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71
174화〉
최강율
천재란 시간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가령 천재가 매달 한 명씩 등장한다고 쳐 보자.
한 분야에만 1년에 열두 명씩 나타나는 천재를 과연 천재라 일컬을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명품을 직조하듯, 천재란 축적된 시간을 뚫고 이따금 나타나는 것이다.
찍어 낸 공산품처럼 흔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천재에 열광하고 그들의 등장을 기다린다.
최근 한국 헌터계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과거 삼존으로 알려진 민시우의 등장은 반길 만했지만, 류지환의 추락과 배신, 그리고 두 번의 S급 게이트 출현 및 아시아의 잦은 게이트 발생이 국민들에게 적잖은 불안감을 전해 준 것이다.
류지환이라는 천재에게 품었던 기대가 흩어져 버리자, 사람들은 그 기대를 다시 쏟아부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때 들려온 것이 류지환의 기록을 갈아 치운 신예의 탄생이었다.
최강율이란 신성의 출현은 대중의 갈증을 풀어 주기에 실로 충분했다.
“이게 몇 년만의 S급 스킬을 가진 헌터지?”
“어찌 됐든 류지환 이후로는 처음인 게 분명해.”
“그놈은 실력에 비해 인성이 글렀지. 하지만 듣기로, 최강율 저 친구는 예의 바르기로도 유명하던데.”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좋을 텐데 말이지.”
“꿈 깨라. 쟤가 미쳤냐? 헵타그램 말고 중소 길드로 가게.”
“어허. 꿈은 꿀 수 있는 거 아닌가.”
길드장들은 최강율이 앞으로 나서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그를 응시했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자신의 길드를 선택해 준다면··· 하는 마음으로 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헵타그램의 길드장들도 최강율에게 선택 받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세상은 아이러니했다.
“제가 원하는 길드는··· 민시우 헌터님의 [광견 길드]입니다.”
최강율의 선택은 좌중의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의 선택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시우였을 텐데.
“하··· 재밌네.”
시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대체 어째서 저 친구가 널 선택한 것이지?”
도경후가 알딸딸하게 취기 오른 얼굴로 시우를 쳐다봤다.
“스승님 오늘··· 처음 선택받은 거죠?”
“어, 그렇네.”
“그런데 그 첫 선택을··· 모두가 노리던 S급 신예가 했네요.”
강여화는 한껏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광견 길드]를 고른 유일한 졸업생, 최강율.헵타그램을 비롯한 모든 길드장들이 시우와 최강율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전부 그의 선택이 의외란 듯한 안색이었다.
“아··· 최강율 졸업생. [광견 길드]를 고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때 상황을 보던 사회자가 자연스럽게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최강율은 짧게 대답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형, 길드원 뽑는 거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어? 거절할 거야?”
“스승님 무조건 수락하셔야 해요! 지금 다른 길드장님들 표정 보세요, 다들 노리고 있어요.”
“크하핫! 만약 네놈이 거절하면 [싸울아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저놈을 내 후임으로 키워야겠어.”
시우는 볼을 긁적이며 최강율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는 시우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흐음··· 예정에 없던 일인데. 어떻게 할까.”
시우는 검지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
며칠 뒤 [광견 길드]의 연무장.
시우는 연무장 한편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손님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강여화와 민시준, 루안이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베네딕트와 도경후, 최강율이 순서대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들.”
최강율이 먼저 도착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자들을 향해 굳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오~~ 우리 [광견 길드]의 기대주, 처음 보네요!”
“···넌 [광견 길드]의 길드원이 아니다.”
베네딕트의 감탄에 옆에 있던 루안이 그의 말을 정정했다.
“에이~ 같은 선생님 밑에 있으면 같은 길드원 아닌가? 거기다 우리는 사선을 같이 넘은 동료잖아, 하하하!”
“···너랑 같이 넘은 사선은 없다.”
“후배님 보는 앞에서 바보 같은 대화는 적당히 하지?”
보다 못한 강여화가 둘 사이에 끼어들어 대화를 말렸다.
“잘 왔다.”
시우가 최강율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강율이라고 합니다.”
“그래, 서로 대화하는 건 처음이지.”
“······.”
“오늘은 지난번 네가 지원해 준 것 때문에 얘기를 좀 해 보려고 불렀다.”
수십 명이 넘는 길드장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던 최강율이 처음으로 경직된 얼굴을 했다.
“무슨 대화 말씀입니까? 설마 거절하시는 건···?”
“응? 아냐, 설마. 다른 제자들이 너 무조건 받으라고 기를 쓰더라고. 꼭 그러지 않더라도 재밌으니 받으려 하긴 했지만. 일단 자리를 조금 옮길까?”
시우는 피식 웃으며 최강율만 데리고 조금 떨어진 테이블로 이동했다.
“앉아. 커피라도 줄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강율은 깍듯한 자세로 앉아 시우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 없어. 편하게 해.”
“괜찮습니다.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익숙합니다.”
“그렇다면 뭐···.”
시우는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다.
멀리서 그의 일행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우리 길드에 원하는 게 있어? 계약금이라든가, 아니면 아티팩트나 아이템 수급이라든가 같은 조건 같은 거.”
“딱히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군···. 그러면 헌터를 희망하는 이유는 뭐지?”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습니다.”
“꿈? 정확히 어떤 부분 때문에?”
“몬스터에게서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고 싶었습니다. 나아가서는 강한 헌터가 되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싶습니다.”
시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목표치 자체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안에 담긴 뜻은 올곧고 분명했다.
상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개와 열정이 허튼소리가 아니란 걸 대신 말해 줄 정도로 뜨거웠던 것이다.
“강한 헌터가 되는 부분은 염려 안 해도 될 거다. 싫어도 그렇게 만들어 줄 거거든.”
“그렇습니까···.”
시우의 뼈 있는 농담에 최강율이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내 길드를 다른 길드처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어. 어지간하면 인원도 많이 안 늘릴 거고, 규모도 지금 정도로 유지할 생각이야. 돈은 아쉽지 않게 줄게, 난 돈 욕심이 별로 없어서 내 몫을 다 나눠 주거든.”
“아··· 괜찮습니다. 저도 돈 때문에 들어온 게 아닙니다. 민시우 헌터님 아래에서 배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뭘 말씀입니까?”
“굳이 [광견 길드]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있어?”
최강율은 입을 닫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더듬더듬 말을 잇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 게이트가 폭주해서 부모님과 제가 탄 차가 습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저만이라도 도망치게 하려 하셨는데··· 너무 어렸던 터라 자리에서 울기만 했습니다···.”
그는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잠시 숨을 골랐다.
“괴물이 지척까지 다가왔습니다. 제 울음소리 탓일 수도 있고, 부모님께서 흘렸던 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 다가와 괴물을 순식간에 처치했습니다.”
“······.”
“그리고 피를 쏟고 있는 부모님의 상처도 치료해 주더니, 다른 사람을 시켜 저희 가족을 안전한 곳까지 대피시켜 줬습니다.”
최강율은 끔찍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따스했던 기억을 꺼내며 그때의 감정을 되새겼다.
“나중에 철이 들었을 무렵, 그 헌터를 찾아보려 했는데 정보가 아예 없었습니다. 저도 그런 헌터가 되고 싶어서 묵묵히 노력했는데, 정작 누군지는 알 길이 없으니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낯익은 얼굴의 헌터를 발견했습니다. 십여 년 전에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헌터였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최강율은 한참이나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표정은 다부졌지만, 그의 눈가는 조금 전의 결의와는 사뭇 다르게 촉촉이 젖어 있었다.
“민시우 헌터님은 저희 가족의 은인이십니다. 헌터님 덕분에 늘어난 목숨이니, 앞으로 헌터님을 보좌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시우는 멋쩍은 듯 엷은 웃음을 지었다.
가끔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받을 때마다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감사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닌 만큼, 이런 말을 듣고 나면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뜻깊은 감정이 밀려오고는 했다.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강율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앞으로 잘해 보자··· 보좌.”
“예? 예, 감사합니다!”
***
“스승님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이야.”
“누나는 형한테 좋은 인재를 뺏겨서 억울하진 않아? 난 좀 아쉬운 느낌이 드네.”
“아쉽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 밑에 있는 거랑 스승님 밑에 있는 거랑 어떤 쪽이 성장 가능성이 있겠어?”
“그거야··· 형이지.”
민시준은 강여화의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아쉬운 건 길드장 입장에서의 감상이었지, 헌터로서 보자면 그 어떤 곳에 들어가는 것보다 시우 아래로 들어가는 게 제일 현명한 판단인 게 당연했다.
“크하핫, 애송이들. 너희가 걱정해야 할 건 신입이 잘 배울지 아닐지가 아니라, 너희를 언제 추월할지 아니더냐?”
“에이··· 도경후 헌터님··· 그건 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어이, 민시준. 잘 생각해 봐라. 저놈은 헌터가 될 때부터 S급인 놈이다. 거기다 스승이 네놈의 형이라면, 격의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나.”
“···음.”
민시준은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곤 고심 가득한 얼굴이 됐다.
“어? 둘이 연무장 중앙으로 이동하네요.”
강여화가 손가락으로 시우와 최강율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둘에게로 향했다.
“정말 괜찮겠어? 나름 랭커들 앞이라 긴장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은인 앞에서 실력을 보여 드리기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시우의 질문에 최강율이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연무장에 선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광견 길드]에 오게 된 배경과 과거사를 다 듣고 난 시우가, 그에게 가벼운 대련을 요청했기 때문.
“어디··· S급 스킬을 얻은 실력 좀 봐 볼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강율이 눈빛을 빛내더니 시우에게로 발을 박찼다.
“속도는 나쁘지 않군.”
상대가 벌써 지척에 다가오자 시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쏜살같은 주먹이 시우를 향해 연달아 짓쳐온다.
마력을 싣지 않은 주먹인데도 그 속도나 위력이 상당했다.
시우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해 내며 최강율의 동작을 관찰했다.
그 순간 최강율이 시우에게 초크를 걸더니 무릎으로 머리를 찍으려 했다.
하지만 시우의 반격이 더 빨랐다.
빠아악!
최강율의 복부에 짧은 타격이 가해지자 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본기는 있는 것 같네. 타격기에도 능하고. 응용력이나 연계하는 방법만 터득하면 될 것 같은 데ㅡ 이제 본격적으로 대련을 시작해 볼까?”
“예, 알겠습니다.”
최강율의 몸에서 마력이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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