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낯설지 않은
추하민은 처음 민시우를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느적지근하고 권태로워 보이는 표정부터 건방져 보이는 행동까지.
자신의 스승이 떠오른 탓이다.
비록 반년도 채 배우지 못한 스승이긴 하나, 그가 지금 이 자리까지 있게 해 준 고마운 은사임엔 틀림없는 사실.
‘스승님은 규격 외였었지.’
추하민에게 가르침을 전해 준 헌터는 사실상 괴물 그 자체였다.
그의 등에 새긴 아수라의 형상은 스승의 전투로부터 영감을 받아 참고하여 그린 것이었다.
대중들은 그의 싸움 방식과 아수라의 신형이 흡사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추하민은 스승에 비하자면 자신 따위는 아수라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민시우에게서 스승의 권태로움이 엿보인 것이다.
순간적으로 든 그 생각이 추하민의 짜증을 유발했다.
‘저런 허접쓰레기에게서 내가 스승의 모습을··· 기도 안 차네, 씨발.’
게다가 실제로 확인한 민시우의 상태는 마력량도 형편없었다.
A급은커녕 B급의 격도 제대로 견디지 못할 수준 낮은 잠재력.
‘거트한테 비빌 능력치고는 허접해 보이는데. 고작해야 D급? 많아야 C급 정도의 마나나 되려나.’
추하민은 냉철한 이성을 돌렸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이 새끼, HMCS에서 조미료 친 것 같은데.’
반반하게 생긴 신입 하나를 데려다 새로운 전투 헌터랍시고 HMCS에서 포장한 게 분명하다.
실제로 거트를 잡은 건 다른 외부 헌터의 짓이 틀림없고.
‘이딴 교육 이벤트도 뻔하지. 어쩐지 백건호 정도 되는 양반이 직접 나섰다 했는데··· 이놈이 HMCS 얼굴마담이라 이거지?’
능력 있는 헌터라면 그만한 대가를 주는 길드를 택하는 게 당연지사.
HMCS 같은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각성자는 손에 꼽힌다.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 독일, 일본 같은 경우엔 HMCS라도 그만한 혜택과 복지를 지원해 준다.
하나 대한민국은 말단 공무원 봉급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
‘관찰만 하라 했지만, 한 번 질러 봐?’
생각이 맞다면 저놈은 절대 도발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A+급 헌터 셋을 보고도 건들건들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제대로 된 ‘격’을 경험하지 못한 초심자란 증거.
“에이 씨발, 이래 갖고 오늘 안에 토끼 하나 잡겠어? HMCS에서 언제부터 남 가르쳤다고.”
“어허이~ 진정해. 다들 오늘 처음 배우는 거잖아.”
일부러 들으란 듯 거침없이 소리쳤다.
옆에 있던 석태지가 만류하자 추하민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녀석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보니까 지도 튜토리얼 탑에서 얼마 전에 나왔더구만 누가 누굴 가르쳐. 아직 랭킹 측정도 안 해서 등급도 없는 새끼인데!”
드디어 놈의 고개가 돌아간다.
추하민은 히죽 웃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입을 뻥긋거리며 도발을 날렸다.
보통 이 정도 되면 실력이 부족한 헌터라도 성질에 못 이겨 발끈하기 마련이다.
헌터로서의 자존심이란 게 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다른 쪽으로 가 버렸다.
“씨발··· 쫄아서 토끼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추하민은 한 걸음 더 내딛기로 했다.
‘어디 좆같은 삼류 헌터 따위가 1급 길드원을 교육하려고 들어 건방지게.’
격 차이를 보여 주마.
꼬투리를 잡자마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힘껏 내던졌다.
민시우는 나뭇가지가 날아오는 것도 몰랐는지 엉거주춤 서 있기만 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막 기어오르네. 씨발, 존심 상하게.”
추하민은 기회를 잡았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물러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HMCS의 수치가 될 터.
먼저 도발을 날리고 비매너 짓을 한 건 자신이니 한동안 구설에 오르긴 하겠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착한 헌터 이미지도 아니었는데.
오히려 최근 잘 나간다는 HMCS 헌터를 피떡으로 만들면 악명과 함께 몸값이 올라갈 것이다.
‘거품은 빼라고 있는 거지.’
나뭇가지를 던진 게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민시우가 몸을 움직이려 한다.
추하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스승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 전투는 주먹이 다가 아니야. 멘탈과 감정을 헤집어 놓는 게 더 중요하지.
– 도발은 최대한 빡이 치게 해라. 상대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단계면 성공한 거다.
– 눈 마주치면 욕부터 갈겨.
언제나 경전처럼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는 스승의 가르침.
추하민은 민시우의 멘탈이 흔들렸다고 확신했다.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을 상위 격의 헌터. 그리고 수많은 인파 앞에서의 대인전.
그 어느 것 하나 민시우란 놈에게 익숙한 것은 없을 터.
추하민은 단전에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뱃속으로 기분 좋은 파도가 들이치듯 선선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돌기 시작했다.
마나가 들이찬 근육이 꿈틀거리며 주체못한 힘들이 피부 바깥으로 일렁일렁 피어올랐다.
“넌 끝났어. 이 새끼야!”
추하민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멍청하게 다가오던 민시우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바람이 스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내뻗은 라이트 훅이 상대방에게 묵직이 내리꽂힌다.
손가락을 타고 기분 좋은 타격음이 울려 퍼진다.
뻐어어어어억!
“무, 무슨 소리야?”
“뭐 터졌나?”
“이런 던전에 터질 게 뭐가 있다고 터져. 누가 폭발 관련된 마법 쓴 거 아니야?”
그들이 싸우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시선을 돌렸다.
그만큼 일반적으로 사람을 때려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닌 굉음이 울린 것.
‘정확하게 꽂혀 들어갔다.’
추하민은 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는 곳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실시간 뉴스에 뜰 것이다.
[백사자 길드] 아수라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 HMCS의 라이징 스타라며 말이다.“그러게 HMCS 따위가 적당히 나댔어야지. 치료비는 나중에 내가 보내···.”
그러나 비웃음 가득한 그의 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먼지가 가라앉은 곳 너머, 민시우가 팔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멀쩡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어떻게···?”
“그딴 물주먹 맞고 쓰러지는 새끼도 있냐?”
추하민은 알 수 있었다.
놈의 말이 허풍이 아니란 것을.
민시우는 정말 노골적으로 지루하단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분명 손끝으로 정확히 들어간 감각이 있었는데.’
게다가 그냥 맨주먹도 아닌 마력을 실은 주먹.
물론 100%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것은 아니었다.
만약 진심으로 내갈긴다면 녀석의 몸이 으깬 토마토처럼 터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강약을 조절한 것.
‘그렇지만 가볍게 막을 수준도 아니었다.’
추하민은 눈빛을 달리했다.
녀석이 무슨 술수를 썼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A+급 헌터의 일격을 맞고도 멀쩡할 정도의 기술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야, 저기 싸움 붙었다.”
“헐ㅡ 저기 아수라 아냐?”
“맞네 아수라! 근데 오늘 교육 담당자랑 왜 싸우는 거야?”
“말려야 하지 않냐? 아수라한테 걸리면 뒈지는 걸 텐데···.”
“미친 새까, 네가 말릴래?”
그때 소란을 들은 사람들이 우르르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선뜻 그들의 싸움을 제지하진 못했다.
“뭐 해? 안 들어와? 내가 갈까?”
민시우가 껄렁껄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표정부터 말투, 태도에 이르기까지 긴장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이다.
‘이 새끼, 사람들 몰려왔다고 내가 벌인 판을 접을 줄 아나? 그깟 이미지 때문에?’
추하민은 어금니를 까드득 깨물었다.
기가 찼다.
[백사자]라는 이름과 더불어 ‘아수라’라는 아명에 저놈이 똥칠하는 기분이 들었다.“크크··· 미치겠군. 삼류 HMCS 따위한테 이딴 말이나 듣고.”
대충 뼈나 몇 개 분지르고 끝내려 했는데, 녀석이 선을 넘었다.
추하민은 마력을 더 빠르게 운용했다.
이제 누군가 달려들어 말려도 늦었다.
뼈 한두 개로는 이 거지 같은 기분을 털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하급 헌터 새끼, 골통이 빠개져야 정신을 차리지.”
“물주먹 갖고 해 볼 수 있으면 하고.”
추하민의 도발에 민시우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일관된 귀찮음이었다.
오히려 도발을 당하고 있는 것이 본인이란 사실을 추하민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상대의 반응이 본인의 예상과는 달리 돌아가자 거기에서 오는 짜증이 눈을 가린 것이다.
“원망하려면 네 새끼 혓바닥을 원망해라.”
단전에서 솟아난 마력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휘감고 시퍼런 아지랑이를 피워 올린다.
추하민의 안광이 번뜩인다.
다리에 힘을 주자 땅바닥이 움푹 파이며 지반에 미약한 진동이 인다.
팡ㅡㅡ!
신형이 총알처럼 튕겨 나간다.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빠르기로 주먹이 날아간다.
그러나 주먹은 민시우의 몸을 스치고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 개자식!”
추하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피어오르던 마력의 색이 짙어졌다.
다시금 주먹을 내질렀다.
마치 프로 복서의 그것처럼 주먹이 쉬지 않고 민시우의 몸을 가격해 나갔다.
쾅! 퍼억! 퍽! 콰아앙!
등골이 오싹해질 굉음과 함께 공격의 잔재가 사위를 칼바람처럼 할퀴었다.
캉! 콰가가! 우두둑!
지반이 튀어 오르고 나무가 부러진다.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못한 잔류 마력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 탓이다.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이런 공격에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을 것이다.
근접 헌터의 딜은 매섭고 빠르며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추하민은 발로 민시우의 복부를 걷어찼다.
뻐어어어억ㅡㅡ 쿠웅!
채찍이 휘둘러진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민시우의 몸이 저 먼 곳으로 나가떨어졌다.
“이 개새끼가··· 진작 나자빠졌으면 이렇게까지 안 했잖아.”
추하민은 흘러내린 땀방울을 훔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죽진 않았겠지만 죽을 만큼 아플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너··· 뭐야?”
민시우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일어났다.
먼지만 조금 묻었을 뿐이지 생채기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물주먹ㅡ 이게 전력이야?”
민시우가 피식 웃는다.
저건 도발이다.
추하민은 알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 보라는 상대의 얄팍한 세 치 혀다.
그런데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도발이다.
“하··· HMCS에서 장례식 하나 치르겠네.”
추하민은 자신의 상의를 찢어 벗어 던졌다.
시뻘건 아수라 문신이 그의 끓어오르는 분노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오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는 마력을 힘껏 몸으로 돌리며 한 손에 마법진을 형성했다.
붉은 마법진 속 아홉 개의 문자가 섬광을 뿜으며 그의 전신에 무형의 갑옷을 입혔다.
[아수라 : 금강난무]추하민은 마치 갑옷을 입은 장수의 형상을 하고 몸을 박찼다.
단순한 돌진이거늘, 일대에 나무가 꺾이고 지반이 터지며 상위 ‘격’의 기세가 고스란히 새겨졌다.
“크아아아아!!”
마력이 듬뿍 담긴 주먹이 민시우에게 짓쳐들어왔다.
가히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이 담긴 공격.
ㅡㅡㅡ쿠웅!! 콰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생기며 일대에 바람기둥이 일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거센 바람에 눈을 감은 채 튀어 오르는 돌가루와 먼지에 몸을 방어했다.
후두두둑.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위가 조용해진다.
바닥에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 소리와 매캐한 먼지가 차츰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도 추하민의 강격이 내리꽂힌 현장을 바라봤다.
분명 죽었을 것이다.
죽지 못했다면 오히려 고통스럽게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온갖 추측과 걱정,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을 가진 시선들이 아직 먼지가 풀풀 날리는 현장의 중심을 응시했다.
그곳엔 역시나 한 사람의 실루엣이 느긋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다른 한 사람이 형편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야, 저기 봐···.”
“저거 씨발 설마?”
“미친··· 이거 실화냐.”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아수라의 추락이었다.
***
시우는 추하민을 죽이려 했다.
설령 죽이진 않더라도 반병신 정도로는 만들려 했다.
오늘은 황정구나 HMCS라는 기관에 예의를 갖춰 몇 번 참았으나, 일반적으로 그는 걸려 오는 시비에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반신을 불구로 만들까. 아니면 양팔을 접어 버릴까.’
이런 고민을 하는 찰나에 추하민이 스킬을 발동하며 마지막 강공을 펼쳐 왔다.
그런데 그 스킬이란 게 시우의 눈에 상당히 낯이 익었다.
‘어라? 저거···.’
【뭐냐, 안 죽이냐?】
‘어. 그건 나중에 해도 돼.’
시우는 마력을 얇게 펼쳐 전신을 밀도 높게 여러 겹으로 둘러쌌다.
그리고 새빨간 마법진을 양손에 형성했다.
각각 열두 개의 문자가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그의 몸에 검붉은 전신갑주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수라: 흑갑혈무파광랑]그의 손끝에서 발한 마력의 일권이 허공에서 섬광을 쏟아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