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63
166화〉
카타콤3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물에게 시선을 던졌다.
달빛을 받아 더욱 희고 고운 백발.
뚜렷한 이목구비와 새하얀 피부.
“흐하하! 이게 대체 누구야! 카이세 형님, 우리가 반마족의 왕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라반은 상대의 역량이 기대 이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차갑게 벼린 눈빛을 받아 냈을 뿐이거늘.
거기서 느껴지는 살심과 증오, 잘 눌러 담은 기세에서 나오는 강자의 체취까진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
“이런~ 안녕하신가요, 반마족의 왕이시여. 저희는 〈판데모니엄〉에 적을 두고 있는 제4위계 조직원들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침입자들의 인사는 필요 없어요. 이곳은 제 영역입니다. 지금 즉시 사막에서 나가세요.”
나미르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어조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반마족들은 폐쇄적인 집단이었고 누구도 믿지 않는 무리였다.
따라서 그들은 영역이 침범당하거나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에 무척이나 민감했다.
우연히 사막을 횡단하는 무리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들어오는 자들에겐 더더욱 말이다.
나미르는 주변을 일별했다.
다 죽어 가는 을지바타르와 산사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왕이시여~ 저희와 대화를 조금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카이세가 실눈을 가늘게 뜨며 능청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당신들은 우리의 영역에서, 우리의 손님을 공격했습니다.”
“아하~ 이자들이 왕의 손님이었나 봅니다. 저희도 이 친구들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볼일이란 게 목숨을 앗아가는 건가요?”
“뭐~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낼 때까지는 죽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카이세는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그렇군요.”
그 광기 서린 대답에 나미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내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보죠.”
“무엇입니까, 왕이시여.”
“반마족의 구역은 3계 마왕의 권속인 타타르와의 약속에 따라 3년간 불가침 조약을 약속받았습니다. 이걸 알고도 여기서 행패를 부리시는 건가요?”
“······으음.”
카이세는 머리를 긁적였다.
〈판데모니엄〉의 조직은 기본적으로 마족과 마왕을 숭상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들의 명령을 어긴다거나 무시한다는 것은 〈판데모니엄〉 위계를 흔드는 짓이나 마찬가지.
“그게~ 타타르 님의 약조는 〈술트 오드〉에 대한 침범을 3년간 안 하겠다는 것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술트 오드〉는 반마족의 지하도시인데, 여기는 지상의 사막 아닙니까? 몽골 정부의 영토라 생각됩니다만.”
“그 몽골 정부의 허락으로 ‘고비 사막’의 치안은 제가 맡기로 했어요. 아셨으면 이제는 나가 주시죠.”
“곤란하네~.”
그녀의 말에 카이세는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닫았다.
고위 마족의 이름까지 거론된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희와~ 거래하시면 3년이 아니라 5년 정도는 침입을 막아 드릴 수도 있는데요.”
“거래라는 게 무엇이죠?”
“민시우~ 라는 자의 정보입니다. 그자에 관한 약점이든 뭐든, 필요한 정보를 주시면 2년을 늘려 드리죠.”
“후후.”
그녀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최대한 좋게 풀어 내려 했건만.
나미르는 빙긋 웃으며 카이세를 바라봤다.
“그 민시우라는 사람과 제가 어떤 관계인지는 아시는 건가요?”
“글쎄요~ 애석하게도 모릅니다. 타타르 님이 워낙 과묵하셔서.”
“그런가요?”
일순간 나미르의 신형이 사라졌다.
“형니이이임!!”
라반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가더니 카이세의 전방을 가로막았다.
분명 반마족의 왕과는 거리가 한참 있었다.
못해도 2~3초는 걸릴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나미르의 속도는 음속만큼이나 빨랐다.
“크윽ㅡ!!”
순식간에 들이닥친 그녀가 허리춤에 찼던 무기를 휘둘렀다.
‘메이스?!’
라반은 도끼를 옆면으로 들어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콰가ㅡㅡㅡㅡㅡㅡ앙!!
어지간한 강격은 다 받아 낼 수 있는 초합금 아이템일진대, 도끼는 나미르의 메이스 한 방에 가루가 되었다.
“어, 어어어!! 잠까아안!”
라반을 향해 메이스가 재차 휘둘러진다.
그는 무구 너머에서 쏘아지는 나미르의 안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단순한 울분을 넘어선 격정의 진노.
라반의 머리 위로 메이스가 떨어지려는 찰나, 아루무의 채찍이 그의 팔뚝을 휘감고 끌어당겼다.
빠가아ㅡㅡㅡㅡ악!!
“끄아아아아악!”
머리로 떨어지는 것은 피했지만, 일격 자체는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
왼쪽 어깨가 짐승에게 물린 것처럼 한 움큼 파여 있었다.
라반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칠 듯한 격통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아루무가 다가와선 그의 상처를 확인하며 물었다.
“이봐, 괜찮아?”
“끄으으윽··· 죽여, 죽여 버리겠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테다···.”
라반은 눈알을 번들거리며 짓씹듯이 내뱉었다.
“호~ 이건 신기한 공격이군요.”
그때 카이세가 라반의 상처를 보며 진귀한 걸 목격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끔찍한 부상이 생겼지만, 상처에서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있던 것.
“석화~ 스킬이군요.”
카이세는 어깨에 생긴 부상 자리를 관찰했다.
메이스가 스친 자리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형님, 말리지 마십쇼! 저년을 찢어 죽여야 속이 풀릴 것 같습니다!”
“이런~ 진정하세요, 라반 씨. 저분은 타타르 님과의 계약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으니까요.”
“씨바알! 알 바 아니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어깨 한 짝이라도···!”
“야.”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섬찟한 카이세의 목소리에 라반과 아루무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명령을 또 무시하려는 거야···? 상위 마족의 명령인데···?”
날카롭게 뜨인 카이세의 눈에서 광기가 아른거렸다.
라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이마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 아닙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마지막이야···.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때는 죽인다···?”
“아,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식겁한 라반이 덜덜 떨며 모래에 머리를 처박았다.
카이세는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저런~ 라반 씨. 제가 흥분했나 봐요. 너무 그렇게 떨지 마세요. 우리는 동료지 않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요~ 알면 됐어요.”
카이세는 싱긋 웃고는 나미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우리가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타타르 님의 명령도 있고, 반마족의 왕과는 척지고 싶지 않으니까요.”
“카이세, 이대로 돌아간다고?”
“네~ 아루무 씨. 어차피 반마족의 왕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잖아요. 정보를 알려 줄 것 같지도 않고.”
나미르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카이세를 노려봤다.
“그럼~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3년 뒤에 만나서 천천히 대화하도록 하죠.”
카이세는 소름 끼치도록 음산한 미소를 짓더니 아루무와 라반을 끌고 사라졌다.
‘저 카이세라는 자, 강하다···.’
나미르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가 그들의 기운이 사라진 뒤에야 기세를 거두었다.
“나, 나미르 님···.”
“을지바타르 씨, 괜찮으신가요?”
“저는 괘, 괜찮습니다··· 산사르를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인님께서 만들어 주고 가신 포션이 있으니, 시르케에게 가져오라고 이르겠습니다.”
나미르는 그를 안심시킨 뒤 산사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온통 시우의 정보를 캐러 온 놈들에게서 떠나지 못했다.
‘주인님··· 조심하세요.’
***
시우는 막다른 길목의 벽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건너편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아무래도 여기가 끝인가.”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벽에 이음새가 나 있는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시우 일행은 리치를 격파한 뒤로도 한참을 더 걸어 들어왔다.
다행스럽게도 몬스터나 함정은 더 존재하지 않았다.
“한태치, 마기 농도는 어때?”
“네, 사장님 반응이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말씀대로 여기가 끝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상한데.”
시우가 느끼기에 리치는 뭔가를 지키면서 싸운 티가 났다.
그것이 소중한 보물이든 왕의 무덤이든 종족의 비보이든 간에, 군단이 지키고 있던 것이 분명 있을 터인데.
“여기는 빈방이잖아. 하다못해 작은 관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아?”
“맞아요, 스승님. 던전을 여러 번 다녀 봤지만, 여기처럼 소득 없는 곳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아이템 하나가 없을 수 있죠.”
사실 리치의 왕관이나 지팡이는 충분히 아티팩트에 가까운 아이템이었지만, 자폭하는 바람에 가루조차 남지 않았다.
“누나. 우리 예전에 같이 갔던 던전은 이거보다 더 심했잖아. 진해에 있던 던전이었나?”
“야, 거기는 말도 꺼내지 마. 그게 던전이냐, 쓰레기통이지.”
“대선생님~! 여기 벽면에 색다른 그림이 있습니다!”
시온을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하던 베네딕트가 흥미로운 벽화를 발견하더니 소리쳤다.
시우와 한태치가 그가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오··· 사장님, 이 벽화는 이전과는 다른 내용 같네요.”
“그러게. 전쟁을 묘사한 것 같은데.”
다양한 종족이 섞여 있는 집단과 뿔이 달린 집단 간의 전투.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벽화의 내용은 뿔이 달린 집단의 우세로 변했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이 던전의 안쪽으로 피해 숨었다는 내용인가.”
눈물을 흘리며 벽을 막아 세우는 왕의 모습을 끝으로 벽화의 내용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거 너희 종족은 아니지?”
【우리 종족은 이렇게 생기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널리고 널린 것이다.】
프레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그런 것도 모르냐.’는 눈빛으로 시우를 쳐다봤다.
“소선생님~ 그런데 이 왕은 누구일까요? 아까 그 리치가 이 왕인 걸까요?”
“아니, 리치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그림에 보니까 왕 말고 제사장 같은 자도 따로 있더라고.”
“어? 정말이네? 그럼 리치 말고 왕의 방도··· 이 던전에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림을 유추해 보자면, 그렇지.”
하지만 저 방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막아 놓은 것인지, 아니면 숨은 길이 따로 있는 것인지.
“대선생님! 저 방으로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혹시 방으로 가는 길을 알고 계십니까?”
【어···? 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르는 게 없는 것이다!】
“역시! 그렇다면 저희를 안내해 주십시오! 밖으로 나가는 대로 맛있는 고기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 그건··· 어··· 주, 주문을 외우면 되는 것이다!】
“얼씨구.”
시우가 옆에서 피식 웃으며 쳐다봤다.
【왜, 왜 비웃는 것이냐?】
“외워 봐, 주문.”
【···지, 지금 말이냐?】
“지금 방을 열어야 던전 후딱 둘러보고 나가서 고기를 먹지 않겠냐.”
【배가 그리 안 고픈 것···이다.】
“소선생님! 우리 대선생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대선생님, 이 불초 제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네딕트가 눈을 반짝거리며 프레를 응시했다.
【그··· 아, 알겠는 것이다···.】
프레는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벽면에 다가갔다.
도와 달라는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봤지만, 시우는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린 채 프레를 지켜봤다.
【어··· 여, 열리는 것이다!!】
정적이 일었다.
“풋. 끝났냐?”
시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제 여, 열리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 어?】
드드드드드득.
프레가 벽면을 날개로 탁탁 치며 말하는 순간, 벽화가 그려져 있던 벽면이 열리며 사람들이 굴러떨어졌다.
“······??”
【내, 내가 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