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아수라
교육이 시작되기 하루 전.
“돌격조장님, 길드장님이 사무실로 올라오시라는데요.”
“씨발, 귀찮게··· 곧 간다 그래.’
추하민은 땀을 뚝뚝 흘리며 하던 푸시업을 마저 했다.
단단한 근육들이 꿈틀거린다.
그와 동시에 등에 새긴 삼면육비의 아수라 문신이 살아 숨 쉴 듯 움직인다.
‘백사자의 아수라’
그를 가리키는 세간의 헌터 이명이었다.
싸우는 모습이 마치 신화에 나오는 아수라를 닮았다 하며 붙여진 이름.
흉터 가득한 근육이 터질 듯 부풀며 핏줄이 불거진다.
열기로 붉어진 피부 탓에 아수라의 색이 더 진해진 착각마저 든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 직원들은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평소 성격을 생각하면 저 문신은 잘 어울리다 못해 추하민을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라 해도 무방했다.
“세트 끝났다. 가자.”
“예!”
추하민은 자신에게 뭍은 ‘아수라’란 특징을 좋아했다.
헌터의 이명은 본인이 짓는 것도 아니고,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헌터의 활약을 본 시민들이 자연스레 붙여 주는 것.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이름과 문신, 그리고 자신이 속한 길드를 자랑으로 여겼다.
[백사자 길드]대한민국 랭킹 8위 헌터인 최성일이 세운 길드이자 국내 최고의 일곱 길드 중 하나.
추하민은 그런 길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돌격조장이란 것도 그의 저돌성과 강한 능력을 본 간부들이 추천해서 이루어진 것.
그는 타이가 없는 검은 수트 차림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최성일이 있는 곳은 이 대형 빌딩의 가장 꼭대기 층.
길드장실에 들어가니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와 함께 고급스러운 사무실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 뭡니까.”
추하민은 털레털레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보통 다른 길드원 같으면 일어날 수 없는 엄청난 결례였지만, 최성일은 그에게 아무런 불쾌함도 표시하지 않았다.
“좀 늦었군.”
“사우나에서 땀 좀 빼느라.”
추하민은 테이블 위에 발까지 올리며 거드름을 피웠다.
“편하게 앉으라 하고 싶은데 이미 앉았으니···.”
“······.”
최성일의 핀잔 아닌 핀잔에 추하민은 새끼손가락으로 귀까지 후볐다.
노골적으로 듣기 싫다는 제스처.
그러나 최성일은 부하의 무례함에도 빙긋 웃기만 했다.
“뭐,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외근 하나 해 줘야겠는데.”
“외근? 어디서 게이트라도 열린답니까?”
“아니. HMCS에서 공문이 와서. 특강 연다고 협조를 요청했거든. 신입 헌터들 보호자로 좀 다녀와 줘야겠어.”
“에이 씨발! 그걸 왜 내가 해! 인사팀이나 관리팀 애들 시키쇼!”
진심으로 짜증이 솟구쳤는지 추하민은 핏대까지 세워가며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이건 선을 넘는 행위였지만, 그의 성격이 워낙 더럽기도 하거니와 최성일이 대인배라 넘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너 [적광]의 거트는 어떻게 생각해?”
“···갑자기 그 씹새끼 이름은 왜 꺼냅니까.”
추하민은 난데없는 거트의 들먹임에 이를 드러냈다.
둘은 예전부터 견원지간이었고 언론에선 그런 관계를 이용해 교묘한 라이벌 구도를 구축했었다.
[적광]의 거트냐, [백사자]의 추하민이냐.하지만 그런 구도도 추하민이 A+급으로 오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깨지게 됐다.
이제는 비교한다는 것조차 그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
“그게 몇 년 전인 줄 알고 그러쇼? 싸우면 상대도 안 되게 좆 바를 수 있습니다. 뭣하면 씨발 오늘이라도 뜨자고 하든가.”
“워ㅡ 진정하지. 그냥 거트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뿐이야.”
“어떻게 생각하긴 썅, 존나 무식하고 힘만 센 새끼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거트는 강한 헌터인가?”
추하민은 날카로운 눈을 빛내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
손가락으로 소파 손잡이를 툭툭 때리던 그는 조금 전보단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합니다. S급을 제외한 전투 계열 헌터 중에서 무시할 놈은 없을 정도로.”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그의 판단에 최성일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추하민은 감정적이긴 하나 필요한 상황에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냉철함이 있었다.
그를 돌격조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러한 조화 덕분.
“그럼 얼마 전 HMCS 헌터가 거트를 잡는 영상도 봤겠군.”
“그거 아직 확실하지 않은 거 아닙니까? 홍콩에 있는 다른 헌터한테 물어봐도 [적광]에서 별다른 공지가 없다던데.”
“확실하다. HMCS 한국 지부장이 인정했어.”
“······그래서 내일 외근이랑 지금 얘기한 거랑 뭔 상관이요?”
최성일은 HMCS에서 온 공문을 그에게 건네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덩치가 제법 있는 추하민이었건만, 길드장 앞에선 조금 왜소해 보일 정도로 최성일의 몸체는 컸다.
“내일 그쪽에 있는 헌터 한 명이 길드 신입들 데리고 교육을 하려 하더군. 아마 약소해진 HMCS의 위상을 조금은 높일 기회라 생각하는 모양이야.”
“······.”
“그 교육 담당하는 자가 거트를 이긴 헌터다.”
“······.”
“그냥 보고 와. 어떤 헌터인지 나도 궁금하니까.”
최성일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만약 괜찮은 인재라면 수십억을 줘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아니지, 거트를 이길 정도의 강한 헌터가 아닌가.
‘백억도 아깝지 않지.’
하지만 진짜일까? 그만한 헌터가 왜 HMCS에 몸담고 있는 것인지 쉬이 납득되질 않는다.
어느 길드건 그만한 실력자라면 못해도 수십억은 지불하려 할 텐데.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했지.’
작은 불씨라도 의구심은 떨쳐 버려야 하는 법.
가능성은 낮지만 HMCS에서 다른 헌터를 기용한 뒤 조작을 했을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 HMCS는 그만큼 세력이 줄어든 상태였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곳에서 무슨 짓인들 못 할까.
“어쨌든 신입들 잘 챙기고, 교육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좀 보고. 특히 그 헌터 역량 좀 관찰하고 와.”
“그럼 내 맘대로 관찰합니다?”
추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털레털레 다시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그의 모습.
그러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 직원들은 추하민이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추하민은 받아 온 공문 자료를 사정없이 구겼다.
‘거트를 이겼다···?’
모처럼 가라앉아 있던 투쟁심에 기름이 끼얹어진 순간이었다.
***
개판이군.
개판이야.
연습용 던전으로 신입 헌터들을 데리고 온 시우는 자신의 표정이 점점 썩는 것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한숨밖에 안 나왔다.
마력의 기초적인 운용을 가르친 뒤 원래 예정했었던 모의 전투를 하러 던전에 들어왔다.
그리고 각자 조를 짜서 눈앞의 몬스터를 처치하라 지시했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면 스킬 사용은 불가였다.
순전히 마력과 신체적인 능력만을 통해 없애라고 한 터.
그러나 무기 사용법이 글러 먹었다.
마치 침팬지에게 첼로를 주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해 보라고 한 기분이다.
“시우 쌤! 저 잘하고 있죠?! 꺄악!!”
여성은 스켈레톤의 공격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뛰었다.
두 개를 가르쳐 주면 하나를 까먹는 여자,
신지수.
오늘 교육생 중에 그녀가 있을 줄은 시우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동생의 길드인 [제국 길드]에 들어갔다고 한다.
“야, 나 부를 시간에 몬스터나 쳐다봐.”
시우는 바위에 걸터앉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에서 곡소리처럼 신입 헌터들의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으아아! 서, 선생님!!”
“꺄악! 이거 어떻게 죽여요?!”
“포, 포션! 포션 하나만 주세요!”
“이 씨발놈들! 팔에서 피나잖아!”
각기 다른 몬스터들과 대치 중인 헌터들은 ‘신입’이라는 이름조차 아까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적어도 시우의 눈에는 그랬다.
대체 길드란 곳에선 뭘 가르치는 거야.
각성 헌터란 이미 일반인에 비해 신체 능력이 월등하단 것을 뜻한다.
거기다 마력까지 활용할 줄 알면 저런 하급 몬스터 따위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없앨 수 있다.
그런 게 헌터인데···.
눈앞에 있는 놈들은 우왕좌왕하며 공격을 피하기에만 바빴다.
무기든 마력이든 활용도가 10%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모습.
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근처에서 잡음 하나가 들려온다.
“에이 씨발, 이래 가지고 오늘 안에 토끼 하나 잡겠어? HMCS에서 언제부터 남 가르쳤다고.”
“어허이~ 진정해. 다들 오늘 처음 배우는 거잖아.”
“배우긴 뭘 배워, 개좆같이 배웠겠다. 아까부터 보니까 애새끼들한테 쓸데없는 것만 가르치잖아.”
“아, 이 친구 오늘따라 왜 이래. 다 들리겠어.”
“듣든지 말든지 씨발! [백사자]가 언제부터 HMCS 따위 눈치 봤다고.”
시우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놓고 자신에게 쿠사리를 먹이는 추하민과 옆에서 만류하는 석태지의 모습.
야마토란 자는 팔짱을 낀 채 멀거니 쳐다만 보고 있다.
“보니까 지도 튜토리얼 탑에서 얼마 전에 나왔더구만 누가 누굴 가르쳐. 아직 랭킹 측정도 안 해서 등급도 없는 새끼인데!”
“이 친구 오늘따라 왜··· 하하하, 민시우 헌터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희끼리 농담한 거예요!”
시우의 시선을 느낀 석태지가 중간에서 겸연쩍은 웃음을 내보인다.
시우는 옆에 있던 추하민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추하민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레 시우에게 입을 뻥긋거렸다.
‘새. 꺄. 좆. 까. 라.’
입 모양을 보아하니 대충 저리 지껄였는데.
【저놈이 뭐라는 거냐? 치킨을 시켜라?】
“···옐로카드 두 장.”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이동했다.
한번 부딪칠까 했는데 프레의 말에 힘이 빠져 버렸다.
옐로카드 한 장만 더 쌓여 봐라.
그는 가장 엉망인 신입 쪽으로 향했다.
“야.”
“으갸아악! 이 괴물 새끼들!!”
캉! 캉!
그 신입 헌터는 엉성한 검술로 해머를 든 스켈레톤과 대치 중이었다.
말이 좋아 대치지, 파리를 쫓듯이 검을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모양새에 지나지 않았다.
“으익!! 죽어! 죽으라고!”
“어휴.”
시우는 그자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딱, 소리와 함께 고개가 앞으로 꺾인다.
“에???”
“무슨 오케스트라 지휘하냐? 검 이리 내.”
“어? 어? 예··· 예.”
“너 이름 뭐야?”
“오, 오강오입니다.”
시우는 오강오에게 받아 든 검을 들고 스켈레톤 앞에 섰다.
백골의 괴물은 악만 남았는지 뼈를 삐걱거리며 텅 빈 눈으로 시우를 노려봤다.
“내가 검쓰는 거 봐.”
– 크어어억
해머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시우는 날을 비틀어 검신으로 공격을 받아 냈다.
캉!
불똥이 튀긴다.
검을 사선으로 튼다.
해머가 날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시우는 약간의 반동으로 해머를 밀쳐낸 뒤 스켈레톤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순식간이다.
검을 아래에서 사선으로 그어 을린다.
빛의 궤적이 그려지며 긴 선이 잔상으로 남는다.
빠가가캉!
갈빗대가 연속으로 부러져 나간다.
스켈레톤은 뒤늦게 바닥에 꽂힌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늦었다.
빠각!
스켈레톤의 골통이 반으로 쪼개지며 몸이 후드득 무너져 내린다.
공방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일방적인 처치.
“봤어? 검을 휘두를 때 시선이 목표를 향해 있어야 할 거 아냐. 넌 눈이 계속 왔다 갔다 흔들리잖아.”
시우는 스켈레톤 머리에 박힌 검을 빼서 오강오에게 도로 건네줬다.
“그리고 날 좀 갈아라. 감자도 안 썰리겠다.”
“예··· 예.”
“다음은ㅡ”
이렇게 맨투맨으로 지도해 주면 한도 끝도 없는데.
그렇지만 제각기 다른 이유로 개판인 상황이라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쭉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이벤트성으로 하는 하루짜리 교육이니.
‘오늘만 참자.’
시우는 엉망으로 싸우고 있는 다른 신입 헌터를 찾아 이동했다.
“야, 주먹을 왜 그렇게 휘둘러.’
물론 라이브로 송출된다고 존대를 해 주거나 자상하게 가르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 이렇게 배워서요.”
몬스터와 싸우던 헌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꾸했다.
기본기도 체술도 하나 없어 보이는 동작이다.
“그따위로 휘두르면 고블린 콧구멍 하나도 안 다치겠다. 대체 어디서 배웠어.”
시우가 그 헌터에게 다가가 주먹 휘두르는 법을 가르치려는 순간,
퍽!
단단한 나뭇가지가 볼을 스치며 날아가 뒤에 있던 바위에 부딪쳤다.
“···뭐냐.”
자신을 빗맞힐 걸 알고 있던 시우는 상대를 향해 물었다.
“그따위로 휘두르게 알려 준 선생이다, 씨발놈아. 일부러 나 들으라고 지껄인 거 아냐!”
설마하니 지금 가르치려 했던 헌터가 추하민 소속 신입이었을 줄이야.
“내가 직접 가르쳐 준 주먹질에 불만이라도 있어? HMCS 따까리 따위가 보자 보자 하니까 막 기어오르네. 씨발, 존심 상하게.”
애초에 뭐 하나만 걸리길 바란 것처럼 득달같은 반응이다.
시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 주는 것도 나름의 도리가 아닐까.
“필요하면 너도 교육받아. 마력 날리는 꼴 보니까 너나 신입 헌터나 또이또이 하다.”
“큭큭, 이 씨발. 하급 헌터 새끼가 주둥이만 살아서!”
마력을 가득 운용한 추하민의 신형이 번개같이 날아왔다.
시우는 주먹을 까드득 움켜쥐었다.
진정한 참교육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