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67
170화〉
비밀의 공간4
뻐근한 감각이 마나 맥을 타고 돈다.
얼음장 같은 수액을 혈관에 굵은 주삿바늘로 꽂아 놓은 것처럼, 전신에 한기가 돌고 입 안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다.
드래곤 코어에 담긴 힘, 에테르.
평소 필요할 때마다 빼서 쓴다면 참 좋을 텐데, 마력과 에테르는 함께 쓸 수 없었다.
에테르와 마력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자연에 있는 마나를 단전으로 흡입해 여과하여 사용하는 것이 마력이라면, 에테르는 드래곤 코어로 마나를 빨아들인 뒤 걸러 낸 에너지.
문제는 마력과 에테르의 정순함과 농도가 아예 다르다는 부분이었다.
괜히 드래곤을 두고 ‘마나에게 사랑받는 존재’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콜드브루 방식으로 커피를 우려내듯, 가장 순수하고 농축된 마나만을 ‘드래곤의 코어’가 엄선해 주는 것이었다.
시우는 근육 곳곳으로 퍼져 가는 에테르의 기운을 느꼈다.
신경 다발이 작열하는 것처럼 욱신거렸고, 근섬유가 녹아내리는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어금니에서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너무도 짙게 의식되는 극통에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에테르의 부작용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 순수하리만치 정제된 마나를 쓸 수 있다면 모든 종족이 그 힘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터.
그러나 결과적으로 ‘드래곤의 코어’가 가진 정화력과 그 힘으로 여과된 마나는 다른 어떤 종족의 생물도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너무나 순도가 높은 탓에 어지간한 육체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수많은 강자가 도전해 금기에 도전해 보려 했지만, 시도했던 이들은 전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미쳐 버리든가 죽어 버렸다.
하지만 시우는 사용할 수 있었다.
‘몸에 무리가 간다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회복시킨다.’
그는 에테르를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재생 스킬을 전신에 고루 둘렀다.
근육이 찢기고, 혈관이 타들어 가고, 내장이 진탕되어도 곧바로 수복시키면 될 뿐.
다만 상처는 나아도 상처가 만들어질 때 느껴지는 고통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우는 잇새로 흐르는 피를 바닥에 뱉어 냈다.
마치 심장이 귀에 달린 것처럼, 쿵쿵 울려 대는 소리가 너무도 가까이 들려왔다.
『침입자여, 괴상망측한 힘을 사용하는군. 처음 느껴 보는 기운이다.』
“그래? 처음 느껴 보는 게 맞겠지. 한번 마주하면 다들 죽어 버려서 두 번은 못 느껴 보더라고.”
시우는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에 힘을 줬다.
콰드득.
지반에 금이 갔다.
그의 몸이 한 줄기 빛살처럼 쏘아지며 발뭉이 허공에 기다란 궤적을 남겼다.
왕은 그의 공격에 맞춰 대검을 치켜들었다.
화르르륵.
새까만 피가 발라진 부분을 중심으로 대검이 불길에 휩싸였다.
『짐에게 대든 대가는 죽음뿐이다. 벌레처럼 타 죽어라.』
시우가 휘두른 발뭉과 왕의 타오르는 대검이 맞부딪친다.
ㅡㅡㅡㅡㅡㅡㅡ 쩌어어어엉!!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대기를 찢고 뒤이어 굉음이 울려 퍼진다.
날붙이끼리 마찰하며 섬전이 번쩍인다.
『크허억···! 이 무슨 무도한 공격이란 말인가.』
왕은 시우의 강격을 막아 낸 뒤 밀려오는 파괴력에 흠씬 몸을 떨었다.
마기를 쉴 새 없이 내뿜고 있음에도 시우의 마력에는 견줄 수가 없었다.
저게 정녕 마력이 맞단 말인가.
마력은 마기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이 마법사들의 하나같은 의견이었거늘.
그런 상념에 젖어 있는 찰나, 시우의 매서운 연격이 들이닥쳤다.
콰아ㅡㅡㅡㅡㅡ앙! 콰아아아ㅡㅡㅡ앙!!
왕의 대검을 휘감고 타오르던 불길이 거센 강격에 흩날렸다.
마치 성난 맹수의 발길질 같은 칼부림에 왕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이미 죽은 몸뚱이일진대, 짓쳐오는 마력에 뼈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대체 네놈에게서 나오는 기운은 무엇이란 말이더냐!』
왕은 푸르스름한 낯짝을 찡그린 채 물었다.
“뭐긴 뭐야, 드래곤의 마력이지.”
시우는 상대방이 알아듣기 쉬운 표현으로 말했다.
그러나 왕은 그의 말이 거슬렸는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정녕 짐을 아둔한 자로 여기는 것인가. 드래곤의 마력은 다른 어떤 종족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지 않으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닌데.”
시우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저 대화를 멀찌감치서 듣고 있던 리신혁이 류혁명에게 소곤거렸다.
“뭐이가? 저 남조선 동무가 지금 드래곤이라고 하는 거이니?”
“마, 맞는 것 같슴다. 분명 드래곤이라고 했지 말임다.”
“고거이 말이 아니 되지 않니? 어찌 사람이 룡족의 힘을 쓴다고 하는 거이간?”
“하지만 리신혁 동무, 저 남조선 동무에게서 나오는 ‘대지의 기’는 우리와 다른 것 같슴다.”
류혁명은 시우에게서 뿜어지는 기세가 판이한 것을 느꼈다.
애초에 격 자체가 남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력의 성질이 변하자 전체적인 기세의 격이 확연히 올라간 것이다.
“설마 남조선 동무들은 전부 룡족의 힘을 쓰는 거이니?”
리신혁이 못 참겠다는 얼굴로 시우의 일행을 보며 물었다.
“에이··· 우리 형이나 쓸 수 있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못 씁니다.”
민시준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여러분. 여기 계신 늠름하고 위대한 샤오롱 동지는 용족의 힘을 쓸 수 있답니다? 괜히 세계 랭킹 18위가 아니죠! 아마 용으로 변신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매???”
“오ㅡ 력시, 샤오롱 동무는 우리 ‘괴물 잡이’들의 등불이심다! 내래 믿고 있었음다!”
“아새끼래, 등불이 뭐이니? 샤오롱 동무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시디 않칸! 미제 앞잡이들을 불 싸지르는 혁명적 횃불!”
“···아니, 나는 그런 힘은 못 쓰는···.”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대한 령도자께서도 샤오롱 동무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디요!”
루안은 강여화를 쳐다보며 얼른 해명해 달라는 눈빛을 쏘아 보냈으나, 강여화는 킥킥 웃더니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저 늙은 왕이라는 자가 남조선 동무에게 또 검을 휘두름다!”
현달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일행에게 외쳤다.
대검이 왕의 마기와 반응하며 불길을 세차게 내뿜었다.
“좀비라서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네.”
시우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커다란 원이 그려지며 그 안으로 수천 개의 술식이 빼곡히 들어찬다.
기하학적인 문양과 도형들이 마법 회로의 축을 이루고, 그 획을 따라 에테르의 기운이 질주한다.
술식이 정순한 마력을 듬뿍 머금은 채 마법진을 구축한다.
이어서 터질 듯한 섬광이 사위를 가득 채운다.
[물의 숨결 : 수룡의 포효]새파란 빛으로 물든 마법진에서 수룡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왕에게 돌격했다.
『검사가 어떻게 이만한 규모의 마법을···?! 크아앗!』
왕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대검에 자신의 모든 마기를 쏟아부었다.
불길이 마기와 뒤섞여 어마어마한 크기로 솟구친다.
수룡이 왕을 통째로 씹어 삼킬 것처럼 거대한 입을 쩍, 벌린다.
왕이 대검을 휘두른다.
쿠와아아ㅡㅡㅡㅡㅡ!!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과 맹렬한 격류가 부딪치며 폭발 같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왕의 망토가 힘차게 펄럭인다.
『짐은 이 나라 최후의 보루다. 짐이 곧 국가이고, 짐의 생존이 국가의 생존이다!!』
늙은 왕의 울부짖음이, 불길처럼 점차 사그라든다.
수룡이 불길을 완전히 씹어 먹고 왕의 몸에 송곳니를 박아 넣는다.
나선으로 회전하는 용의 몸짓에, 왕은 손쓸 도리 없이 휩쓸린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침소의 높다란 천장으로 수룡의 몸이 거세게 처박힌다.
그 장렬한 물길이 휩쓸고 간 자리, 왕의 육신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쿠우우웅!!
시우는 그가 움직일 때까지 말없이 지켜봤다.
왕은 대검을 땅에 박아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낯은 물길에 젖어 더욱 초췌하고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짐은 절대로··· 이 나라의 왕으로서··· 외세에 무릎 꿇지 않겠다.』
서슬 푸른 목소리에는 비장미마저 감돌았다.
그의 새까만 안광은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실제론 그 너머의 지난 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의 왕국을 침범하고 그의 왕위를 찬탈하려 했던 이종족.
수많은 백성을 살해하고 유린하며 찬란했던 도시를 송두리째 불살랐던, 짐승만도 못한 그들.
마족.
왕은 살기 가득한 눈빛을 띠었다.
제사장은 마지막 남은 군세를 이끌고 왕을 신전 지하로 피신시켰다.
이 신전에는 특별한 주술이 걸려 있기에 마족이 힘쓸 수 없을 것이라며, 왕국은 무사할 것이라고 제사장이 안심시켰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왕을 지킬 것이라는 신하들의 맹세.
그들은 왕을 방 안에 넣어 두고 자신들은 던전의 중간 지점으로 향했다.
왕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강건했던 육신은 점점 쇠약해지고, 정갈했던 외모는 추레해져 갔다.
그래도 왕은 신하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돌아오면 성대히 축하해 주리라.
계급을 올려 주고 금은보화를 잔뜩 내려 일곱 밤, 일곱 낮 동안 잔치를 벌이리라.
왕은 그들과 함께할 날을 곱씹으며 잠이 들었다.
신전의 주술은 왕의 죽음과 함께 발동했다.
주술의 능력은 단 하나, 왕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 왕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
신전에 들어온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빨아먹은 신전은 왕의 소망을 실현시켰다.
‘신이 찾아올 때까지 신전을 지켜라.’
『짐은 기다려야 한다···. 침입한 적을 죽이고 돌아올 신하들을··· 그리고 이 나라를 구원할 신의 손길을.』
왕은 시우에게 검을 겨누며 읊조렸다.
“미안하지만 그 신하들은 다 죽었다.”
『헛소리, 헛소리다! 짐의 앞에서 거짓을 고하지 말라!』
왕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성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의 대검이 다시 휘둘러진다.
시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시우는 죽은 이의 원념을 달래 주고 위로해 줄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았다.
“신하들은 안식을 얻었다. 너도 안식을 얻게 해 주마.”
그는 발뭉에 에테르를 불어넣었다.
검신이 파르르 떨리며 들어오는 기운에 몸서리치는 게 느껴졌다.
시우는 왕의 칼질을 바로 응시하더니 곧장 기다란 궤적을 그렸다.
발뭉에서 피어오른 기세가 대검을 사선으로 베어 냈다.
빠카아아아아앙!!
왕은 깨져 버린 자신의 애검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말도 안 돼···. 이것은 국보이거늘···.』
그는 칼자루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죽어서까지도 유지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기분에, 왕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나?”
시우가 해 줄 수 있는 작은 배려였다.
왕은 참담하다는 듯 자신의 침소를 빙 둘러봤다.
『우리 왕국은 이제 끝이군.』
“그건 내가 답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할 말은 없겠지?”
『신은 정녕 우리를 버리셨도다.』
【좁밥 닥치고 얼른 베어라! 배고파 죽을 것 같다!】
그때 프레가 앞주머니에서 튀어나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프레의 옆엔 힘없이 늘어져 있는 푸르미르도 있었다.
【보아라! 푸르미르도 배고파서 누워 있는 것이다!】
프레가 날개로 시우의 이마를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눈치 좀 챙기고···.”
『시, 신이시여?』
그 순간, 왕의 의문이 프레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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