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24
127화〉
격투 대회3
얼마 전, IZIZ 아지트.
“죄송합니다, 마약을 넘겨서.”
칼레오는 동그란 로이드형 테를 매만지며 착잡한 내색을 보였다.
호저와 비카타울까지 같이 있었는데, 적들과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친 것 같아서 내심 신경이 쓰였던 것.
크로우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다.
스스로가 채우는 족쇄나 규칙 때문에 실패에 엄격한 사람들.
“뭘 그런 걸로 신경 쓰고 그래. 칼레오, 너답지 않게.”
“조직을 위한 판단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제 안위를 먼저 걱정한 것은 아닐까, 해서요.”
“아하하. 다 살아 돌아왔으면 그게 제일 잘한 거 아니야? 어때, 비카타울?”
앉은키가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큰 거한의 비카타울이 천천히 끄덕거렸다.
“봐 봐. 잘했다잖아. 거기서 하나라도 죽었으면 마약을 얻었어도 우리한텐 손실이었을 거야. 그리고 라펠도 엄청 슬퍼했을 테고.”
“그렇습니까···.”
칼레오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크로우는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더니 기지개를 활짝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혹시 필요하다면 오늘 당장에라도 찾으러 다녀오겠습니다.”
“응? 에이, 아니야. GPS 수신기는 정확한 거지?”
“네, 확실합니다.”
칼레오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돈 가방과 마약 가방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해 놨었다.
설마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럼 됐어.”
“···혼자 가서 가져오려는 건 아니지요?”
“아하하, 말도 안 돼. 지금 마약 찾으러 갔다가는 반드시 죽을걸?”
“네?”
물론 대성은 굳이 붙어 보지 않아도 엄청난 괴물일 것임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특히 아시아 뒷세계에서 그에 대한 영향력은 어마어마했으니까.
하지만 전쟁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몰래 물건만 빼 오는 것인데···.
“잔치 중이거든. 우리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 곳이 아니야.”
“잔치라니요?”
“뭐, 그런 게 있어. 거기 사람 바글바글해.”
크로우는 싱긋 웃더니 다른 쪽을 쳐다봤다.
“특이 사항은 없어?”
“흑흑흑··· 용병 요청이 몇 건 와 있습니다··· 흑흑흑.”
항상 눈물을 흘리는 ‘알비노’가 대답했다.
“〈판데모니엄〉은?”
“흑흑흑···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 용병이나 조금 뛰다 올까. 비카타울, 가자.”
그녀의 부름에 비카타울이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
늦은 저녁 64강이 열렸고 시우는 한 방에 상대를 보내 버렸다.
역시나 판정을 듣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관람석에서나 언뜻 서로를 보았던 선수들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진짜 강자들의 대결이 시작되는 32강.
시우를 포함한 서른두 명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일렬로 죽 서서 관람석 쪽을 향했다.
수십 개의 스크린 속, 대부호들은 저마다 마음에 두었던 선수를 향해 베팅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경기마다 좌우 둘 중 누가 이길지 베팅하는 거였다면, 32강부터는 한 선수를 택해 베팅하는 겜블.
그에 따라서 판돈의 상한선도 껑충 뛰었다.
대부호들과 정치인들은 군침을 삼키며 32명의 면면을 살폈다.
그러는 와중에도 뒤쪽에 설치된 전광판에 각 선수에게 걸린 베팅 금액과 예측 승률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지이이잉.
시우의 후드 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원래 핸드폰은 경기장에 반입 불가였지만,
‘그딴 거 내 알 바인가?’
그는 핸드폰을 슬쩍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준비 완료》
아주 짤막한 내용.
시우는 피식 웃더니 손가락을 꺾었다.
파티는 이제부터 시작이지.
그러고는 한 발짝 성큼 앞으로 내디뎠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뭐야, 너. 자리로 들어가.”
경기의 진행을 맡고 있던 청도복이 시우를 보더니 언성을 높였다.
지금 이 시간은 아주 중요한 순서였다.
억 단위를 넘어 조 단위의 베팅 금액이 오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서는 안 됐다.
“나는 얼른 대성이라는 놈이랑 싸우고 싶거든.”
“뭐?!”
시우의 말에 청도복이 기도 안 찬다는 얼굴을 했다.
‘저게 지금 누구한테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중국 뒷세계의 왕한테 ‘놈’이라는 표현을 쓰다니.
“그런데 붙으려면 32강을 치르고, 16강을 치르고, 8강을 치르고··· 4강에 우승까지 해야 챔피언 결승을 하는 거잖아.”
시우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 가며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5번은 더 이겨야 대성과 맞붙을 수 있다는 말.
“대통령을 만나도 이것보다는 복잡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우리 방법을 좀 간소화하면 안 될까? 그걸 저 뒤에 있는 양반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
빙글빙글 웃으며 하는 건방진 말에 다른 선수들도 슬슬 열이 올랐다.
“솔직히 여기까지 왔으면 다들 상대의 실력을 확인했을 텐데, 굳이 시합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너, 이 쥐똥만 한 새끼야. 이 어르신한테 처맞아야 입을 다물래?”
다른 선수 하나가 듣다못해 시우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 말을 시작으로 다른 선수들도 서늘한 눈빛을 보내거나 끔찍한 욕설을 내뱉었다.
32강에 오른 자들은 하나같이 중국에서 이름을 알린 헌터나 무술가였다.
세계 100위권 랭킹 안에 드는 자도 더러 있을 정도였으니, 면면이 강자인 셈.
시우는 불난 집에 휘발유를 끼얹듯이 그들이 떠드는 말에 하나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때 진행자인 청도복이 다른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솔직히 말리고 싶지도 않았으나, 이 이상 시합에 지장이 있으면 욕을 먹는 건 그였기에 진정을 시킨 것.
‘흥, 시합에서 맞다 뒤져 버려라.’
청도복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우에게 다가갔다.
후드를 깊게 쓴 탓에 잘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훤히 보였다.
20대 초중반이나 됐을까 싶은 날카로운 인상.
“그래서 기권이라도 하겠다고? 아니면 바로 대성에게 쳐들어가기라도 하게?”
“내가 언제 하기 싫대? 방법을 바꾸자는 거지.”
“방법?”
청도복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토너먼트 시합에서 바꿀 규칙이 뭐가 있다고.
순간, 시우는 아주 멀리서 미약한 진동이 발생한 걸 느꼈다.
‘시작했군.’
그는 눌러 쓴 후드를 벗으며 히죽 웃었다.
“여기서 결승까지 한 번에 하는 거로.”
“···뭐??”
눈앞에서 시우의 형체가 사라졌다.
빠ㅡㅡㅡㅡ악!!
시우에게 쥐똥만 하다고 나무랐던 격투가의 머리통이 으깨졌다.
잠시 넋을 놓았던 서른 명의 선수들이 제각각 단전에서 마력을 끄집어냈다.
“이 망할 애송이가!!”
살기를 피워 올린 누군가가 시우에게 스킬을 구현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수십 자루의 언월도가 한 대상을 향해 다트처럼 내리꽂혔다.
콰드드드득!!
시우는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격을 피한 뒤, 단전을 열어 마력을 순환시켰다.
이제야 단전을 연 것은 다른 이들을 위한 나름의 핸디캡.
‘헌터 싸움에서 3초나 봐줬으면 다한 거지.’
단전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마력이 전신에 가득히 차올랐다.
전보다 정순해지고 원활해진 흐름이 구석구석에 뿌리내리며 곧 새파란 기운이 손끝에서 뻗어 나가더니 스킬로 구현되었다.
[Explosionspunkt(폭발점)]가느다란 한 점의 불꽃이 아래로 떨어지더니 이윽고 사위를 휩쓰는 충격이 되었다.
꽈아ㅡㅡㅡㅡㅡ앙!!
폭발에 휩쓸린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쓸 만한데.’
[폭발점] 스킬은 독일 헌터 필릭스의 것.프레에게 시켜 카피하도록 했는데, 실전에서 써먹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빌어먹을 놈이!!!”
다른 선수가 시우를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자동차만 한 철퇴가 생성되며 매섭게 시우에게 들이닥쳤다.
콰아아아아앙!!
분명 개구리처럼 짜부라져 죽었을 거라 믿었는데··· 충격파가 그친 곳에는 한 손바닥으로 철퇴를 막아 낸 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던질 테니까 받아.”
한쪽 어깨가 뒤로 젖혀지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철퇴가 날아들었다.
퍼ㅡㅡㅡ억!!
스킬을 시전했던 사람은 자신이 구현한 철퇴에 맞아 터져 죽었다.
남은 사람들도 합심해 시우에게 기술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제대로 명중되는 기술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서로 합도 맞춰 보지 않은 사이인 데다가, 서로의 스킬을 융화시키며 사용하는 게 아니었기에 더 힘든 상황.
시우는 매 순간 빗발치는 기술과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며 전황을 훑었다.
마력 감지로 파악한 ‘제법’ 괜찮은 놈들은 아직까지 덤비지 않고 있었다.
‘나름 머리는 돌아가는 놈들이네. 지금 끼어들어 봤자 공연히 기술만 뒤섞이지.’
시우는 어지러운 난항을 뚫고 상대에게로 발을 박찼다.
기척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홍다륀은 느닷없이 나타난 시우를 보고 흠칫했다.
홍다륀은 독의 장벽을 세워 상대의 접근을 막았다.
그의 ‘만독’은 스치기만 해도 사망하는 치명적인 맹독.
공격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독을 뚫고 들어오진 못할 터.
“하하하! 본인은 세계 82위인 홍다륀이라··· 크에엑!!”
독액을 꿰뚫고 들어온 전격의 창이 홍다륀의 몸통에 처박히더니 이내 싹 태워 버렸다.
“시간도 대충 끈 것 같으니, 애피타이저는 슬슬 끝내 볼까.”
이 정도 시간을 벌었으면 ‘저쪽’도 일을 해결했겠지.
시우는 안광을 번뜩였다.
***
“오늘 32강이 열리는 날이었지.”
샤오롱은 나른하고 끈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대성.”
“드디어 베팅 상한제가 올라가는군.”
128강과 64강까지는 배당률이나 금액이 높지 않았다.
본격적인 게임은 지금부터.
여기서 얻은 수입 중 일부는 상무위원들에게 전해지겠지만, 나머지는 조직의 힘을 늘리는 데 쓰일 터.
샤오롱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그러자 연조가 와서 그의 머리를 빗질하더니 뒤로 단정히 묶어 냈다.
“경기는 안 보십니까, 대성?”
“필요 없다. 경기를 관람하는 자들이 돈을 얼마나 걸었는지나 확인하면 된다.”
쿠구구구···.
그 순간 건물이 흔들거릴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다.
“무슨 일이냐?!”
샤오롱이 인상을 구기며 바깥에 소리쳤다.
몇 초 뒤, 사태를 파악한 수하들이 들어오며 각자 확인한 것들을 내뱉었다.
“큰일 났습니다! 현재 지상에서 침입자들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아니! 우선 경기장부터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뭔···.”
갑작스러운 흉보에 샤오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는 담뱃대를 바닥에 내던진 뒤 옷을 펄럭이며 문으로 향했다.
“나는 경기장으로 가겠다! 연조, 칭자오! 너희는 황도복들을 끌고 지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해라!”
“예, 대성!”
“예이이이이, 대성!”
샤오롱은 경기장으로 걸음을 바삐 옮겼다.
이제 막 쇼가 시작되려고 하는데 갑자기 웬 소란인지.
‘설마, 이게 바로 스승이 얘기하던 일인가. 뭔 짓거리를 저지르려고 하길래···!’
그는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섰다.
“ㅡㅡㅡ큭!”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짓씹었다.
모든 사물과 좌석, 경기장의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박살 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다 죽거나 치명상을 입은 채 나자빠져 있었다.
그 핏물 가득한 곳에서 샤오롱을 오연하게 쳐다보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네가 내려올래, 내가 끄집어 내려 줄까?”
시우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