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4
197화〉
하이 랭커2
일순간이었다.
분명 휴머노이드가 뿜어내는 불길이 더 빨랐다.
사람과 로봇의 공격 속도는 아무리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려 해도 비교할 수가 없는 법.
머릿속에서 스킬을 구상하고, 마력을 집중시킨 뒤, 술식을 구현해 적을 관찰하고 분출하기까지는 수 초 이상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로봇은 저 모든 과정을 천분의 일 초 단위로 쪼개 수행할 수 있었다.
기계는 상상하지 않는다.
단지 계산에 따른 최적의 공격을 산출해 내서 장착된 마정석을 가공, 입력된 술식 중 하나를 좌푯값과 함께 출력하면 된다.
불필요한 움직임 따위도 존재하지 않고, 상대를 보고 주춤거리는 멍청한 짓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살상 무기라 부르는 것이지 않은가.
“말도 안 돼···.”
분명 예측대로라면 경기장에 있던 사람 중 수십여 명이 죽거나 다쳤어야 했다.
그러길 바라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적게 잡아서 수십여 명이었지.
하이 랭커들이 오기 전까지는 일종의 학살극이 벌어질 것이라 예견했었다.
이번 ‘휴머노이드 대미지 체크’의 총괄 관리자인 파드마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충격적인 결과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사람이 죽지 않아서 너무도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대체 어떻게 안 죽었지?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떻게 10차 로봇들까지 상대할 수 있었던 거야?’
그는 화면 너머에서 오연한 눈빛을 한 시우를 보고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그건 파드마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던 모든 개발자를 포함해 경기장에 있던 수많은 헌터와 관중이 시우의 모습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휴머노이드의 진격에 맞서 시우가 손을 내뻗었다.
쩌저적··· 쩌적···!!
땅바닥이 흔들리고 공간이 뒤틀린다.
대기에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넘실거리더니 로봇을 기준으로 창해와 같은 기세가 들이닥쳤다.
쩌어어ㅡㅡㅡㅡㅡㅡ엉!!
격의 맹기가 주위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끌어당기더니 중심점으로 힘껏 우그러트렸다.
요란하고 사나운 소리가 울렸다.
콰드드드득! 우지지지직!!
그것은 마치 휴머노이드의 비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정수가 힘의 물결에 고스란히 굴복하며 쿠킹 호일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사람들은 장엄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신을 찾거나 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게, 세계 굴지의 초 하이 랭커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휴머노이드가 단 일격으로 커다란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시우는 기세를 거두지 않은 채 경기 진행자를 보고 물었다.
“11차는 없나?”
***
구조 신호를 듣고 뒤늦게 도착한 랭커들은 침음을 삼켰다.
“으음···.”
“이게 가능한 건가요?”
“나도 6차가 한계였는데···.”
그들은 쇠공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로봇 더미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분명 8차, 9차, 10차 로봇까지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와 심각한 사태라는 무전을 들은 차였다.
구조 신호를 받은 헌터들 중에도 ‘휴머노이드 대미지 체크’ 경기를 치른 사람들이 있었기에, 저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세계 랭킹 4위인 쿠가 하루키도, 세계 랭킹 2위인 지오바니 바르베리니도 10차까지는 가지 못했다.
사람도 S급과 S+급의 격차가 존재하듯, 휴머노이드도 차수마다 위력의 차가 존재했다.
현재 개발자들이 판단하기로는 10차를 상대하기 위해선 능숙한 SS급의 전력이어야 가능.
인간의 규격을 넘어선 ‘미스틸 테인’을 제외하고 현존 헌터 중 그게 가능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최대수와 인도의 샤말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10위권 이내의 헌터들은 전부 SS급의 격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지만 최대수나 샤말처럼 격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중견급 헌터의 수준은 아직 아닌 터.
총괄 관리자인 파드마는 벌써 몇 번째 시우가 싸웠던 장면을 되돌려 보며 그가 이긴 이유를 찾아보려 애썼다.
그때 사무실 문을 박차고 누군가 들이닥쳤다.
“여기 담당자가 누구야···?”
“죄송하지만 이곳은 관계자 외에는 출입 금지인 곳입니다만··· 컥!”
“네가 담당자냐?”
그는 만류하는 직원을 눈빛으로 제압했다.
직원은 자신의 목을 붙잡은 채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얼굴이 점차 붉어져 갔다.
“자, 잠시만요! 지금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관리자인 파드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오, 네가 담당자냐?”
세계 랭킹 8위인 자카리야는 직원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파드마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제가 다, 담당자가 맞습니다만?”
“이 썩을 자식이 경기를 갖고 장난을 쳐?!”
“경기를 갖고 장난을 치다뇨···?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개소리 집어치워! 그러지 않고서야 이딴 결과가 말이 돼?!”
“저, 정말로 조작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저도 저 사람이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요!”
“지랄하고 있군. 얼마나 받아 처먹고 이딴 짓을 했는지 두개골을 까서 확인해 주마.”
자카리야는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파드마에게 손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콰드드드드득!!
어마어마한 살기가 자카리야에게 쏟아지며 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이건 단순히 경호원이나 전투 좀 치른다는 헌터가 내뱉는 기운이 아니었다.
자카리야는 재빨리 몸을 뒤로 빼서 격을 끌어 올리려다 상대를 확인하고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럴드 블룸.”
“자카리야. 헌터가 민간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려 하다니, 우스울 따름.”
“크윽! 개같은 HMCS 새끼들! 같은 동료라고 지금 놈을 감싸는 거냐?!”
“놈을 감싸···?”
“지금 놈의 기록을 보고도 여길 안 뒤집게 생겼냐, 블룸! 기존 랭킹에도 없던 놈이 내 기록을 넘어섰다고!”
해럴드는 전광판에 뜬 기록을 응시했다.
1위 – 민시우 / 10차 / 18,600,000점
2위 – 지오바니 / 9차 / 7,300,000점
3위 -하루키 /9차 /5,900,000점
4위 – 자카리야 / 8차 / 4,200,000점
“그냥 넘어선 게 아니라 자카리야, 너를 완전히 찍어 눌렀을 따름.”
“이 염병할! 나하고 무려 네 배 차이라고, 네 배! 게다가 지오바니하고도 두 배가 넘는다고!”
하지만 해럴드는 자카리야의 분노에 공감하지 못한 것처럼 매서운 안광만 빛냈다.
그의 의사는 간단했다.
얼른 이 난동을 멈추고 조용히 나가라는 것.
그 눈빛에 가만히 맞서던 자카리야는 이를 빠드득 갈고는 기세를 갈무리했다.
어차피 해럴드 블룸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더욱이 HMCS라는 조직과 척질 생각은 없었기 때문.
“나는 조용히 넘어간다 쳐도, 과연 쿠가 하루키나 지오바니 바르베리니도 등신같이 가만히 있을까?”
“···룰은 룰일 따름. 만약 이 경기가 불합리한 결과였다면, ‘가이아 시스템’으로 정확한 결과를 들으면 될 따름.”
자카리야는 혀를 칫, 차더니 해럴드 블룸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파드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해럴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사실 시우가 10차 휴머노이드를 완파하면서 이런 문제를 예상하기는 했다.
과연 다른 하이 랭커들이 이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까?
오류가 있긴 했지만, 로봇 자체의 성능엔 문제가 없었다는 걸 그들이 알아줄까?
그리고 파드마의 우려는 자카리야의 난입과 함께 현실이 되었다.
그의 말마따나 다른 헌터들도 이번 경기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파드마, 나는 민시우의 테스트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 따름.”
해럴드는 우선 파드마를 안심시킨 뒤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들었다.
사태의 내막을 전부 듣게 된 그는 우선 모든 이들이 궁금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이 경기에서 로봇에 이상이 있었는가.
“아니요, 없었습니다. 그 부분은 제 목숨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지 동시 출격이 되었던 것뿐이지, 휴머노이드의 성능에 관해선 저희가 컨트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협조해 줘서 고마울 따름.”
“오히려···.”
파드마는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지금 그의 말은 다른 헌터들의 공분을 사고도 남기에 충분하겠지만, 연구가로서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민시우 헌터가 가장 힘든 조건을 클리어한 겁니다. 그리고 모든 로봇을 단 일격에 처리했습니다. 이건 지오바니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
“전 이 결과를 그대로 반영할 것입니다. 랭커들이 원한다면 거짓말 탐지라도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민시우 헌터의 성적을 바꾸진 못할 겁니다.”
해럴드는 고개를 끄덕인 뒤 경기장 밖으로 나섰다.
수많은 헌터가 모여 동그랗게 뭉친 로봇 더미를 해체하려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HMCS의 선배로서 유망주가 생기면 믿고 지지할 따름.”
해럴드는 전광판에 새겨진 1위의 이름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만찬장.
거대한 연회엔 초대장을 받은 헌터들과 추천장을 받은 헌터들, 그리고 소수의 고위급 인사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자네 오랜만이군.”
“여기야! 신수가 훤해졌네, 이 친구.”
“야, 오늘 경기 뭐 뭐 봤냐?”
사람들은 술과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자리에 앉아 먹는 사람도 있었고, 서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많은 화젯거리로 오른 것은 오늘 있었던 경기였다.
“이봐, 그 소식 들었어? HMCS 소속 헌터가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던데.”
“나도 들었어. 지오바니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며?”
“그게 치운 거냐. 아예 때려눕힌 거지. 스코어 차가 2배도 넘어.”
“이야··· 대단하네. 그런데 진행 과정 중에 시스템 오류가 있었다던데?”
“그거 때문에 기록이 잘못 나온 거란 말도 있더라고.”
헌터들은 술이 한두 잔씩 들어가며 열띤 대화를 벌였다.
시스템 에러 때문이니, 요즘 한창 주가가 오른 헌터라서 그럴 리 없다느니 하며 이어진 대화는 토론을 방불케 했다.
자카리야는 구석에서 독주를 마시며 들려오는 말들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어이ㅡ 자카리야. 이번에 너 4위 했더라?”
그런데 누군가 그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씨발!! 스키너 이 새끼가 미쳤나!”
세계 랭킹 7위인 최고의 탱커, 스키너가 자카리야에게 다가가더니 깐족이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 네 랭킹 위로 딜러 세 명은 안 나오지 않았냐? 그 사람들 다 나왔으면 딜러 중에 7위 했겠네.”
“아가리 다물어라ㅡ 주둥이를 찢는 수가 있으니까.”
“워, 워. 진정하라고. 네 복수 상대는 내가 아니라 저놈 아니야?”
스키너는 멀찌감치에서 홀로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시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카리야는 시우를 보더니만 눈을 부릅뜨고 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저 자식··· 잘난 척하는 것도 오늘까지다.”
그는 술기운에 비틀거리면서 시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무용담으로 즐겁고 유쾌해야 할 만찬을, 모두 저놈이 망쳤다고 생각했다.
자카리야는 홀이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그렇게 야비하게 점수를 올리고 나니까 좋냐, 이 새끼야!!”
순간 홀에 정적이 감돌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카리야와 그가 소리친 상대에게 쏟아졌다.
시우는 맥주를 들이마시다가 그를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명백한 무시.
자카리야는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 올렸다.
헌터가 된 뒤로 지금과 같은 무시를 받아 본 적이 그로선 처음이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죽여 버리고 만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 어둠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펴볼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드는 생각은 눈앞의 놈을 죽여야 한다는 것.
“멈추세요.”
자카리야의 몸에서 기운이 뻗치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달빛을 닮은 피부와 새하얀 머리칼을 지닌 여성.
“주인님께 불결한 눈빛을 보낸 죄, 죽어 마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