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0
193화〉
테스트
미국 필라델피아.
많은 인파가 공원에 설치된 각종 경기장에 모여 있었다.
참여한 헌터들을 제외하고도 각종 언론사와 경기 진행 요원, 구급대원, 보안 직원들까지.
족히 천 명에 가까운 사람이 이번 행사를 위해 필라델피아로 날아왔다.
대회는 올림픽처럼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았다.
〈세계 헌터 협회〉의 협회장인 샤를 드 베르나도테 후작이 개회를 알리고, 〈HMCS 국제 총본부〉의 회장인 에드워드 C. 블랙우드 백작이 대회의 안전을 빌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거창한 선서도 없었고, 폭죽을 쏴 올린다거나 유명한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헌터들은 대회장에 마련된 각종 경기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세계 헌터 종합 능력 측정 대회’는 일반 올림픽이나 경기처럼 시간과 선수를 정해 두고 일정이 진행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측정’이기 때문에 헌터들은 아무 때나 원하는 경기장으로 가 자신의 기록을 점검하기만 하면 됐다.
물론, 인기 종목 같은 경우엔 오래 기다려야 하겠지만, 친선과 교류가 목적이라 규칙이 그리 빡빡하지는 않았다.
각자 자신의 포지션에 맞는 경기장으로 가고는 했는데, 딜러는 파괴력 위주로, 탱커는 방어력 위주로 측정하고는 했다.
“너도 마음대로 다녀. 나 신경 쓰지 말고.”
“길드장님, 같이 다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네가 부담될 거 아냐. 가서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해.”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어차피 최종 평가는 ‘가이아 시스템’인지 뭔지로 된다니까. 기록 별로 안 나왔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최강율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시우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찬찬히 훑어봤다.
해럴드에게 듣기로 평소라면 이 대회에 경비가 서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냥 단순히 길 안내와 소매치기 방지, 간단한 치안을 담당하는 역할로 헌터 협회의 몇 명이 봉사차 오는 식이었는데.
‘팀을 잘 꾸렸네.’
이번 경비는 해럴드가 직접 차출한 HMCS 요원과 헌터 협회에 따로 부탁한 정예들이 서기로 했다.
애초에 이 대회에 참가하는 헌터들의 격과 랭킹이 훨씬 높겠지만,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선 그들도 평범한 사람이니, 법을 수호할 수 있는 자들이 따로 필요할 터.
그런 의미에서 HMCS 총본의 상급과 준특급 요원들은 대인전에 능한 사람들이라 이번 작전에 잘 들어맞았다.
‘하이 랭커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지만.’
아니, 이건 모두 최악의 결과를 상정한 추측에 불과하다.
우선 그들이 〈판데모니엄〉과 어느 선까지 내통했는지 미지수이고, 이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HMCS를 상대로 맞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그저 랭커들 간의 기 싸움으로 시비가 붙은 거라면 모를까.
HMCS에 대항한다는 건 전 세계 수배범이 되어 평생 도망자로 살겠다는 각오와 다를 바 없는 행동.
‘어지간하면 큰 소란 없이 수사를 진행하는 게 베스트이긴 한데.’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껏 쌓아 온 모든 명성을 한순간에 내다 버릴 선택은 하지 않겠지만, 예외가 있었다.
만약 〈판데모니엄〉과 손을 잡거나 거래를 한 것 정도라면 약간의 처벌로 조용히 넘어갈 터.
‘그런데 손을 잡은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판데모니엄〉 조직 일원인 경우엔···.’
저항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난동을 피울 가능성도 있었다.
“스승님~!!”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웬···일은 아니구나.”
강여화와 길리온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뵙는 것 같죠!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스승님도 랭킹 체크하시려고요?”
“반갑···.”
길리온은 마스크를 벗고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사를 건넨 뒤 다시 마스크를 올렸다.
시우는 길리온의 머리를 쓰다듬는 한편 강여화를 향해 되물었다.
“나 HMCS 일 때문에 왔지. 그러는 너야말로 어쩐 일이냐?”
“아니, 어쩐 일이라뇨··· 저도 랭커니까 초대장 받고 왔죠!”
“너 랭커야?”
“···네.”
“세계 100위 안에 든다고?”
“···제자 실력도 모르시고.”
강여화는 입술을 삐죽이며 시우를 향해 작게 투덜거렸다.
“그런데 시준이는?”
“안타깝게도 스승님 동생분은 랭커가 아니시네요~.”
“하긴. 그따구로 연습하는데 누가 랭커를 시켜 주냐.”
“하하하. 그러게나 말이에요. 안 그래도 초대장 보여 주면서 한참 약 올리다 오는 길이랍니다.”
【음냐··· 다른 좁밥들도 온 것이냐?】
시우의 안주머니에서 쿨쿨 자던 프레가 강여화의 목소리를 듣고는 밖으로 기어 나왔다.
“네가 제일 좁밥같이 생겨서는 무슨 소리야.”
시우가 프레의 이마를 검지로 꾹꾹 밀었다.
【끄앙··· 괴롭히지 않는 것이다!!】
“그나저나 다른 S급들은 안 왔어? 둘만 온 거야?”
“아, 도경후 헌터는 왔는데 술 마시겠다고 따로 가셨고요. 한태치 헌터랑 채우담 헌터는 안 왔어요.”
“그 둘은 왜 안 왔대?”
“한태치 헌터는··· 자긴 어차피 학자라 랭킹이 떨어져도 상관없다면서 안 왔고, 채우담 헌터는 대한민국 랭커가 자리를 다 비우면 누가 대한민국을 지키느냐면서 안 왔어요.”
“흐음.”
시우는 채우담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계로 가기 전에 활동했던 헌터도 아니었고, 돌아와서도 딱히 접점이 있는 관계가 아니라서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말수가 많이 적고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는 것 외에는 능력조차 알기 힘들었다.
“그런데 채우담이란 사람··· 최근에 얼굴이 많이 상했던데.”
“아··· 그, 왜··· 류지환한테 살해당한 김은주 헌터 있잖아요. 그분이랑 친했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사이였다는 소문도 있고···.”
“그렇군.”
소중한 대상을 잃고 평생 씻기지 않을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은 눈빛에서부터 공허한 티가 나는 법이다.
“저희는 이제 경기 치르러 갈까 하는데, 스승님은 어떻게 하실래요?”
강여화의 물음에 시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혹시 ‘가이아 시스템’으로 평가하는 건 언제쯤 하는지 알아?”
“그건 경기 다 끝난 다음에 해요. 아마 저녁 먹는 만찬장에서 할걸요? 지난번에는 그쯤 한 거로 기억해요.”
대회에 처음 참여한 시우는 순서나 방식을 잘 몰랐지만, 해럴드와 에드워드의 말에 따르면 ‘가이아 시스템’으로 측정할 때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그때 공표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지금 미리 경비 요원들을 배치한 이유는, 혹여 〈판데모니엄〉 내에서 다른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
“그러면··· 슬슬 걸어 다니면서 구경 좀 해 볼까?”
시우의 대답에 강여화와 길리온이 활짝 웃으며 그를 끌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
마법 공학과 방위 산업체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무기들이 한 점을 향해 정밀 사격을 발포한다.
투둥둥!! 퉁퉁퉁!!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섬광 덩어리가 언덕에 박히자 수십 배의 부피를 삭제한다.
“보시다시피 초고온의 열로 순식간에 목표물을 증발시키는 이 공격은, 회사의 야심작으로써···.”
한쪽에선 무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탱커 계열의 헌터가 기록을 재고 있었다.
“크흐으읍!!”
실드를 딱 한 장만 펼쳐 총 몇 발의 섬광을 받아 내는지 알아보는 테스트.
현재 최고 기록은 열네 발을 막은 세계 7위의 하이 랭커 ‘스키너’가 차지하고 있었다.
“어, 저기 강율이 아니에요?”
강여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그녀의 말대로 최강율이 기록을 재기 위해 경기장에 나서고 있었다.
“쟤 그런데 탱커 아니잖아요. 능력 중에 막는 것도 있어요?”
“그러진 않을걸.”
“설마 실수로 경기를 잘못 나선 건 아니겠죠?”
“쟤가 바보냐.”
【걱정할 거 없다. 어제 아침에 좁밥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실드 치는 방법을 내가 직접 전수한 것이다.】
“네가 뭘 가르치··· 아니다.”
시우는 입씨름하는 대신 그냥 고개를 끄덕여 줬다.
잠시 후, 작은 섬광이 최강율을 향해 쇄도했고, 그는 시우에게 배운 대로 실드를 구축해 회전시켰다.
터더더덩!!
섬광이 실드가 회전하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튕겨 나갔다.
최강율은 마력을 계속 쏟아부어 실드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크흐읍!”
그러나 아홉 번째 섬광이 실드에 금을 가했고, 열 번째 섬광이 쐐기를 박듯 실드를 반파시켰다.
“아··· 아쉽다. 그래도 쟤 진짜 대단하네요. 어제 아침에 배운 거 맞아요? 원래 탱커 계열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강여화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경기장에서 빠져나오는 최강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길드장님, 지켜보고 계셨습니까?”
그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죄송스럽단 표정으로 물었다.
“가르쳐 준 대로 잘하던데. 여화도 칭찬 많이 하더라.”
“아닙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길드장님은 어떤 경기에 참여하실 계획이십니까?”
“난 딱히 생각해 본 게 없는데.”
“스승님, 스승님은 무조건! 공격력 측정하는 곳으로 가야죠! 거기 가면 아는 얼굴들도 좀 있을걸요?”
“저도 다음 경기는 그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함께 가시죠, 길드장님.”
공격력이라.
‘분명 하이 랭커들 대부분은 딜러 성향이었지.’
시우는 랭커들의 반응도 살필 겸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
이번 대회를 통틀어 가장 인파가 많이 밀집된 곳이 여기가 아닐까.
시우는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경기장에 모여 있는 모습에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딜러들의 공격력과 파괴력을 측정하는 테스트.
“그대도 여기에 참가하는 건가?”
경기장에 오는 길목에서 마주친 여성, 라일라가 시우에게 물었다.
“썩 내키지 않는데, 여기 꼬마들이 나가 보라고 해서.”
시우는 강여화와 길리온을 가리키며 말했다.
“스, 스승님! 제가 왜 꼬마예요!”
“난 꼬마.”
“길리온! 화를 내야죠!”
“괜찮. 나 꼬마.”
길리온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해 주는 유일한 어른이 시우뿐이라 그 색다른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한스랑 필릭스는 안 온 거야?”
“삼촌은 재활 훈련을 하느라 오지 못했고, 필릭스는 독일을 지키느라 못 오고 있지. 그대는 한국을 지키지 않고 어떻게 와 있는 거지?”
“한국은 나 말고도 지킬 사람이 많이 있어. 가령 내 남동생도 거기 있고.”
그렇게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경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험상궂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아직 식지 않은 열기를 가지고 시우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엄청난 보폭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라일라는 손을 들어 다가오는 남자를 황급히 만류했다.
“자, 잠깐! 경기장 밖에서의 다툼은 허락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기 결과가 나쁘다고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짓은ㅡ.”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오, 그동안 잘 지냈냐.”
“···화풀이하는 짓은··· 음.”
라일라는 들어 올렸던 손이 민망해지는 것을 느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소개하지. 이쪽은 을지바타르. 몽골 최고의 헌터. 그리고 이쪽은 라일라. 독일 [슈타이] 길드의 수장. 이쪽은 길리온, [무량대수] 길드장, 이쪽은 강여화, [청화 길드] 길드장. 마지막으로 내가 새로 가르치는 최강율.”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져서는 돌아다니고 있어?”
“아··· 다름이 아니라 힘을 너무 써서 그랬습니다, 형님. 생각보다 커트라인이 너무 높네요.”
“스승님 얼른 가서 스승님의 저력을 보여 주세요!”
커트라인이 높다는 말에 강여화가 반색하며 시우를 재촉했다.
“오ㅡ 형님도 나가시는 겁니까? 그러면 따라가야겠군요.”
“이거 부담이 점점 커지는데.”
【모두 다 때려 부수는 것이다!】
“내 몫이니까 넌 안에서 잠이나 자.”
【그럼 너 끝나고 나도 등록해서 해도 되는 것이냐?】
“되겠냐?”
시우는 픽 웃으며 경기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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