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27
130화〉
샤오롱 3
20년 전, 한국.
루안은 쓰레기통을 뒤졌다.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 때문에 몸을 반쯤 넣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겨울이라 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정도?
전날에는 먹다 남은 햄버거를 발견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고, 오전에는 누가 먹다 버린 빵을 주웠다.
슈퍼 근처 쓰레기통은 이런 게 좋았다.
곰팡이가 핀 것들은 그 부분만 떼어 내 물로 씻어 내면 먹을 수 있다.
상한 고기는 뜨거운 물에 끓여 라면 스프를 넣으면 제법 먹을 만해졌다.
게다가 오늘은 빵 말고도 반쯤 남은 콜라와 짓무른 바나나도 주웠다.
운이 좋다면 외관은 멀쩡하지만, 유통 기한이 지나 버린 음식들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한참 쓰레기통을 뒤적이고 있는데 옆구리에 격한 통증이 일었다.
빠아악!
“커허억!”
루안은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위장에서 올라온 신물이 얼굴을 적셨다.
고개를 쳐든 곳에는 소주병을 든 50대 아저씨 하나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또 도둑질이네! 마! 여기는 내 구역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
“優屍(씨발), 거지끼리 네 물건 내 물건이 어딨어!”
“이 짱깨 새끼가! 너 방금 욕했지? 얼른 안 꺼져?!”
“王八羔子(개새끼)! 你妈个狗賊!(네 엄마는 개도둑이다)!”
“뭐라는 거야··· 꺼져!”
그는 소주병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루안에게 소리쳤다.
죄다 병신, 개자식 같으니라고.
“카악ㅡ 퉤에!”
루안은 바닥에 침을 뱉은 뒤 절뚝이며 걸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조심히 폈다.
발길질에 걷어차일 때 쓰레기통에서 무심코 뭔가를 쥐었던 것 같다.
손에는 작고 초라한 머리핀이 있었다.
“이씨··· 먹을 것도 아니잖아.”
루안은 머리핀을 내던지려다가 잠시 고민하더니 도로 손에 쥐었다.
그날 저녁.
“우와~ 오빠, 이게 뭐야?”
“보면 모르냐.”
“나 주려고 가져온 거야? 진짜?”
“시끄러워.”
난방도 되지 않는 반지하 단칸방.
벽지 가득한 새까만 곰팡이, 끊겨 버린 전기, 신문지로 막아 놓은 문틈.
가난을 공간화하면 이런 곳이 될까.
동생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머리핀을 꽂으려 했다.
하지만 워낙 짧은 머리 탓에 핀은 엉성하게 걸쳐졌다.
찬물에 머리 감는 게 너무 힘들어, 주워 온 가위로 듬성듬성하게 자른 머리카락.
“오빠! 나 이쁘지! 그치!”
루안은 여동생의 구김 없는 미소에 작게 끄떡거렸다.
추위에 튼 동생의 손이 창틈으로 들어온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쳤다.
“엄마는?”
“아빠 찾으러 갔다 온댔어.”
“······.”
루안은 차마 동생 앞에서 욕을 뱉지 못하고 속으로 삭였다.
작년 말, 다니던 술집이 문을 닫자, 루안의 엄마는 돈이라도 빌려야겠다며 아빠를 찾아 허구한 날 도박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전국구로 다니는 노름꾼을 어떻게 찾겠는가.
살림살이는 가족이라는 이름처럼 갈수록 휘청거렸다.
갓 지은 밥에서 찬밥으로.
다시 찬밥에서 쉰밥과 라면을 거치니 결국엔 쓰레기통이 되었다.
가난과 불행은 그렇게 곰팡이처럼 웃자랐다.
“오빠, 나 TV 보고 싶다.”
“난 안 보고 싶어.”
“우리 중국 살 때 봤던 영화, 여기도 있을까.”
“있겠지.”
“그 영화 보고 싶어. 오빠 그 주인공 아저씨 닮았어.”
동생은 손가락으로 머리핀을 꼬물거리며 매번 했던 얘기를 또 했다.
주인공은 개뿔, 내가 무슨.
“먼저 자.”
“오빠 또 나가?”
“자라고.”
“빨리 들어와야 해··· 무서워.”
“그냥 잠이나 자! 위험하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꼭 집에 있어! 누가 불러도 나가지 말고!”
“알았어···.”
빚 받으러 오는 빚쟁이들 때문에 웬만하면 동생은 집에 있게 했다.
이불과 옷으로 꽁꽁 싸매고 누운 동생을 뒤로하고, 루안은 집 밖으로 나섰다.
날이 찼다.
그는 동네 불량배들 모임 장소로 향했다.
“왔냐, 짱깨.”
무리의 우두머리 격인 18살 영호가 그를 반겼다.
“한동안 안 오더니 왔네.”
“돈이 필요해.”
이 모임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은 서너 달 전.
집에 아직 눅진 쌀과 쉰밥이 남아 있을 때였다.
알바를 하고 싶어도 아직 14살밖에 안 된 루안을 써 주는 곳은 없었다.
간혹 전단지를 뿌리는 게 수익의 전부.
그러다 보니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자연스레 소매치기나 아리랑치기 같은 걸 배우게 됐다.
“요즘은 건수가 별로 없긴 한데.”
“그냥··· 돈이면 돼. 뭐든지 할게.”
서너 달 전에 PC방에서 돈을 훔쳤고, 루안이 덤터기를 썼다.
다행히 그날은 풀려날 수 있었지만, 앞으로 또 잘못하면 외국인 교도소에 갈 수 있단 소릴 듣고 다시 모임을 나가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잘못되면··· 하나 남은 여동생은 어떻게 살라고.
“아, 윤구가 낮에 그런 소릴 하더라. 가게에 손님이 왔었는데 엄청 어린놈이더래. 그런데 지갑에 현금이 빵빵하다고 했었어.”
“혼자래?”
“그러니까 하자고 하지, 짱깨야.”
“알았어.”
그렇게 다섯 명이 된 무리는 ‘어린놈’을 찾기 위해 밤길을 나섰다.
동네 구석구석에 친구나 후배가 많은 영호 덕에 상대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 새끼는 왜 뒷산 공원에 혼자 있지? 멍하니 땅만 쳐다보는데.”
윤구가 영호에게 물었다.
“글쎄, 미친놈인가? 혼자인데 지금 하자, 얘들아.”
그들은 복면 비스무리한 걸 뒤집어쓰고 어린놈에게 다가갔다.
“야, 돈 있냐?”
영호가 전형적인 동네 양아치 말투로 물었다.
어린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가로등 아래, 놈의 날카롭고 차가운 얼굴이 드러났다.
“형들이 오락실 비용이 떨어져서 그런데, 돈 좀 빌리자.”
“꺼져.”
“뭐?’
“바쁘니까 꺼지라고, 병신 쓰레기들아.”
“허.”
영호를 비롯한 다른 형들이 품에서 작은 칼 같은 걸 꺼내기 시작했다.
“이 어린놈이 누구한테 욕이야? 칼빵 한번 맞을래?”
“영호햄 소년원 출신이다, 빙시야!”
그들은 상대를 둘러싸고 흉악한 목소리로 위협했다.
하지만 루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그들과는 조금 떨어져 멀찍이 섰다.
그건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뭔가 위험해 보였다.
“저 짱깨 새끼 겁먹었네. 네 몫은 없다, 인마!”
영호가 작은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휘둘렀다.
빡! 빠악! 빠아악!
정말 순식간이었다.
루안 또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소년이 영호에게 달려들더니 그의 얼굴을 순식간에 피떡으로 만들었다.
작은 산짐승 같았다.
다른 형들이 덤볐지만, 그들 역시도 같은 꼴을 당했다.
소년은 건조하고 서늘한 눈으로 루안을 쳐다봤다.
루안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년은 루안에게 다가오더니 쪼그려 앉아 그의 복면을 벗겼다.
“어린 새끼네.”
“···너, 너도 어리잖아.”
“어디서 반말이야.”
“너도 나한테 반말했잖아.”
“난 승자고 넌 패자니까. 승자는 반말해도 돼.”
“난··· 너한테 안 졌어.”
“해볼래?”
소년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루안은 두 팔을 얼굴을 가로막았다.
“병신.”
그는 루안의 뺨을 툭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때려?”
“너희들 때문에 일을 망쳤어.”
“무슨 일···?”
“내 쪽으로 유인시키고 있었는데, 다른 쪽으로 빠졌다.”
“뭐가?”
“뭐긴 뭐야, 몬스터지. 다른 사람들 죽으면 다 너희 탓이다. 난 몰라.”
소년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몬스터?
루안은 엉거주춤 일어나 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봤다.
그 순간,
꽈ㅡㅡㅡㅡㅡㅡㅡㅡㅡ아아아!!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도심에서 불어닥쳤다.
루안은 자리에 넘어져, 치솟는 불길과 연기를 보고 눈을 홉떴다.
자신이 살던 동네였다.
루안은 집으로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겨울 찬 공기에 폐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머리핀.
이상하게 그 망할 머리핀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뿌옇게 흐려진 눈으로 동생의 이름을 외쳤다.
괴물의 강격에 주변 집들마저 다 무너져 있었다.
루안은 폭삭 주저앉은 집을 발견하고는 미친 사람처럼 벽돌을 치워 냈다.
손톱이 빠지고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
“도··· 도와주세요···! 누가, 누가 좀···!”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세상이 계속 흐렸다.
끄윽, 끄윽 울어 대느라 호흡이 엉망이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덜그럭. 덜그럭.
망할 돌들은 치워도 치워도 사라지질 않았다.
고작 14살의 어린 애가 힘을 써 봤자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오빠가 돈 벌어서 TV 사 줄게.
따뜻한 물에 손도 씻게 해 줄게.
쓰레기 말고 진짜 맛있는 음식도 사 줄게.
“그러니까··· 흡, 그러니까··· 흐윽, 오빠가 미안해···.”
마지막 모습이 수백 번, 수천 번 머릿속에서 반복되며 그때마다 집처럼 무너졌다.
뒤늦게 각성자들과 소방대원들이 나타나 잔해를 치워 나갔다.
루안은 개구멍만 한 틈이 생기자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무너진 돌 틈을 파고들어 온몸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냉골보다 더한 한기가 반지하에서 느껴졌다.
한겨울의 추위와는 결이 다른, 사람의 혼을 얼리는 듯한 서늘함이었다.
그는 동생이 늘 자던 위치로 다가가 작은 돌들을 치워 냈다.
한참을 치워 내도 사람이 보이지 않자, 루안은 혹시 동생이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 큰 소리가 나서 나간 걸 거야. 이만큼 치워도 안 보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내 말을 안 들었어도 좋으니까··· 여기에 있지 마라, 제발.
돌을 치워 낸 아주 작은 공간.
더러운 이불에 돌돌 말려 있는 아주 작은 소녀가 보였다.
루안은 핏기가 아래로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 살려 주세요ㅡ!! 살려 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비틀거리며 반지하 창가에 대고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오···빠아···.”
그때 여동생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루안은 틈새로 외치다 말고 여동생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하반신엔 아주 커다란 돌이 놓여 있었다.
“나중에···.”
여동생은 혈색 없는 얼굴로 띄엄띄엄 말했다.
“우리 돈··· 많이 벌자···.”
루안은 여동생의 차갑고 거친 손을 붙잡았다.
얼음보다 더 시리고 딱딱했다.
“나 머리 잔뜩 길러서··· 오빠가 준 머리핀··· 꽂고··· 싶···.”
루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을 하고 싶은데, 목이 콱 막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오빠가 돈 많이 벌어다 줄게.
그깟 머리핀 열 개, 백 개도 더 사다 줄게.
그러니까··· 오빠랑 꼭 같이 있자.
루안은 가슴이 뻐근해지고 목에서 피 맛이 도는 걸 느꼈다.
“오빠, 나 추워···.”
동생의 말이 끊겼다.
“······.”
루안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세상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동생의 볼을 쓰다듬었다.
거칠거칠하다. 차갑다.
루안은 짐승 같은 울음을 질렀다.
***
그날, 달동네를 헤집었던 괴물은 근처에 있던 어린 각성자가 해치웠다고 한다.
루안은 그 각성자를 찾아갔다.
“제자로 받아 줘.”
“내가 왜?”
공원에서 봤던 소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괴물을 다 죽이고 싶어.”
“그래? 그럼 네가 알아서 죽여.”
“나는 거지에다 외국인이라서 배울 돈이 없어.”
루안은 쿵, 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네가 뒈지든 말든.”
“나 때문에··· 여동생이 죽었어.”
소년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루안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서 문득 자신과 자신의 동생이 떠올랐다.
‘씨발.’
“그러냐.”
“만약 받아 주면 평생··· 평생 존댓말 쓸게.”
“그거야 당연한 거지. 개소리를 그럴싸하게 하네.”
“그러면··· 네 개가 될게.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게. 나를 제자로 키워 줘. 아니, 키워 주세요.”
소년은 혀를 찼다.
이런 거 귀찮은데.
그는 잠시 무릎 꿇은 거지를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뭔데?”
“루···.”
루안은 이름을 말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 이름은 여동생의 무덤에 함께 묻었다.
같이 죽었어야 할 이름이다.
루안은 여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TV 속 영화배우 이름을 떠올렸다.
“저는 소룡(小龙)이라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