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정민준의 과거를 보여 주던 마나의 형상이 찢어질 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우는 다시 유리병 안으로 모여드는 마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VIP, 그보다 더 위라.”
【VIP가 뭐냐. 치킨 이름이냐?】
“손님이나 귀빈. 혹은 중요한 사람, 특별히 대해 줘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긴 한데.”
어디에 속했느냐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이 달라지겠지.
민준이가 연구소 말고 속해 있는 곳이 있나?
연구소에서 VIP를 지칭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시우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물론 정민준을 죽인 범인은 ‘VIP보다 더 위’에서 시킨 명령이라고 했다.
최종 명령권자는 ‘VIP보다 더 위’인 존재.
【손님? 귀빈? 중요한 사람? 그게 누구냐. 치킨 주는 사람이냐? 그런 거냐? 나한테는 중요한 사람이다.】
얜 뭐 기승전 치킨이야.
그런데 보통 VIP라고 하면 그놈이 제일 윗사람일 텐데.
VVIP··· 그런 게 따로 있는 조직인가.
됐다, 범인을 잡아서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시우는 마지막 찰나의 순간 보았던 범인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해 냈다.
저도 모를 살의가 속에서부터 회오리친다.
범죄자라면 분명 HMCS 데이터베이스에 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고.
【그런데 밖에 이상한 놈들이 있다.】
“······.”
시우는 프레의 말에 재빨리 마력을 펼쳐 영역을 넓혔다.
빛이 쏘아지듯 아주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그의 공간.
시우는 눈을 감고 마력에 감지되는 것들을 느꼈다.
“하.”
실소가 흘러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일곱 명의 각성자가 그를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마력을 운용한 상태.
단순 정탐이 아닌 목적과 의도가 분명하단 소리.
【뭐냐, 이것들은?】
프레는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위기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태도.
“글쎄.”
하지만 시우 역시도 귀찮단 어투인 건 마찬가지.
두둑.
그는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물어보면 알겠지.”
시우의 눈이 서늘한 빛을 내뿜었다.
***
[적광 길드]의 암행부.그곳의 조장을 맡은 류옌팡은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까지 와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트 이 개자식! 고작 한 놈을 죽이자고 암행부 일곱을 불러내다니. 길드장이 아끼는 자식만 아니었어도! 게다가 목표 대상은 저게 또 뭐야?’
두 번째로 기분이 더러운 이유는 목표 타깃 때문이다.
그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거트가 점찍은 대상을 멀찌감치서 관찰했다.
강한 헌터는 얼굴만 봐도 아는 법이다.
하지만 상대에게선 그 어떤 느낌이나 전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수 중의 하수.
‘거트 놈의 형을 죽였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순 운이었나 보군. 아니면 거트 형이라는 자가 하급 각성자였든지. 어쨌든 HMCS라는 딱지 외에는 별 볼 일 없는 놈이다.’
그럼에도 암행부 일곱을 부른 조치는 1조 단장인 거트의 분노에 기인한 것일 터.
‘목표를 쥐잡듯이 몰아서 고통스럽게 죽이려 하는 것이겠지. 고작 저딴 놈을 경계해서 일곱이나 부른 건 아닌 것 같고.’
류옌팡은 혀를 끌끌 찼다.
약해 빠진 적이 불쌍하게 느껴진 탓이다.
거트의 잔인한 성미로 미루어 짐작건대, 죽여달라고 빌기 전까지는 죽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류, 준비 다 끝났다. 명령만 내리면 돼.”
부조장이 다가오더니 조장인 류옌팡에게 보고했다.
“다 잠복했어?”
“연구소를 기준으로 둥글게 잠복했다. 각기 다른 입구로 들어가도록 대기 시켜놨어.”
“수고했어. 거트 단장에게 물어보고 실행하도록 하지.”
류옌팡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곧바로 거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다.
“예, 단장님. 안에 들어간 걸 확인했습니다.”
– 놈은 혼자인가?
“그렇습니다. 폐건물로 보이는 곳이고, 탐지 스킬을 사용해 본 결과 안에는 타깃 혼자만 있습니다.”
– 잡아 놓을 수 있겠나?
류옌팡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내뱉었다. 마나로 안광이 번뜩인다.
“우리를 부른 시점에서 답은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 알았다. 한국 헌터 협회 놈들을 따돌리고 가겠다.
무뚝뚝하지만 단호한 거트의 대답.
삑. 통화가 끊겼다.
종료음이 귀에 선명하다.
류옌팡은 고개를 들었다.
반달이 구름 너머로 설핏 고개를 내비친다.
하늘은 홍콩이든 한국이든 똑같군.
그는 복면을 조심스레 뒤집어썼다.
“거트 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적의 손발을 묶어놓는다.”
부조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1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준비가 갖춰진 것을 깨달은 류옌팡은 걸음을 옮겼다.
단전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그의 전신을 물들였다. 마나를 활용한 육체강화.
B+급 헌터의 강인한 신체에 마나가 덧대어지며 더욱 단단하고 파괴력 짙은 육체로 재탄생됐다.
그는 흘러넘치는 기운을 어서 발산하고픈 생각에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고대 역사 연구소’
낡아빠진 현판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입구.
류옌팡은 수신호로 다른 조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제히 각기 다른 방향으로 쳐들어가 포위하려는 속셈.
셋.
둘.
하나.
콰앙!
챙그랑!
동시에 일곱 방향에서 일곱 개의 형상이 솟구치듯 안으로 들이쳤다.
다행히 연구소 주위로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가능한 침입.
류옌팡은 당당하게 정문을 까부수고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허둥지둥 당황할 놈의 모습이 그려지는군. 바닥에 오줌이나 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조용히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요란한 방식으로 상대의 혼을 쏙 빼놓는 방법도 있다.
목적에 따라 다른 것인데, 이번 타깃은 암살이 아니라 기선제압 후 거트에게 양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류옌팡은 먼지가 피어오르는 어둠을 날카로운 눈으로 훑었다.
연구소 안은 오래된 탓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 돔으로 된 천장에서 투과된 달빛이 내부를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잔뜩 겁먹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놈을 상상한 류옌팡은 기분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덜덜 떠는 놈을 고스란히 거트에게 넘겨주는 방법도 있지만, 류옌팡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를 개고생시킨 값은 받아 내야지. 이깟 일에 한국까지 오게 했으니 말이야.’
정신이 무너지기 전까지 실컷 가지고 놀다가 거트가 올 때쯤 포션으로 상처를 대충 지혈하고 건네줄 것이다.
붙잡는 데 저항이 심해서 조금 혼을 냈다고 하면 거트도 뭐라 하지 못할 터.
‘게다가 거트도 죽이려고 놈을 원하는 건데. 우리가 손 좀 댔다고 해서 잔소리하진 않겠지.’
정문을 부수고 놈이 있는 곳까지 걷는 데 2~3초나 걸렸을까.
류옌팡은 잔뜩 득의양양한 얼굴로 놈을 마주하려 했다.
“······뭐야.”
하지만 그런 기대는 와장창 깨지고야 말았으니.
놈은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한쪽 팔로 턱까지 괸 채로.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류옌팡은 중얼거렸다.
튜토리얼 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애송이라더니, 사태 파악을 못 하는 것도 유분수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건방진 표정을 보려 한 게 아니었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말이다.
“야.”
그때 타깃이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기 대장이냐?”
류옌팡은 입술을 비틀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기분이 구리거든. 이대로면 다 죽일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러기도 귀찮아서 말이지. 옵션을 두 개 줄게. 죽을래, 꺼질래?”
놈은 한껏 가라앉은 눈매로 귀찮은 듯 물었다.
얼굴에는 특유의 권태가 가득했고, 표정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류옌팡은 알 수 있었다.
저 목소리엔 허풍도, 과장도, 거짓도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하는 경고.
고작 하급 각성자 따위가 말이다.
‘아가리 잘못 놀린 걸 후회하게 해 주마.’
류옌팡은 허리춤에 찬 단도를 몰래 매만지며 타깃의 주의를 끌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각성 한번 했다고 천지 분간 못 하고 입을 놀리는군. 두 가지 옵션이 다 마음에 안 드는데ㅡ 세 번째 옵션은 어떤가? 네놈의 혓바닥에 칼을 쑤셔 박는 옵션 말이야!”
그러고는 번개 같은 속도로 단도를 쏘아 던졌다.
퍽!
빈 의자에 처박히는 검.
“사라졌··· 스킬인가?”
조직원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럼 첫 번째 옵션을 선택한 거로 알지.”
순간적으로 들리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
퍼거걱!
조직원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생겨 버린 첫 사망자.
“젠장! 웨이신!! 네 뒤에 있다!”
류옌팡은 다급하게 외치며 스킬을 사용했다.
양손에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붉은 쇠사슬이 촤르륵ㅡ 소리와 함께 시우에게 솟구치며 발사됐다.
“이 개자식!”
웨이신은 [이형계]의 특성답게 온몸에 가시를 세웠다.
수백 개의 가시가 성게의 그것처럼 돋아나더니 시우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퍼버벅!
“커억···.”
하지만 시우는 다른 암살자의 몸을 방패 삼아 그 가시를 전부 막아 냈다.
가시를 실컷 처맞은 암살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축 늘어졌다.
“린웨이!!! 이 찢어 죽일 놈이!”
류옌팡은 순식간에 두 명이나 죽자 피가 거꾸로 뒤집혔다.
이런 전력 손실은 감히 예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쾅! 쾅! 쾅!
분노에 찬 쇠사슬이 연구소의 벽을 갉아먹으며 시우를 옭아맬 듯 뱀처럼 움직였다.
“내가 할게!”
다른 암살자가 스킬을 발동시켰다.
“[화염구]!”
거대한 불길이 입에서 화염 방사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모든 걸 녹여낼 듯한 열기가 시우를 향해 거침없이 타올랐다.
시우는 다른 공격을 피해 요리조리 몸을 피하다가, 화염을 보더니 자리에 우뚝 섰다.
“재밌네? 마력으로 뜨자 이거지?”
그리곤 손 하나를 내밀었다.
【저딴 하급 화염 마법에 지지 마라.】
손바닥 주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며 수십의 획이 서클을 가로지른다.
연이어 아홉 개의 문자가 새파란 빛으로 물들더니 서늘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아이스 스톰]”
쩌저저저저적!!
시우를 중심으로 맹렬한 냉기가 회오리쳤다.
그가 딛고 있던 바닥부터 책상, 의자, 기둥, 심지어는 속박하려던 사슬까지 순식간에 찬 서리가 끼며 얼어붙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스킬인 것이다.】
“저 새끼 마법사란 말 없었잖아?! 힐러라며!!”
류옌팡이 탐지형 헌터를 향해 쏘아붙이듯 물었다.
휘몰아치는 냉기에 얼굴 살갗이 찢겨나가는 기분이다.
“힐러 맞지. 지금은 냉찜질 시간이고.”
시우는 한쪽 입꼬리를 을리며 히죽 웃었다.
【식량아, 너 기뻐 보인다. 변태다.】
시우를 집어삼킬 것 같던 불길과 그의 빙결 마법이 중앙에서 맞부딪친다.
두 마법의 격돌로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오며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크으으윽!!”
화염 스킬을 쓰던 암살자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단전에서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다 썼다.
파즈즈즈즛!
‘말도 안 돼··· 빙결 마법은 절대 내 화염 마법을 이길 수가 없을 텐데?? 대체 이 자식은 뭐야!’
그는 마나가 바닥나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단전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마나가 텅 비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리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속도를 올릴까? 환자가 힘들어 보이는데.”
시우는 마력의 강도를 살짝 더 높였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량을 약간 더한 것뿐이다.
쩌저저저··· 쩌엉!
엄청난 냉기가 마법진에서 귀신의 숨결처럼 흐르며 주위 온도를 캄캄한 어둠과 같이 만들었다.
암살자들은 자신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살갗을 에는 한기에 덜덜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고,
파즈즈즈··· 쩌저저저적!
“크어어억, 어어, 허어억.”
점차 쪼그라드는 화염을 바라보던 암살자는 자신의 손과 입, 발가락이 서서히 얼어붙는 광경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 정도면 될까?”
시우는 마법을 거두고 사위를 일별했다.
살아남은 다섯의 암살자들은 시우를 향한 채 반쯤 얼어붙은 몸으로 달달 떨며 서 있었다.
“이제 한 사람당 질문을 딱 하나씩 할 거야.”
시우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화염술사를 향해 갔다.
“조직 이름은?”
“······.”
“시간 초과.”
퍼ㅡ엉!!
산산조각이 나는 머리.
사방으로 쏟아지는 파편.
얼어붙은 몸이 기우뚱하더니 쿵, 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시우는 다음 암살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슬푸른 안광이 어둠 속에서 달빛을 머금은 채 미소 짓고 있었다.
“으, 으지 므!!! 으지 믈르그!!”
입술이 얼어붙은 암살자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시우는,
씩ㅡ 입꼬리를 올리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퍼ㅡ어엉!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갈 줄 알았던 머리는,
“으··· 으? 드, 든증님!”
누군가의 마력으로 살아남았다.
“네가 내형을 죽인 놈이냐?”
입구에서 살기 어린 시선 하나가 거센 마력을 숨기지 않은 채 다가왔다.
“······”
시우는 자신의 공격을 처음으로 막은 상대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타오를 듯 붉은 머리가 달빛 아래서 선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