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20
123화〉
삼존2
대통령 관저.
경호원을 밖으로 내보낸 거실에는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최대수, 도경후, 그리고 시우.
거실 테이블 위엔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의 음식과 함께 십여 가지가 넘는 술이 준비되었고, 그 모습을 본 도경후는 거침없이 술부터 들이켰다.
“크하핫! 이게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술이냐! 대통령이 대접하는 술이라 그런지 더 고급스러운 맛이 느껴지는데!”
“후우ㅡ 얼마든지 마셔라. 살다 살다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최대수는 창가에 서서 시가를 피웠다.
매캐하고 희뿌연 연기가 바깥 공기를 따라 널따랗게 흩어졌다.
【옵밥! 어우 어르 어어라!(좁밥! 너도 얼른 먹어라!)】
프레는 터질 것 같은 볼을 우물거리며 행복하게 말했다.
대체 저 작은 몸에 어떻게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가나 싶지만, 프레는 햄스터처럼 음식을 마구 욱여넣었다.
시우는 작은 병맥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는 아니었다지만, 이렇게 정답게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사이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세월이 가긴 했지.’
역시 사람은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것들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네놈이 독일에서 얻은 정보로 보자면, 역행한 게이트는 ‘게이트 허트’가 내부 아닌 밖에 있단 거군.”
“그렇지. 아이디어를 누가 짰는지는 몰라도 마법에 상당히 해박한 사람인 것 같아.”
최대수의 물음에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만들어 낸다는 발상도 대단했는데, 거기다 문을 뒤집어 버릴 줄이야.
오로지 파괴를 위한 마법 회로.
“혹시 이번에도 놈들이라는 시그니처가 있던가?”
“심장을 부수니까 그 안에 〈판데모니엄〉이라 적힌 보석이 있더라고.”
“크하핫! 네놈들 오랜만에 만나서 왜 일 얘기만 하는 거냐! 민시우, 얼른 먹어라!”
도경후는 모처럼 술이 들어가 기분이 좋은지 낯빛이 벌써 불콰하게 익어 있었다.
【이 몸도 같이 한잔하는 것이다!】
“므어어?? 들개, 이 녀석 술 먹여도 되냐?”
“꽤 마실 줄 안다. 알아서 해라.”
“크하핫! 좋다, 좋아! 누가 이기는지 내기해 보자, 이 빨강 대가리야!”
【이 나에게 술로 덤비다니 가소로운 것이다! 덤벼라, 수염 대가리야!】
최대수는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도경후와 인형이 술잔을 주고받는 장면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 그렇게 실드 쳐도 괜찮겠어?”
그때 시우가 최대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 낮에 있었던 기자 간담회.
그곳에서 최대수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의 입장을 표명했다.
민시우라는 헌터를 지지함과 동시에 그가 과거에 삼존이었음을 긍정한 것.
단순히 대통령의 입김이라는 걸 넘어서서 ‘삼존’이었던 광견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꽤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었다.
“후우ㅡ 한동안 여의도가 시끄럽겠지.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더 그럴 테고. 굳이 존재마저 지워 왔던 호적수를 다시 불러들인 대통령의 저의가 무엇일까, 하고 말이야.”
최대수는 테이블에 놓인 술병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하나를 들어 잔에 따랐다.
“‘삼해주’라고 하는 전통주지. 무형 문화재로 등록된 술인데 한잔해 보지 그래.”
시우는 옆에 있던 잔을 들어 최대수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막걸리보다는 맑고 소주보다는 탁한 빛깔의 술이 빈 잔에 차올랐다.
시우는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인상이 찡그려졌다.
무척이나 씁쓸한 맛 뒤에 여운처럼 올라오는 달큼함.
“크크크. 네놈은 술을 못 마시는군.”
시우는 육회 한 젓가락을 집어 우물우물 씹었다.
최대수는 한 잔 더 따라 쭈욱 들이켜더니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난 저의 따위는 없다. 네놈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득 볼 생각도 없고, 내 입지를 굳힐 생각 따윈 더더욱 없어.”
“그딴 건 나도 알아.”
“안다니 다행이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네놈에 대한 기록을 지운 건 내가 아니다.”
최대수는 시우를 쳐다보지 않았다.
창가를 보며 시가를 태울 뿐, 그의 시선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건 ‘세계’의 뜻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크하핫! 이보게 민시우! 마족과 인류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평화를 위한 새 역사에 불협화음은 들어갈 수 없다는 소리지!”
옆에서 듣고 있던 도경후가 빨갛게 익은 얼굴로 대신 대꾸했다.
시우가 마왕과 싸우다 이계로 전이된 뒤, 인류는 마왕 및 마족과의 전쟁을 끝냈다.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겠단 불가침 조약을 맺으며 말이다.
그리고 마족은 인류에게 ‘불편한 과거’를 지워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자신들이 거듭 패배해 마왕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던 그 인물을.
민시우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건 그 이유였다.
“물론 마족의 요구를 반영해 그랬다고 공표할 순 없지. 그래서 세간에서는 내가 지운 거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더군.”
“하긴, 최대수가 치졸해도 자존심은 있지.”
“후우ㅡ 나였다면 널 실제로 지워 버리지, 고작 인터넷에서 지우는 짓 따위는 안 한다, 미친개.”
“알았다, 외눈깔. 그런데 날 이렇게 드러내면 마족 측에서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설마 내가 미끼인가?”
시우의 자문자답에 최대수가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젠장맞을.
마왕을 위태롭게 만들었던 광견이 돌아온 걸 알게 되면 마족이 가만있지 않을 테고, 그들을 추종하는 〈판데모니엄〉도 움직이게 될 거다.
물론, 이건 가장 단순한 경우의 수였다.
“아니지. 오히려 반대가 될 수도 있구나.”
“······.”
“미끼이자 방패냐, 내가?”
“크크크. 얼추 맞다. 역시 대단하군.”
최대수는 이 짧은 순간에 시우가 추리해 낸 결과를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전제를 하나 던져 줬을 때,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결과를 유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족의 이목은 끌겠지만··· 〈판데모니엄〉의 테러는 한국에서 일어날 확률이 줄어들겠지. 잘못하면 세상의 시선이 마족에게로 쏠리게 되니까.”
아직 대외적으로는 테러의 주체가 〈판데모니엄〉이란 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조직의 규모도, 목적도, 마족과의 연관성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
“정답이다, 미친개.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마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길 거다. 그러면 〈판데모니엄〉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게 될 테니, 넌 훌륭한 미끼이자 방패가 되는 셈이지.”
“칭찬 고맙군, 외눈깔.”
시우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밤이 무르익었다.
***
“젠장, 일이 너무 틀어지고 말았어!”
김휘호 국방부 장관은 머리를 쥐어 뽑듯이 잡아 흐트러트렸다.
고작해야 조금 밀어주는 헌터일 줄 알았지, 삼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장관님, 침착하시고···.”
“넌 닥쳐!”
양준모 참모 총장이 진정시키려 하자 김휘호는 그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처음부터 저 새끼가 부채질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습니까. 거기서 최대수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차병철 경찰청장이 한숨과 함께 푸념하듯이 말했다.
요즘 HMCS가 너무 잘 나가는 통에 건방진 신입을 눌러 주려 한 것뿐이다.
기자들에게 약 좀 치고, 끗발 있는 언론사에 돈 좀 먹이고, 그렇게 생방송 중에 엿이나 먹여 퇴출시키려 한 것인데···.
상황이 꼬여서 오히려 역풍을 맞게 생겼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HMCS가 대통령실과 손잡고 악의적 소문의 출처를 찾을 거라고 했다.
거기다 롤프 방겐하임과 베네딕트 악커만의 인터뷰가 세계적 이슈가 되는 바람에 절대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만약 기자 중 누군가가 입이라도 뻥긋하면, 우리는 끝입니다.”
김휘호의 말에 다시금 정적이 흘렀다.
“장관님들 겁이 많으시군요.”
그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양 의원님, 혹시 계획이 있으십니까?”
차병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현재 여당 4선 의원이자 차기 대선 주자로 물망에 오른 인물, 양희리 의원.
그녀는 헌터들이 싫었다.
정치는 정치가가 해야 하는데, 헌터란 것들이 생겨나면서 정치도 그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덕분에 지난 경선에서 최대수에게 뼈아픈 패배를 겪어야 했으니, 그녀로서는 복수의 기회인 셈.
“계획이요? 그냥 죽여 버리도록 하죠.”
“예??!”
“자, 잠시만요, 의원님!”
장관들은 토끼 눈이 되어 양희리를 쳐다봤다.
이런 무서운 발언을 저렇게 겁대가리도 없이 하다니.
“듣자 하니, 그 민시우라는 헌터를 마족에서 안 좋게 생각한다면서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마족이 벌인 암살인 척해 버리는 거예요. 설마 HMCS가 마족을 상대로 수사하진 않을 테니까요.”
김휘호와 차병철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만약 마족의 짓이라는 증거가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그 즉시 수사는 종결될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마족과 싸움을 벌일 사람은 없을 터.
“하지만 상대는 그 삼존이라고 합니다. 대체 누가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어머나, 장관님도 그런 케케묵은 전설을 믿으세요?”
양희리는 비꼬듯이 상대의 말을 되짚었다.
차병철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제 생각이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최대수 대통령이나 도경후 헌터와 같은 급이라는데···.”
“그렇게 떠드는 헌터들이 한둘이었나요? 류지환도 보세요. 불세출의 천재라고 언론에서 치켜세울 땐 언제고 지금은 흔한 잡범이 됐잖아요.”
한때는 도경후나 최대수를 넘어설 것처럼 세간에서 떠들어 대던 헌터, 류지환.
이제 그의 인생은 헌터의 성공과 몰락이라는 걸 가장 잘 드러내는 하나의 예시가 되어 버렸다.
“어떠세요? 제 의견에 찬성하시면 이대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아닌 분은 나가서 본인의 거취를 결정하면 되겠어요.”
양희리가 던진 양자택일에 장관들과 차관들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배를 탄 동지입니다.”
그녀는 사실 이번 기자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김휘호의 연락을 받고는 선뜻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최대수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헌터 위주로 돌아가려는 정치질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장관님들이 제 의견에 동의해 주실 줄 알고··· 미리 전문가를 모셔 왔어요.”
“예?! 전문가라니요?”
“어떤 전문가 말씀입니까?”
그녀의 수하가 옆방으로 가더니 세 명의 사람을 데려왔다.
두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젊은 청년.
모두 날카롭게 벼린 눈매와 독특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어 보통의 실력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유명한 암살자 분들입니다.”
“아, 암살이요??”
양희리를 제외한 사람들이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프로 중의 프로를 모셔 왔으니, 어디 가서 입을 열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양 의원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저도 여기까지 온 이상··· 뜻을 믿겠습니다.”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수하에게 손짓해 암살자에게 타깃의 사진을 넘기도록 지시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 사진을 넘겨받았다.
그는 사진을 찬찬히 훑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끌끌끌, 이거 무척이나 어려운 상대군.”
“어머. 잘 아시는 분인가요?”
양희리는 맞장구라도 쳐 주듯 대꾸했다.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더니 살기 그득한 얼굴로 웃었다.
“알다마다, 알다마다요. 끌끌끌.”
“아하, 최근에 TV로 보고?”
“전설의 재생술사··· 내 주인이시거든.”
적귀가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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