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84
187화〉
선거
시우가 서울로 다시 돌아온 건 하루가 넘어간 새벽이었다.
마계 근처로 공간 이동을 당한 탓에 돌아오기 위한 마법진을 그려야 했는데, 장장 9시간에 걸친 술식 그리기가 끝난 뒤에도 가지고 있는 마정석이 없어서 에테르까지 사용해야 했다.
시우는 기껏 채워 놨던 단전이 텅 비자 평소 즐기지 않던 마력 포션이라도 마시고픈 생각이 들었다.
“슨배임··· 대체 어디 갔다가 오신 겁니까?”
늦은 시간까지 현장에서 뒤처리하고 있던 황정구가 시우를 발견하더니 반색하며 물었다.
“납치당했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예? 납치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어디서 또 사람 반 죽여 놓고 오셨어요?”
황정구는 시우를 쳐다보더니, 별 희한한 농담을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새끼, 왜 내 말을 안 믿지.’
시우는 그런 황정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중에 군기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황정구는 알 수 없는 한기가 도는 걸 느꼈다.
“갑자기 소름이···. 그런데 슨배임, 미국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늘 저녁 출발이니까 아직 시간 있어.”
“오··· 그러면 뭡니까? 설마 현장 정리 도와주러 오신 거예요?”
“내가 미쳤냐?”
“예, 뭐.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럼 어쩐 일이신데요?”
“네가 저녁 산다며.”
“······.”
【배고파서 허리랑 배꼽이랑 달라붙는 것이다! 오늘 고기를 먹지 않으면 파업하고야 말 것이다!】
“들었지? 밥 먹으러 가자.”
“저기요, 슨배임. 저 아직 뒷정리할 게 엄청 많아서요.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밥 먹고 와서 마저 작업해. 가자.”
시우는 황정구의 머리에 팔을 두르곤 그를 끌고 갔다.
“자, 잠깐만요! 아, 밑에 애들도 보는데! 슨배임!!”
***
카길 후안은 서재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깊게 빨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틀이 채 남지 않은 기간에 그의 앞날이 정해지게 된다.
카길 후안은 파이프 담배를 내려놓고 술 진열대에서 가장 독한 술을 컵에 따라 들이켰다.
“크으···!”
목구멍을 태울 것처럼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이 정신을 맑게 만든다.
그는 연거푸 한 잔을 더 따라 마신 뒤에야 불안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끼이익.
가죽 의자가 뒤로 기울어지며 소리가 울린다.
“초조하구먼.”
어느 곳에 있든지 카길 후안은 늘 정상이 되고 싶었다.
그곳이 미천한 할렘가이든, 지하 세계의 돈세탁을 해 주는 곳이든, 귀천에 상관없이 최고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았다.
따라서 HMCS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의 목표는 이곳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지 못했었다.
정점이 된다는 건, 다시 말해 정점을 떠받치고 있는 다리를 하나씩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위를 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지금껏 그가 목표로 해서 이루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카르텔의 두목이 되었던 것도 밑바닥에서부터 고작 3년밖에 걸리지 않은 일이었으니, 이번에도 비슷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HMCS의 정상은 그 어떤 자리의 그릇과도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빌어먹을··· 블랙우드 가문.”
카길 후안은 알딸딸한 기운에 본심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인지도 면에서나 위세 면에서는 카길 후안이 감히 에드워드 C. 블랙우드에게 비비지도 못 했지만, 그에겐 에드워드에게 없는 한 가지 능력이 있었다.
로비.
과거 조직에 있었을 때부터 키워 왔던 능력이다.
그는 로비스트답게 전방위적인 설계를 한 후 커넥션을 구축했고 그 결과, HMCS 내에서 카길 후안의 입지는 에드워드 못지않게 커질 수 있었다.
단 한 걸음이었다.
그 한 걸음만 내디딜 수 있다면 카길 후안은 이제껏 가 닿지 못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블랙우드라는 가문이 가진 상징성에 가로막혀 몇 년이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처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에드워드.”
카길 후안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선언하듯 읊조렸다.
고작 한 집단의 수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권력.
그 권력만 손에 쥘 수 있다면 두 손 가득 피를 묻힌다 하더라도 기쁨으로 만끽할 것이다.
삐리리링.
그 순간 카길 후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요란한 벨 소리에 그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옮겨졌다.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전화를 받자마자 카길 후안이 상대에게 질문했다.
– 준비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해야지.
“이봐, 크롤. 회의에 참석하는 건 나지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밑 작업을 해 주는 게 자네의 역할 아닌가?”
–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고. 그렇다고 에드워드란 놈을 잡아다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내가 먼저 했을 걸세.”
카길 후안이라고 그 수를 떠올리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로도 꼽힐 수 없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에드워드가 납치되거나 죽임을 당하는 순간, 전 세계에 있는 HMCS 헌터들이 길길이 날뛰며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야단법석을 피울 것이 자명한 일.
괜히 벌통을 건드려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에드워드를 직접적으로 건드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 아무튼 조직에서 심어 놓은 각계의 인사들을 동원해서 최대한 표를 끌어오려고는 했어. 여기에 당신 지지자들까지 포함하면 무난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말을 해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군. 정작 최대의 걸림돌이 치워지지 않았으니 말이야.”
– 최대의 걸림돌?
크롤이 묻자 카길 후안은 술을 한 잔 더 따라 마신 뒤 입을 열었다.
“민시우 말일세. 분명 그자는 처리되는 거겠지?”
잠시 휴대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카길 후안이 재차 질문을 하려는 찰나 상대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 그럴 거다. 내 동료가 그러겠다고 했으니까. 재수 없는 놈이긴 해도 실력 하나는 확실하거든.
“미국에 오기 전에 작전을 시행하는 게 맞나?”
– 후ㅡ 의심이 많군, 당신. 이미 작전에 들어갔다는 연락이 왔다. 민시우는 죽는다, 100퍼센트. 비행기는커녕 공항 근처에 발도 못 디디게 될 거야.
“끌끌끌, 그래? 믿고 있겠다. 놈만 없다면 이번 선거에서 에드워드의 지분을 확 깎아 놓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내, 〈판데모니엄〉에 섭섭지 않게 보상해 주지.”
– ···알겠다. 기대하고 있겠다.
크롤은 잠시 대답을 망설이더니 수긍하며 통화를 끝냈다.
“쯧.”
카길 후안은 혀를 찼다.
녀석의 태도는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방지게 ‘당신’이라는 표현을 쓰질 않나, 반말을 지껄이질 않나.
하지만 이제 저 꼴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가 회장이 되면 〈판데모니엄〉에 말해서 네놈을 저 바닥으로 강등시켜 주마.’
HMCS 국제 총본의 회장이면 아무리 〈판데모니엄〉과 같은 거대 조직이라 할지라도 카길 후안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터.
다루기 쉬운 폰(Pawn)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골랐을 테지만, 그는 폰을 가장한 킹(King)이었다.
“저기요, 후안 씨. 해리가 찾아왔습니다.”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는데, 노크와 함께 마르코가 들어왔다.
뒤이어 따라 들어온 해리를 발견한 카길 후안이 슬쩍 비웃음을 머금은 채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이거, 안타까워서 어쩌나. 자네들한테 의뢰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방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민시우는 곧 죽을 거라는군.”
“미스터 후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속한 조직에서 놈을 처리할 거라고 했거든. 아마 미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할 거라며 말이야.”
“글쎄요. 그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정보에 무척 느리다는 거군요.”
“그게 무슨 말이지?”
해리는 대답 대신에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화면 하나를 띄워 그에게 보여 주었다.
화면 속에는 공항 CCTV로 보이는 곳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민시우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뭐··· 뭐야?! 멀쩡하잖아, 이 새끼!”
“그렇습니다. 미스터 후안, 당신의 정보 출처가 누군지는 몰라도 믿을 만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영상은 1시간 전에 찍힌 것이니··· 조금 있으면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겠군요.”
“빌어먹을··· 크롤 이 개같은 놈이!!”
불과 몇십 초 전에 들은 말이 무색하게, 시우는 아주 멀쩡한 모습이었다.
카길 후안은 씩씩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당장에라도 크롤 자식의 면전에다 이 영상을 틀어 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해리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뭔가···!”
“진정하십시오, 미스터 후안. 이걸 막기 위해 저희를 고용하시려고 했던 게 아니었습니까?”
카길 후안은 잠시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는 아직 해리 일당을 직접적으로 고용한 상태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보험은 보험일 뿐, 손을 쓰는 건 〈판데모니엄〉이 한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렸던 것이다.
“정말 돈을 주면 처리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저희가 몸을 숨긴 동안 무얼 했겠습니까? 녀석을 다시 처리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 놨습니다, 미스터 후안. 믿어 주십시오.”
“···알았네, 마지막으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도록 하지.”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못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카길 후안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 느긋이 대꾸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었다.
민시우가 나타나면 내일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후안. 반드시 민시우를 죽여서 꼭 HMCS 회장직에 앉을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알았네. 명심하게, 녀석이 절대로 회의장에 오는 일은 없어야 해. 만약 놈이 살아 있는 걸 내가 보게 되면···.”
그는 검지와 중지를 펴서 해리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자네들은 두 번 다시 해를 못 보게 될 줄 알아. 알았나?”
“명심하겠습니다.”
해리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조용히 사라졌다.
“이봐, 마르코.”
“왜 그러십니까, 카길 씨.”
“저 녀석들 잘 감시해. 혹시라도 말이 새어 나갈 것 같으면··· 알지?”
“마르티네즈가 따라다니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으음.”
카길 후안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원탁의 거대한 대회의장.
그곳에 앉은 수십여 명의 사람과 원탁을 둘러싼 바깥에 앉은 백여 명의 사람들.
HMCS 총본의 간부들과 상급 이상의 헌터들은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침묵한 채 회의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블랙우드 경.”
“오랜만이오, 카길 후안.”
HMCS를 양분하는 두 거두가 날 선 눈빛으로 인사했다.
“자,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회의 진행자가 아직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가벼운 안건 몇 개가 화두로 올랐고, 사람들이 그때마다 작게 한두 마디를 보태면 안건이 통과됐다.
“···자, 그다음 오늘의 마지막 안건입니다. 현재 공석인 HMCS 총본 회장에 대한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회장 후보로는 현재 부회장이신 에드워드 C. 블랙우드 경, 그리고 간부이신 카길 후안 씨가 나서기로 했습니다.”
진행자의 호명에 따라 에드워드와 카길 후안이 번갈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이에 대해 이견이 있으신 분이 있으십니까? 없다면 바로 투표를 진행하도록 하겠···.”
“이의 있습니다.”
그때 간부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무슨 이의십니까?”
“민시우 헌터에 대한 부정 의혹이 있던데 말이죠.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카길 후안을 향해 슬쩍 미소를 던지며 진행자에게 자료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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