로운 인상의 소년이 그를 힐끗 바라봤다.
다른 용병들에 비해 무척이나 허름한 옷과 장비들.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자신과 똑같은 부랑자로 알았을 것이다.
‘동양인이다. 일본? 중국인인가?’
고민이 지나치는 사이, 소년의 주먹이 괴물의 몸을 때려 박았다.
퍼어ㅡㅡㅡ어엉!
지반을 파고들며 터져 버린 괴물의 몸.
정말 순식간이었다.
소년은 단도를 꺼내더니 익숙하게 괴물의 코어를 꺼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휙 가려 했다.
롤프는 황급히 일어나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 잠깐만 꼬마야!!”
소년은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차갑고 서늘하며 나른한 눈빛.
롤프는 저도 모르게 그 소년의 눈동자에 애원했다.
“나, 나한테도 스킬을 알려 줘!”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제법 놀란 눈치였다.
“꼬마야, 부탁한다.”
그리고 롤프는 죽기 전까지 처맞았다.
그는 의식이 꺼져 가는 순간 소년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얻다 대고 꼬마야, 뒈지려고.”
그렇게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전부 치료되어 있었다.
롤프는 다음날부터 소년을 찾아 헤맸고,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쫓아다녔다.
비록 나이 차이가 두 배나 났으나 롤프는 꼬박꼬박 그를 선생님으로 불렀고, 소년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하대했다.
“년 동네 발발이냐, 점박이냐?”
“그게 뭡니까, 선생님.”
“길거리에서 사람 쫓아다니는 개 이름이다.”
“뭐라고 부르시든 상관없습니다. 선생님께 배울 수만 있다면 개새끼라 불려도 괜찮습니다.”
“너 생긴 거 답지 않게 독종이구나. 도베르만이나 셰퍼드처럼.”
“저한테는 가족도, 집도 없습니다. 오직 각성한 능력과 선생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지랄하네.”
소년은 그날을 기점으로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과 스킬을 구현하는 방법, 대인전 기술 등을 가르쳤다.
“선생님은 왜 저를 가르쳐 주시기로 하셨습니까?”
“너 이거밖에 없다며.”
“······선생님은 헌터를 왜 하십니까?”
“나? 나는 동생 먹여 살려야 해.”
한 달 정도의 기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롤프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
그의 훈련은 스파르타식을 넘어 매 순간이 목숨을 거는 식이었다.
“난 오늘 떠나니까 이제부터 너 스스로 해라.”
“그간 감사했습니다! 만약 제가 성공하게 되면 제 모든 것을 걸고 선생님께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됐다, 그런 걸 바라고 한 거 아니니까. 일행 왔으니까 간다. 잘 있어라.”
소년은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리듯 떠났다.
롤프는 그제야 자신이 선생의 이름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서, 선생님···!!”
〈독일 헌터 협회〉의 회장인 롤프 방겐하임은 벅차오르는 감격과 떨림으로 시우를 향해 90도로 허리 숙였다.
20여 년 만에 재회한 자신의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그 자리가 어떠하든, 그 누가 옆에 있든, 오직 선생님에게만은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리라 마음먹고 산 그였다.
롤프 방겐하임이란 헌터의 삶은 오직 그때의 소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미안. 난 이름도 잊고 살았네. 잘 지냈어?”
“죄송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성함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갑작스러운 협회장의 행동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기함했다.
독일이라는 선진국의 〈헌터 협회〉 회장이었다.
총리인 슈토프에게조차 당당하고 꼿꼿하게 굴던 독일 헌터계의 양심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데.
웬 동양의 20대 헌터에게 허리를 숙이다니.
특히나 가장 많이 놀란 것은 라일라와 필릭스였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었음에도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날 잊어버렸다고 했으면 처음 봤을 때처럼 반 죽여 놓으려 했는데. 용케 기억했네.”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생님인 줄 진작 알았다면 이렇게 모시지 않았을 겁니다.”
벌써 20년이 넘게 지났다.
하지만 시우의 얼굴은 그 소년에서 고작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다만 서양인의 눈으로 보기엔 동양 사람들 얼굴이 비슷비슷하게 생겨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
롤프는 시우를 극진히 대하며 조금 전과는 판이한 태도로 그를 안내했다.
그가 깍듯이 모시자 다른 인사들마저 시우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고, 그렇게 연회가 끝났다.
***
‘베를린 국제 아티팩트 경매’의 당일.
시우는 기다란 벤츠를 타고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는 롤프와 필릭스, 그리고 라일라가 동승했다.
라일라와 필릭스는 처음 보는 협회장의 모습에 며칠째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롤프는 시종일관 쉬지 않고 시우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떠들었다.
마치 칭찬받고 싶은 어린애처럼 말이다.
의외인 것은 시우가 귀찮아하지 않고 정말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를 다 들어 주며 반응했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시우한테도 롤프는 특별한 인연이었다.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를 가르쳐 보았고, 그 재미를 알게 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하하하. 정말로 사령술사가 있었단 말입니까? 선생님의 말씀으로 들으니 모든 것이 이해가 갑니다!”
롤프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있었던 구울 습격 사건에 대해 듣는 중이었다.
그 반응은 라일라가 이야기했을 때와 사뭇 달랐다.
‘그때는 시우 헌터가 사기꾼이라고 하시더니···.’
라일라는 롤프의 얼굴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때도 프레 님이 해치운 것이다! 좁밥은 내 제자이니 너는 제자의 제자로 임명해 주마!】
“하하하, 이거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파트너는 재밌으시군요.”
“무시해. 멍청한 놈이야.”
“오, 도착했군요. 제가 선생님의 VIP 좌석을 예매해 놨으니 그쪽에 앉아서 편하게 감상하시면 되겠습니다.”
“롤프, 너는 안 가?”
“이래 보여도 경호를 전담하는 책임자라. 아, 하지만 라일라가 비번이라 함께 갈 겁니다.”
롤프는 라일라에게 윙크했다.
그 윙크를 바라본 프레도 라일라에게 윙크했다.
라일라는 ‘굳이 이런 배려 안 해 주셔도 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시우와 함께 넓은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경매장이 가장 잘 보이는 VIP석에 간 그들은 자리에 앉아 내부를 구경했다.
경매 분위기는 대기업의 신제품 홍보 시연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 시우의 옆 좌석에 누군가 앉았다.
“빌어먹을. 원수는 어딜 가든 만나는군.”
“내가 할 말이다. 너 내 스토커냐?”
시우는 커다란 사내, 최대수를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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