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58
161화〉
던전
한태치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선 한참 동안 끙끙거렸다.
그가 있는 곳은 [광견 길드]의 메인 연구소.
연구원과 보조 연구원이 합쳐 120명이 넘는 이곳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연구소가 되었다.
연구 인원도 많았지만, 마정석 가공 공장의 수와 마정석 보유량도 어마어마했고, 거기다 운영권을 가진 시우가 금전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해 줬기에 그야말로 연구원들의 성지가 되어 버린 것.
처음엔 연구만 하면 될 줄 알았던 한태치는, 시우가 연구소를 관리 감독하는 소장직에 자신을 앉히자 S급 헌터가 되어 처음으로 책임감이란 걸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연구소 A동은 ‘원소 마법 회로의 마기 감응률’을 진행하고 있고··· B동은 ‘마기 입자의 분해와 재구축을 활용한 응용 마법’을 연구하고 있고··· C동은··· 몬스터 핵(코어)의 추적과 파괴를···.”
그는 올라온 보고서를 줄줄 읽어 내리다 한숨을 내쉬고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평생 골방에 앉아 연구만 하고 살면 행복할 것이라 여겼다.
세상일이야 어차피 알아서 돌아갈 테고, 게이트는 능력 있는 헌터들이 해결해 줄 테니.
자신 같은 사람은 안에 틀어박혀 논문이나 읽고 아이템이나 개발하면 모든 게 완벽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 같은 사람을 필요로 했고 무엇보다 시우를 만나면서 생각의 큰 틀이 변해 버렸다.
‘게이트 들어가서 직접 실험하고 싶어.’
설마 마법 이론물리학자인 자신이, 개발한 아이템을 들고 몬스터를 상대로 실험하는 걸 즐기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그런 세상이 자신에게 펼쳐질 것이란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한번 맛을 보고 나니, 그때의 짜릿한 감각이 떠올라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고역이 됐다.
물론 한태치 정도의 급과 위치면 루안이나 적귀에게 부탁해 게이트에 따라 들어가 실험을 할 수도 있었지만, 시우가 없는 상태에서 하려니 선뜻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끄응··· 어떡하지. 무리해서라도 다녀와야 하나. 아니면 사장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뭘 기다려.”
“사장님이랑 같이 들어가야 책임 소재도 명확해지고, 또 아이템에 대해 원활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대답하던 한태치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앞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시우가 떡하니 서 있었다.
“책임 소재?”
“사, 사장님!! 오셨습니까! [광견 길드]의 연구소장 한태치, 사장님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얼간이가 나에 대한 인사는 없는 것이다!】
“앗. 프레 부사장님도 안녕하십니까.”
【에헴! 오냐, 그런 것이다!】
“너, 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더니.”
【흥! 나한테 말 걸지 않는 것이다!】
프레는 한태치를 향해서만 거만한 미소를 보이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사실 프레는 시우에게 삐친 상태였다.
타타르와 야스이가 〈술트 오드〉에 왔을 당시, 프레의 정체가 드러날까 싶어 시우가 프레의 기운을 막아 나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덕분에 프레는 놈들을 직접 심판하지 못했다며 돌아오는 내내 시우에게 말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야, 거기서 네 존재가 드러나면 놈들이 어떻게 할 것 같아? 널 보호한 거라니까.”
【변명인 것이다! 거기서 다 죽이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거기서 다 죽이면 반마족을 위한 협정 상대가 사라지잖아. 넌 너한테 아이락이랑 고기를 줬던 사람들을 배신하겠단 소리야?”
【그, 그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는 놈들에게 원한이 있는···.】
“그래. 어른이라면 거기서 자신의 감정보다는 팀의 상황을 우선시할 줄도 알겠지.”
【그럼 나, 나는 잘한 것···인가?】
시우는 물끄러미 프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설핏 끄덕였다.
“잘한 거지. 반마족을 위해 힘든 시간 동안 갇혀 있었던 거니까.”
【그렇구나! 프레는 잘한 것이다! 나는 리더로서 행동한 것이다!】
“그래. 우리 프레가 진짜 리더지. 나는 사실 리더 보조거든.”
【오, 내가 바로 리더인 것이다~ 하핫! 나를 찬양하라! 외쳐라, 갓리더!】
프레의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처럼 보이자 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조그마한 놈은 한 번 삐지면 무지하게 오래 갈 때가 있었다.
이계에 있을 때 가장 오래 삐졌을 때는, 한 3년 정도 얼굴을 쳐다보지 않기도 했다.
‘애 키우기 힘들구만.’
시우는 혀를 쯧쯧 차며 한태치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들어 하나씩 검토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시우가 대충 훌훌 넘기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태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우의 남다른 마법 지식과 이해도, 마력 운용력, 마법 회로에 대한 통찰력은 어지간한 마법 물리학자보다 나았던 것이다.
“흐음··· 음··· 그렇군. 전격 회로의 방사를 담당하는 획과 기호를 고쳐, 마기에 반응하는 회로와 어우러지게 했네. 좋은 시도야. 하지만 여기서는 이 문자보다는, 이 도형과 획을 넣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시우는 중얼거리며 문서를 읽어 나가더니, 연필을 들어 수정해야 할 부분을 하나하나 체크해 옆에 따로 적어 두었다.
시우가 확인한 문서를 책상에 한 장씩 내려놓을 때마다, 한태치가 잽싸게 문서를 확인했다.
“헐··· 사장님은 혹시 천재가 아니십니까?”
그는 놀랍다 못해 경악에 물든 눈빛으로 문서를 읽어 나갔다.
이렇게 눈으로 대강 읽으며 오류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이 보고서는 녹록지 않았다.
한태치도 문서를 점검할 때 거대한 홀로그램을 띄워 다른 비교군과 대치하며 하나씩 체크하는 상황이었는데.
시우는 그걸 눈대중으로만 보면서 오류를 짚어 내고, 나아가서는 더 효율적인 회로로 고쳐 나가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태어나서 천재 소리를 한 번씩 듣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론 나사가 하나씩 빠진 사람들이었고, 한태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보기에 진짜 천재는 시우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사장님···! 연구 부서로 보직을 겸해 보심이 어떠하십니까?”
“뭐? 싫어.”
“대체 왜 싫으십니까?!”
“앉아 있는 거 싫거든.”
시우는 문서를 다 내려놓고선 기지개를 쭉 폈다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야, 한태치.”
“네?”
“실험이나 하러 가자.”
“ㅡㅡ!!”
한태치는 책상을 탕, 치며 일어나더니 짐 가방을 가지러 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
그건 몽골에서 돌아오는 길에 받은 연락이었다.
S급 게이트와 더불어 수많은 게이트가 발생했던 동아시아는 급한 불을 끄고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어마어마한 자본을 들여 외국계 헌터를 섭외해 게이트를 막은 국가도 있었고, 자국의 내로라하는 헌터를 집결시켜 숫자로 막아 낸 국가도 있었다.
특히 피해가 컸던 것은 러시아.
이번 게이트 사태로 자국 랭킹 3위인 라브르가 죽고, 2위인 알렉산드로가 중상을 입었다.
다급한 나머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스틸 테인’에 의뢰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러시아 재정이 휘청이고 있다는 소식이 파다했다.
이런 소식을 대강 전한 최대수는, 몽골에서 있었던 시우의 일을 역으로 듣더니 기도 안 찬다는 듯 대꾸했다.
– 네 녀석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나.
– 그게 무슨 소리야.
– 어떻게 하면 세상이 시끄러워질 수 있는지 테스트라도 하고 있는 것 같군.
– 정보 공유를 해 주길래 나도 알려 줬을 뿐이니까 닥쳐.
– 큭큭. 그나저나 반마족의 왕이 너랑 접점이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앞으로 반마족들과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겠군.
최대수는 몇 가지 생각을 덧붙이더니 한 가지 소식을 더 전했다.
– 경기도 연천에 새 던전이 발견됐다. 입찰 공고를 내릴까 했는데, 다른 곳들은 현재 던전을 새로 파악할 여력이 없다더군.
– 그래? 그럼 우리 줘. 내가 직접 들어가지.
최대수가 알아서 하라고 대꾸하자, 시우는 직접 인원을 추려 던전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
연천의 던전 앞.
“스승님, 저희 왔어요!”
강여화가 활짝 웃으며 시온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일찍 왔네?”
“아밍은 숙제가 많다고 해서 못 왔어요.”
“오랜만, 오빠.”
시온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시우의 품에 폭 안겼다.
시우는 싱긋 웃으며 시온의 등을 토닥였다.
“형, 차 안에서 어색해 죽는 줄 알았어.”
운전석에서 내린 민시준이 다가오더니 시우에게 귓속말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저들이 차를 타고 온 멤버 구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민시준, 강여화, 시온, 그리고 루안.
조수석에서 내린 루안의 표정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그래, 너도 잘 지냈냐.”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는 강여화를 흘깃 쳐다봤다.
“야! 날 왜 쳐다봐!”
“스승님. 아무래도 제자들끼리 서열 정리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씨구? 왜? 또 납치해서 두들겨 패려고?”
“눈매 더러워, 치렁치렁 오빠.”
시온이 루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너, 눈 착하게 뜨라고 했지? 정말 쌍수시킨다?”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루안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용히 구석으로 갔다.
“오~~~ 오랜만이에요! 여러분들의 스타, 베네딕트가 왔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루안 님!”
그때 던전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온 베네딕트와 한태치가 일행에게 다가오며 인사했다.
“헐··· 스승님, 저 사람 또 따라왔어요?”
“번쩍번쩍 오빠.”
강여화가 정말 놀란 눈초리로 물었다.
【이 몸의 애제자이니라 이제 평생 내 옆을 보좌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네.”
“그럼 독일은 누가 지켜요?”
“한스 슈뢰더가 전선에 복귀했나 봐. 라일라가 그러더라고.”
한때는 독일 최강이라 불렸던 한스의 복귀는 독일 국민에게 또 다른 희망과 기쁨이 되는 중이었다.
라일라와 롤프의 기쁨은 덤이었고.
“한태치, 준비 다 했지?”
“예, 사장님! 언제든지 오케이입니다!”
“이제 들어가자.”
시우는 가장 먼저 앞장서서 걸었다.
던전의 입구는 게이트와는 달리 고대 유적을 방불케 했다.
양옆에 세워진 커다란 조각상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널따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이라고 하기엔 밝고, 건물이라 하기엔 습하고 어슴푸레한 장소.
하지만 그건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상하좌우에 새겨진 수많은 부조와 그림은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문명의 것과도 닮아 있지 않았지만, 이 공간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님을 밝혀 주고 있었다.
“대선생님! 여긴 아주 으스스한 곳이군요!”
【그렇다, 애제자야! 으스스하니 살기에 아주 딱인 곳이다!】
“프레. 너희 ‘종족’과 관련된 유적은 아니야?”
시우의 질문에 프레는 몸을 절레절레 저었다.
【나도 처음 보는 것들이다. 이건 다른 차원의 유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 다른 차원이라쇼?”
한태치가 학자로서의 눈을 반짝이며 프레의 말에 질문을 던졌다.
“한태치.”
“예, 사장님!”
“얘기하면 너무 기니까 다음에 알려 주도록 하지.”
“어··· 알겠습니다.”
한태치는 너무나 궁금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시우가 제지하자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마기 반응은 어때?”
“아까부터 확인했는데 일정합니다. 전체적으로 다 높은 것 같습니다.”
“이 던전 자체가 아공간 같은 곳인가.”
시우가 턱을 손으로 만지며 사방을 둘러봤다.
“사장님 여기 조각상에 무슨 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태치의 말에 일행이 모여들었다.
“아니, 이거 어디서 봤었는데.”
문자를 보던 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곱씹었다.
조금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이 문자 이계에서 비슷하게 쓰는 종족이 있었다.】
“그래? 너 읽을 수 있어?”
시우의 물음에 프레가 볼록한 배를 내밀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뭐라고 적혀 있냐.”
【음··· 이렇게 적혀 있다. ‘여기 들어온 놈들 다 뒤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