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96
199화〉
궐기
하이 랭커란 수많은 헌터가 쌓아 올린 피라미드의 최상부를 이루는 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랭커 중의 랭커라 일컬어지는 초 하이 랭커들은 피라미들의 머릿돌이었고, 그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망의 대상이자 헌터를 꿈꾸는 이들의 우상.
랭커들은 도시 곳곳에 포스터가 걸리고, 건물 외벽에 커다란 광고판으로 등장하며, 수많은 광고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류지환이나, 베네딕트처럼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지녀 모델이나 배우로 활동하는 헌터들도 많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평생 가도 가질 수 없는 부와 명예, 권력, 힘까지 두루 지닌 존재였다.
비슷하지만 다른 예로, 최대수는 험상궂은 외모 탓에 딱히 팬덤이란 게 없는 사람이었다.
정치적 지지자들은 있어도 헌터로서의 그를 응원하는 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샤말은 인도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조용히 은둔하는 것을 즐겼다.
간혹 다른 헌터로 해결되지 않는 국가적 위기 사태에만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는 허름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고행자와 같은 삶이었다.
따라서 그도 팬덤이라기보다는 사두( साधु)로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지오바니는 달랐다.
신이 빚어 놓은 듯 조각 같은 외모에 탄탄한 몸매, 거기다 연예인 못지않은 쇼맨십까지.
그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인기 많은 헌터였고, 숱한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다.
연회장에 모인 헌터 중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판데모니엄〉이다.”
지오바니의 말에 헌터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웃기만 할 뿐, 대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안일했다.
누가 감히 이백여 명의 헌터가 모인 자리에서 허튼짓할 수 있겠어, 하는 마음.
“어이, 파티는 끝났다. 엎어라.”
지오바니의 일방적 선언이 끝났다.
그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었고,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영향력이 있었다.
〈판데모니엄〉 출신 헌터들이 지오바니의 명령에 곳곳에서 마력을 피워 올렸다.
마치 방아쇠가 당겨지듯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ㅡ막아라!!”
반 박자 늦게 사태를 파악한 해럴드가 다급히 소리쳤다.
설마하니 저렇게 노골적으로, 그것도 허무하리만치 쉽게 인정하고 판을 뒤엎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해럴드의 외침에 HMCS 요원들과 미리 언질을 받은 헌터들, 그리고 눈치 빠른 다른 헌터들이 격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판데모니엄〉의 공격이 한발 앞섰다.
[신들의 영역 : 축생의 식탁]김환의 영역이 먼저 구현되었고 홀을 삼킬 만큼 거대한 술식이 번쩍이더니 그 안에서 온갖 기이한 괴물들이 솟구쳐 나왔다.
그건 게이트 안에서 흔히 보던 몬스터 같은 게 아니었다.
마치 경전이나 신화의 삽화에 그려진 기이한 요괴.
와그작! 와그작!
“끄아아아악!”
“사, 살려ㅡ!!”
“씨발! 이게 다 뭐야!”
“우웨에에엑!”
평소 전투에 능숙한 헌터들이라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기습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미 뜨거운 음식과 독한 술로 정신이 한껏 풀어졌던 탓에, 헌터들은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김환은 혼란과 공포를 퍼뜨리는 패시브 스킬을 지니고 있어 그 위력이 배가되었다.
“이대로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다 죽이겠는···.”
콰ㅡㅡㅡㅡㅡㅡ앙!
말을 읊조리던 김환은 소환한 요괴가 연거푸 소멸하자 그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크하핫! 이따위 괴물 몇 마리 풀어 놓은 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보군.”
“스승님 괜찮으시죠?! 이것들은 징그럽게 생겨서 왜 자꾸 달라붙어!”
도경후의 칼질과 강여화의 주먹에 요괴들이 박살 나고, 그 덕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김환은 그들에게로 몸을 박찼다.
소란을 가중시키는데 방해되는 녀석은 죽이면 그만이다.
빠아아아아악!!
그때 그의 옆구리로 시큰한 통증이 일며 몸이 기울었다.
김환은 입술을 짓씹으며 통증의 정체를 확인했다.
“···여의봉. 샤오롱인가 뭔가 하는 애새끼군.”
“지금은 루안으로 개명했다.”
“어차피 뒈질 놈의 이름 같은 건 알 바 아니다.”
“피차 마찬가지다.”
김환의 방대한 마력이 주변을 아우르며 거대한 술식을 전개했다.
마법진이 구현되고 섬전이 번쩍인다.
그런데 그때.
“···이게 뭐지.”
웬 반투명 커튼 같은 것이 공중에 하늘거리며 그와 술식을 감쌌다.
적의는 없지만 이상한 기분이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구현되었던 마법진에서 섬전이 거꾸로 스며들고, 술식을 구성했던 문자와 도형의 획이 하나씩 사라져 간다.
영상을 거꾸로 재생한 것처럼 모든 것이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김환은 당황했다.
자신이 구축하려 한 마법이 마력 입자로 화해 공중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시간 여행자 : 벌거벗은 임금님]“네가 ‘전장의 지휘자’로군.”
“와우~ 하이 랭커가 제 이명을 다 알아주시니 기쁘기 그지없군요.”
베네딕트는 가느다란 스태프를 휘두르며 싱긋 웃었다.
“건방진 놈. 감히 내 술식을 파훼해?”
“그렇다고 멍청하게 맞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아니면 한 대 정도는 그냥 맞아 드릴까요?”
“···체르노보그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죽이겠다.”
김환은 슬라브족의 ‘죽음의 신’을 거론하며 베네딕트를 향해 격을 해방했다.
콰드드드드득!!
“그런데 어떡하죠? 제가 일대일 전투엔 소질이 없어서. 이봐, 친구!”
“난 네 친구가 아니다.”
“제 친구가 대신 싸워 줄 겁니다.”
“내 말이 안 들리는군.”
루안은 여의봉을 앞으로 겨눈 채 안광을 번뜩였다.
***
“스키너···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
“흐흐흐. 이봐, 자카리야. 사람이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쿨럭! 너··· 죽인다···! 이거, 이거 풀지 못···!”
“아직도 제 처지를 모르는 놈이군.”
자카리야는 스키너가 발한 스킬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중이었다.
실드를 역으로 사용해 상대를 가두고 점차 좁히는 기술.
뿌드드득! 뿌드드득!
공간이 점차 옥죄어 오며 실드가 자카리야의 몸을 끔찍하게 짓누른다.
자카리야는 있는 힘껏 실드를 박살 내 보려 하지만, 그의 격과 마력이 상대에게 미치지 못해 소용없었다.
“커허억···! 제, 제발 살···! 끄아아아악!!”
퍼ㅡ억!
스키너는 상대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 스킬을 해제했다.
“하이 랭커도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종극의 방패.
게이트에 들어가거나 국가적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 항상 끝까지 남아 헌터들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바로 스키너였다.
모든 탱커가 다 쓰러지고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만은 버텨 아군을 보호했다.
인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세계 10위 안에 든 유일한 탱커.
그런 자가 지금 자신과 같은 하이 랭커를 무참히 살해한 채 건방진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쳐 버린 건가? 스키너, 제정신이야?”
쿠가 하루키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그가 보기에 지금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니었다.
모든 걸 누리고 영위하고 있던 정상급 헌터들이 다른 헌터들을 상대로 살육전을 벌이고 있었다.
대체 그딴 〈판데모니엄〉이 뭐 어떻다고 저 짓들인지, 하루키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흐흐흐. 그럼, 제정신이지, 제정신이고 말고. 아마 이 자리에서 온전한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우리밖에 없을 거다.”
그는 사방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판데모니엄〉 출신 헌터들을 보며 기쁜 듯 조소했다.
이미 연회는 한 편의 지옥도와 다름없었다.
전체 인원에 비하면 십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자들이었지만, 그자들이 일으키는 흙탕물은 온 천지를 새까맣게 물들이고도 남았다.
“그렇게 당황할 거 없다, 우리는 오직 인류의 적을 제압하고 심판하면 될 따름.”
그때 해럴드 블룸이 마력을 줄기줄기 피워 올리며 나타났다.
백전노장의 연마된 기세와 격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사위를 벼리자, 여유롭던 스키너도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게 누구신가. HMCS의 강아지 아니셔.”
“그 리스트가 진실이 아니기를 바랐거늘. 너는 이 자리에서 모든 오욕을 뒤집어쓴 채 죽을 따름.”
“흐흐흐. 글쎄올시다, 죽는 게 누가 될지는 자웅을 겨뤄 봐야 알겠지.”
스키너에게서 단단한 격이 솟구쳐 올랐다.
해럴드는 그가 모든 준비를 갖출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일기토 : 질주하는 랜스]그의 오른손에 마력으로 빚어진 거대한 랜스가 구현되더니 해럴드의 신형이 빛살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타ㅡㅡㅡㅡㅡㅡ앙!!
한 줄기 섬광이 수평을 아로새기며 엄청난 굉음을 만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속격 너머, 스키너의 낮은 비웃음이 들려왔다.
“흐흐흐··· 이거 0.1초만 늦었어도··· 창자에 구멍이 생길 뻔했군.”
실드를 관통한 랜스가 스키너의 배를 반쯤 찌른 채 붙잡혀 있었다.
“늙은이라고 무시했더니, 까딱하다 죽게 생겼어.”
“아니, 넌 죽는 게 맞지!”
그 순간 스키너의 측면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일본도가 번쩍였다.
쩌어어어어어엉!!
“크윽···! 쿠가 하루키···! 얌전히 꺼져 있지 못해!!”
스키너는 너덜너덜해진 왼팔을 무시하며 하루키를 향해 자카리야를 죽였을 때 사용한 스킬을 구현했다.
“그 안에서 짜부라져 뒈져라!”
***
지오바니 베르바리니는 한 마리의 야수였다.
그는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이고 마력으로 헌터들을 압사시켰다.
무자비한 폭거에 사람들은 실드를 펼치고 스킬을 구사해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건 코끼리를 개미 떼로 막으려는 짓과 다름없었으니.
“음하하하하! 이거 아주 재밌군, 재밌어! 몬스터를 때려죽일 때보다 더 즐거운걸!”
“지오바니 헌터!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당신은 이탈리아의 하이 랭커이십니다!”
“음?”
지오바니는 자신에게 떠드는 자들을 향해 응축한 마력을 대포처럼 쏘았다.
ㅡㅡㅡㅡㅡㅡㅡ 꽈아아앙!!!
순식간에 네댓 명의 사람이 반죽처럼 짓이겨졌다.
그야말로 왕의 횡포와 같은 처사에 사람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세계 2위의 무법자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자리에는 최대수도, 샤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뾰족한 메이스가 지오바니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는 손으로 공격을 막으려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곧장 실드를 펼쳐 막아 냈다.
빠카아아아앙!
메이스에 맞은 실드가 돌조각이 되어 바스러졌다.
지오바니는 나미르를 쳐다보며 희게 웃었다.
“음하하하! 이게 그 유명한 반마족 왕의 ‘석화’로군. 맨손으로 막았다간 손이 남아나지 않겠는데?”
“괜찮아요. 다음엔 손이 아니라 머리를 가격할 테니까.”
“이런, 그러기엔 아직 내가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왕께서 먼저 공격하셨으니, 나도 공격해도 되겠지.”
지오바니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이 뭉쳐지더니 전방에 검보라색 술식이 구현됐다.
“언니, 피해!”
흠칫한 크로우가 나미르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미 늦었다.”
지오바니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끔찍하기 그지없는 마법이 그녀들을 향해 쏟아졌다.
“나는 독인(毒刀), 이 세상을 절단할 칼날이지.”
그는 자신의 독이 녹여 냈을 나미르의 형체를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바로 했다.
“병신, 칼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나 지오바니가 본 것은 꽁꽁 얼려진 자신의 독 너머, 오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우의 비웃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