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19
122화〉
삼존
베네딕트 악커만.
현 독일 랭킹 2위이자, 세계 랭킹 20위인 하이 랭커.
이명 ‘전장의 지휘자.’
그는 뛰어난 실력 외에도 잘생긴 외모 덕분에 배우와 모델로 일하며 각종 광고에 출연해 유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헌터이기도 했다.
아시아에 류지환이 있다면, 유럽엔 악커만이 있다는 말까지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의 헌터로서의 기량이나 인성은 차이가 많이 났지만 말이다.
–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들과 저를 좋아하는 팬 여러분! 네? 팬 소리는 빼라고? 아니, 그럼 영감님이 대신하든가!
베네딕트와 롤프가 잠깐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기를 잠깐, 롤프의 비서가 황급히 코코아를 갖다 주자 베네딕트는 활짝 웃으며 인터뷰를 다시 진행했다.
– 네, 저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알고 계실 테니까. 바로 질문받도록 할게요.
“제가 먼저 질문드리겠습니다. 현재 베네딕트 악커만 헌터는 하이 랭커이시죠?”
– 흐음, 코코아 맛있다. 맞아요, 그런데 질문이 늘어지네요. 결론적으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
“그··· 민시우 헌터는 세계 랭킹에 등록조차 안 된 헌터입니다.”
– 그런데 언론에는 그가 저의 ‘선생님’으로 나와서 이상하다, 이건가요?
“네? 아, 아, 네, 그렇습니다!”
기자는 베네딕트의 말에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군요! 그럼 정정 보도를 해드리죠. 민시우 헌터는 제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의 한마디에 장내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화상 통화 내에서 당황한 롤프의 음성이 들렸지만, 베네딕트는 태연히 코코아만 마셨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악커만 길드장님에 대한 민시우 헌터의 기사는 악의적 보도였군요!”
– 그래서 해당 문구를 정정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 민시우 헌터는 제 ‘선생님’이 아니라···.
기자들은 재빨리 타이핑을 해 받아 적었으며, 카메라는 화면에 나온 베네딕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꿀꺽.
– 저의 ‘대선생님’이십니다.
적막이 흘렀다.
호로록.
– 음, 이 코코아 맛있는데 브랜드가 어디지. 영감님, 저 갈 때 이거 좀 줘요.
“악커만 헌터? 정정한 내용이 이해가 안 가는데요?”
기자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원하던 기사 내용이 아니었다.
베네딕트는 기자들의 면면을 훑어본 뒤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이해가 안 가는 건 전데요? 실력 있는 헌터가 같은 나라 사람이면 좋지 않나요?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이죠?
“······.”
– 제가 민시우 헌터를 선생님으로 여기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기자님?
베네딕트가 질문하자 기자는 우물쭈물하며 주변 사람들의 눈치만 살폈다.
보통은 이 정도면 다른 화두로 넘어갈 법도 한데, 베네딕트는 그 기자가 대답할 때까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해당 기자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어··· 기자는 진실을 보도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럼 독일에서 나온 뉴스들은 진실이 아니라 전부 거짓이었단 말씀인가요?
“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 그렇다면 이제 진실을 아셨으니 기자 정신을 갖고 보도하시면 되겠네요!
베네딕트는 가만히 기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실 어느 나라든 정쟁으로 인한 헌터들의 피해가 없진 않았다.
정치인들의 야욕과 권력의 희생양으로 헌터계에서 매장당한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그나마 독일은 롤프 방겐하임이 협회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런 알력 다툼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 제 인터뷰도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멍청한 정치 파벌 싸움 때문에 소중한 인재를 버리지 않길 바랄게요!
베네딕트는 손을 흔들더니 노트북을 닫았다.
침묵이 휩싸였다.
인터뷰가 끝났다 하더라도 모든 의문이 해소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던 각 방송국 댓글 창은 쉴 새 없는 질문들로 도배되었고, 기자들은 추가 질문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를 어떻게 정리해야지?’
기자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민시우란 자의 정체를 까발리겠단 목표로 왔던 사람들도, 혹은 별 의도 없이 왔던 사람들도 마무리에 대해 고민했다.
그때 최대수가 단상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사람들과 카메라의 초점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은 자리로 최대수의 걸걸한 음성이 천천히 채워졌다.
“저에게는 한 명의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사실 라이벌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게, 그놈은 제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덤덤하게 이어지는 그의 낯선 고백.
“제 모든 걸 걸고 이겨 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라이벌은 저를 멀리 따돌리고 앞서갔습니다. 영원히 닿지 않을 듯하더군요.”
기자들은 대한민국 최강의 사내 이야기를 소리 없이 받아적었다.
이 시간만큼은 댓글 창도 조용했고, 정치인들도 기자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한 사람의 이야기에 경청했다.
“최근까지도 도전했지만, 저는 역시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쯤 되니까 오기도 질투도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는 시우를 힐끗 바라본 뒤에 말을 이었다.
“적으로 지낼 바에는 차라리 동지로서 옆에 두자. 나는 패배한 게 아니다. 단지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가볍더군요.”
도경후는 이해한다는 듯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 여러분, 민시우 헌터는 제 동지입니다. 최대수의 동지이자 도경후의 동지입니다. 그는 강여화 헌터, 민시준 헌터의 스승이자 평생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싸워 온 위대한 헌터입니다.”
기자들은 홀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라이브 방송을 보는 수많은 시청자도, 길거리나 가게에서 TV를 보던 사람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설령 장관들이 필요 없다고 해도, 정치 지도부에서 필요 없다고 해도, 제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헌터계가 필요로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때 도경후가 시우의 팔을 잡더니 최대수 옆으로 끌고 갔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도경후의 표정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마이크를 빼앗은 그는 기자들과 카메라, 방송을 보는 수많은 사람에게 선포하듯 외쳤다.
“크하핫! 닥치고 들어라!! 오늘부로 대한민국의 삼존(三尊)이 부활했다!!! 1세대의 귀환이니까 후배 놈들은 알아서들 받들어라!!!”
도경후는 후련한 얼굴로 시우와 최대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최대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들개.”
“나도 알아. 그리고 대통령이 귀한 인력을 그따위로 불러서 되겠어?”
“크하핫! 오랜만에 이렇게 셋이 뭉치는군.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할까?!!”
“좀 조용히 말해, 털 대가리야.”
시우는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전설의 귀래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
시우가 독일에서 돌아오기 전, 한국.
눈썹처럼 가느다란 어여쁜 각월이 혼혼한 구름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정취가 느껴지는 새벽의 숨결.
사박. 사박. 사박.
잔디를 밟고 다가오는 그림자 하나가 있었다.
침입자의 태도치곤 너무도 태연자약한 걸음걸이.
“누구냐.”
그 순간 걸음을 붙잡는 차갑고 무뚝뚝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흐흐흐ㅡ 오랜만이구나, 여화.”
깊은 어둠을 닮은 그 목소리에 강여화는 흠칫 몸을 떨었다.
수년 만에 듣는 목소리인데, 반가움보다는 소름이 먼저 돋았다.
“뭐야, 샤오롱···?!”
“기특하군. 사형의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그는 새까만 도복을 너풀거리며 한 마리의 사자처럼 다가왔다.
자신의 구역에서 사냥감을 고르는 맹수의 얼굴로 말이다.
“멈춰!!”
강여화가 단전에서 마력을 끄집어내며 소리쳤다.
가느다란 달 아래, 그녀의 주위로 푸르른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네가 여기에 무슨 일이지?!”
“마음이 아프군. 제자가 스승을 보러오는데 따로 이유가 필요한 것인가.”
샤오롱은 섭섭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며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강여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풍화랑 : 신궁] 스킬을 펼쳐 활과 살을 구현했다.
“스승님을 쓰러트려 죽이고 싶어 하는 제자라면 이유가 필요할 것도 같은데.”
“이런ㅡ 여화야. 나를 못 믿는 것이냐?”
“뱀을 믿는 동물도 있더냐.”
“큭··· 아아. 크흐흐흐흐.”
샤오롱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웃었다.
어둠을 찢고 흩어지는 광소가 강여화의 모골을 송연케 했다.
“여전히 재밌군, 재밌어. 스승에 미쳐 사는 네년 꼬락서니를 보노라면, 그 인간은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
“아가리 조용히 다물고 꺼져.”
“아니··· 복이 많은 게 아니라, 사실 우리를 데리고 가족 놀이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마치 자기가 아버지인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위선을 떨고픈 거였겠지.”
” 닥치라고!!”
그녀의 눈에서 서슬 푸른 살기가 돋아났다.
뒤이어 마력을 흠뻑 머금은 살이 대기를 찢어발기고 맹수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듯 힘차게 쏘아졌다.
샤오롱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화살이 그의 상반신을 휘젓고 아주 저 멀리 날아갔다.
강여화는 흠칫했다.
“이미 늦었다, 멍청한 계집.”
그녀의 뒤에 나타난 샤오롱이 주먹으로 강여화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투· · · · · 웅!!!
파문처럼 그녀의 몸을 뒤흔든 충격파가 뒤늦게 사방을 진동시켰다.
콰ㅡㅡㅡㅡㅡㅡ!!!
강여화는 한참을 나가떨어진 뒤 몸을 일으켰다.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승이 없었던 지난 십 년간 너희는 무얼 했지?”
샤오롱은 질문과 함께 발을 박찼다.
어둠과 뒤섞인 움직임은 S급인 강여화로서도 바로 반응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단전을 개방해 마력을 전신에 쏟아부었다.
짙푸른 열기가 근육 곳곳에 스며들며 그녀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파악! 빠아아악! 휘익!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반사 신경으로 샤오롱의 공격을 막거나 피해냈다.
‘맞은 자리가 시큰거려!’
그가 강해졌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세계 랭킹 18위에 오른 헌터를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강여화는 자신도 강해졌다 생각했었다.
S급도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고, 턱걸이긴 해도 그녀도 세계 랭킹 98위에 올랐으니 말이다.
“크흡!”
그러나 막상 부딪혀 보니 그 격차는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차이처럼 커다랬다.
임시방편으로 좁힌다고 좁힐 수 있는 간격이 아니었던 것.
“십 년의 세월 동안, 너와 민시준, 정민준은 스승에 묶여 제자리걸음 했을 뿐이다.”
샤오롱의 발이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ㅡㅡㅡㅡㅡㅡ꽈앙!!!
굉음이 뒤늦게 울렸다.
강여화는 배를 붙잡고 바닥에다 피를 게워 냈다.
엄청난 격통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 돌았다.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그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쏟아부었다. 스승을 넘기 위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나는 내 모든 가능성을 쥐어짰다.”
“쿨럭! 크흡ㅡ 그리고 그 바탕은 스승님에게서 물려받은 거지.”
강여화의 지적에 샤오롱은 쯧쯧 혀를 찼다.
“너와 놀아 줄 시간 없다. 스승님은 어디 계시냐? 제자가 얼굴을 뵈고 인사드려야겠다.”
“푸흐흐···.”
“왜 웃는 거지?”
“정보가 늦구나. 스승님은 지금 독일에 계시다.”
“···연조!”
“예!”
적도복을 입은 여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확인해라. 스승님이 어디에 계신지.”
“예.”
“그리고 만약 한국에 안 계신 거라면···.”
샤오롱은 바닥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강여화를 내려다보더니 뒷말을 이었다.
“이 여자를 인질로 데려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