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79
182화〉
함정 2
라반의 회색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린다.
분명 분노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의 얼굴빛은 분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롯한 쾌락.
말초 신경의 구석구석으로 번져 가는 붉은 신호등이 그의 몸이 전투태세로 들어갈 것을 예고했다.
“크흐흐, 어디 그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한테 시달리다 고통에 죽어 봐라.”
오크만큼이나 커다란 거구의 사내가 이빨을 드러낸 채 시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덤프트럭의 타이어처럼 딱딱하게 부푼 근육과 꿈틀꿈틀 불거진 핏줄이 거대한 떡갈나무를 연상케 한다.
라반은 등에 둘러메고 있던 도끼를 풀어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오크 같은 덩치와 잘 어울리는 거대한 무구였다.
“보통은 일격에 반으로 갈려 죽고 마는데, 네놈은 대체 몇 합이나 버티나 보자!!”
대기를 가르는 거대한 도끼날이 시우를 반으로 쪼갤 것처럼 들이닥친다.
조금 전 오우거에게서 느꼈던 압박이나 기백과는 결 자체가 다른 강격이었다.
시우는 발뭉을 비스듬하게 들었다.
검신의 옆면으로 막아 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발뭉이 아무리 튼튼하다 할지라도 위험한 도박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카가가가가각!!
발뭉의 검날을 타고 도끼가 미끄러져 내린다.
“크흐흐! 검은 조금 다룰 줄 아는 모양이군!”
시우가 공격을 흘려 내자 라반은 비웃음을 한가득 머금은 채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도끼가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도끼날이 짓쳐들어왔다.
“ㅡㅡ!!”
빠카아아앙!!
시우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마력 실드가 깨져나갔다.
“아이 씨, 빌어먹을! 아깝네, 이거. 아루무! 더 빨리 전환 못 해?!”
“그렇게 불만이면 네가 혼자 하든가.”
“난 못하니까 당연히 네가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입 다물고 해 주는 대로 가만히 있어.”
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끼날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 기다란 생채기가 생겼다.
‘분명 공격을 흘려 냈는데, 이상한 각도에서 치고 올라왔다. 이건 근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불가능한 움직임인데··· 저기 있는 여자의 능력인가.’
“크흐흐. 이 합은 어떻게 버틴 것 같고. 이제 삼 합으로 넘어가 보실까!!”
라반의 몸이 거대한 전차처럼 돌진해 왔다.
도끼에 마력이 듬뿍 실린다.
쩌어ㅡㅡㅡㅡㅡㅡㅡ어엉!!
불꽃이 튀고 파열음이 시끄럽게 퍼진다.
발뭉의 검신이 부르르 떨려 온다.
시우는 얼마 전 관찰했던 도경후의 검술을 상기했다.
유려하면서도 강물처럼 막힘없이 빠르게 흐르던 청풍명월의 검로.
그 어떤 검술보다도 부드럽고 명징한 검의 극치를 되뇌며, 시우는 발뭉을 휘둘렀다.
카아아ㅡㅡㅡ앙!! 카앙ㅡㅡㅡㅡㅡ!!
손이 어지럽게 움직인다.
“크으윽!!”
라반의 눈이 검의 활로를 쫓지 못하고 어지러워지는 게 느껴진다.
시우는 놈의 목덜미를 향해 발뭉을 찔러 넣었다.
부우우우웅II
그러나 검은 그의 계획과 달리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찔렀다.
“크흐흐, 미안하군!!”
나무를 찍어 넘기려는 도끼질처럼, 라반의 강격이 수평으로 날아든다.
【좁밥은 내 식량이라 아무도 건들 수 없는 것이다!】
허공에 묵색 마법진이 펼쳐지며 단단한 철의 방패가 구현된다.
터어ㅡㅡㅡ엉!!
“뭔···?!”
라반은 느닷없이 나타난 프레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저런 이상한 인형이 옆에 있다는 말은 보고서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법을 쓴다는 소린 들어 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내 애완동물이 워낙 똑똑해서 말이지.”
시우의 발차기가 라반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빠아아아악!!
오크만큼 커다란 덩치를 지닌 라반의 몸이 수 미터를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크허어어억···.”
그는 입에서 한줄기 핏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본인의 덩치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은 놈이었다.
팔을 잡아 비틀면 그대로 부러질 것 같았고, 도끼질 한 번이면 샌드위치처럼 갈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력도, 체력도, 측정되는 마력도,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을 능가하는 게 없는데.
‘그런데 왜 내 공격이 닿지 못하고 있는 거지? 빌어먹을, 아루무의 서포트까지 받고 있는데···!’
그는 예기치 못한 사태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때였다.
“이런~ 라반 씨. 설마 지금 노닥거리고 있는 건가요? 임무에 집중할 마음이 없으신 거로 알면 될까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저편에서 바람처럼 불어왔다.
“어··· 카, 카이세 형님?!”
“라반 씨~ 제가 보고서 잘 읽어 보라고 했죠? 절대 만만히 볼 자가 아니라고요. 외모로 상대를 평가하는 버릇··· 고치라고 했을 텐데요.”
“죄송··· 죄송합니다, 형님! 얼른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1분~ 드릴게요. 작전대로 합시다, 우리.”
카이세가 눈매를 호선으로 그리며 말했다.
라반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지도 못하고 도낏자루를 다시 그러쥐었다.
그의 눈매는 더 이상 쾌락으로 번들거리지 않았다.
죽음이 뒤쫓아오는 사람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저 카이세라는 놈이 생각보다 강한가 보네. 이 덩치가 저렇게 초조해하는 걸 보면.’
시우는 놈들의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1분에 목숨을 걸어야겠군.”
그때 라반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과 밀도 높은 격이 분출되었다.
거기에 은은하게 깔린 더러운 마기까지.
“그아아아아악!!”
놈이 발을 박찼다.
시우 역시도 단전을 열어 더 많은 마력을 몸에 흘려보냈다.
서늘하고 기분 좋은 청량감이 몸속에 휘몰아친다.
콰아아아ㅡㅡㅡㅡㅡ앙!!
폭발하듯 내리꽂히는 도끼의 중량감.
라반은 어금니가 깨지도록 이를 깨물었다.
마치 바로 뒤에서 카이세가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한기가 들었다.
‘실패하면··· 형님한테 살해당한다···!’
그는 카이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라반은 카이세를 만나기 전까진 4위계 중에서 알아주는 강자였다.
별 볼 일 없는 삼류 헌터였던 그는 마기를 주입받은 뒤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상부에서 활약을 눈여겨봐 준 덕에 4위계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라반은 거침없이 임무를 수행하며 〈판데모니엄〉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같은 4위계인 자흐날이나 루슬라나, 크롤, 아루무, 다카시에게도 싸움을 걸었고, 상대가 받아 주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전부 그의 승리로 끝났다.
솔직히 제대로 실력을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3위계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라반은 자만했고 겁이 없어졌다.
그리고 자만이 절정에 달했을 때 카이세를 만나게 되었다.
카이세는 유약해 보이는 겉모습에 생기까지 없어 애초에 라이벌로 여긴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빵셔틀 정도로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함께 임무를 나갔던 길에 카이세에게 일방적으로 화풀이를 했다.
본인이 제일 잘났는데 상부 운운하며 말꼬투리를 잡는 카이세가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었다.
‘그 후로는··· 상상하기도 싫다.’
라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란 감정을 경험했다.
단순히 죽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카이세란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끝없는 악의와 시꺼먼 마음이 그의 마음을 허물어지게 했던 것이다.
라반은 팔뚝이 터져 나가도록 도끼를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쩌ㅡㅡㅡㅡㅡ어엉!!
다시 그런 감각을 느끼는 건 사양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흥분으로 격해진 라반의 마력이 사방을 들쑤시며 치솟았다.
“저 멍청이가!”
아루무는 시우의 반격을 적절히 흘려 내면서 라반의 공격이 먹혀들 수 있도록 방향을 조종했다.
1분이라는 시간 제약 덕분일까.
놈의 강격은 초가 흐를수록 더욱 빠르고, 더욱 격해졌다.
시우의 몸 군데군데에 생채기가 나며 흘러나오는 피로 옷이 젖어 갔다.
하지만 시우는 곧바로 힐을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떨어져 마력 감지를 발동했을 때, 어렴풋이 느꼈던 그 감각.
‘여기··· 마계 근처다;
마기가 짙은 곳에서는 마력 운용이 훨씬 더 더디고 뻑뻑했고, 단순한 육체 강화도 그 효율이 떨어졌다.
특히 ‘빛’ 속성이라고 알려진 힐 같은 경우는 마력 사용이 배가되었고, 그 위력 또한 현저히 줄곤 했다.
따라서 자잘한 상처는 한 번에 치료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시우는 무겁기 짝이 없는 라반의 도끼질을 전부 맞받아 흘려 냈지만, 아루무의 방향 전환 때문에 생기는 상처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방어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다른 이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처음엔 저 카이세라는 놈이 뭐라도 하려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놈은 팔짱을 낀 채 라반의 전투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1분이란 시간이 거의 지났다.
“크으으으윽!!”
진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라반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마력과 마기를 한꺼번에 방사했다.
콰가ㅡㅡㅡㅡII
시우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덧대어졌다.
‘오랜만에 온 곳이라 그런지 마력 사용이 조금 버겁네. 일부러 이곳으로 공간 이동시킨 건가.’
마계는 힐러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만약 시우가 힐러라는 걸 알고 실행한 계획이라면, 카이세라는 놈은 상당히 용의주도한 놈일 터 였다.
그 순간 웬 유리병이 날아오더니 시우의 코앞에서 멈췄다.
“흐야아압!!”
아루무의 도움을 받은 라반의 도끼가 병을 향해 휘둘러졌다.
쨍그랑!!
병이 깨지며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시우의 몸을 적셨다.
“···이게 뭔···.”
역한 피비린내가 풍긴다. 시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몸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며 불길한 생각이 스친다.
“이야~ 작전 성공했군요, 라반 씨.”
카이세의 비릿한 웃음이 그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
“하면, 이번 선거에서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자네만 믿고 있겠네! 조심히 가도록 하게나.”
카길 후안은 맞은편에 앉은 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카길 후안은 자신의 서재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끼이익.
깊숙이 앉은 가죽 의자에서 소리가 난다.
그는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표의 비율을 보자면 6 대 4 정도로 자신이 유리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단 말이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7 대 3에서 8 대 2 정도는 되었는데, 민시우라는 놈이 등장하면서 에드워드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올랐다.
‘멍청한 헌터 새끼들 같으니, 그깟 실력주의가 뭐라고.’
카길 후안은 술 보관함에 있던 로얄 살루트 38년산을 꺼내 미니 글라스에 따랐다.
부드러운 아몬드 향이 풍긴다.
스트레이트로 한입에 들이켜자 풍부한 과일 향과 꽃 향이 화끈하게 지난다.
“크으ㅡ. 그래 이거지.”
카길 후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슬럼가에서 태어나 자랐던 그에게, 과연 이런 미래가 올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모두 ‘너는 20살도 안 돼서 마약에 찌들어 뒈질 거다.’라는 말만 했을 뿐.
하지만 카길 후안은 살아남았고, 버텼고, 이루었다.
그의 서재엔 온갖 종류의 고급 양주와 와인이 즐비했고, 담배도 종류별로 비치되어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지하에는 특별한 손님들을 위한 ‘약’도 잔뜩 쌓여 있었다.
“병신들. 결국 모든 힘은 권력으로 통하는 법이거늘.”
그는 술잔을 다시 채웠다.
이제 회장이 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재수 없는 블랙우드 가문도, 자신을 멸시하던 귀족들도 모두 그의 발아래서 조아리게 될 것이다.
똑똑똑.
“뭐냐.”
카길 후안이 물었다.
“후안 씨, 손님이 왔습니다.”
이제는 그의 비밀스러운 측근이 된 마르코가 서재 문을 열고 말했다.
“손님이라니··· 오늘은 예정된 스케줄이 끝났을 텐데.”
“예, 저도 그렇게 말은 했는데. 저쪽에서 한마디만 전해 주면 된다고 말을 해서요.”
“뭐를 말인가?”
마르코는 볼을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게··· ‘민시우 호텔 건을 담당했던 히트맨’이라고 전해 달라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