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1
21화〉
계략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는 한 남자.
그는 초점 잃은 눈으로 모니터 속 영상을 응시했다.
그곳엔 A+급 헌터인 아수라 추하민이 장난감처럼 가볍게 짓밟히는 모습이 흐르고 있었다.
“미치겠네.”
영상이 끝남과 동시에 한탄이 터진다.
[제국 길드]의 수장이자 현 대한민국 헌터 랭킹 9위인 민시준.‘한국의 대마도사’라 불리는 그였지만, 이런 문제는 아직 버겁게만 느껴졌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올렸다.
“···하아.”
요즘 늘어나는 고민 덕인지 한숨이 자주 나온다.
한숨의 원인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의 형, 민시우.
조용히 지내길 바랐던 그의 마음과는 달리, 형인 시우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사람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으리라.
수십여 명의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것도 최대 길드 중 하나인 [백사자]의 돌격대장 A+급 헌터를 쥐어패다니.
이런 일은 HMCS 한국지부 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사건일 것이다.
“형··· 제발··· 이건 아니잖아.”
차라리 시우가 동생이었으면. 그랬다면 다루기가 조금은 편했을까.
드르륵. 드르륵.
휠을 내려 댓글창을 확인했다.
거기엔 신입 HMCS 헌터에 대한 온갖 추측과 루머가 뒤섞여 있었고, 민시우에 대한 정보가 살짝씩 섞인 내용도 있었다.
물론 10년 전 실종된 민시준의 형이란 정보까지 퍼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관심이 쏠린다면 민시우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
“아무래도 안 되겠어. 답답해서 죽을 바엔 말을 해야지.”
그날 저녁.
시준은 형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을 바리바리 사 들고 귀가했다.
“···잔치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음식이 테이블에 깔리자 시우는 동생과 음식을 번갈아 봤다.
【이, 이게 다 뭐냐! 천국이 여기인 것이다!】
둘이서 먹는 정도가 아니라 열댓 명이 같이 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양이다.
“형, 식기 전에 먹자!”
“어··· 그래.”
【다 먹지 말고 내 몫도 남겨라! 다 먹으면 죽인다, 식량! 기필코 죽인다!!】
시우는 음식을 먹으면서 동생의 안색을 살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사 온 것 같진 않았다.
“무슨 일 있어?”
순간 동생의 마나 파장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이것은 어지간한 관찰력이나 마나 컨트롤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백 년 이상의 마력 운용을 통해 깨달은 민시우만의 고유한 경지.
그는 마나의 파장 변화를 통해 상대의 감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준의 파장으로 느낄 수 있는 건,
‘불안과 초조.’
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냐, 일은 무슨.”
“있는 것 같은데? 말해 얼른.”
“에이~ 아니라니까. 아무 일도 없다니까 그러네.”
“형한테 구라 치다 걸리면 ‘무한대련’ 일주일인 거 알지?”
“어?? 그건 예, 옛날 규칙이잖아!”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시준, 불현듯 주마등처럼 예전 일들이 그의 눈앞을 스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으스러져도 ‘죽기 전까지’ 이어지는 겨루기.
차라리 던전에 혼자 들어갔다 오는 게 나을 거라는 제자들의 탄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무한대련은 선 넘었지 진짜! 이제 형한테 배우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시우는 두툼한 참치회를 입으로 가져가며 태연히 대꾸했다.
“꼬우면 네가 형 해.”
“······.”
“형 할래?”
“아뇨···.”
시우는 음식을 다 먹은 뒤에 물어볼까 했지만, 동생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과 연관이 있는 일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시준이 성격상 본인의 일을 형에게까지 내색하진 않을 테니.
“그······ 형이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
보통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쁜 소리를 한다는 뜻일 거다.
“뭔데.”
“얼마 전에 민준이 형 연구실에서 거트랑 싸운 거, 형 맞지?”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감추려 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의 태도엔 숨기려는 기색 따윈 조금도 없었다.
사실 이 문제를 동생이 화두로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시준이 정도의 위치라면 내게 묻지 않고도 HMCS나 다른 정보 제공자를 통해서 충분히 다 들었겠지.’
그럼에도 시우에게 다시 물어본다는 건 형에 대한 존중 차원일 것이다.
“그러면 [백사자] 추하민도 형이 그런 거고?”
“그게 누군데.”
【닭 다리 하나는 남기는 것이다! 으아!!】
시우는 정말로 몰라서 되물었다.
HMCS를 하다 보니 때려잡은 놈들이 너무 많아 이름을 외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매일 한두 놈씩 잡아 처넣다 보면 이름 같은 건 쉽게 잊기 마련이기도 하고.
“HMCS에서 길드 신입들 상대로 교육했을 때 감독관이었던 A+급 헌터··· 형이 최근에 쥐어팬 사람.”
“어ㅡ 등에 이상한 문신 있던 새끼?”
나중에 황정구가 사색이 되어 뭔 사자가 어쩌고 아수라가 저쩌고 했던 것 같긴 하다.
민준이 연구실에서 싸웠던 거트라는 놈보다는 조금 더 강했지만, 그래 봐야 시우 입장에선 오십보백보.
‘하지만 나쁘진 않았지. 스승이 녀석이라 그런가.’
그래도 근래 만났던 헌터 중에서는 스킬 활용이 제일 괜찮았던 놈이긴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자의 제자라 이쁜 구석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반 죽이려다 참은 것도 그 때문이고.
“형이 알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너무 갔어! [백사자 길드] 길드장은 우리나라 8위의 랭커야!”
“랭커?”
그런 개념도 생겼구나.
시우가 헌터를 하던 시절에는 누가 더 강하고 약하고를 따져 ‘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철저하게 대중의 인식과 인지도로 추측되었을 뿐.
대한민국 8위면 꽤 강하긴 하겠네.
“물론 최성일 헌터가 해코지할 사람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몸을 좀 사릴 필요는 있지 않을까···?”
“흠.”
시우는 동생이 말하지 않은 뒷말을 유추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쌉싸름한 맛과 옅은 과일 향이 입 안을 휘감고 사라진다.
최대수 때문이군.
이계로 사라진 뒤 십 년.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내지는 않았다.
자질구레하게 물어보지도 않았고.
다만 일국의 대통령이 된 최대수의 모습과 뿔뿔이 흩어져 버린 제자들, 그리고 자신이 돌아왔음에도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동생의 반응을 보며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그만큼 최대수가 보여 준 것들이 많았단 소리겠지.’
그 욕심 많은 근육 덩어리가 대통령까지 됐다는데 뭔들 노리지 못했을까.
시우는 십 년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았을 시준이를 생각했다.
홀로 자리를 지켜 길드를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지.
이쯤에서 한 발짝 양보하는 게 시준이를 위한 일이란 판단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본인의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그래, 걱정된다고 하니 주의하긴 할게.”
“······정말?”
“어, 주의는 할게.”
시우는 큰마음을 먹을 사람처럼 말했다.
동생에게 한 약속이니 지키긴 할 거다.
주의해야지.
주의만 해야지.
【이제 그만 처먹고 나한테 다 넘겨라, 식량!!】
시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준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모처럼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인천에 있는 각성자 교도소.
운동장에서 자유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재소자들 사이, 한 무리가 벤치에 누워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둘러싼 남자는 입소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신입.
그러나 그 신입은 두 달 중 절반 이상을 독방에서 지냈다.
이 교도소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재소자와 싸움이 붙었기 때문이다.
아니, 싸움이 붙었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 것에 가깝지만.
“야.”
“······”
“야 신입 씨바랄댕아. 귓구멍 뚫어 주는 스킬이라도 써 주랴? 얼른 눈깔 안 떠?”
무리에 선 남자 중 머리를 빡빡 깎은 죄수가 인상을 버럭 썼다.
“···뭔데?”
신입 재소자는 실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일어나기도 귀찮다는 듯 벤치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였다.
“너 밖에서 좀 유명한가 보더라? 이명이 새끼 몽크였나?”
“‘Серый волк (세리 볼크)다, 븅신아. 넌 뭔데?”
볼크는 입가에 그어진 자신의 흉터를 움직이며 말했다.
마치 커다란 늑대에게 할퀴어진 듯 선명한 흉터였다.
“난 이 교도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한웅이다. 그래, 맞아 셰리 볼크랬지. 이명은 늑대인 놈이 무리 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뭐가 문제인데?”
2m가 넘는 커다란 덩치의 거한웅은 볼크의 맞은편 벤치에 앉으며 혀를 찼다.
“너한테 지난달에 맞아서 병실로 옮겨진 애가 우리 막내거든. 여기 빵에서 우리 패밀리가 조금 잘 나가는데, 너 때문에 가오에 스크래치가 어마어마하게 갔잖냐.”
교도소에는 수많은 무리가 존재했고, 대부분은 특정 파벌에 몸을 담고 있었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
거한웅이 말한 ‘패밀리’의 개념이 바로 그러했다.
“그래서 나더러 뭐 어쩌라고?”
“어쩌긴. 우리도 조직의 위신이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피에는 피로 복수해야지.”
볼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작은 몸짓에 주위에 있던 자들이 움찔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피에는 피라. 나쁘지 않네.”
“너무 섭섭하게는 생각하지 말라고. 죽이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나도 하달받은 명령이 있어서 말야. 그것부터 먼저 해야겠는데.”
“명령···?”
거한웅의 의문이 채 끝나기도 전, 볼크의 맨발이 쏘아지며 거한웅의 목을 꿰뚫었다.
“크어억!”
“발가락도 잘 단련하면 훌륭한 무기가 되거든.”
“이 개자식이!!”
“죽여!!”
볼크를 둘러싸고 있던 거한웅의 부하들이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볼크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그 모든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워 그들의 급소를 찔렀다.
푸욱! 푹! 푹!
“커헉···!”
“쿨럭!!”
공방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거한웅의 부하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볼크의 공격을 허용했다.
각성자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은 모두 마나와 능력을 봉인 당한 상태.
그 잘난 신체 강화나 마력 운용도 모두 못 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볼크가 사용한 것은 순수한 그의 육체 능력이었다.
“훈련도 안 한 몸으로 덤비면 안 되지.”
볼크는 목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거한웅을 보곤 중얼거렸다.
각성자들은 대개 자신의 스킬과 강해진 신체만을 믿고 싸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능력이 봉인 당한 상태에서도 과거의 경험만을 가지고 덤벼드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사고 치고 싶지는 않았는데 위에서 하라니까 해야지. 별수 있나? 패밀리인데.”
볼크는 거한웅의 뺨을 툭툭 때리곤 다시 벤치에 누웠다.
저 멀리서 교도관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교도소 안에서 문제를 일으켜라.》
‘이 정도면 충분히 문제가 됐겠지.’
***
“셰리 볼크, 본명은 기재가 안 되어 있네?”
“버려서 없습니다.”
교도소장은 볼크의 얼굴을 흘낏 바라봤다.
각성자의 능력을 억누르는 봉인구가 있었는데도 두 명이 죽고 세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건 단순히 독방에 가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자네는 우리 교도소보다 한층 강화된 곳으로 가게 될 걸세. 여기서 얌전히 지냈으면 서로 다 좋았을 텐데··· 고생을 사서 하는구먼.”
“괜찮습니다.”
교도소장은 짧은 한숨과 함께 이감 문서에 서명했다.
“여기 있는 자네 짐은 우리가 싸서 따로 보내 주겠네. 차량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대로 곧장 가면 될 걸세.”
볼크는 교도관의 안내에 따라 차량에 탑승했다.
일반적인 호송차란 느낌보다는 특수한 목적으로 제작된 차량 같았다.
“차 존나게 넓네.”
그는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손발을 조금씩 움직이며 차에 올랐다.
엄중한 경비가 함께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기본 인원을 제외하고는 호송 공간 안에 딸랑 한 명이 더 있을 뿐이었다.
“뭐야. 내 감시역으로는 당신이 끝이야? 아무리 수갑 채워 놨다지만 존심 상하네, 이거.”
볼크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향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마나와 능력이 봉인된 상태로 다섯 명을 쓰러트린 범죄자인데, 감시자가 단 한 명이라니.
뭔가 무시 받는 기분이 든 것이다.
“형씨, 내가 이감되는 곳 교도관이야?”
“아니.”
“그럼 어디 다른 곳에서 나오셨나 보네. 실력이 어지간히 있나 봐? 내 이름 듣고도 혼자 감시하러 나온 거 보면.”
“······.”
“재미없는 형씨네. 어디 길드야?”
“난 길드에서 나온 거 아닌데.”
볼크는 입가에 그어진 흉터를 긁적였다.
보나 마나 대형 길드에 의뢰해서 전투형 헌터를 붙여 놨다 생각했는데.
“길드가 아니면 어디서 나왔는데?”
볼크에 끝없는 질문을 듣던 남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나른하게 대꾸했다.
“HM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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