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57
160화〉
마족 3
” 타타르?”
나미르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족이 찾아오게 된다면 분명히 사쿤의 계약자인 히카탄이 올 것이라 여겼다.
자신의 수하가 둘이나 죽고 하나는 초주검이 되었으니 열이 받는 게 당연한 일.
그런데 상대는 분노하지도 않았고, 수백의 군세를 끌고 오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히카탄도 아니었다.
“킬킬킬. 반마족의 왕께서는 날 모르쇼? 하지만 이쪽의 핸썸 가이는 알고 있겠지.”
타타르가 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시우를 바라봤다.
“대체 어떤 후레자식이 이, 타타르와 계약한 인간을 죽였는지 너무너무너무너무 궁금했는데···.”
그는 새까만 손톱으로 볼을 톡톡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쌍판대기를 보니 훤칠하시구먼.”
“······.”
시우는 타타르와 옆에 있는 놈을 일별했다. 그리곤 곧장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똑같이 다리를 꼬았다.
그 태연자약하고 시건방진 태도에 마족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타타르는 재밌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인간은 또 오랜만이네.”
“나도 너 같은 마족 오랜만이야.”
“킬킬킬. 사쿤 새끼가 영 헛소리를 한 게 아니란 말이지. 안 그러냐?”
타타르가 자신의 경호원을 향해 히죽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경호원은 미동도 없이 시우를 죽일 듯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루슬라나가 신세 마~~이 졌시다. 덕분에 밤마다 침대 한편이 쓸쓸합디다. 응? 덕분에.”
“그거야 그 또라이 같은 년이 먼저 덤빈 탓 아냐? 그렇게 소중하면 침대 밖으로 나가질 못하게 하든가.”
타타르는 시우가 그렇게 되받아칠 줄은 몰랐던 탓에 헛웃음부터 흘렸다.
보통 인간들은 자신의 외모만 보고도 쫄기 마련이었다.
그냥 마족도 아닌, 제3계 마왕과 직접 계약한 권속을 보고도 눈깔을 사납게 뜬 인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존재했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캬ㅡ 흥미가 더럽게 치미는구만.”
타타르는 시우를 향해 마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냈다.
마트에 갔다가 새로운 장난감을 보고 자리에 붙박인 아이의 욕망처럼, 그의 시선도 소유욕에 잔뜩 물들어 있었다.
“야, 마족.”
“ㅡㅡ?”
“눈깔 안 치우면 손가락으로 파 버린다.”
시우의 살벌한 선전 포고에 타타르 옆에 서 있던 다른 마족이 마기를 흩뿌렸다.
응접실 위로 거친 마기와 너저분한 살기가 순식간에 휘몰아쳤다.
“감히ㅡ 열등한 종족이 누구한테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누구한테 놀리긴. 눈깔 똑바로 못 뜨는 새끼한테 놀린다.”
“찢어 죽여 개밥으로 던질ㅡ!!”
경호원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려는 찰나, 타타르의 팔이 올려지며 그를 막아섰다.
“킬킬킬, 이거 정말 재밌는 놈이군.”
“타타르 님. 허락해 주시면 제가 놈의 목을···.”
“입 다물어라, 야스이. 어른들끼리 얘기하잖아.”
“···죄송합니다.”
“이거, 미안하게 됐시다. 내 부하가 나를 워낙 좋아해서. 그러니 거, 그쪽 핸썸도 살기 좀 거두쇼. 싸우러 온 거 아니니까.”
타타르는 능글맞게 말하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마 0.5초 정도 차이나 됐으려나.’
만약 타타르가 말리지 않았다면 지금 바닥에 나뒹굴어 피를 토하고 있는 쪽은 야스이가 됐을 것이다.
그는 야스이가 마기를 내뿜고 달려드는 순간, 시우의 마력이 전신에 고루 퍼지며 스킬이 쏘아질 준비를 끝마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는, 하는 짓은 맹수네, 맹수여.’
타타르는 상대의 전광석화 같은 반응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싸우러 온 게 아니면 뭐죠? 이번엔 노예 계약서라도 들고 오신 건가요?”
시우의 뒤에서 얌전히 지켜보던 나미르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킬킬킬. 반마족의 왕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나 보네. 히카탄 그 얼간이와 사쿤의 개짓거리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사과하도록 할 테니, 함 봐주쇼. 참고로 그 새끼들이 한 짓은 마족끼리 논의된 게 아니라, 지들 독단이니 걱정들 말고.”
“그 말을 저더러 믿으란 말인가요?! 만약 그자들이 왔을 때 여기가 함락당했다면, 그때도 이렇게 사과로 무마하고 넘어가려 했어요?”
타타르는 입맛을 쩝 다시더니 검지와 중지를 펴서 흔들었다.
그러자 야스이가 품에서 궐련 하나를 꺼내 그의 손가락에 끼우고 담뱃불을 붙였다.
타타르는 뒤로 넘긴 은색 머리를 매만지며, 입으로 궐련의 필터를 물더니 느긋하게 들이켰다.
일반 담뱃잎이 아니라 마기가 가득한 곳에서 재배해 마족의 입맛에 맞춰 말아 파는 수제 궐련이었다.
그는 입에서 까맣고 눅진한 연기를 내뱉으며 나긋나긋한 어조로 대꾸했다.
“흠~ 이미 함락당했다면 다시 돌이킬 수 없겠지만은. 어쨌든 결과적으로 무사한 거 아뇨?”
“그건 말 그대로 결과론적인 대답 같은데요.”
“게다가 마족끼리 오손도손 노가리 까며 정한 문제도 아니고, 우리도 세세한 것까진 서로 알지도 못하고, 간섭하지도 않습니다. 인간들이랑은 달라서리.”
“하··· 마족은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군요.”
“킬킬킬. 거, 인간 세상에 이런 말이 있드만.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빨리 뒤진다고. 마족들은 우라지게 안 변합디다. 어쨌든 무사한 것 같으니 웃읍시다, 좀.”
나미르는 어금니가 부서질 것처럼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살심이 느껴지자, 마주한 타타르 경호원의 눈에서도 매서운 안광이 번뜩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처럼 주변 공기가 고조된다.
“알았으니 본론만 말하지.”
시우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먼저 말을 꺼냈다.
“보기보다 이성적인 친구로구만. 내 부하가 보고 배워야겠어. 안 그냐? 킬킬킬.”
“면목 없습니다.”
“자, 시간 너무 끌어서 미안하고, 우선 이번 일에 대해서 히카탄이 사죄의 뜻을 밝혔소. 덧붙여서 제2계 마왕님도 유감을 표명했고.”
“······.”
“그게 다인가요?”
타타르의 말이 더 이어지질 않자, 나미르가 어이없다는 낯빛으로 되물었다.
“뭐··· 시끄러워지는 게 싫은 건 반마족이나 우리나 피차 마찬가지 아뇨? 아니면 뭐 언론이라도 불러서 공식 기자 회견이라도 할까?”
나미르가 다시 대꾸하려 하자 시우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한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고작 사과하겠단 말을 전하러 높은 분이 이곳까지 왕래한 건가?”
“핸썸한 친구도 날이 스셨군. 자,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제3계 마왕님이 반마족과 손을 잡고 싶어 하십니다. 더럽게 좋은 제안이죠?”
“아, ‘손을 잡는다.’라고 쓰고, ‘노예로 부린다.’라고 읽으면 되는 건가?”
시우의 대꾸에 타타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 좋은 제안을 가져와도 그러시네. 대등한 관계, 이퀄! 모르쇼?”
“저는 거절합니다.”
“어··· 반마족의 왕께서 대답이 너무 빠르시네.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하지?”
“거절합니다.”
“에이, 니미럴. 왜 그렇게 결정이 빠르답니까?”
“조금 전 당신이 그랬잖아요.”
타타르는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봤다.
“‘마족들은 우라지게 안 변합디다···.’였나요.”
“······.”
“저는 그 변하지 않은 마족들이 제게 무슨 짓을 했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절대 잊지 않고, 제 뼛속 깊은 곳에 새겨 놨습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요?”
그녀는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과거의 사무쳤던 원한을 되씹었다.
놈들에게는 인성이나 인품이 없었다.
오로지 쾌락과 향락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이종(異種).
만일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들을 모조리 잡아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에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싶은 정도였다.
“이러언. 내가 지껄인 말에 내가 발목이 잡혀 버렸구만. 이거 더는 합의가 불가능하겠군. 킬킬킬 ”
타타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체념한 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반마족의 왕께선 앞으로 고립무원의 길을 걸으려 하시는 거요? 마족의 지원이 없으면 홀로 헤쳐 나가기 더럽게 어려울 텐데.”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와 걱정하는 척하지 마시지요.”
“어이쿠, 무서워라.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잘 처먹고 잘들 자시구려.”
“야.”
“?”
타타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시우의 음성이 그를 멈춰 세웠다.
“뭔가, 핸썸.”
“사과 말고 다른 건 없어?”
“허··· 그래서 협의문을 가져왔는데 반마족의 왕께서 거절하지 않으셨나.”
“그건 말 그대로 ‘협의’가 필요한 거고.”
“······?”
“너희들이 잘못했다며. 사과하러 왔으면 피해 보상금을 내야지.”
“뭐? 킬킬킬킬킬킬.”
예상치 못한 시우의 말에 타타르는 자신의 허벅지를 때려 가며 광소를 터뜨렸다.
세상 살다 살다, 마족에게 피해 보상금을 요구하는 인간은 처음 봤다.
보통은 목숨을 살려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데, 대체 이 인간은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가.
“이야~ 핸썸 가이! 갈수록 마음에 드는구만. 피해 보상금? 킬킬킬킬. 지금 당장 너희들의 목을 자르지 않은 게 피해 보상금인데, 대체 여기서 뭐를 더 원한다는 거지?”
“아, 그게 피해 보상금이었어?”
“마족에게 무언가를 얻고 싶으면, 말이 아니라 칼을 써야지, 이 양반아.”
“그럼 그러도록 하지.”
시우의 발뭉이 벼락처럼 휘둘러지며 야스이의 두 눈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크아아아아악!”
“ㅡㅡㅡ?!”
야스이가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 쥐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시우가 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주인의 잘못은 부하의 잘못이지.”
그리고는 마력을 실은 주먹으로 그의 얼굴과 복부를 눈 깜짝할 새에 수차례 가격했다.
뻐버버버ㅡㅡㅡㅡ억!!
“컥······.”
피떡이 된 야스이가 새까만 피를 울컥울컥 토하더니 바닥에 널브러졌다.
타타르는 미처 대응할 판단도, 마음도 먹지 못했다.
시우에게서 피어오르는 살기와 격이 그의 모든 움직임을 봉쇄했기 때문.
“자, 칼을 썼다.”
“뭐···?”
“말 대신에 칼을 써서 원하는 걸 얻으라며.”
“아···.”
타타르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는 그대로였으나, 전처럼 자연스럽게 웃지는 못하고 있었다.
“성깔 있네··· 대체 원하는 게 뭐길래 그러쇼···. 내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거면 해 드리지.”
“네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뭔지 알고 싶지 않아.”
시우는 타타르의 입에 물려 있던 궐련을 빼서 그의 미간에 비벼 껐다.
“크윽···.”
타타르는 인상을 일그러트렸지만,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잘 들어.”
시우가 놈의 관자놀이에 난 불을 잡더니 앞뒤로 살짝씩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3년 동안, 반마족의 둥지로 마계의 개미 새끼 하나 들어오지 않게 해라.”
“······.”
“만약 마족 하나라도 여기에 발끝이라도 들이밀면.”
시우의 손끝에 힘이 가해지더니 불의 끝자락을 천천히 비틀었다.
“크허어억! 자, 잠깐만! 진정 좀 하쇼, 씨발!”
“이거 뽑아다가 네 창자에 박아 넣을 줄 알아. 내 말 알아들었어?”
“크윽! 아, 알았으니까! 불 좀 놓고 말하라니까!”
시우는 불을 내던지듯이 놓았다.
타타르는 숨을 헐떡거리며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염병할··· 괜히 면상 한번 구경하자고 와서는··· 개같은 일을 떠맡았네.”
“루슬라나가 어떻게 뒤졌는지 알고 싶지 않으면, 약속 꼭 지키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3년이다.”
“알겠수다. 빌어먹을··· 난 이만 가 볼 테니, 어지간하면 다시 만나지 맙시다.”
그는 씨근거리며 야스이의 몸을 어깨에 들쳐 메고 저택을 떠났다.
“주인님, 그런데 왜 3년인가요?”
그들이 사라진 걸 확인한 나미르가 궁금하다는 듯 시우에게 물었다.
“그냥 최대치로 잡았어.”
“뭐를요?”
“마족을 궤멸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