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77
180화〉
공작3
– 미국에는 언제 올 생각이냐?
시우는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글쎄··· 여기서도 할 게 많아서.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 당연히 있지, 이 고블린 코딱지 같은 놈아! 며칠 뒤에 총본에서 회장 선거 있는 거 몰라?
“알긴 아는데. 나랑 관련 없잖아?”
– 하하하. 스켈레톤 대퇴부를 떼어다가 잘게 방망이질 쳐서 패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 형제가 어려움에 부닥쳤는데 관련이 없단 말을 지껄여?
에드워드는 시우의 가당찮은 말에 시원하게 웃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큰 회의 정도가 되었을 날이지만, 카길 후안 측에서 회장직을 너무 오래 비워 두는 건 HMCS에 좋지 못하다며 회장 선출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래 봐야 입후보자는 에드워드와 카길 후안, 둘뿐이었으나 이는 곧 HMCS 양대 파벌 간의 최후의 결전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따라서 에드워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그날 회의에 참석하도록 유도하는 중이었다.
– 네가 와야만 하는 이유를 200가지 정도 읊어 줄 수 있지만, 내 시간과 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2가지 정도로 축약해서 들려주마. 첫째는 앞으로 원활한 수사를 하고 싶으면 내가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안 오면 내가 널 죽일 거란 것이지. 이해가 됐나?
“음··· 별로 와닿지 않는데. 간절히 부탁하면 갈 수도 있고.”
– 제. 발. 부. 탁. 이. 다. 안 오면 정말 죽. 인. 다.
시우는 친구의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오랜만에 깊은 고민 없이 가볍게 흘러나오는 웃음을 지은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부탁하니 꼭 가도록 하지. 선거 준비는 잘 되고 있냐?”
– 뭐, 네 덕분에 지지층이 조금은 모여들었다. 실력주의가 원칙인 곳에서 너같이 괜찮은 루키가 등장하면 환호하는 법이거든.
“내가 루키 소리 들을··· 경력은 아닌 것 같은데.”
–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HMCS 들어온 이후의 활동에 대한 거니까. 아직 비공개긴 하지만 반마족을 포섭한 것도 꽤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자고로 반마족들은 그 존재가 발현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 누구의 편에 선 적 없던 집단.
마족의 편에도, 인간의 편에도 서지 않은 채 홀로 경계에 머물고 있던 자들인데 처음으로 자신들의 편을 정한 것이다.
아직은 소수의 국가 지도층과 HMCS 총본 내에 에드워드 측 간부들만 아는 정보였지만, 나중에 정식으로 공개되면 시우에 대한 주가는 엄청나게 상승할 터였다.
“반대파 카길 후안에 대한 정보는 좀 얻고 있어?”
– 아니. 생각보다 그쪽 정보 벽이 두껍네. 이번에 카길 후안이 회장이 되면 정보 제공한 쪽이 무사하지 못할 거란 걸 알아서 그런지, 입을 여는 사람들이 없어.
“그쪽에 심어 놓은 프락치도 있을 거 아냐. 걔들이 물고 온 정보는?”
– 내가 무슨 비밀경찰이냐, 프락치를 심게.
하긴, 이런 쪽에서는 제법 고지식한 놈이었지. 방법도 서툴고.
에드워드는 대귀족 가문의 사람으로서 올곧은 성정과 고귀한 성품을 지닌 신사였다.
시우를 만난 뒤 그에게 물들어 입이 조금 거칠어지고 삶을 사는 방법에 융통성이 생기긴 했지만, 그 근본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카길 후안은 달랐다.
그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슬럼가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범죄와 타락이 쌓일 때마다 그의 이름값은 올라갔고, 카길 후안은 더러운 돈을 세탁해 주는 사업을 시작해 그 바닥에서 엄청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능력을 각성하게 됐고, 우연히 HMCS 초창기 멤버로 들어가게 되어 현재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은 카길 후안의 철저한 신분 세탁으로 세간에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시우도 ‘뒷세계’에 있던 수하들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으니, 정직을 바탕으로 사는 에드워드는 모를 수도 있는 법.
‘내가 부회장파에 속했단 이유만으로 바로 암살자를 보내는 놈인데 어련하겠어. 과연 그런 놈을 에드윈이 정치질로 이길 수 있을까.’
에드워드의 바른 품성을 생각하면 상당히 험난한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길 후안을 이기지 못하면 HMCS에 올바른 미래란 존재하지 않을 터였고, ‘블랙우드’ 가문도 입지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었다.
“힘내라, 나도 나름대로 도와줄 테니까.”
– 웬일이냐. 네가 도움을 다 준다고 하고. 좋아해야 하는 거 맞나? 뭔가 불안한데.
“HMCS 딱지가 생각보다 쓸 만하더라고. 네가 회장에 올라야 나도 활동하기 편하지 않겠냐.”
– 오우거 똥 묻은 팬티 같은 친구님아, 우정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에 감동의 눈물이 흘러 내린다.
“알면 됐고. 마르코랑 마르티네즈는 잘 지내고 있지?”
– 그 친구들 열심히 하더라. 너보다는 훨씬 부지런하고 내 명령도 잘 들어. 이참에 측근으로 둘까 봐.
“그러시든지. 아무튼 회의 때 보도록 하자.”
시우는 전화를 끊고 카길 후안에 대해 떠올렸다.
뒤가 시커먼 놈이니 에드워드를 이기기 위해 지금도 더러운 공작을 펼치고 있을 거다.
‘어느 정도는 대비해 놓고 미국에 가야겠는걸.’
사실 시우한테는 누가 회장이 되든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카길 후안이 회장에 오르면 지난 암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더 귀찮은 일을 만들 게 뻔했다.
그럴 바에는 친구인 에드윈이 회장에 올라 편하게 HMCS를 팔면서 활동하고 다니는 게 나았고.
‘이런 정치질은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날 먼저 건드린 대가는 치러야지. 카길.’
***
“요즘 한가해 보인다?”
“···예? 뭐라고요?”
시우는 모처럼 〈HMCS 강북 지부〉에 놀러 와 황정구의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가 HMCS 총본으로 소속이 변경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
황정구는 문서 작업을 하다가 시우의 말에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테이블 한쪽에 쌓인 서류 뭉치가 두 박스가 넘는데, 한가하다고?
시우는 커피를 호로록 들이마셨다.
저 너머에서 황정구의 원망 어린 눈빛이 쏟아졌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 때는 서류 더미에 파묻혀서 일하고 그랬는데. 집에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소파에서 자고 그랬지.”
“슨배임? 저랑 같이 일하셨을 때 서류 작업 제가 거의 도맡아서 했지 말입니다?”
“한가하면 같이 카페나 다녀올래? 여기 공기가 조금 답답하다.”
“···저 일하고 있는 모습 보이시는 거 맞죠?”
황정구는 밑도 끝도 없는 동문서답에 기도 안 찬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들어와서 게이트가 빈번하게 열리고 그에 따라 몬스터가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터라 정신이 없었다.
대형 길드에서도 순찰과 방범을 더 치밀히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
결국 HMCS의 인원 보강을 추진한 상태이나, 아직까지는 일손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정구야.”
“네, 슨배임.”
“심심하다. 재밌는 거 없냐?”
【좁밥, 나 배고프다. 쟤한테 먹을 거 달라고 하는 것이다. 푸르미르도 배고파하는 것이다.】
– 히힝.
시우의 안주머니에서 프레가 기어 나오더니 앓는 소리를 했다.
그 옆에는 새끼손가락만 한 푸르미르가 강아지처럼 엎드린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배고프면 애들 데리고 식사나 하러 가시죠.”
“오. 네가 사는 거냐?”
“···선배님 월급이랑 제 월급이랑 몇 배가 차이 나는지 아십니까?”
황정구의 억울한 표정을 본 시우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 얘들 생각보다 몇 인분 안 먹어.”
“정말 얻어먹으시는 겁니까?”
【드디어 밥을 먹는 것이다! 나는 소갈빗살이랑 꽃등심이 먹고 싶은 것이다!】
“···선배님?”
삐비비빅. 삐비비빅.
그때 사무실 복도에 난 알람이 소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팀장님 시내에 몬스터가 출몰했답니다! 게이트 등급은 알 수 없고, 나타난 몬스터는 오우거 떼로 보인답니다!”
“아니, 오우거면 오우거지, 오우거 떼는 뭐야?! 걔들이 떼로 몰려다녀?”
“모르겠습니다···. 발견한 헌터가 그렇게 보고했더라고요. 오크 떼를 잘못 본 건 아닐 테고··· 다시 물어볼까요?”
“하아ㅡ 냅둬. 언제 그걸 다시 물어봐. 좌표나 폰으로 찍어서 보내.”
황정구는 투덜거리며 장비를 꾸역꾸역 챙겼다.
“아, 슨배임. 먼저 가서 드시고 계시겠어요? 정리 다 끝나면··· 제가 갈 수 있을까요? 하아··· 야근하겠네.”
“됐다, 인마. 얻어먹기는 다 글렀네.”
시우는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래요? 내일인가 모레인가, 미국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나···?”
“어. 내일 늦은 비행기로 갈 건데. 전투 헌터 별로 없을 거 아냐? 내가 가서 도와줄게.”
“헐··· 웬일이십니까? 안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긴 했는데.”
“괜찮아. 이런 거 활동 내용 총본에 보내면 보너스 주더라고. 나중에 에드윈한테 뜯어내야지.”
“그래도 되는··· 겁니까?”
황정구는 총본 헌터들은 신기하단 생각을 가지며 함께 밖으로 나섰다.
***
몬스터 떼가 출몰했다는 시내는 마기의 영향 때문인지 지독한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단순한 안개가 아니라 마기와 뒤섞인 탓에, 일반인들은 장시간 노출되면 쇼크로 쓰러질 수도 있는 상황.
쿠우웅! 콰아아앙!
안개로 보이지 않는 저 너머, 건물이 부서지고 차량이 으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대피 경보는 확실히 내렸지?”
“예,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안개도 그렇고 갑작스러운 출몰로 미처 대피 못 한 사람도 여럿 있을 겁니다. 탐지형 헌터와 조를 짠 팀들이 다른 방향에서 투입됐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인명 구출보다는 게이트 없애는 걸 주력으로 한다. 너는 알아서 해.”
“기대도 안 했슴다. 무사히 잘 다녀오십셔.”
시우는 황정구와 헤어진 뒤 그와는 다른 방향으로 안개 속에 진입했다.
【여기 분위기 엄청 좋다! 아늑한 것 같으면서도 마기 때문에 짜증 난다!】
“왜 짜증이 나?”
【모르겠다. 마족한테서 나는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다.】
프레는 날개로 코를 움켜쥐었다.
마족이라.
시우는 단전을 열어 마력을 온몸에 순환시켰다.
마력 실드도 구축해 갑자기 닥쳐올 괴물의 습격에 대비했다.
물론 고작 ‘오우거’를 상대로 이러는 건 아니었다.
다른 헌터들에게는 버거운 상대일지 몰라도 시우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감이라고 해야 하나.
시우는 프레의 반응과 더불어 이 안개 속에서 느껴지는 묘하게 ‘더러운’ 시선에 기감을 한껏 열었다.
자연 발생한 게이트라면 상관없지만, 〈판데모니엄〉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면 놈들이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으니.
그때였다.
– 여기는 4조. 목표물이 접근했습니다.
누군가가 안개 속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시우의 귀에 들려왔다.
‘목표물이 날 말하는 건가.’
시우는 발끝에 힘을 줘서 목소리가 들린 곳까지 한 번에 도달했다.
“넌 뭐냐.”
느닷없이 옆에 나타난 시우의 모습에 상대는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대답은 하고 가야지.”
시우는 도망가는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살살 찬다고 찬 건데, 상대의 다리는 시우의 발길질 한 번에 ㄴ자로 꺾였다.
“크허억!”
“목표물이 나냐고 묻잖아.”
시우의 무덤덤한 취조에 상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찡그리더니 품에 지니고 있던 병을 바닥에 깼다.
“이거···.”
몬스터들이 환장한다는 유혹초(草).
“큭큭큭. 너는 이제 오우거 밥이 될 거다.”
그렇게 말한 상대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단도를 자기 목에 꽂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흐음.”
시우는 이 이해 못 할 상황에 호기심이 일었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크워어어어!
그에게 다가오는 오우거 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