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7
120화〉
세 사람
광산 붐이 끝나 폐촌이 된, 시골의 한 동네.
마을은 어둑어둑한 저녁이 집어삼켜 별빛과 달빛만이 아스라했다.
풀벌레 소리를 발로 차며 움직이는 세 명의 실루엣.
“포털은 다 매수해 놨죠?”
딱딱하고 사무적인 목소리의 남자가 물었다.
동그란 로이드형 테 너머, 싸늘한 안광의 칼레오.
끄덕끄덕.
그의 질문에 곰처럼 거대한 남자가 느릿느릿 고개를 흔들었다.
“칼레오~ 말투가 너무 딱딱해! 비카타울이 무서워하잖아!”
“입 다무세요, 호저. 당신들이 배고프다고 투정 부리는 바람에 늦은 거잖습니까.”
“칼레오는 너무 매정해~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 상사 같아!”
아담한 체구의 호저가 비카타울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줬다.
“그런데 크로우랑 라펠은 어디 갔어? 오늘 서울에서 멋진 카페 가기로 했는데···.”
“그들은 당신과 달리 바빠요.”
“야아~! 나도 한국에 와서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거든?”
“평소에 걷기만 했으니 가끔 뛸 때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 칼레오의 태도에 호저는 볼을 부풀렸다.
이 지루하고 딱딱한 남자와 다닐 바에는 이반이나 갈시량이 훨씬 나은데, 크로우는 말할 것도 없고.
“너무 그런 표정 마시죠. 크로우와 라펠은 독일에서 한바탕하고 아지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독일?? 아, 혹시 뉴스에 나온 테러? 그거 우리가 한 거야?!”
칼레오는 세상 멍청한 사람을 다 본다는 표정으로 호저를 내려다봤다.
정말 이럴 때는 같은 조직 구성원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판데모니엄〉을 저지하러 간다고 실컷 설명했었는데.”
“아~ 아~ 맞아! 그 새끼들은 왜 요즘 난리야! 우씨, 마음에 안 들어! 그치, 비카타울!”
호저가 동의를 요구하자 비카타울은 가면 쓴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손님을 초대했었나요? 숨지 말고 나오세요, 씨발.”
칼레오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어둠 속을 노려봤다.
“흐어허어허. 이거 단박에 들켜 버렸네.”
나무 위에서 폴짝 뛰어내린 뚱뚱한 노인이 붉은 도복을 펄럭이며 다가왔다.
“브아안갑소오. 나는 아시아의 주인인 ‘대성’의 수하, 칭자오라고 하오.”
“···IZIZ의 칼레오라고 합니다. 대성의 수하가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시죠?”
“이여어어러분들도 알다시피ㅡ.”
그때 번개 같은 속도로 누군가 달려오며 무기를 휘둘렀다.
퍼거어억!!
호저의 상반이 통째로 날아가며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런 뻔뻔한 놈들이 있나!!”
역시나 마찬가지로 적도복을 입은 호리호리한 남자가 씩씩거리며 외쳤다.
“이노오오옴!! 콰이! 아직 내가 말하고 있지 않으냐!”
“하, 하지만 대사형··· 놈들이 발뺌하니까···.”
그러나 콰이의 말은 칭자오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더 이어지지 못했다.
“흐어허어허. 미안하오. 내 아우가 결례를 범했소.”
“······.”
칼레오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둘의 모습을 관찰했다.
지금 이 ‘셋’으로 저 ‘셋’을 이길 수 있을까?
‘안전하게 이길 확률은 10% 정도. 동귀어진을 각오한다면 모를까ㅡ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군요.’
칼레오는 저 멀리서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세 번째’ 인물을 고려하여 계산을 마쳤다.
“칭자오 님의 태도를 보니 저희와 한판하고 싶어서 온 건 아닌 것 같군요.”
“흐어허어허. 당연하지요. 그랬다면 대성께서 직접 오셨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용건을 들어 볼까요?”
칭자오는 말에 앞서 먼저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었다.
“드아아아 아시다시피, 그쪽 사람들이 우리 청도복 둘을 죽였습니다. 해서, 그만한 대가를 받기 위해 대성께서 저희를 직접 보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셨습니다.”
“청도복··· 말입니까.”
칼레오는 이 영감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마약이나 돈에 대해 언급했다면 발뺌하고 결착했을 수도 있지만, 죽은 수하를 꺼내면 얘기가 달라진다.
IZIZ에서 먼저 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거기다 청도복 ‘둘’이라니.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의해야겠군.’
“죄송합니다. 사소한 오해가 있어 서로 다투었던 모양입니다.”
“흐어허어허. 괜찮소이다. 그래서 무엇으로 갚으시겠습니까?”
칼레오를 저격하는 놈의 살기가 짙어졌다.
신호에 따라 칼레오든 비카타울이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일 터.
‘강한 걸로만 따지면 저 저격하는 놈이 제일 세군요. 상성이 너무 안 좋습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두 개 펴서 설명을 시작했다.
“IZIZ가 한국에 와서 ‘우연히’ 얻은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량의 마약이고, 다른 하나는 돈입니다.”
“오호오호오. 우연히 말이지요.”
칭자오가 눈을 빛내며 대꾸했다.
“그중 마약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은 이것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어떻습니까, 칭자오님.”
“으음허어허. 한 가지만 물어보겠소. 마약과 돈 중 마약을 주려는 의도가 무엇이오?”
“첫째, 저희는 마약과 관련된 유통망 따윈 없습니다. 대성께서 소유한다면 훨씬 더 값어치 있게 팔 수 있겠죠. 둘째, 저희는 돈이 필요합니다.”
칼레오의 설명에 칭자오는 기다란 턱수염을 쓰다듬다가 이내 빙긋 웃었다.
살기가 거둬졌다.
“카아아알레오님의 설명 잘 알겠소. 하지만 우리는 두 명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대가는 하나라 조금 아쉽소만.”
이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칼레오는 바닥에 널브러진 호저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도 한 사람 죽었습니다만.”
“끄어얼껄껄꺼어얼. 농으로 해본 소리입니다. 이 노귀 잘 알아들었으니 마약만 받으면 이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부딪치는 일이 없으면 좋겠군요.”
“흐어허어허. 같은 심정이오. ‘세 분’ 여정에 무운을 빌겠소.”
칭자오와 콰이, 그리고 이름 모를 저격수의 기척이 사라졌다.
비카타울은 어떻게 하겠냐는 듯 칼레오를 우두커니 바라봤다.
“이제 일어나지요, 호저.”
“ㅡㅡㅡ푸하!!”
칼레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호저의 몸이 다시 뭉쳐지며 원모습으로 돌아왔다.
“나 로브 남는 거 하나만.”
입었던 옷이 다 찢긴 상태라 호저는 가슴을 가리며 말했다.
비카타울이 짐 속에서 로브 하나를 꺼내 호저에게 입혀 줬다.
“저 영감 대단하군요. 당신이 죽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칼레오~~ 그냥 다 죽이고 가면 되지 않았어?”
“아니요. 우리 둘은 당신처럼 무식하게 되살아나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
“야아~~!”
칼레오와 일행은 그제야 포털이 그려진 광산으로 향할 수 있었다.
***
삐입ㅡ 삐입ㅡ 삐입ㅡ.
슈욱··· 퓨우··· 슈욱··· 퓨우···.
일정한 리듬으로 기계음이 들려오고 인위적인 호흡에 폐가 부풀었다 꺼져 간다.
수백 가닥의 선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마치 벼랑 아래로 떨어지려는 그의 혼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손길 같았다.
라일라는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삼촌의 야윈 뺨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삼촌의 얼굴에 앉은 먼지와 눈곱을 닦아 냈다.
베개를 정리하고 종아리를 주무르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삼촌은 그녀가 들어왔을 때와 별반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라일라는 휑한 병실을 둘러봤다.
병실의 냄새는 한결같다.
지독한 소독약 냄새와 안쪽 화장실에서 나는 싸구려 방향제 냄새, 천장에서 풍기는 히터의 먼지 냄새까지.
라일라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한스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가락은 수백 가닥의 전선을 닮은 듯 앙상했다.
“삼촌··· 얼른 나아서 나랑 같이 또 놀이동산 가기로 했잖아 기억나?”
그녀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반짝이는 리본 머리띠에 분홍색 풍선··· 삼촌의 손을 쥐고 환히 웃는 어린 꼬마.
그날 삼촌은 분명히 말했었다.
아니, 약속했었다.
– 우리 다음에 또 같이 오자.
– 웅 약쪽!
절대 깨서는 안 되는 ‘우리’의 맹세였다.
삐입ㅡ 삐입ㅡ 삐입ㅡ.
가냘픈 생명 유지 장치의 알림음처럼 그녀의 눈에서 일정한 박자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한동안은 밝게 있다가 갔는데.
오늘은 생각처럼 그렇게 안 된다.
“삼촌, 우리나라에 테러가 일어났어. 또 많은 희생자가 나왔대.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삼촌 생각이 나더라.”
독일의 슈퍼맨.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항상 최전선에서 뛰었던 독일 헌터계의 상징.
“우리가 그렇게 살리고 나면 또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 수습하면 또 누군가 죽어 있고.”
그녀는 한탄하듯이 읊조렸다.
숱한 희생으로 쌓아 올린 방파제인데, 파도가 칠 때마다 흔들리고 침범을 허락한다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일라는 자신이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기포처럼 부글부글 떠올랐다.
만약 삼촌이 대신 있었다면 살았을 텐데.
자신이 아니라 시우였다면, 그 사람들도 구했을 텐데.
멍청한 생각이란 걸 너무도 잘 알지만, 그녀는 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기적이란 건··· 특별한 사람들한테만 나타나나 봐.”
라일라는 눈물을 닦았다.
삼촌을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세월인데, 그럴수록 희망은 그녀의 손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곧 바수라질 모래성을 위해 누가 애를 쓸 것인가.
어차피 젖어 버리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을.
“이제 그냥 적당히 해야 하나. 너무 힘들다. 심지어 이번 테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그녀는 한스의 손바닥을 펴더니 그곳에 볼을 기댔다.
따뜻했다.
라일라는 긴장이 풀린 탓인지 점점 잠이 쏟아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몇 초 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시우와 베네딕트였다.
“스킬 고마워.”
“별말씀입니다~ 대선생님의 부하님.”
라일라를 잠들게 한 건 베네딕트가 몰래 쓴 스킬 덕분이었다.
시우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더니 손가락으로 볼을 쿡 찔렀다.
라일라는 눈썹을 찡그리며 뭐라 꿍얼거렸지만, 잠에서 깨진 않았다.
시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지럽게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건 열기가 아니라 온기야.”
시우는 빙긋 웃더니 손바닥으로 마력을 그러모았다.
쿠구구구구···.
하늘에서 쏟아지는 바다처럼 격한 흐름이 병실 전체를 휘감았다.
천 개는 족히 넘을 기하학적 패턴과 무늬, 기호와 문자가 바닥을 빼곡히 채우며 아름다운 술식을 이루었다.
이윽고 그 모든 것들이 시전자의 의지와 조화를 이루고 상상에 응답하자 금빛 찬란한 빛살이 공간을 아득히 물들였다.
그것은 누군가의 온기처럼 따스한 감각이었다.
베네딕트는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경험에 눈을 홉뜨고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건 힐러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경지,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 영롱한 빛의 조각이 숨결처럼 한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안색이 점차 편안해지는 게 보이며 얼굴 가득 생기가 흘러넘쳤다.
5년 이상 잠들어있던 한스 슈뢰더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눈이 떠졌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셨다.
한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얼핏, 아주 얼핏.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동양 남자의 얼굴이 보였던 것 같다.
그는 왼 손바닥을 들었다.
그리고 오른 손바닥도 들려 했다.
묵직했다.
그곳엔 웬 낯선 여인이 자신의 손바닥을 베고 누워 있었다.
“저, 저기요··· 아가씨?”
대체 얼마나 잔 것인지 목이 잠겨 아주 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자, 한스는 손바닥을 살짝 흔들었다.
여인은 아주 깊게 잠든 것인지 비몽사몽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녀의 눈이 한스의 눈과 마주쳤다.
“죄송하지만, 제 손을 베고 자셔···.”
한스는 말을 멈췄다.
입술을 덜덜 떨며 눈동자 가득 밀물을 담아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장 사랑하는 조카의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라··· 라일라?”
“사, 삼초온!!”
그녀는 한스를 와락 껴안고 목 놓아 울었다.
5년간 미처 흘려 내지 못한 감정을 놓아주듯이,
혹은 모래성이 무너지든 말든 바다에 뛰어들겠다는 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