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11
215화〉
한 꺼풀 벗기면2
후들거리는 다리.
비틀대며 균형을 잃은 몸.
“······!!”
경련이라도 인 듯 손이 떨리지만.
민시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눈과 귀, 코와 입에서 피를 뚝뚝 흘려 내며 스태프를 꼿꼿이 들고 섰다.
그가 피를 흘리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마력의 과부하.
자신이 가진 출력 이상으로 마력을 쏟아 내려 할 때, 마력들이 거센 수압처럼 마나맥을 찢고 온몸으로 날뛰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민시준이 경험 부족으로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청룡이 수합한 마력량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너무도 거대했기에, 민시준으로서는 자신이 가진 용량 이상을 쏟아 낼 수밖에 없었던 것.
‘저놈의 공격을 막아 낼 수만 있다면.’
그 결과가 마력의 역류여도 좋고, 마나맥이 터져 내장이 진탕되어도 좋다.
‘이깟 몸뚱이쯤이야 얼마든지 주마.’
만약 이 강격을 파훼하지 못한다면 도심지가 파괴되는 건 둘째 치고, 아밍과 아술, 최성일이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터.
민시준은 최성일의 실드가 벌어 준 3초의 시간 동안 자신의 단전과 전신에 있는 모든 마력을 남김없이 긁어 스태프에 쑤셔 박았다.
급격히 비워진 단전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일었지만 상관없었다.
‘이 스태프도 이걸로 끝이군.’
민시준은 파르르 떨려 오는 스태프를 쥐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헌터 시절 내내 자신의 곁을 지켜 준 최고의 친구.
스태프 끝에 박힌 마정석이 쩍, 갈라지며 안에 담긴 모든 마력이 휘몰아치듯 뭉쳐졌다.
지금 그의 너덜너덜해진 육신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힘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크윽!”
누군가 손끝부터 발끝까지 신경 마디마디를 칼로 끊어 내는 것처럼 격통이 찾아온다.
찢어진 마나맥과 온 혈관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그러나 민시준은 스태프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
0.1초가 반나절로 늘어난 기분이다.
감당키 어려운 통증에 어금니가 바스러지도록 턱을 깨물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마치 주문처럼 다짐을 외며, 눈앞의 상황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민시준은 그 순간 단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제나 이런 고통을 인내하며 모두를 위해 싸워 왔던, 본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살아왔던 사람.
형.
항상 이렇게 아파야만 공감할 수 있는 존재.
힐로 치료가 된다고 해서 상처를 입는 순간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수복시킬 수 있었기에, 그 사기적인 힐 능력은 형을 항상 사지로 내몰고 누구보다 앞에 나서도록 종용했다.
물론 본인이 원해서 나선 것도 맞는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힐이라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그때도 형은 언제나 남보다 앞장서 적과 싸우려 했을까.
다른 사람들도 형이 최전방에서 전투하는 모습을 보며 위안 대신 걱정을 할 수 있었을까.
민시준에게 형의 ‘힐’은 축복이 아닌 저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저주가 아니었다면 형은 그렇게 무리하지 않았을 테고, 남들보다 많은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서 아픔의 강도가 희석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만약···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나는 형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
그는 번갯불처럼 찾아오는 격통에 의식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본인의 한계치까지 버틴 최성일의 실드가 깨지는 그 순간.
청룡의 마력 덩어리가 자신들에게 재앙과도 같이 쏟아져 내렸고.
민시준은 마지막 의식을 집중해 모아 둔 모든 마력을 방출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거대한 마력과 마력의 힘이 격돌하며 섬광이 온 도시를 물들인다.
그 뒤를 이어 태풍이 몰아치고 일대를 짓이기는 굉음이 불어닥친다.
잔잔한 고요가 찾아오기도 전.
민시준은 입에서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과한 힘을 발휘한 탓에 리바운드가 너무 격렬하게 찾아왔다.
“쿨럭···! 커허억···!”
핏물이 윗옷을 적시고 땅바닥에 흘러내렸다.
이제 시야가 너무 흐릿하다.
민시준은 옷소매로 피눈물을 닦아 냈다.
저 멀리서 청룡의 모습이 찢기고 있는 것이 설핏 눈에 들어왔다.
“끋···났···.”
그는 아주 옅은 미소와 함께 앞으로 쓰러졌다.
바람이 불고, 토막 같은 적막이 흐른다.
파지지직···!!
그리고 청룡이 다시 몸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마나 입자들과 얼음 알갱이들이 한 알 한 알 모여들며 청룡의 몸을 이루고, 곧 용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 크르르릉···.
청룡은 끝없이 분노했다.
놈은 고작 인간 하나가 자신의 마력을 집대성한 공격을 파훼한 것에 경악했고, 그 인간이 쓰러진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 ‘경악’과 ‘안도’라는 감정을 느낀 것이 몹시 불쾌했던 것이다.
자신은 사방신이었다.
인간들이 떠받치고 제사를 지내 노여움과 재앙을 거둬 달라 빌어야 하는 존재였단 말이다.
그런데 고작 인간 몇 명을 어쩌지 못해 발이 묶여 있었다니.
이건 수치이자 본인에 대한 능멸이었다.
– 크워어어어···!
청룡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과거 신으로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는 본인의 뜻대로 이 모든 곳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민시준과 충격파에 쓰러진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청룡은 몸을 꿈틀거리며 뾰족한 이빨을 드러냈다.
“크윽···!”
“시준··· 오빠···.”
아술과 아밍은 최성일의 실드와 민시준의 반격으로 간신히 목숨을 유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마력과 마력의 격돌로 벌어진 충격파에는 그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만한 마력 충돌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
청룡은 커다란 몸을 뱀처럼 휘적거리며 지상으로 내려와 민시준 위에서 눈알을 번뜩였다.
“아, 안 돼···!”
아술은 말을 듣지 않는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인상을 구겼다.
노골적인 청룡의 태도에도 민시준을 데리고 도망갈 수가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충격파에 몸이 상한 것도 있었지만, 청룡의 거대한 격에 짓눌린 육신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 거대한 격과 마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재난이었으니.
청룡은 민시준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어차피 다 죽어 가는 인간 따위 영양분으로서의 가치는 없을 터.
그러나 청룡은 민시준의 머리부터 다리까지 아그작거리며 뼈째 발라 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시준··· 오빠···!”
아밍의 외침에도 무색하게 청룡의 입이 민시준의 상반신을 덥석 물었다.
승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청룡의 목을 잘라 냈다.
– 쿠워억!
청룡은 민시준을 도로 게워 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잘린 목은 마력으로 다시 수복되었지만, 그렇다고 대미지가 제로인 건 아니었다.
청룡은 고개를 돌렸다.
“이 빌어 처먹을 뱀 새끼가···.”
처음 보는 인간 하나가 그를 향해 흉흉하기 짝이 없는 기세를 뿜어 내고 있었다.
쩌저저저적ㅡ!
그런데 그 격이란 게 어찌나 강대했는지 지반이 절로 뒤집히고 건물들이 우그러지며 무너져 내렸다.
청룡은 눈앞의 이 인간이 가장 위험한 적임을 깨달았다.
– 크르르르릉!
청룡의 무시무시한 포효와 함께 공기를 통째로 얼려 버리는 냉기가 상대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이대로 놈이 피해 낸다면 그 순간에 맞춰 달려들어 물어뜯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품에 있던 검을 높이 들더니, 수직으로 힘차게 내리그었다.
콰가가가가가!!
냉기를 반으로 갈라 버린 맹렬한 검기가 그대로 청룡에게 내리꽂혔다.
몸이 짓이겨진다.
마력을 이용해 다시 수복한다.
청룡은 재빨리 건방진 인간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놈이 재차 공격하는 데까지는 약간의 틈이 있을 테니, 그 안에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그런데.
ㅡㅡㅡㅡㅡㅡㅡ.
그건 순식간이란 단어로밖에 형용할 수가 없었다.
분명 수십 미터는 벌어져 있었다.
청룡인 자신이 몸을 박차 날아간다 해도 2초는 걸릴 간격이었다.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인간이었는데.
“씨발,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어느새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청룡은 미처 반격할 준비조차 할 수 없었다.
인간은 검 대신에 어깨를 뒤로 젖히며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섬찟할 마력이 주먹에 한가득 뭉쳐진다.
청룡은 저 공격은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작 주먹 한 방이다.
저 공격을 받아 낸 뒤 하늘 높이 날아가 마법을 쏘아 내면 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의 강함은 지금껏 사방신으로서 살아온 자신이 보기에도 규격 외였다.
때마침 인간의 주먹이 발리스타처럼 쏘아진다.
단 한 번만 맞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먹이 점차 크게 다가왔고.
‘아아아···.’
사방신은 자신의 주마등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쩌ㅡㅡㅡㅡㅡㅡㅡ엉
거대한 마력 폭풍이 일대를 휜쓸고 기다란 섬광을 내뿜는다.
청룡의 육신이 갈기갈기 터지며 사방으로 흩날린다.
시우가 주먹을 거둬들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뒈지려고, 씨발놈이.”
***
현무의 발아래로 수십 개의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놈이 구현한 스킬인 듯했다.
한태치는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그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다른 누군가가 죽는다면.
그 견디기 힘든 죄의식.
물론 의사가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 없고, 군인이 모든 적군을 물리칠 수 없는 것처럼.
헌터 역시 모든 몬스터를 죽일 수 없고, 모든 민간인을 구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한태치는 타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이 바닥을 떠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 죄책감이 너무 두려워 헌터로서의 삶을 포기했던 한태치였는데.
“아ㅡ.”
시간이 늘어진다.
귓속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먹먹하다.
돌무더기가 적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한태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자신을 멀찍이 밀어내고 있는 적귀의 가느다란 팔목이 보인다.
왜, 왜 그러셨어요.
그는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에.
혹은 밀려드는 죄의식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노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적귀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지 마요, 제발.
차라리 원망하고, 너 때문에 죽었다고 욕이라도 해 줘요.
한태치는 표정을 와락 구겼다.
그는 타인의 희생과 죽음을 자양분 삼아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분노를 껴안고 살아갈 자신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분노는 이겨 내고 받아칠 수라도 있지.
영감님처럼 웃어 버리면, 저는 제 죄책감을 어쩌고 살아가라고요.
한태치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뻐근하게 아려 오며 격통이 전신으로 옮겨 갔다.
적귀의 머리를 짓누르려는 바윗돌이 눈에 들어온다.
‘아, 기껏 억누르고 살아왔는데.’
한 방울의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내린다.
한태치는 무의식적으로 단전을 열어 마력을 뽑아 올렸다.
뻐근한 감각이 마나맥을 타고 온몸에 서늘한 기운을 뿌리박는다.
깊은 고양감과 차오르는 충만함이 느껴진다.
손을 뻗는다.
마치 적귀의 손을 붙잡을 것처럼.
혹은 짓누르던 죄악감을 밀쳐 낼 것처럼.
한태치는 수년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던 술식을 구현해 냈다.
천 개가 넘는 문자와 기호가 공식처럼 원을 이루고 획이 반듯하게 그어지며 모든 것들이 교차한다.
새하얀 빛과 까만 어둠이 뒤섞인 마법진이 형성된다.
한태치가 입술을 열어 자신의 스킬을 구동했다.
[오델로 : 리펄젼]그를 중심으로 강력한 척력(丘才)이 발생하며 적귀의 머리맡까지 닿았던 바윗돌이 튕겨 날아간다.
적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태치는 현무를 향해서 위로 손을 내뻗었다.
“꺼져.”
투ㅡㅡㅡ웅!!
현무의 거대한 몸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