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53
156화〉
주인 2
을지바타르는 팔짱을 낀 채 자리에 굳건히 섰다.
시르케 밑에 있던 자들이 다가와 그에게 편히 있으라며 근처 카페나 식당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을지바타르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놀러 온 게 아니라 형님을 따라왔을 뿐입니다. 형님이 나오시기 전까지 여기 있도록 하겠습니다.”
“족장님! 나는 먹고 와도 될까?”
“···뭐라?”
“나는 여기 구경해 보고 싶은데. 고비 사막 아래에 지하 도시 있다고 하면 부족 사람들 누구도 안 믿을 거 아냐. 기념품이라도 사 가게.”
“···너도 여기 있어야 한다, 산사르.”
을지바타르는 떠나려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끌며 말했다.
“아, 왜! 여기 음식 먹어 보고 싶단 말이야!”
“정 먹고 싶다면 형님이 나올 때까진 기다려라.”
“음··· 형오빠님 몫까지 사 오려 했었는데. 나중에 같이 가자고 하면 가 줄까?”
“형님은 충분히 그러자고 하실 분이다.”
그 말에 산사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으음···.”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베네딕트가 부스스한 금발을 긁적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야?”
베네딕트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너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처잤어. 징글징글하다.”
“음··· 나 목이 너무 마른데, 혹시 코코아 없어?”
“있으면 내가 마셨겠지.”
“그런 건 없네. 물이라면 여기 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을지바타르가 물통을 건넸다.
“오··· 감사. 자네가 훨씬 더 착하군.”
“야. 대체 누구랑 비교한 거야? 나야? 나랑 족장님이랑 비교한 거야, 지금?”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
베네딕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 거야?”
물을 꿀꺽꿀꺽 마신 그는, 거리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분명 저녁에 아이락을 마신 것까진 기억나는데··· 뭔가 거대한 뱀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몽골리안 데쓰웜이 나타나서 형오빠님이랑 족장님이랑 내가 무찔렀어. 너는 잠만 퍼질러 자느라 모르겠지만.”
“산사르, 말은 똑바로 해야지. 형님 혼자서 하신 거다.”
“쉿 족장님, 눈치 챙겨?”
산사르가 검지를 세워 입에 대며 말했다.
“아··· 거대 뱀이 그거구나. 그런데 여기는 어디야? 인근 몽골 부족?”
“아니. 그 사막 아래 있는 지하 도시일세.”
“와···. 그런 게 있었어?”
“나도 처음 온 곳이라 잘 모르겠군.”
베네딕트는 헛웃음을 지었다.
비경에 숨은 도시가 있다는 ‘소문’은 몇 번 들어 본 적 있다.
그게 몽골의 고비 사막일 줄은 몰랐지만.
“음~~ 여기는··· 반마족이 만든 곳인가? 보아하니 마족이랑 인간의 시선을 피해 지은 공간 같은데.”
숙취에 절어 일어난 사람치고는 재빠른 상황 판단에 을지바타르가 놀란 눈빛을 했다.
“자네도 마력 감지 능력이 보통이 아니군.”
“보통이야, 보통. 으~ 머리야. 그런데 선생님들은 어디 가셨어?”
“이곳의 ‘주인’이라는 자에게 불려 가셨네. 형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주인이란 자를 보기 위해 오신 것 같더군.”
“오ㅡ 그러고 보니 소문에 그런 말이 있긴 했지.”
“무슨 소문 말인가?”
베네딕트는 턱을 쓰다듬으며 소문을 더듬더듬 떠올렸다.
“반마족의 왕이 엄청난 미녀라고 했던 것 같아.”
“설마··· 소문의 ‘그’ 말인가? 아니, 하지만 왕이지 않나. 왕이면 응당 전사일 터인데.”
“글쎄ㅡ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이따 선생님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
시우는 방 안을 둘러봤다.
낡은 나무 책상과 의자, 벽에 걸린 삐뚤빼뚤한 그림,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의 사진.
그 모든 것들이 시우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과 고스란히 같았다.
“하나도 안 변했네.”
“모두 주인님과의 추억이니까요.”
여인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더니 이내 못 참겠다는 듯 그를 꽉 껴안았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미안. 이런저런 할 일이 많이 있어서.”
시우는 그녀의 고운 백발을 쓰다듬었다.
예전부터 마음이 여린 녀석이었다.
나미르.
그녀는 시우가 아주 오래전 목숨을 구해 줬던 반마족이었다.
부모도 없는 처지였기에, 한동안은 시우가 옆에서 돌봐 주고 훈련까지 시켜 주며 살길을 마련해 줬었다.
시우는 나미르가 정착한 뒤에도 간간이 찾아와 그녀를 보살폈고, 덕분에 그녀는 시우를 가족 그 이상으로 여겼다.
주인님이라는 호칭도 그녀가 자처해서 부르게 된 것.
“절 보러 사막까지 오신 건가요?”
“그럼. 네가 여기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 내가 와야지.”
“S급 게이트 때문에 오신 건 아니고요?”
“그건··· 겸사겸사.”
시우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나미르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왜 또 삐졌어?”
“주인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늦어도 너무 늦지 않았어요?”
“어··· 한국에서 몽골이 생각보다 멀다?”
“네, 네. 중국이랑 미국이랑 독일은 가까워서 자주 다니셨나 봐요.”
“···다 알면서 말하는 건 반칙이지.”
시우는 멋쩍게 웃으며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오랜만에 만난 예속을 때리시면 기분이 좋으신가요?”
“때리다니. 내가 언제.”
“지금요. 아얏! 이 〈술트 오드〉에서 제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거 아세요? 주인님은 지금 큰 영광을 누리고 있는 거예요.”
“그것참 고맙다.”
【으아아앙···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꿀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때 시우의 안주머니에서 까만 솜털이 빼꼼 삐져나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어머, 이건 뭔가요?”
나미르는 껴안았던 팔을 풀어 한 발짝 떨어졌다.
“인형···? 애완동물···?”
“아니. 음식 쓰레기통이야.”
【흐이이잉··· 머리가 아픈 것이다···. 좁밥··· 해장라면 하나만 끓여다 주는 것이다···. 뜨끈한 콩나물해장국도 좋은 것이다···.】
비척비척 주머니에서 나온 프레는 시우의 머리 위에 올라가 쓰러지듯 누웠다.
“얼씨구?”
【으···. 라면 안 끓여 오면··· 여기서 토하는 것이다···.]
시우는 표정을 찡그리며 보이지도 않는 프레를 향해 쌍심지를 켰다.
“주인님, 제가 시종을 시켜 끓여 오라고 할게요.”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해 줘도 되는데.”
“아닙니다. 저는 주. 인. 님. 하고는 달라서, 아랫사람을 끔찍이 사랑하거든요.”
나미르는 ‘주인님’이라는 단어에 스타카토를 딱딱 찍으며 말했다.
잠시 뒤, 시르케를 통해 부탁한 라면이 오자 프레가 반색하며 테이블로 내려왔다.
【오아··· 라면인 것이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인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좁밥보다 훨 나은 사람이다···.】
“후훗. 맛있게 드세요.”
나미르는 조심스럽게 프레의 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인님,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러면 할 이야기가 조금 많은데.”
“괜찮아요. 이제 어디 안 가실 거잖아요.”
나미르는 시우가 앉은 의자 옆으로 쪼르르 가 앉더니 커다란 눈을 똘망똘망하게 떴다.
시우는 마왕과 싸웠던 순간부터 시작해서 이계에서의 생활과 돌아온 뒤 겪었던 일들을 핵심만 간추려서 설명했다.
처음엔 엷게 웃으며 이야기를 듣던 그녀의 얼굴이, 나중에는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루슬라나라는 조직원이랑, 오로바스라는 악마를 차례로 죽이고 나왔지.”
“발록에 이어서 악마 하나를 더 죽이신 거라고요? 주인님 혼자서요?”
“걔도 혼자인데 나도 혼자서 죽여야지.”
“무··· 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이라는 문장이 제대로 튀어나오지도 못했다.
나미르는 이야기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악마도 강하지 않나요? 어지간한 랭커 이상으로 알고 있는데요. 물론 주인님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시지만요.”
“글쎄. 기준을 정해 놓긴 어렵기 한데, 다만 주관적으로 봤을 땐 S급 게이트 보스 괴물보단 강하고 마왕보다는 약하더라.”
“그게 대체 무슨 기준이에요.”
누구도 공감 못 할 비유에 나미르는 미간을 찡그렸다.
시우가 말한 기준은 일반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별세상 얘기였다.
그 어느 누가 S급 게이트 보스와 악마, 그리고 마왕과 다 싸워 보고 기준값을 매길 수 있단 말인가.
“주인님은 예나 지금이나 이상하세요.”
“그래?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
물론 여러 사람에게 숱하게 들은 말이다. 시우가 귀찮다고 잊어버린 것뿐.
“주인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에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똑같지.”
“···마왕을 없애는 거요?”
“어.”
시우는 면발을 한 가닥씩 흡입하고 있는 프레를 보며 대답했다.
‘저 바늘구멍 같은 입으로 음식이 잘도 들어가네.’
자신의 부피보다 더 큰 음식을 먹는 생물이 있을 줄이야.
“그러시군요. 이번엔 저도 도와드릴게요.”
나미르의 결연한 말에 시우가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굳이 의무감에 날 도와줄 필요 없어.”
마족, 반마족, 인간의 관계에는 생각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반마족은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배척받고 있는 존재였고, 그 때문에 비경 아래 지하 도시를 만들어 저들끼리 몰래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마족에게는 버림받고, 인간에게는 박해받는 저주받은 종족.
“그때는 제가 힘이 없었어요. 지금은 달라요.”
“확실히···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강해진 것 같긴 한데.”
반마족은 마력뿐만이 아니라 마기도 활용할 수 있어 어떤 의미로는 가장 축복받은 신체 구조였다.
“후훗. 주인님 옆에 서려면 강한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많이 노력했죠.”
나미르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고맙다. 마음만 받도록 할게.”
“핏. 저 데리고 다니기 싫어서 그러신 건 아니고요?”
“내가 그럴 리 있나. 친동생처럼 여기는 넌데.”
【푸하ㅡ 맛있게 잘 먹은 것이다! 배가 부른 것이다!】
“술은 깼냐.”
프레는 날개를 파드닥거리며 주위를 날아다녔다.
“멀쩡해 보이네.”
“주인님은 제가 주인님 소식을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아세요?”
“추측은 하고 있지.”
“어머, 정말요? 어떻게요?”
“크로우 아냐?”
“정···답이요.”
반마족인 크로우를 처음 봤을 때, 시우는 그녀의 마력 활용법이 어딘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만남이 두세 번 반복되면서 크로우와 나미르가 연관이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IZIZ에 대한 시우의 처사가 관대한 것이기도 했고.
“걔가 어느 날 절 찾아와서는 그러더라고요. 언니가 찾던 사람을 본 것 같다고. 인상착의와 말투를 들으니 딱 주인님 그 자체였어요.”
“그러면 크로우 통해서 소식이라도 알려 주지 그랬어.”
“후훗. 아니요. 저는 이렇게 주인님과 직접 마주해서 말씀드리고 싶었는걸요.”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래, 덕분에 얼굴도 보고 좋네.”
“뭐예요, 그 말은. 벌써 가시려고요?”
“밖에서 기다리는 애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또 내가 여기 오래 있으면 다른 반마족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니까.”
“저는 신경 안 쓰는데.”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시르케가 들어왔다.
“뭡니까, 시르케.”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나미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대체 뭐죠?”
시르케는 시우의 눈치를 힐끔 살피더니 나미르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마, 마족이 지하 도시에 찾아왔습니다.”
나미르의 눈이 홉떠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