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46
149화〉
몽골
몽골 고비 구르반 사이칸.
척박한 대지에 우뚝 솟은 욜링암에는 사막과 어울리지 않게 선선한 계곡 바람이 불고 있었다.
뾰족히 솟은 산과 그사이에 자리한 얼음 계곡에는 정신을 서늘하게 만드는 차가운 물이 흐른다.
몽골 헌터 랭킹 1위인 을지바타르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래, 옳지, 옳지. 천천히 마셔라.”
그의 눈동자처럼 털이 새까만 말이 푸르릉 콧김을 내뱉으며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을지바타르는 조금 떨어진 옆에서 피로 얼룩진 손을 씻었다.
차디찬 물에 선홍색 물감이 풀어지듯 피가 씻겨 간다.
“족장님, 피곤해.”
협곡 아래에서 쉬던 기다란 머리카락의 여인이 칭얼거리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산사르.”
“배고파. 먹을 거 없어?”
“저 할 말만 하는 건 여전하군.”
을지바타르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서 몽골식 전통 육포인 보르츠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오, 예!”
“아껴 먹어라. 그게 오늘치 식량··· 아껴 먹으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건가?”
“므하고 해어?(뭐라고 했어?)”
산사르는 보르츠 한 조각을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되물었다.
“신께선 네게 재능을 주신 대가로 인성을 앗아간 모양이다.”
“음~ 맛있다. 더 없어?”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거냐.”
“음? 보르츠 더 있어?”
“신은 나를 버리셨군.”
“?”
을지바타르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산사르의 말을 데려와 자신의 말 옆에서 목을 축이게 했다.
“족장님, 게이트 안에는 안 들어가?”
“간투가 대통령이 밖으로 나온 괴물을 먼저 죽여 달라 했다. 안에는 다른 전사들이 들어갔으니 괜찮겠지.”
“하지만 S급 게이트인데.”
“···전사는 믿고 기다릴 뿐.”
그 안에는 을지바타르의 동생인 톨가도 있었다.
비록 배다른 동생이었으나, 그는 톨가를 친동생만큼이나 아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간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형제이자 가족이었다.
을지바타르는 자신의 임무를 다시 상기했다.
게이트에서 탈주한 몬스터를 잡고, 뒤이어 나올 몬스터들도 잡아 죽인다.
‘빌어먹을···.’
을지바타르는 산사르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을 떠올리며 울컥 올라오는 화를 삼켰다.
간투가 대통령은 S급 게이트 원정이 80% 확률로 실패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저 안에 들어간 일백이 넘는 헌터들이 전사(戰死)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을지바타르는 대통령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간투가 또한 헌터이자 초원의 용맹한 부족장 출신. 따라서 그가 얼마나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말했는지는 을지바타르도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역할만 충실히 한다. 저 내부의 일은 내부의 형제들에게 맡기자.’
그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로 세수하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족장님, 배고파.”
“···네가 내 몫까지 먹었다.”
“몬스터 고기나 먹어 볼까.”
“신께선 네 인성만이 아니라 인격도 가져가셨나 보군.”
“족장님, 오크 먹어 봤어?”
“역겨운 소리 하지 마라.”
그때 삐ㅡ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 한 마리가 창공에서 쏜살같이 내려왔다.
“왔구나, 타우.”
매가 을지바타르의 팔목에 찬 가죽 보호대에 앉아 그의 볼에 부리를 비볐다.
“음ㅡ. 그래? 그렇군. 알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산사르를 불렀다.
“말에 타라.”
“왜? 타우가 뭐라도 발견했어?”
“협곡 틈에서 이상한 놈을 발견했다는군.”
산사르는 귀찮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얌전히 말에 올랐다.
“가자, 이럇!”
을지바타르의 말이 먼저 발을 박찼고, 뒤이어 산사르의 말이 뒤따랐다.
두 마리의 말이 협곡을 가르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그렇게 몇십 분을 달렸을 무렵.
히히히힝!
별안간 말들이 울부짖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워 워. 진정해라.”
을지바타르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간다.”
“족장님, 잘 다녀와.”
“···너도 가는 거다, 산사르.”
“엑?! 나는 말 지켜야지.”
“무슨 일 생기면 말부터 버리고 도망갈 거잖나.”
“으음···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그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산사르의 옷깃을 잡아 번쩍 들었다.
“으아악! 내려놔!!”
“너는 전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족장님! 나는 여자거든!”
을지바타르는 그녀를 바닥에 툭 내려놓고 허리춤에서 신월도를 꺼내 들었다.
기다란 곡도가 협곡의 바람을 가르며 서늘한 자태를 뽐냈다.
“산사르, 너도 긴장해라. 놈은 S급 게이트에서 나온 괴물이다.”
“족장님만큼 괴물이겠어?”
산사르는 족장인 을지바타르의 강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전사는 방심하지 않는다.”
그는 차디찬 계곡물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흉악한 기세가 살갗을 저미는 것처럼 강하게 풍겨 왔다.
잠시 뒤.
협곡의 우회로 너머에 있는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치겠군···.”
을지바타르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의 거신, 키클롭스.
나름 부족에서는 장신 취급받는 을지바타르였으나, 키클롭스에 비하자면 절반의 크기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거신은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며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눈이 있던 자리가 문드러지고 이마에 돋아난 눈알이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족장님···. 나 집 화롯불을 안 끄고 나온 것 같아.”
“걱정할 거 없다. 네 집에는 할머니가 계시니까.”
“할머니 주무셔··· 나 돌아갈게.”
“저놈만 잡고 같이 가자.”
“젠장! 나처럼 연약한 여자한테 왜 그래?”
“···네가 몽골 헌터 랭킹 2위니까.”
산사르는 랭킹 테스트에 따라갔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이 씨, 그깟 아이락(몽골 전통주) 몇 잔에 정신을 놓는 게 아니었는데.’
그녀는 구시렁거리며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 들었다.
투박하게 생긴 활이지만, 몽골에서는 보물급에 속하는 아티팩트였다.
산사르는 엄지 마디 안에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족장님, 신호하면 바로 가.”
“평소처럼 하지.”
그녀의 화살촉에 새파란 마력이 폭포수처럼 모여들었다.
기운을 느낀 키클롭스가 몸을 돌려 상대를 찾기 시작했다.
피ㅡ잉!
송곳처럼 찌를 듯이 나아간 화살이 키클롭스의 외눈에 처박혔다.
– 끄아아아아아악!!
그 타이밍에 맞춰 을지바타르의 몸이 괴물을 향해 빠르게 들어갔고, 손에 들고 있던 신월도가 키클롭스의 양쪽 아킬레스건을 사정없이 잘라 냈다.
쿠우우웅!
괴물의 몸이 무너지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눈과 발을 쓰지 못하는 키클롭스는 이제 긴장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냥감이었다.
“흐으읍!!”
을지바타르가 놈의 목에 올라타 두 발을 겨드랑이에 끼워 균형을 맞추더니, 신월도를 목에 쑤셔 넣고 좌우로 돌렸다.
– 크르르륵··· 케엑···.
놈이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남은 상체마저 협곡 바닥으로 쓰러졌다.
“후우.”
“족장님! 성공이야!”
산사르는 자리에서 폴짝 뛰며 사냥이 끝난 것을 자축했다.
“코어는 어떻게 하지? 지금 여기서 꺼낼까?”
“그럴 시간 없다. 이제 게이트 앞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지.”
을지바타르는 손에 묻은 피를 바지춤에 대충 닦아 내더니 괴물의 몸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내 동생?』
순간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격이 실린 괴물의 음성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으랴아아앗!!”
을지바타르는 기합으로 놈의 기세를 떨쳐 내며 칼을 휘둘렀다.
터억.
그러나 그 공격은 너무도 쉽게 막히고 말았다.
눈앞의 상대는 산사르만큼이나 작고 왜소한 체격의 키클롭스였다.
하지만 놈에게서 솟구치는 마기와 살기는 방금 죽인 키클롭스를 아우르고도 남았다.
『네가 죽였? 내 동생?』
놈의 새까만 눈동자가 을지바타르를 똑바로 노려봤다.
찰나, 산사르의 무구가 불을 뿜으며 십여 발의 살이 놈에게로 쏘아졌다.
터더더더덕.
그러나 키클롭스는 몸에 박힌 화살에도 아무런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프. 너도 내 동생?』
그저 징그러운 눈알로 그녀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도망쳐라, 산사르!”
을지바타르의 격한 외침이 울림과 동시에 키클롭스의 주먹이 그의 배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퍼거어ㅡㅡㅡㅡ어억!
“족장님!!!”
산사르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를 불렀다.
“얼른··· 도망쳐!!”
을지바타르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지며 신월도가 비명을 질렀다.
『이걸로 죽였?』
놈의 물음 끝, 흉흉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신월도가 키클롭스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양단했다.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근육과 뼈마디가 끊어지는 느낌이 칼끝을 타고 손으로 전해졌다.
분명 유효한 공격이었다.
을지바타르는 자신의 애기(愛器)인 신월도로 수많은 괴물의 몸을 도륙해 왔다.
피륙을 베고 코어와 내장을 절단한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놈의 몸을 양단할 땐 기묘한 위화감이 하나 들었다.
‘피가 없다?!’
놈은 그 흔한 혈액 한 방울이 없었다.
뜯어진 찰흙이 서로 달라붙듯이, 키클롭스의 몸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괴물은 짙은 어둠 같은 눈을 을지바타르의 코 앞에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아프.』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눈에 들어온다.
“빌어먹을···.”
을지바타르는 저도 모를 탄식을 내뱉었다.
키클롭스의 주먹이 들어 올려지며 곧장 을지바타르의 심장께로 향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공격은 검으로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여기서 끝이군.’
상성이 좋지 않았다는 변명이 형제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
게이트에 들어간 이들의 귀환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지만, 을지바타르는 자신의 죽음을 의연히 맞이했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이 협곡을 뒤흔들었다.
쩌ㅡㅡㅡㅡㅡㅡ엉!!
키클롭스의 몸이 거대한 압력에 짓눌리며 지반을 부수고 바닥에 처박혔다.
“족장니이임!!”
도망치지 않은 산사르가 발을 박차고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산사르··· 네가 한 것인가?”
“미쳤어? 내가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다른 나라에 취업했지!”
그녀는 을지바타르의 새 스킬인 줄 알았기에 놀란 낯으로 대답했다.
타악.
그때 협곡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더니 그들 앞에 섰다.
“어?!”
산사르는 긴장한 얼굴로 곧바로 활에 시위를 걸었다.
“살려 준 보답치고는 너무 차가운데.”
【보답으로 술과 고기를 내놓는 것이다!】
어깨에 까만 털 뭉치 인형을 얹은 남자가 날카로운 눈매를 띠며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가 남자랑 굶은 짐승은 믿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산사르는 엄지손가락에 힘을 풀지 않은 채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나른하면서도 권태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훌륭하시네. 하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활을 겨누라고 가르치진 않으셨겠지. 몽골의 위대한 전사라면 더더욱.”
“그건··· 그렇··· 그런 말씀은 안 하셨···? 물어봐야 할 것 같은···.”
“산사르. 활을 내려라. 생명의 은인이시다.”
을지바타르가 그녀의 팔을 내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족장님? 그러다 위험해지면 어떡해.”
“괜찮을 거다. 전사로서의 감이···.”
“아니, 족장님 말고 나. 나 위험해지면 어떡하냐고? 두고 간다?”
그녀의 말에 을지바타르는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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