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12
216화〉
한 꺼풀 벗기면3
쿠우우우웅···!!
거대한 괴수의 몸이 뒤집히며 흙먼지가 비산한다.
날카롭고 단단한 귀갑이 바닥으로 향하고, 그보다는 무르게 보이는 복갑이 드러난다.
놈의 뱀 같은 꼬리와 드래곤을 닮은 머리가 포효를 내지른다.
갑작스레 뒤집힌 것에 분노한 것이리라.
한태치는 마력을 다시 끌어 올려 술식을 전개했다.
이번엔 자신이 기준점이 아니라, 현무를 기준점으로 세워 스킬을 구사했다.
[오델로 : 어트랙션]쏟아져 내리던 거대한 바윗돌들이 무시무시한 인력(引力)에 사로잡히며 현무에게 돌진한다.
콰가가가가가강!!
복갑이 단단한 덕분에 돌들이 꿰뚫진 못했지만, 충격까지 없었던 건 아닌지 현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자네···?”
적귀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불렀다.
그는 살짝 까진 이마를 매만지며 자신에게 날아들던 바윗돌을 떠올렸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한태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 역시도 이런 때에 능력을 다시 각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려 하는 적귀를 보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조금 희미하다.
하지만···.
‘마음이 가벼워졌어.’
사방에서 눌러 내릴 것 같던 죄악감은 날려 버리고, 그 모든 책임은 일을 벌인 놈들에게 짐 지운다.
불필요하게 그를 붙들고 있던 것에서 자유로워지자 후련함과 안도감이 갈마들었다.
‘못 지키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지킬 만한 능력을 키우면 되는 거였는데.’
한태치는 마음을 둘러싸고 있던 벽을 허물고 오랜만에 태양을 바라본 느낌이었다.
그는 아이템 박스를 열어 공격용 아이템을 모조리 꺼냈다.
예전이라면 이만한 마력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이에게 부탁해야만 했을 텐데.
지금은 왠지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한태치는 아이템에 마력을 쏟아부었다.
일정 이상 마력이 차오른 아이템에서 LED 불빛이 반짝인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척력을 사용해 아이템을 공중으로 높이 띄운 뒤, 인력으로 현무의 복갑 위에 떨어지게 한다.
파직.
꽈ㅡㅡㅡㅡㅡㅡㅡㅡ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일며 사위를 뒤덮는 충격파가 덮친다.
아이템 하나하나가 강대한 파괴력을 지닌 탓에 그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한태치가 손바닥을 들어 술식을 구현했다.
현무의 폭발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력이 작용하며 솟구치는 힘을 안으로 잡아당긴다.
쿠구구구구ㅡ!!
압축된 힘들이 다시 폭발하고, 밖으로 내뿜지 못한 열기가 다시 안에서 들끓는다.
현무의 비명 같은 것이 들렸다.
아니 확실히 들은 것은 절대 아니다.
놈의 비명 역시도 저 어마어마한 인력에 잡아먹혀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테니.
“허···.”
적귀는 한숨도 감탄도 아닌 이상한 탄식을 냈다.
영수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몸뚱어리를 지닌 현무의 몸이 걸레짝이 되다 못해 한 줌 재로 변했다.
그 어떤 충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던 귀갑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적귀는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 폭발력 자체는 아이템들의 연쇄 작용으로 일어난 것이기에 한태치만의 힘이라 하긴 어렵다.
그러나 뛰쳐나가려는 힘을 붙잡고 끝까지 한점으로 물고 놓지 않은 것은 한태치의 능력.
적귀는 소멸한 현무를 뒤로하고 한태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마력을 전부 소진한 까닭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제 조금 S급다워 보이는군. 구해 줘서 고맙네.”
적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희게 웃었다.
한태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하더니, 적귀를 따라 엷은 미소를 지었다.
***
교도소가 털렸다는 소식을 들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대한민국 최고 등급의 각성자 교도소.
그 안에 갇힌 약 일천 명의 범죄자가 탈옥했다는 소식에 최대수는 아연실색했다.
사방신으로 눈길을 돌려놓고 다른 짓을 저지를 거란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미국에서처럼 교도소를 털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이거야말로 비상 상황이군.”
언론을 타고 나가는 순간 불안은 전염될 테고,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만한 문제를 조용히 넘길 수도 없는 노릇.
최대수는 모든 경찰력과 헌터 협회, HMCS, 헵타그램을 포함한 전 길드에 긴급 명령을 전파하라 지시했다.
법무부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범죄자를 토대로 평택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죄수 목록을 각 기관에 전달했고, 그 즉시 군과 경찰, 길드에서 대대적인 수색을 개시했다.
“교도소를 누가 털었는데?”
명령을 내린 최대수를 보며 시우가 물었다.
“거기까지는 아직 확인을 못했나 보더군.”
최대수는 한숨처럼 기다란 시가 연기를 내뿜었다.
깊게 파인 미간에서 그의 짜증과 고민이 느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S급 헌터가 이게 다야?”
합류한 일행을 둘러보던 시우는 영 못 미더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한태치, 민시준, 최성일, 이예지.
그리고 S급 경지에 거의 다다른 추하민과 황정구.
“나머지는 다 미국에 가지 않았습니까, 사장님.”
“더 쓸만한 애들은 없고?”
한태치의 대답에 시우가 되묻자,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을 이었다.
“원래 채우담 헌터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엔 한 번도 보지를 못했네요.”
다른 헌터들은 그제야 채우담이 오랫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혹시 당한 거 아닐까요?”
“설마요. 저희보다 강하잖아요. 도경후 헌터와 비견될 헌터이신데, 그리 쉽게 당하진 않으실 거예요.”
최성일의 당혹스러운 질문에 이예지가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하긴 하군. 근래 들어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긴 했는데, 이런 사태에서까지 잠잠하다는 건···.”
최대수는 턱을 쓰다듬다가 비서를 시켜 헌터 협회에 급히 사람을 보내라 일렀다.
채우담이 기인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사회성이나 대화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인상이 무척이나 밝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헌터 협회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건 타인을 향한 연민이 높다는 것.
얼굴은 흉터가 가득해 무서웠지만, 헌터 이명이 ‘부처’였을 정도로 인자하고 사람을 잘 도왔기에 가장 신뢰받는 기관의 장까지 맡긴 것이었다.
그런 채우담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김은주 헌터의 죽음 이후였다.
힘들면 자리에서 물러나도 된다고 몇 차례 얘기했지만, 채우담은 최대수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 자신의 역할이 남아 있다며 말이다.
몇 분 뒤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 각하! 헌터 협회 본부 사람들이··· 다 죽어 있습니다!
최대수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기랄,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군. 채우담 헌터 시신도 거기 있나?”
–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들이 들어가서 시체들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채우담 헌터로 보이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거 하나는 다행이군. 그 본부 사람들의 사인은 뭐지? 괴물에 당해 죽은 것 같은가? 아니면 마법?”
– 그게··· 뭐에 꿰뚫린 것 같은데···.
최대수의 질문에 비서는 잠시 고민에 잠기는 것 같더니 흡, 소리를 내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 각하, 이 기술은··· 채우담 헌터의 가시나무 스킬입니다.
생물을 조종하는 조작계 스킬 각성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았다.
분명 그 특징이 남아 있다면 백 퍼센트 채우담일 것이었다.
“확실한가?”
하지만 최대수는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리 마음이 망가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리라 믿었다.
– 확실합니다. 부러진 가시나무 줄기가 조금씩 떨어져 있고, 시체들에 균일하게 가시가 파고든 흔적이 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HMCS를 불러 수사에 공조하도록.”
최대수는 전화를 끊고 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 없군.”
그는 텁텁하게 느껴지는 시가를 깊이 빨아들이며 옆에 선 시우에게 나직이 말했다.
“네가 사람도 믿냐.”
“뭘 모르는 소리 하는군. 정치하려면 믿음은 필수다. 대신에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을 믿는 거지.”
“그래서 채우담의 능력을 믿었고?”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다. 네놈은 절대 얻지 못할 ‘부처’라는 이명을 얻었을 정도로.”
“그건 대단하네.”
시우는 무뚝뚝하고 사연 많은 것처럼 보이던 채우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이명과 비교해 보려 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놈이 뭘 얻고 싶은지 모르겠군.”
과연 그의 계획은 무엇일까.
시우는 팔짱을 낀 채 사방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대체 채우담은 이번 사건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개입한 것인가.
‘분명 디아칸은 이 계획을 페넬슐이라는 놈이 진행했다고 했다. 채우담이 페넬슐과 손을 잡은 것이거나, 페넬슐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게 맞겠지. 그럼 채우담은 〈판데모니엄〉과 언제부터 손을 잡았으려나.’
〈판데모니엄〉과 관계성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을 터.
우연히 사방신이 부활한 틈에 헌터 협회 조직원들을 죽이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크롤의 리스트에 채우담은 없었어. 그렇다는 건 채우담과 손을 잡은 게 아주 예전부터는 아니란 걸 테고.’
시우는 놈들이 접촉한 시점이 김은주의 죽음 이후일 것이라 추측했다.
보통 〈판데모니엄〉은 돈이나 권력, 힘 따위를 조건으로 내걸고 다른 사람과 거래를 한다.
그런데 채우담에게 저것들이 필요할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고, 그 원인을 제공한 놈들이 거래를 제안했다.
보통은 놈들을 찢어 죽이려 하겠지만, 채우담은 거래를 승낙했을 거다.
그렇다면 놈들이 제시했을 조건은···.
뭔가를 깨달은 시우가 일행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헌터 국립묘지가 어디 있냐?”
***
비가 좌르륵좌르륵 내리는 공동묘지 한복판.
묘지 앞에 한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비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故 김은주 헌터 묘〉.
채우담은 바닥에 있는 비석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빗물인 듯 눈물인 듯.
닦아도 계속 떨어지는 물기에 남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여기 올 때마다 실신하도록 울고는 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 시작하도록 하지.”
채우담이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그러자 묘지 구석에 있던 검은 그림자가 꿀렁거리며 형체를 이루어 나갔다.
“끌 끌 끌. 준 비가 다되 었 나보 군. 덕분 에 좋 은경 험을 했 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는 음성.
페넬슐은 네모난 상자 하나를 가져오더니 채우담 옆에 내려놓았다.
“이게··· 그건가?”
“궁 금하 면열 어보 도록.”
채우담은 상자 뚜껑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아··· 아··· 아···!!”
채우담이 절규와 통곡을 짧게 질러 대더니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심장.
“이 제 그 녀는 다 시네 품으 로돌 아 갈수 있 다.”
콰드드득.
페넬슐이 손짓하는 순간 무덤이 통째로 들어 올려지며 김은주의 관이 천천히 떠올랐다.
덜컹.
관 뚜껑이 열리며 김은주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끌 끌끌. 가 슴의 구 멍에 네 가든 심 장을 넣 어 라.”
페넬슐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린다.
쿠르르릉.
천둥 번개가 친다.
장대비가 쏟아진다.
채우담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