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8
121화〉
권력화의 과정
– 각오는 한 거냐?
“각오라고 할 게 뭐가 있어.”
에드워드의 질문에 시우는 별생각 없다는 듯 대꾸했다.
– 너 원래 이렇게 관심받는 거 안 좋아하잖아.
“언제는 하라면서요, 부회장님.”
– 흐음, 흠! 아무튼 덕분에 총본 내에서도 난리가 아니야.
” 뭐가?”
– 자기네 국가에 민시우 헌터 출장 좀 보내 달라고 하는 거지. 테러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둥, 국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둥,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그중에 반은 권력 유지용으로 이용할 것 같은데.”
시우의 말에 에드워드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 역시 내 벗이여. 그들의 능구렁이 같은 속셈도 자네의 영악한 꾀 앞에선 꼬리를 말고 어둠 저편으로 도망갈 것이네.
“셰익스피어의 국가 아니랄까 봐··· 희곡 읽냐.”
– 농이다. 그건 그렇고 이 영상은 네가 말한 부분을 지우고 올리면 되는 거지?
“그래, 부탁한다.”
시우는 까먹지 않는 이상 전투가 시작될 때마다 바디 캠부터 켰다.
따라서 이번 테러에 대한 모든 내용이(시우의 시점이지만), 바디 캠에 녹화되었던 것.
– IZIZ 부분을 내보내면 확실히 혼란이 가중되겠군. 거기다 너랑 가깝다는 게 밝혀지면 문제가 될 테고.
“그리고 초반에 최대수랑 내 수하들 나오는 장면도 꼭 지워.”
어떻게 보면 최대수도 이번 테러 사건의 주역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는 독일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현장에 없었던 인물’이 되었다.
최대수에게는 〈강원 S급 게이트〉 수습이 끝나기 전에 취미로 독일 경매장에 참석한 것.
독일에게는 일국의 대통령을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한 것이 문제가 될 내용이라 원만히 해결될 수 있었다.
한국에 도착한 시우는 잠시 쉬었다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현재 국내에는 S급 게이트와 류지환에 관한 뉴스만 나와 우중충한 분위기가 가득했었다.
그러던 찰나 독일의 영웅으로 급부상한 헌터의 귀국은 국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예전에 세계적 스포츠 스타나, 영화 배우들이 했던 역할을 지금은 헌터가 하고 있는 것.
시우는 만찬장 옆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먼저 와 있던 공직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몇이 시우에게 다가오며 오랜만에 보는 동네 후배 대하듯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우리나라에도 오랜만에 스타 헌터 탄생이네!”
“내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있었지.”
“하하, 내 손주 같고 좋구먼. 아직 장가 안 갔으면 말하게나!”
시우는 감정 섞지 않고 의례적으로 짤막한 대답만 했다.
대체 언제 봤다고 반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허··· 게이트 때마다 바쁘시네.”
때마침 등장한 낯선 목소리에 시우는 고개를 돌렸다.
다른 파벌로 예상되는 공직자들이었다.
“나 국방부 장관 김휘호라고 하네. 지난번 우리 양준모 참모 총장이 신세를 졌다고 해서.”
양준모라면 〈S급 게이트〉 때 마정석 먼저 캐자고 했던 또라이의 이름이었다.
시우는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시군요.”
“저도 인사 올리죠. 경찰청장 차병철이라 합니다. HMCS 덕에 사건이 적어 참 좋습니다.”
시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시우에게, 그리고 HMCS에게 악감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가지 충고해 주자면, 젊은 친구가 너무 목 뻣뻣이 드는 거 아니야. 언제 어느 때 부러질지 모르더라고.”
“하하하. 김 장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그런 친구들 종종 봤어요. 저 잘난 맛에 살면 꼭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듣자 하니 롤프 방겐하임 협회장의 선생이라고? 언론 플레이를 하려거든 적당히 해야지.”
“아마 곧 정정 보도가 나갈 겁니다. 그리고 독일 랭커 2위인 베네딕트 악커만도 본인의 제자라고 했다네요. 하하하.”
시우는 그들의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태연자약한 표정이 오히려 몇몇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렀는지 아예 한국 HMCS를 질타하는 목소리마저 생겨났다.
그때였다.
“입 닥쳐~!”
리드미컬한 목소리와 함께 떠들썩하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입구로 향했다.
숏컷을 한 귀여운 인상의 길리온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째려본 뒤에 시우 옆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시우는 길리온을 보고 싱긋 웃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뒤이어 도경후, 민시준이 함께 들어오며 분위기가 확연하게 뒤바뀌었다.
“밖에까지 짖는 소리가 들리는군.”
도경후가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내뱉었다.
대형 길드의 길드장.
혹은 한 나라의 손꼽히는 랭커.
이 둘 중 하나만 충족해도 그 사람은 어딜 가든 큰소리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특히나 한국처럼 위계질서가 강한 곳이면 더더욱.
“민시우 헌터님은 이번에 ‘초청’으로 청와대에 들어온 것으로 아는데, 알고 보니 청문회였나 보네요.”
민시준이 차가운 눈초리로 시우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며 읊었다.
그 서슬푸른 말투에 사람들이 손사래 치며 대꾸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길드장님들.”
“하하하. 이거 오해가 있었습니다. 단지 잘나갈수록 겸손하라는 충고를 해 주다 보니···.”
“크하핫! 누가 누구한테 충고한다고?”
도경후는 자신이 잘못 들었단 것처럼 귓구멍을 후비며 다가갔다.
“이봐, 장관 나리들. 충고란 건 본인보다 낮은 사람한테 하는 거야.”
대한민국 랭킹 2위 헌터의 기백에 장관들은 그저 되물을 뿐이었다.
“예···??”
“대체 이 나라에서 삼존(三尊)에게 충고할 사람이 어디 있다는 거지?”
도경후의 발언에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삼존이라면 옛 1세대 헌터 시절, 대한민국을 주름잡았던 세 명을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투신 최대수.
검귀 도경후.
광견 민시우.
“분명 그분은 사망했다고 전해지지 않습니까?”
벌써 십 년도 전의 일이다.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누군가에겐 공포로 남았을 그 이름.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나 보도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치 잘나가는 연예인이 한순간에 스크린에서 사라져도 누군가 대체해 빈자리를 느낄 수 없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광견의 뒤를 잇는 헌터들은 이후에도 우후죽순 생겨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족과 평화 조약을 맺으며 마왕과 했던 전쟁은 역사에서 조용히 지워졌다.
“삼존이요···? 아, 저 친구가 그 삼존 중 하나인 광견의 후계자라도 되는 겁니까?”
“쯧쯧쯧.”
도경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머저리들한테 설명하는 시간마저 아까웠다.
“차차 구경들 하시게.”
때마침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준비된 기자단과 카메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헛기침으로 날려 버린 뒤 뒤이어 들어올 사람을 기다렸다.
대통령 최대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위의 등장에 장차관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며 방송이 생중계됐다.
플래시 세례가 연이어 터졌고, 기자들은 멀찌감치 서서 질문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최대수는 준비해 온 멘트를 읽으며 훈장과 상패를 건넸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한 명의 헌터로서, 귀하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시우는 살다 살다, 최대수에게 이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지 피식 웃었다.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간단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의전비서관이 기자들에게 말하자 여기저기서 손이 번쩍 올라갔다.
먼저 유력 언론사 기자가 입을 열었다.
“현재 독일에서도 인기가 만만치 않으신데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독일과 한국의 서로 띄워 주기 전략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뉘른베르크 구울 습격.
〈강원 S급 게이트〉.
그리고 이번 ‘베를린 국제 아티팩트 경매’에 이르기까지.
시우와 묘하게 이어지는 관계에 트집을 잡고 나온 것이다.
“글쎄요. 독일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테러든, 우리에게 있었던 게이트 사건이든, ‘띄워 주기’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저보다 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시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결국 ‘나보다 더 열심히 해서 뜨면 된다.’라는 말.
물었던 기자가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던 다른 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독일 헌터 협회〉 회장인 롤프 방겐하임의 선생님이라는 기사가 나왔었는데요. 말도 안 된다는 반론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추가 질문하겠습니다! ‘[나흐트 길드] 베네딕트 악커만 길드장의 선생님이 바로 나다.’ 라는 기사도 있던데요. 혹시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우는 혀를 찼다.
누구의 사주인지 너무도 뻔한 상황에 한숨마저 나왔다.
‘너무 예상대로 돌아가니까 그게 더 놀랍네.’
저쪽을 보니 묘한 미소를 짓고 멋쩍게 서 있는 장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시우는 이런 견제가 들어올 것을 최대수와 백건호를 통해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고위 인사들이 이번 환영식을 추문으로 뒤덮으려 할 거라는 언질.
그렇기에 시우는 나름의 비책을 세워왔다.
“해당 질문들은 제게 하기보다는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은데요.”
그의 말이 끝나자 미리 사주받은 기자들이 빗발치듯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 대답할 수 있는 당사자는 민시우 헌터밖에 없지 않습니까?”
“말 돌리지 말고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언론 플레이 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기자들의 때아닌 추궁이 이어졌지만. 시우는 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한 채 대형 스크린에 영상 하나를 띄웠다.
화면에 나온 사람은 〈독일 헌터 협회〉 회장이자 독일 헌터계의 살아있는 전설, 롤프 방겐하임이었다.
– 대한민국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는 책이 가득 꽂힌 집무실에서 말끔한 정장을 입고 인사했다.
– 기자님들의 질문은 처음부터 다 들었습니다. 통화는 아까부터 시작하고 있었거든요.
롤프는 빙긋 웃으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독일과 한국이 무슨 이득이 있어 테러를 자행하고 띄워 주기를 한다는 겁니까? 한 사람, 한 기관의 이미지 상승을 위해 국가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건 누구의 발상입니까? 어떤 기자님이시죠?
질문했던 기자는 손도 들지 못한 채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기 바빴다.
– 대한민국 여러분들이 〈강원 S급 게이트〉 사건 때 도움을 준 독일의 헌터들을 응원해 줬듯이, 민시우 헌터를 향한 독일 국민들의 애정을 깎아내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호하기까지 한 그의 발언에 몇몇 사람들이 머쓱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그렇다면 민시우 헌터가 방겐하임 협회장님의 선생이란 보도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차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 사실입니다.
“예??”
– 배움에 나이의 많고 적음이 중요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혹시 의례적으로 배울 게 많았던 사람이란 뜻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롤프는 테이블을 툭툭 때리다가 근엄하게 대답했다.
– 시우 선생님은 제가 헌터가 될 수 있게끔 모든 기초를 닦아 주신 분입니다. 전 그분을 위해서라면 제 자리마저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화면 너머에서 좌중을 뚫어지게 관찰하더니 말을 이었다.
– 다시 말씀드리죠. 시우 헌터님은 독일의 영웅이자, 제 선생님입니다. 더는 제 은인에 대해 폄훼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군요. 만약 제 발언을 또 왜곡해 보도한다면, 그 사람은 독일의 ‘도베르만’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강한 사람이 하는 말은 협박이 아니다.
그건 강제성을 띤 일종의 명령이 된다.
롤프 방겐하임은 그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이었다.
엄포에 가까운 말에 장관들에게 매수된 기자들은 원망하는 눈빛으로 의뢰자들을 쳐다봤다.
물론 하나같이 그 눈길을 피했지만 말이다.
– 저는 이만 마치고, 뒤이어 다음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롤프 방겐하임은 소임을 다한 장군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빈자리로 두 번째 인터뷰 대상이 등장했다.
그건 시우도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 Guten Tag(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다정한 헌터! 베네딕트 악커만이라고 합니다.
기자들은 뜬금없는 대형 스타의 등장에 신속하게 급보를 퍼다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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