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3
196화〉
하이 랭커
달조차 까만 구름에 먹힌 어두운 저녁.
“실례합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헌터가 골목길에서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낯선 사람이 건물 주위를 기웃거리며 땅을 헤집는다는 이상한 신고.
헌터는 동네 불량배나 미친 사람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터덜터덜 출동 장소로 향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칙칙한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하곤 어깨를 붙잡았다.
“신분증 좀 보여 주십쇼.”
“······.”
검문을 받은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신분증을 꺼내 헌터에게 건넸다.
“에··· 채우담··· 어??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신분증을 살피던 헌터는 낯익은 이름과 소속에 화들짝 놀라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신가요.”
“아, 이거 죄송합니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은 터라 안 올 수가 없었어요.”
“···괜찮습니다.”
“앗! 신분증 여기 있습니다!”
헌터는 깜빡했단 얼굴로 신분증을 채우담에게 도로 건넸다.
채우담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아니, 협회장님. 이 시간에 혼자서 뭘 하고 계시는 건가요?”
헌터는 수상한 자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는 편안한 마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심고 있습니다.”
“네??”
“알을 심고 있습니다.”
“알이요?”
푸슈욱!!
그 순간 채우담의 몸에서 튀어나온 가시나무가 헌터의 목과 심장을 꿰뚫었다.
“······!!”
헌터는 가시나무를 붙잡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버둥거렸다.
“알에는 양분이 필요한 법이죠.”
채우담은 가시나무를 움직여 ‘알’을 묻어 둔 곳 위로 그를 옮겼다.
헌터에게서 떨어지는 핏물이 땅을 적셨다.
“잘 자라라. 잘자라라.”
“···컥···!!”
우드드득.
가시나무가 헌터를 칭칭 동여매더니 온몸의 뼈를 부서트렸고, 그는 이내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절명했다.
“그렇 게쉽 게죽 여 도되 는건 가?”
건물 아래 길게 늘어진 그림자 사이로 검은 형상이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상관없다. 놈들은 은주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잖아. 그런 놈들은 죽어도 싸다.”
“끌 끌끌끌 끌. 그 렇군. 알 은전 부 심 은건 가?”
“그래. 전부 심었다.”
채우담이 그늘진 얼굴로 페넬슐을 바라보며 웃었다.
***
세계적인 방산 업체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키로프, 콜트 등이 만든 현대 기술의 정점, 휴머노이드.
단순한 기계 덩어리도 그 위력이 어마어마할진대.
마법 공학과 온갖 술식으로 중무장한 로봇은 하나하나가 병기 그 자체였다.
방산 업체의 최종 목적은 헌터를 대신할 로봇을 만들어 인류를 수호하는 것.
이날 경기장에 대기시킨 휴머노이드들은 차수에 맞춰 그 강도와 위력을 나눠 배치했다.
1차나 2차에 내보내는 로봇은 간단한 공격이 가능한 것들이었고, 차수가 올라감에 따라 마력 저항력이나 공격력도 높아지도록 말이다.
특히 8차부터 10차까지는 개개의 로봇이 분쟁 지역에 홀로 투입되어도 전장을 진압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세계 랭킹 8위의 자카리야가 8차 중간까지 경기를 치렀고, 4위의 쿠가 하루키가 9차 초반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최강에 가까운 사나이, 랭킹 2위 지오바니 바르베리니가 9차를 마무리하고 10차에서 포기했다.
저 세 명의 하이 랭커들도 경기가 마무리됐을 때의 몸 상태는 대미지 누적으로 아웃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젠장!! 6차 이후부터는 괴물보다 더한 병기 그 자체라고 경기장 근처에 있는 랭커들 싹 다 불러와!”
방산 업체 시스템 관리자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태를 직감이라도 한 듯 이마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얼른 시스템을 수정해서 막아야 한다··· 그 망나니 지오바니 바르베리니도 10차는 포기하지 않았던가.’
얼굴을 왈칵 찡그리며 거부하던 바르베리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경기 때는 그나마 로봇들이 순서대로 나왔고, 다음 차수로 넘어가기 전에 헌터들이 숨을 돌리고 마력을 정리할 시간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로봇이 한꺼번에 뛰쳐나가 날뛰게 되면 숨을 돌리기는커녕, 숨을 쉴 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고 방송하라고 전달했어?!”
“예, 전달했습니다!”
“새 명령어는 입력시켰고?”
“그게··· 무슨 명령어를 넣든 에러가 발생합니다.”
“안 되면 강제로 전원이라도 꺼 버려!”
“보스, 아무것도 안 먹힙니다. 코드가 엉키면서 경기 내내 누적되었던 대미지랑 술식에 과부하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건 우리 쪽에서 할 게 아니라 마법 공학 쪽에서 술식을 고쳐 줘야 할 것 같 은데요···.”
관리자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막을 수 있는 방도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우선 다른 방산 업체에 부탁해서 아티팩트 조달해 오고··· 하, 하이 랭커들 얼른 불러.”
그는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하 직원들에게 말했다.
하이 랭커가 오기 전까지 수십 명의 사람이 죽고 다칠 것이다.
그뿐인가. 그동안 쌓아 온 커리어는 물론이고, 사회적 명예도 실추된 채 감옥에 들어가게 될 터.
우선 경기장에서 로봇들을 마주한 저 헌터부터 죽게 될 것이다.
관리자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헌터가 얼른 도망쳤기를 바라며 중계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아직도 경기장에 홀로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
시우는 벽 너머에서 나온 것들을 찬찬히 일별했다.
휴머노이드에게 사람이나 마족, 몬스터와 같은 격이나 마력 따위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강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사위에서 경보음과 함께 비상 방송이 나온다.
도망가라는 다급한 메시지에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석이 혼란에 빠졌다.
로봇이 저렇게 한꺼번에 나온 적은 이번 대회에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
“스승님 얼른 도망치세요!!”
그때 관중석에서 테스트를 지켜보고 있던 강여화가 다른 일행과 함께 시우를 향해 달려왔다.
“저놈들, 생각보다 단단하다네. 내가 사철을 사용해서 달려드는 놈은 막을 테니까, 여기서 물러서도록 하세.”
“저도 8차에서 막혔습니다, 스승.”
“소선생님~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함께 막으면 증원이 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세이겐의 말에 루안이 거들자 베네딕트가 다른 의견을 냈다.
어차피 하이 랭커들이 막으러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터.
“저는 형님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저도 길드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나도 한다.”
“그대의 계획에 함께하지.”
여기에 을지바타르와 최강율, 길리온, 라일라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크하핫! 들개 놈이 생각보다 많은 지원군을 가지고 있군. 우선 내가 마력을 쥐어짜 내서 놈들의 움직임을 막도록 하지.”
“잠깐 정지.”
도경후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앞장서려는 순간 시우가 그를 말렸다.
“왜 그러나, 들개?”
“아직 내 경기 중이야.”
“···뭐?”
일행들은 시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어렵다는 얼굴을 했다.
“왜들 그래. 아직 내 차례니까 다들 비켜.”
“어··· 민시우, 지금 비상 상황인 거 못 들었나?”
시우는 도경후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게네한테나 비상이지, 나한텐 비상 아니야.”
도경후는 벙찐 표정으로 시우와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 경기를 치러봤던 세이겐조차도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안 말려도 괜찮은가?”
세이겐이 시우의 제자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루안과 강여화가 서로를 마주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스승이 한다고 했으면 할 겁니다.”
“저도 스승님이 비상 아니라고 했으니까 믿고 기다릴래요.”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우에게 향했다.
까드득.
단전에서 풀어헤쳐진 마력이 거대한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해 볼까.’
시우가 격을 해방했다.
쩌적.
바닥에 금이 간다.
대기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어마어마한 압력이 사위를 짓밟으며 주변 공기가 뒤바뀐다.
뼛속까지 아리는 서늘한 기세가 겨울 돌풍처럼 주위를 맹렬히 휘감는다.
시우는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격을 해방하자 두꺼운 옷을 벗은 것처럼 자유가 느껴졌다.
눈빛이 가라앉는다.
권태 가득한 얼굴이 점차 무표정으로 바뀐다.
시우에게서 솟구쳐 뿜어지는 상위 격의 역량이 경기장을 집어삼킬 것처럼 이빨을 드리운다.
뒤에서 바라보던 일행들은 물론이거니와 도망치던 관중들마저도 몰아치는 서릿발에 걸음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그것은 재난에 맞서는 재앙이었다.
강한 힘을 누르는 더욱 강한 힘이었다.
털썩. 털썩.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절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격을 마주한 것도 아니었거늘.
격의 차이가 빚어낸 생물의 본능이었다.
시우는 여기에 자신의 마력을 덧대어 뒤섞었다.
퍼거거꺽ㅡ!!
경기장의 벽면이 허물어지고 지반이 군데군데 뒤집힌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건물의 모든 공간이 진동했다.
‘무지막지하군···!’
세이겐은 휘청거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며 눈앞의 남자를 응시했다.
장담컨대 일본에서도··· 아니,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최정상급의 격이었다.
이때껏 상대를 보고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낀 것은 오늘이 처음.
그런 감정은 세이겐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가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누군가는 절망감을.
또 누군가는 경외감을.
발간 LED 눈을 빛내던 로봇들이 하나둘 들이닥친다.
그 움직임에는 군더더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최적의 경로로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로봇의 계산 능력.
쩌어어어ㅡㅡㅡㅡㅡ엉!!
그러나 시우의 반경에 들어선 로봇들은 프레스기에 짓눌린 고철처럼 납작하게 짜부라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후우.”
시우는 휴머노이드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서늘한 그의 눈빛이 기계에서 발하는 LED보다 더 차갑고 냉정해 보였다.
쿠ㅡㅡㅡㅡㅡㅡㅡㅡ웅!!
다시 한번 지대한 마력과 기세가 파도처럼 놈들을 향해 덮쳤고, 반경 안에 있던 로봇들이 짓눌려 부서졌다.
벌써 수십 기의 기계가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하지 못한 채 일격에 박살 났다.
“괴물이 되었군···.”
도경후가 두려움과 질투가 뒤섞인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느꼈다.
검을 휘두르고 휘두르다 보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다.
시우가 다시 귀환한 뒤.
100%의 전력을 보진 못했지만, 악마와 싸우는 그의 모습을 보며 차이가 벌어진 것을 자각했다.
노력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거리.
그래서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배움을 자처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민시우라는 존재는 이미 보이지도 않는 저 먼 곳에 날아가 있음을.
삑ㅡ 삑ㅡ 삐빅!
시우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잠시 지켜보던 8차, 9차, 10차 휴머노이드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시우를 선발대와 맞붙게 해 공격 패턴과 강함을 측정하려 했다.
그리고 정보 수집을 끝마쳤다는 듯 동시에 공격 모드로 전환했다.
철컹! 철컹! 철컹!
세계 랭킹 2위인 지오바니 바르베리니마저 중도 포기하게 했던하이 테크놀로지의 정수.
마법 공학과 마정석의 힘을 빌려 극도의 마력 저항력과 파괴력을 갖춘 방산 업체의 최대 전력이 시우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흐음.”
시우는 그저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레이저와 소형 미사일, 기관총, 마법 디스펜서가 부착된 휴머노이드의 강격이 불을 뿜는 순간,
콰드드득!!!
시우의 힘이 한 곳으로 압축되었다.
***
잠시 후.
긴급 구호 소식을 들은 하이 랭커들이 도착했고.
그들은 찰흙처럼 뭉쳐진 하나의 고철 덩어리를 마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