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일일 강사
시우는 대놓고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아래로 비틀린 입매, 살짝 찌푸린 미간, 대놓고 낀 팔짱까지.
그 노골적인 태도에 불편함을 느낀 건 오히려 앞에 선 수많은 사람이었다.
얼마의 침묵이 흘렀을까.
“저기요··· 수업은 언제 시작하나요?”
누군가 손을 들고 쭈뼛쭈뼛 질문을 던졌다.
시우의 차가운 눈매가 소리의 근원지로 향한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를 연상케 하는 서슬 퍼런 안광.
질문했던 사람은 그 매서운 눈초리에 슬그머니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아ㅡ.”
절로 비집고 나오는 한숨.
그 소리에 손을 들었던 남자가 움찔했다.
시우는 자신의 눈앞에 선 수십여 명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신입 헌터들.
각자 이마에 ‘햇병아리’라는 글씨가 쓰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딘가 어벙해 보인다.
“수업이라···.”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대체 얼마만 인지.
【수업이 뭐냐? 맛있냐? 나도 먹어도 되냐?】
지구의 시간으로 따지면 십 년만이겠지만, 그의 시간으로 따지면 자그마치 백 년.
시우는 저 구석에 밀어두었던 옛 기억의 조각을 찾아 하나씩 끄집어 올렸다.
처음 동생을 가르쳤던 순간부터 함께 마왕을 토벌하러 다녔던 마지막 기억까지.
민시준, 샤오롱, 강여화 그리고 정민준.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느꼈던 행복과 뿌듯함.
제자들의 성장이 가져다주는 잔잔한 감동.
마치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은 다락방에서 먼지 쌓인 앨범을 펼쳐 본 것 같은 감정이 풀풀 피어올랐다.
“···뭐,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정구 놈 마빡 때린 것도 있으니 해 줄까.
시우는 기분 좋게 체념하며 아침에 나눴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
출근하자마자 찾아온 황정구.
그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며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입을 버끔거리다가 도로 다물고 머리를 긁적이기를 반복.
“아이 씨ㅡ 뭐야?”
급기야 거슬린 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라도 말을 걸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눈치만 보다가 생을 마감할 놈이다.
뭐 얼마나 곤란한 일이길래 이렇게 미적거려.
황정구는 짐짓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달려왔다.
“저······ 미, 민시우 헌터님.”
“왜? 뭐?”
“혹시 오늘 바쁘신 일이 있으신지··· 물론 언제나 공사다망하시고 범죄자 소탕에 있어 늘 모든 이들보다 최전선에서 활약하시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외에 혹시 또 급한 일정이 있으시다면···.”
“야. 한대 처맞고 말할래?”
시우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만약 분노 게이지가 눈에 보였다면 시우의 머리 위로 빨간색 막대가 점차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아닙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뭔데.”
“오늘 교육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교육이라니?*
그에게 있어 교육이란, 누구를 반으로 죽이거나 다시는 개기지 못하게 사지를 잘근잘근 분질러 놓는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조패면 되는데? 목이라도 따오면 되나?”
【오랜만에 싸우는 것이다!】
“예··· 예?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 교육이 아닙니다!!”
황정구는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손사래를 쳤다.
자신이 생각한 교육이 아니자 시우는 김빠진 내색을 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럼 뭔 교육?”
“신입 헌터들에게 전투 교육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뭐ㅡ?”
【전투다! 나 싸운다!】
그는 황정구의 말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 얼굴에 나타나는 뜻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왜?!
“미, 민시우 헌터님? 우선 노여움을 좀 푸시고··· 저, 꽉 쥔 주먹도 같이 푸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황정구는 침을 꿀꺽 삼키곤 양 손바닥을 들어 무저항의 제스처를 취했다.
시우의 살벌한 눈빛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과도한 스트레스로 위산이 콸콸 쏟아지는 기분.
‘이 씨발! 내가 팀장이지만 팀장이 아니라고!’
어지간하면 황정구 차원에서 거절했을 내용이다.
천하의 민시우에게 귀찮은 업무를 시켜라?
턱도 없는 이야기다.
차라리 오크 워리어에게 뜨개질을 시키거나 트롤에게 독서 토론을 요구하는 편이 게 더 쉬울 것이다.
그런데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의 명령이라면?
한 성깔 하는 황정구조차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는 ‘그분’의 연락.
– 이봐, 황 팀장. 그 새로운 신입 친구 덕에 요즘 분위기가 아주 좋아.
– 가, 감사합니다.
– 그래서 말인데. 물 들어올 때 노 한번 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HMCS의 위신도 보여 줄 겸, 다른 헌터들 상대로 일일 교육 한번 진행해 보는 게 어떻겠나? 이벤트성으로 말이지.
– 교육을 말입니까? 하지만 누가 들을지···.
– 그건 내가 길드장들한테 부탁해 볼 테니, 자네는 신입 친구한테 말 좀 해 주게.
– 제, 제가 말입니까? 지부장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게ㅡ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황정구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린 상대를 향해 절규를 내질렀다.
이번 민시우의 신입 헌터 교육은 간부급 정도가 아닌 HMCS 한국지부의 지부장인 백건호의 직접적인 지시.
다시 말해 한국 HMCS의 우두머리가 내린 명령이었으니.
황정구로서도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 민시우 헌터님··· 제가 승낙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앞으로 사건 맡으시면 서류 정리 제가 전부 다 하겠습니다! 제발 그 주먹은 내리시고··· 끄아아악!!”
그렇게 시우는 딱밤 한대로 황정구를 용서했다.
【저놈 입에 거품 물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약골이다.】
물론 기절하긴 했으나, 튼튼한 놈이니 괜찮을 거다.
시우는 나가떨어진 황정구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 지었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순간 인파의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무리를 헤치고 저 뒤편에서부터 몇 명의 사람들이 시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력 흐름이 신입은 아니네.’
그들의 정체까지는 바로 알 수 없었으나, 마력 운용이 안정되고 몸의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제법 전투 경험이 많아 보이는 자들.
‘저번에 그 거트인가 하는 놈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경지군.’
시우는 짧은 찰나의 순간 그들은 관찰하며 얻은 정보를 취합했다.
그때 가장 앞섰던 자가 시우를 보며 빙긋 웃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였다.
“교육 담당하시는 HMCS의 민시우 헌터님 맞으십니까?”
“그런데···?”
“반갑습니다. [제국 길드] 소속 헌터인 석태지라고 합니다. 오늘 수업 듣는 헌터들의 보호자인 셈이죠. 민시준 길드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석태지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식이거나 구김이 있는 미소가 아니었다.
시우도 그의 손을 맞잡으며 호의의 미소를 지었다.
시준이네 헌터라는데 까칠하게 굴 필욘 없지.
“다른 두 분도 [제국 길드] 소속인가요?”
“아닙니다. 각각 다른 길드에서 왔습니다.”
석태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른 두 명을 힐끗 쳐다봤다.
인사할 타이밍을 만들어 준 것이다.
“저는 [서리혼 길드]의 야마토입니다.”
“[백사자 길드] 추하민이다.”
그들은 시우를 향해 대강 고개만 까딱였다.
명백히 호의가 없는 눈빛.
특히 추하민의 표정은 노골적이다 못해 도발에 가까웠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욕이라도 내뱉을 듯한 분위기였다.
【저놈 눈빛 마음에 안 든다. 왜 우리 식량 째려보냐? 물론 식량이 좁밥 같이 생기긴 했지만, 저놈보다는 강하다.】
“흠···.”
잠시 정적이 흐르며 묘한 기류가 세 남자 사이에서 일었다.
긴장감이 날카로운 시선을 타고 흐른다.
시우는 먼저 시비를 걸진 않지만, 그렇다고 걸어오는 도발을 친절하게 넘겨줄 정도로 자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질 무렵,
“자, 인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시고.”
석태지가 끼어들었다. 서글서글한 얼굴만큼이나 눈치도 괜찮은 편으로 보였다.
“아시다시피 오늘 교육 듣는 분들은 각 길드에 새로 들어온 신입 헌터들입니다. 아직 게이트 몬스터와의 전투는 물론이고, 대인전의 경험도 없습니다.”
어차피 신입 헌터들은 게이트를 돌며 ‘알아서’ 능숙해져야 한다.
물론 길드별로 몬스터에 대한 자료도 제공해 주고, 트레이닝도 나름 시켜 주지만 전투 감각과 경험은 순수 본인의 몫.
특히 헌터와 헌터가 싸우는 대인전은 쉽게 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자, 민시우 헌터님. 이제부터 저희는 빠져 있을 테니 편하게 교육 부탁드립니다.”
석태지는 야마토와 추하민에게 눈짓하며 뒤로 빠지자는 제스처를 했다.
야마토는 무표정으로 물러났고, 추하민은 시우를 길게 노려보며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왔다.
시우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황정구 이 새키, 돌아가면 마빡 한 대 더 맞아라.’
귀찮은 짓을 시킨 벌이다.
“간단한 전투 수업을 시작하겠다. 다들 기본적으로 마력은 다룰 수 있지?”
“저··· 마력을 다룬다는 기준이 뭔가요?”
시우는 질문을 던진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기 기준에서 다루는 마력과 이제 막 각성한 햇병아리들의 기준의 마력은 다를 터.
“우선 마나는 일종의 기름 같은 에너지다. 그리고 단전이라는 엔진을 거치고 나면 마력이라는 힘으로 변환되지. 이건 알지?”
“예···.”
“그렇다면 질문. 너 마력 사용해서 총알 막을 수 있어?”
“······예?”
그 남자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질문인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총알은 조금 어려운가.
총구 방향을 관찰해서 날아올 각도를 예상하고 마력장을 펼치면 되는데.
“그럼 칼은 막을 수 있지?”
“······예??”
“그 정도도 못 막아? 쉽잖아.”
시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애초에 칼 정도도 막지 못하면 몬스터와는 어떻게 싸운다는 거지.
괴물 새끼들 공격이 어지간한 총칼보다 훨씬 강할 텐데.
“그럼 마력 활용해서 총알이나 칼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왼쪽,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서 보자.”
나름 간단하고 쉬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초보라지만 대부분은 마력 운용에 대한 기초는 터득했을 것이고, 신체 강화는 어느 정도 할 줄 알리라고 말이다.
‘하··· 이건 좀 심한데.’
그러나 결과는 지나치리만큼 예상 밖.
5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못하는 쪽에 선 것이다.
이 정도쯤 되면 오히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5명이 더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가벼운 전투를 통해 실전 경험을 키워 주려 했건만, 이런 상태로 싸웠다간 그냥 뒈지겠는데.
“그럼 마력을 다루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
교육생들은 격자 형태로 떨어져 각자 편한 자세를 취했다.
누구는 앉고, 누구는 서고, 누구는 특정 포즈를 취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시우는 그 사이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수업을 진행했다.
“···단전을 조금씩 열어. 한 번에 열면 마나맥에 마력이 솟구치게 돼서 마력 낭비도 심하고, 재수 없으면 역류해서 주화입마 같은 상태에 빠질 수도 있어.”
그는 교육생들을 지나면서 한명 한명 유심히 관찰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나 운용을 살피며 말이다.
“야. 단전 너무 열었다.”
“거기 파랑 머리 신입, 먼저 단전에 기운을 모아야지.”
“검은 로브, 마력이 일정하게 나오질 않고 들쑥날쑥하잖아.”
이렇게 시우가 한 사람씩 코칭하며 몇 번 지나자, 개판 5분 전이었던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무턱대고 마나를 뿜어 대기만 하거나 스킬만 본능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너 오늘 되게 친절하다. 보기 역겹다. 뭐 잘못 처먹었냐.】
‘아가리 좀 다물어.’
해당 교육은 모두 라이브로 방송 중이며 기자들도 몇 명 불러 놓았기 때문에 대대적인 홍보 기사도 날 예정이었다.
따라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시우가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해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단지 그간 황정구를 보며 느낀 측은함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던 것.
‘씨발, 다음에 다시 이 짓거리 하나 봐라.’
그러던 시우의 눈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음··· 누구였지?
【저 암컷 또 만났다! 좁밥이 처음 본 암컷이다!】
아, 맞다.
“넌 여기 왜 있냐.”
“어? 헤헤헤.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기억하고 있었네요?”
“그래 계속 모른 척해라.”
“아, 쫌! 농담도 못 해요!”
신지수.
지구로 다시 돌아왔을 때 처음 마주쳤던 바로 그 여자.
“그래서 너 왜 여기 있냐고.”
“그게ㅡ.”
“야, 마나 흐트러진다. 단전 똑바로 열면서 대답해.”
시우의 지적에 신지수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마력을 운용한 뒤 대답했다.
“저 [제국 길드] 들어갔어요!”
“···시준이 길드?”
” 네!!”
“너 같은 찌끄레기도 받아 줘?”
“찌, 찌끄레기라쇼!! 이래 봬도 A급 스킬 각성자인데!”
“A급이라···.”
【가라| 몸통 박치기!]
좀 닥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