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3
116화〉
역행2
“적귀, 볼크.”
“예.”
“부르셨습니까.”
시우의 부름에 몸을 감추고 있던 적귀와 볼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기를 내뿜는 놈이 있다면 죽여라. 적이 강하다면 위치만 파악해서 내게 알리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귀와 볼크가 자취를 감추자 시우는 곧장 발뭉을 휘둘렀다.
성검의 푸르른 궤적이 지날 때마다 몬스터들의 몸이 잘 익은 과일처럼 썰려 나갔다.
한쪽에서는 최대수가 아티팩트를 들고 놈들의 몸을 다져 내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힘을 좀 내자니 사람들이 너무 많군.”
최대수는 시가를 빨아들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사람들과 몬스터들이 뒤섞여 뭘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엔 탱커가 어그로를 끌어 주거나, 서포터들이 대피를 도와야 하는데.
지금도 시우나 최대수를 포함해 산발적으로 흩어져 싸우는 헌터를 제외하고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겠네.”
시우가 괴수의 머리에 검을 쑤셔 박은 채 중얼거렸다.
괴물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피거품을 흘리며 쓰러졌다.
“야, 떡대.”
“뭐냐, 미친개.”
“내가 사태의 원흉을 찾아 죽이겠다. 넌 이대로 몬스터를 때려잡고 있어라.”
최대수는 입매를 비틀었다.
“나한테 명령을 내리다니 많이 컸군.”
“지랄하지 말고. 그럼 바꿔서 하든가.”
“아니다. 마력 감지는 네놈이 더 잘하니 그 말대로 하지.”
시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 정도로 사태가 악화했는데 독일 정부에서 대처가 없다는 건, 현재 관리자 쪽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아마 1분 1초라도 더, 이 상황을 꼬아 놓기 위해 술수를 써 놨음이 틀림없을 터.
시우는 전방위로 마력을 힘껏 흩뿌렸다.
방사된 마력은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망을 구축하며 광대한 범위로 퍼져 나갔다.
‘방금 봤던 게이트 외에도 둘··· 아니, 셋이 더 있다.’
이 행사장 안에서 그가 감지한 게이트만 무려 4개.
다행히 S급 게이트 정도의 마수가 나온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정 공간 안에서 이만한 수의 게이트가 나타나기는 처음.
【저번에 봤던 그 초록 대가리가 한 짓이냐?】
“글쎄, 이번에는 다른 놈인 것 같은데.”
시우는 다가오는 괴수의 머리를 베어 넘기며 말했다.
한 번에 다 쓸어 버리고 싶은데 인파가 뒤섞인 탓에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시우 헌터!!”
그때 낯익은 외침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다연발 폭발점]파즈즈즈즈즈즛···.
꽈과ㅡㅡㅡ아아아아아!!
손끝에서 뻗어 나간 몇 줄기 불꽃이 목표물에 맞닿자 맹렬한 폭발로 뒤바뀌며 괴물들의 몸을 살라 먹었다.
필릭스가 다른 헌터 협회 사람들을 데리고 다급히 달려왔다.
“별안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그는 황망한 눈빛으로 엉망이 된 행사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행복하게 웃던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은 고통으로 물들어 있었다.
“롤프하고는 연락이 돼?”
“안 그래도 막 연락받고 오는 길이야. 〈판데모니엄〉 놈들이 협회장님을 암살하려 했다더군.”
“혹시 모르니까 가까운 길드에 긴급 요청하고, 독일 HMCS나 국방부에도 연락할 수 있으면 해.”
“그러도록 하지···.”
“게이트는 총 네 곳이야.”
시우는 땅바닥에 행사장의 지형을 대강 그린 뒤 X 표시로 네 곳을 짚었다.
“모두 반경 3km 안에 있으니까 인원 배치해서 분포시키면 될 듯한데··· 마력 감지할 수 있는 헌터를 앞세워서 마기가 짙은 놈들부터 없애는 게 나을 거야.”
시우의 명령에 필릭스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사실상 상하 관계가 없는 사이인데도, 시우가 말하면 응당 따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도 우리랑 함께 행동하지 그래?”
“난 나대로 알아볼 게 있어서.”
시우는 필릭스의 어깨를 두드린 뒤 몸을 움직였다.
‘게이트의 반전이라면 분명 이곳에도 있을 거다.’
몬스터와 곳곳에 산개한 〈판데모니엄〉 조직원, 그리고 게이트에서 뿜어지는 마기 때문에 식별이 확실치 않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는 수밖에.
– 크와아아아!!
그 순간 원숭이를 닮은 흉측한 괴수가 나무에서 뛰어내리더니 시우에게 달려들었다.
【귀엽게 생긴 애완동물이다! 데려가서 키우면 안 되는 것인가?!】
“헛소리!!”
시우는 검신을 가로로 들어 원숭이의 강격을 막아 냈다.
콰지지직!
발밑의 아스팔트가 꺼져 들어갔다.
자동차 한 대는 가볍게 박살 낼 것 같은 파괴력.
[철의 노래 : 아이언 피스트]묵색으로 뭉쳐진 쇳덩이가 괴수의 얼굴로 직격했다.
쩌ㅡㅡ걱!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하··· 슬슬 짜증 나네.”
시우는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괴수들과 사방에 흩어져 있는 적들을 보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신경 거슬리게 여기 와서 그리 죽상이냐.”
박사는 인상을 쓰며 크롤에게 물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오더니 의자에 앉아서 계속 투덜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왜 이번 작전에 내가 아니고 자흐날 자식이 뽑힌 거냐고. 박사 연구는 내가 다 보조했는데.”
“한국에서 연 게이트를 보고 상부에서 정했겠지. 흥, 네까짓 게 날 보조해 봤자 뭘 했다고.”
“한국까지 쫓아가서 도와줬잖아! 사람 섭섭하게.”
크롤은 의자에서 빙글빙글 돌며 푸념했다.
“그런데 자흐날을 보낸 건 의외긴 하군.”
박사는 마법서를 뒤적이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판데모니엄〉의 등급은 총 9위계.
그중에서도 자흐날은 4위계에 해당하는 중간 관리자급 간부로 호전적인 무투파였다.
“선봉에 서게 해 달라고 난리를 피우더니만, 그 꿈을 이루게 된 모양이야.”
“박사··· 나도 선봉에 서면 잘 할 수 있다고.”
“지금 조직에 필요한 건 뒷공작을 펼치는 모사꾼이 아니라 자흐날처럼 한바탕 휘저을 놈인지도 모르지.”
크롤은 ‘칫’ 하는 표정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흐날이 강한 놈인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왜 아니겠는가.
듣기로는 〈판데모니엄〉에 오기 전에 다른 테러 단체에 있었다고 한다.
조직의 부흥보다는 본인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파괴를 일삼으려 하는 무뢰한.
하지만 박사의 말처럼 지금 상황에 필요한 건 침착한 저격수가 아니라 북을 두드리며 진격할 미친놈일지도 모른다.
“나도 압니다, 알아요. 자흐날이 더 적합하다는 걸.”
“크헬헬. 사실 나는 네놈이든 자흐날이든 상관없다. 내가 만든 작품을 훌륭하게 지휘해 주기만 하면 될 뿐.”
“그런데 방산 업체 경매에서 게이트 터뜨리기는 위험하지 않나.”
박사는 처음으로 마법서에서 눈길을 떼고 크롤을 쳐다봤다.
“아니··· 경호원들이나 헌터들도 많이 왔을 것 같은데 금방 진압되지 않겠어?”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모른다. 다만 자흐날을 보내겠다고 했으니, 자흐날 밑에 있던 것들도 같이 가지 않겠냐.”
“하긴, 게이트 하나만 여는 것도 아니라며.”
박사는 주름진 얼굴 가득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크헬헬. 문은 네 군데 열 계획이다. 내가 직접 가는 게 아니니 심장 하나당 서너 명의 마법사가 필요하겠군.”
크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건은 게이트가 생각한 것처럼 잘 작동하는가, 이거겠네.”
“내 생각도 그렇다.”
“박사가 설계한 거니까 잘 되겠지. 그나저나 룸메이트는 어디 갔어?”
“쯧, 그놈이 왜 룸메이트냐. 목숨 부지해 놨으니 얼른 연구원들 방이든 네놈의 방이든 데리고 꺼져라.”
크롤은 큭큭대며 웃었다.
박사의 말투를 보아하니 생각보다 둘이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뭘 처웃는 것이냐.”
“아니야. 그래도 클라운이 몸만 회복하면 자흐날보다 나을지도 몰라.”
크롤의 말에 박사는 돋보기안경을 치켜올리며 대꾸했다.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너희들보다 내 연구 한 줄이 더 중요하니까.”
“네, 네, 그러시든지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밖으로 나갔다.
***
“독일 정부에서 이제 대응하는 모양입니다.”
“히히히. 늦군, 늦어. 우리 계획이 잘 먹혔단 소리겠지?”
“맞습니다. 모두 자흐날 님의 위대한 계획 덕분입니다.”
수하의 대꾸에 자흐날은 기쁜 듯 웃었다.
깔끔한 칸두라(아랍 남성이 입는 흰옷)에 구트라(아랍 남성이 머리에 두른 헝겊)를 쓴 자흐날은 지옥도가 펼쳐진 광경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히히히. 절경이군, 절경이야. 크롤 놈이나 루슬라나 같은 년은 감히 빚어낼 수 없는 모습이로다.”
“그렇습니다, 자흐날 님.”
“협회장인 방겐하임의 암살은 어떻게 되었나?”
“그게··· 실패한 모양입니다.”
“그러한가.”
자흐날은 대답과 동시에 수하의 목을 시미터로 그어 버렸다.
“크허어업···.”
수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쓰러져 죽자 다른 사람들이 와서 그 시체를 치웠다.
“히히히. 내 앞에서 실패란 단어를 쉽게 꺼내지 마라. 이번 작전에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예!”
“알겠습니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란 말인가.
숱한 시간이 흘렀지만, 〈판데모니엄〉은 창시된 이후로 지금까지 그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IZIZ 따위와 비견되며 어떤 이들에게는 인터넷 음모론 정도로 취급받아 온 것이다.
‘그 모든 수치와 굴욕은 이 시간을 위해서 존재했다.’
자흐날은 시미터를 매만지며 노란 안광을 번들거렸다.
이날을 기점으로 〈판데모니엄〉은 세계에 대항해 궐기할 것이다.
마왕의 지배 아래 모든 인류가 동등해지며 차별이 사라지고, 나아가서는 서로에 대한 분쟁마저 멈추게 될 터.
“긴히 보고드립니다!”
그때 자흐날의 상상을 깨며 누군가 외쳤다.
“무엇이냐.”
“지금 이 행사장에··· 하이 랭커가 둘이나 있다고 합니다!”
“뭐?!”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방겐하임과 필릭스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그 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지?”
“독일 랭킹 2위인 베네딕트 악커만과 한국 랭킹 1위인 대통령 최대수입니다!”
자흐날의 눈이 홉떠졌다.
둘 다 현재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존재들이다.
“게이트 수는 현재 어떻지?”
“지금까지 네 곳 모두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히히. 박사의 실험이 성공한 것 같긴 하군. 닫히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자흐날은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휘젓다가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좋아, 마법사들은 전부 돌아왔나?”
“아닙니다. 18명 가운데 10명 정도만 돌아왔습니다.”
“쯧쯧쯧. 그 멍청한 것들은 귀소 본능도 없는 모양이군.”
그 순간, 자흐날이 있는 언덕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히히. 뭐냐, 이 멍청한 놈은.”
그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자를 향해 조소했다.
현재 자흐날의 옆에 있는 수하만 해도 십여 명.
“풋내 나는 놈이로군. 응? 좋은 검이로구나! 히히히. 어린놈이 하기엔 아깝도다. 내가 써 주도록 하지.”
살기를 줄기줄기 피우며 다가오는 놈의 오른손에는 독일 최고의 성물인 발뭉이 들려 있었다.
자흐날은 수하들을 제지하고 직접 앞으로 나섰다.
“나는 〈판데모니엄〉 4위계에 해당하는 자흐날이라고 한다. 내 손에 직접 죽는 걸 영광으로 알도록.”
“···있냐?”
“뭐라고?”
상대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자흐날의 귀에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나.
그 찰나,
상대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자흐날의 눈앞으로 게이트마저 베어 버릴 것 같은 검기가 내리쳤다.
꽈ㅡㅡㅡㅡㅡㅡ앙!!!
지반을 갈라 버린 시우의 검 끝으로 자흐날의 주검이 곤죽처럼 흘러내렸다.
시우는 그 형체를 향해 다시 말했다.
“게이트 허트 갖고 있냐고, 씨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