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5
118화〉
달갑지 않은 등장
시우는 발뭉에 묻은 자흐날의 살점과 핏물을 털어 냈다.
열이 뻗쳐 감정을 실어 휘둘렀더니 이 모양이다.
‘이러니 백날 휘둘러도 검술은 도경후만 못하지.’
그는 자흐날의 시신을 보고 우물쭈물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눈을 흘겼다.
“히익!”
“야··· 게이트 허트 얻다가 뒀냐고. 하나하나 토막 쳐서 물어봐 주랴?”
시우의 으름장에 자흐날의 수하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이 〈판데모니엄〉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건 아니었다.
단지 수하들이 직접적으로 모시는 사람은 자흐날이었고, 사실상 그의 무력에 반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그런 자흐날이 적이 휘두른 검 한 합에 죽었다?
밀려드는 충격에 대답이 늦어지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알려 주기 싫으면 말든가. 하나씩 죽이면 나오겠지.”
시우는 서늘한 말투로 내뱉었다.
“아하하. 그렇게 말하면 아는 사람도 말을 해 주기 어렵지.”
그때 웬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있던 자리가 ‘통째로’ 먹혔다.
덥ㅡㅡ써억!! 카드드득! 아드드득
낯선 상황이긴 했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도 아니기에 시우는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십수 명이 모여 있던 곳이 동그랗게 파이며 그 어떤 흔적조차 남질 않았다.
“희한한 걸 데리고 다니네ㅡ 크로우.”
“어라? 어떻게 알았지?”
맑은 목소리와 함께 수풀 너머에서 아리따운 얼굴이 나타났다.
흰 로브 차림인 크로우와 마찬가지로 흰 로브를 걸친 아담한 소녀.
“라펠 와쪄염!”
“···안녕?”
라펠이 손을 흔들자 시우도 얼결에 인사했다.
“네에! 안녕하쩨요!”
“둘이 벌써 친해졌네? 이 귀여운 애는 라펠이라고 해.”
크로우가 라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귀엽다··· 라. 뱃속에 블랙홀이 들어 있는 꼬마인데 말은 쉽네.”
“그거야 능력일 뿐이니까. 당신도 조금 전에 사람 하나 때려죽였잖아.”
“때려죽이지 않았어. 베어 죽인 거지.”
크로우는 ‘그거나 그거나 아니야?’라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둘째치고, 오늘은 무슨 일로 나타난 거지?”
“당신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안 믿으려나?”
“어.”
“아하하. 차갑네.”
“차가운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유잖아.”
시우가 되받아치자 크로우는 “딱히 그렇진 않은데”라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백허그처럼 라펠을 앞으로 꼭 껴안으며 말했다.
“당신 요즘 〈판데모니엄〉이랑 싸운다며.”
“너랑 처음 만났을 때 블랙맘바가 유언으로 털어놓은 곳이니까.”
볼크와 적귀를 만나게 한 조직이자 크로우가 수장으로 있던 곳, 〈베스티아〉.
제자 정민준을 암살한 범인 블랙맘바를 잡으며 의뢰인에 관해 물었을 때 들었던 이름이 바로 〈판데모니엄〉이었다.
“아하하, 맞아. 그 당시엔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연관될 줄은 몰랐어.”
“그래서? 본론이 뭔데.”
“사실 우리 조직도 이번에 〈판데모니엄〉이 일으킨 테러에 분노하고 있거든.”
“IZIZ가 어째서? 너네도 테러 집단이잖아.”
“우리 테러 집단 아니얏!!”
라펠이 주먹을 들고 씩씩거렸다.
풋풋하게 생긴 소녀가 저러니 무섭기는커녕 귀엽기만 했다.
“···정부 입장에선 너희나 거기나 비슷할 것 같은데.”
“아하하. 그건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당신에게는 다르지 않아?”
“나 역시 그 부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너희에 대해선 별생각 없지만, 〈판데모니엄〉은 다 죽이고 볼 생각이거든.”
시우가 내뱉는 마지막 문장에 살기가 어렸다.
민준이부터 시작해서 S급 게이트나 지금의 경매장 급습까지.
하는 짓마다 신경이 거슬리는 걸 보면 미운 정을 주기도 아까운 곳이다.
‘그 꼭대기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하나씩 잡아다가 잘근잘근 썰어 주마.’
【꼬마, 뭘 쳐다보냐. 이 몸이 위대해 보이냐?】
“나 꼬마 아니야! 라펠이얏! 그치만 너 날개 멋쪄!”
【오ㅡ 이 암컷 보는 눈이 있다! 내 날개는 평범한 날개가 아닌 것이다!】
“우아! 라펠도 가지고 찌퍼염!”
시우의 살벌한 생각과는 별개로 옆에선 수준 이하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자고? 공동 전선이라도 맺자는 건가?”
“그것과 비슷해. 정보의 기브 앤 테이크 어떤가 싶어서.”
시우는 잠시 고민에 들었다.
변수가 많기에 이런 짓을 선호하진 않았다.
상대를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정보의 소재가 명확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이득이 있을 것인가.
여러 방면으로 고민해 본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IZIZ의 전체 의견이 아닐 텐데, 너 혼자 정해도 괜찮은 건가?”
“당신이 내 걱정을 다 해 주는 거야?”
“혹시 조직에서 배신자라고 죽이는 거 아닌지 싶어서.”
시우의 말에 크로우는 해사하게 웃었다.
역시 이 남자를 보면 아직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저 차가운 얼굴을 핏물로 적셔 바닥에 눕히고 싶지만ㅡ
‘갈수록 강해지고 있네. 이제 나 같은 건 상대도 안 되겠는걸.’
그녀는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대꾸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조직은 개인주의야. 내가 당신이랑 눈 맞아 도망간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걸?”
“이상한 조직이군. 두목이 있기는 한 거야?”
“아하하. 당연하지, 머리가 없는 조직이 존재하진 않으니까.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괜찮아? HMCS에 속해있잖아.”
“나도 상관없어. 하지만 〈판데모니엄〉에 대한 정보는 몇 사람과 공유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녀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총본 부회장 에드워드, 대통령 최대수. 이렇게 둘?”
시우의 대답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 이상으로 둘 다 거물이네.”
“나는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어쨌든 저 둘이다.”
“나도 필요하다면 공유할 수도 있어. IZIZ 내겠지만.”
“상관없어. 네 번호나 내놔.”
“이렇게 박력 있는 고백은 처음인걸.”
크로우는 킥킥 웃으며 시우의 폰에 번호를 입력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게이트 허트 어디 있는지 알아?”
“글쎄. 그런데 이번 작전명은 알아.”
“뭔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그게 뭐야.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그때, 라펠의 배가 부풀더니 거대한 덩어리를 내뱉었다.
“···씨발. 너희 동료냐?”
“어머나, 그럴 리가.”
“흐에엥! 너무 커서 못 씹게쪄!”
【오, 맛있게 생긴 고기로다!】
자흐날 본인 혹은 수하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었을 물건.
마수를 봉인한 아티팩트.
장첸이 잡히기 전에 오우거 킹을 소환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소유였을 ‘저것’은 라펠에게 먹히는 순간 발동했을 것이다.
『크르르르ㅡ 크아아아!!』
엄청난 사자후를 내갈기며, 키메라가 하늘로 박차 날았다.
***
시우는 재빨리 놈의 몸통에 칼을 박고 붙잡았다.
워낙 커다란 몸뚱이라 그런지 키메라는 칼침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우는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녀석의 털을 붙잡았다.
앞은 사자에 중간은 염소, 꼬리는 뱀의 머리에다가 페가수스의 날개를 단 괴수.
이 말 같지도 않은 신화의 존재는 몸에 달라붙은 벌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땅을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크와아아아아ㅡ!!』
생명체들을 공포에 떨게 할 포효가 지상에 떨어졌다.
시우는 아이스바일로 빙벽을 올라가는 등반가처럼 놈의 몸통을 타고 올라갔다.
【우아! 좁밥, 여기 경치 엄청 좋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펫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아가리, 좀, 닫자!”
시우는 칼로 등판을 찍을 때마다 박자에 맞춰 대꾸했다.
이렇게 높이 떠 보기는 정말 오래간만이다.
제일 마지막이 이계에서 그 노란 드래곤이랑 싸웠을 때였나.
고소공포증이 없던 사람도 발병할 것 같은 높이에 시우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 자식아!’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녀석의 머리통이다.
그런데 그 순간,
『πεθαἱγω)(페테노)』
놈이 말했다.
마치 그것이 마법의 시동어라도 되는 듯, 키메라의 입 안 가득 거대한 마력이 그러모아졌다.
쿠구그그그······!!
단 한 발이면 행사장이 송두리째 없어질지도 모를 엄청난 에너지.
“에이, 썅!!”
시우는 냅다 발을 박찼다.
[타케미카즈치 : 번개의 뿌리]팔찌에 때려 박은 마력이 고전압의 번개로 구현되더니 키메라의 몸을 태워 버릴 듯 번쩍였다.
꽈가아ㅡㅡㅡ!!
시퍼런 뇌전이 지나간 자리.
검붉게 익은 키메라가 으르렁대며 상대를 찾았고,
시우는 남은 마력을 발뭉에 한가득 모아 집채만 한 검기를 키메라의 머리로 내리쳤다.
콰ㅡㅡㅡㅡㅡㅡㅡㅡㅡ앙!!!
입에 머금었던 마력이 제 갈 길을 잃고 폭주하며 공중에서 키메라의 몸이 터져 버렸다.
시우는 그 거대한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갔다.
마력을 다 쓴 탓에 심장을 박살 내고 얻은 ‘코어’의 힘을 쓰려던 그 시점,
[나무 창성 : 대지의 수회 [시간 여행자 : 붙드는 손길]라일라와 베네딕트의 스킬이 차례로 구현됐다.
[대지의 수호]가 지상으로 쏟아지는 키메라의 거대한 살점과 핏물, 내장 따위를 막아내는 한편, [붙드는 손길]이 시우 주변의 시간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 그를 붙잡았다.시우는 바닥에 천천히 내려오면서 베네딕트를 눈여겨보았다.
‘마력에 적의는 없는데··· 누구지?’
그러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금발의 남자는 시우를 마주하자마자 덥석 손을 붙잡고 외쳤다.
“와ㅡ!! 대단하세요!! 저 괴물을 어떻게 단 두 방에!! 배우고 싶습니다!”
“······?”
【넌 누구냐! 그건 사실 모두 이 몸의 덕분이다! 이 좁밥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허억! 그렇다면 그쪽이 본체군요! 존경스러워요!”
【에헴! 만약 원한다면 그대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마!】
“부탁드려요! 저는 마법의 위력이 너무 낮아서··· 선생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오냐. 앞으로 나를 ‘대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걸 허락하노라.】
“대선생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시우는 바보가 한 명 더 늘어나자 짜증이 두 배로 솟구치는 걸 느꼈다.
“아, 선생님! 무사히 내려오셨군요!”
“너도 무사했네, 롤프. 그나저나 이··· 건 누구야?”
순간적으로 욕을 할 뻔한 시우는 침착하게 말을 정정했다.
“독일 랭킹 2위인 베네딕트 악커만이라는 자입니다. 안 그래도 선생님을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이렇게 만나는군요.”
“영감님! 나 드디어 당신의 선생님과 만났어! 나한테 대선생님이라 불러도 좋으시대!”
베네딕트가 프레의 날개를 맞잡고 덩실덩실 춤추며 말했다.
“뭐? 예? 시우 선생님, 정말이십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군.”
“그ㅡ 우선 게이트를 없애러 가시겠습니까?”
비록 한 달이지만 시우와 함께했던 롤프였다.
지금 그의 표정은 ‘다 뒤집어엎고 싶다’라고 써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게이트는 없애러 안 가도 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시우는 손에서 가루가 된 새까만 돌덩이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롤프는 의문 가득한 얼굴로 시우에게 물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랬나.”
그는 크로우의 말을 떠올리며 롤프의 물음에 대꾸했다.
“키메라 목에 달려 있던 ‘게이트 허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