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13
217화〉
맹세
시우는 최대수, 한태치와 함께 차에 올라 강원도에 있는 헌터 국립묘지로 향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통에 시야가 어둡고 길이 미끄러웠다.
끼익. 끼익.
와이퍼 돌아가는 소리와 루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가득하다.
음악이나 라디오조차 켜지 않아 그 소리는 더욱 선명했다.
이따금 깜빡이 켜는 기계음이나 다른 차를 추월할 때 들리는 반향음을 제외하곤 혼잣말조차 없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최대수가 운전하고 있는 시우에게 입을 열었다.
“세계 0위가 됐더군. 말도 안 되는 기록을 경신하며 말이야.”
“헉··· 사장님, 랭킹전에서 0위 하셨나요? 감축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시우는 조금 겸연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은 기뻐하는 게 어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 최초 SSS급 헌터의 탄생인데.”
“에, 에, SSS급 헌터요?! 그거 엄청난 거 아닙니까! 이 한태치, 사장님을 모실 수 있어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한태치는 진심으로 놀랐는지 안절부절못하며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거참. 오버한다.”
“네놈은 SSS급 헌터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건 그렇지. 깝죽거리는 애들 눌러 주려고 참가한 건데, 갑자기 0위라니까 알 턱이 있나.”
게다가 그런 등급을 얻고 난 후에 만끽할 틈도 없이 곧장 한국으로 날아와 사방신하고 싸웠으니, 시우로서는 감이 안 올 수밖에 없었다.
최대수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쯧쯧 혀를 찼다.
“네놈이 나타나기 전까진 SS급이 최고였다. 성장해서 SS+급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미스틸 테인’에 들어갔던 일반적 기준이 SS급이란 말이지.”
천외천의 경지에 이른 국가급 전력.
‘미스틸 테인’은 전 세계 모든 헌터들의 정점이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언터처블의 존재들이었다.
그 격이 너무 강한 탓에 랭킹에서도 제외되었고, 세계의 균형을 위해 국가 기관이나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는 인류 최강의 전력들.
“그런데 네놈이 SSS급을 받았으니 기준선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좋든 싫든 앞으로 여러 국가에서 견제를 받게 될 테고. 특히나 한 국가에서 두 명의 ‘미스틸 테인’이 존재하는 건 미국밖에 없으니.”
자국 내에서 세계적인 하이 랭커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자산이 되는데, 하물며 ‘미스틸 테인’이 탄생하면 그 국가의 위세는 커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입장에선 한국이란 나라가 최대수 외에 다른 ‘미스틸 테인’을 배출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가령 우방국인 미국이나 관계가 좋은 독일은 찬성표를 던지겠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는 반대를 놓을 게 불 보듯 뻔할 일.
“흐음.”
지금 한국이야 사방신과 채우담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런다지만, 현재 다른 나라들은 SSS급 헌터의 출현으로 대대적인 회의를 진행할 게 틀림없었다.
특히 인접국들에게 이 소식은 엄청난 악재로 느껴질 터.
“테스트를 다시 치르잔 놈부터, 자신들이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놈들, 나아가서는 존재 자체를 없애려는 놈들까지 있을 거다.”
“하지만 대통령님···. SSS급 헌터를 상대로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한태치의 순수한 질문에 최대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연구소에만 있으니 무른 감각이 그대로지. 전투와 암살은 다르다. 일대일로 SSS급과 맞붙는 놈은 없겠지.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강한 놈이라도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잠을 잔다. 암살은 그럴 때 조용히 이뤄지는 거고.”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요···?”
“처음엔 제안이 올 수도 있지. 이민 같은 형식으로. 하지만 거절하면 그때부턴 24시간 경계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태치는 되레 본인이 긴장하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세계 랭킹 0위의 삶은 꽃길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지독한 현실을 알고야 말았다.
하지만 시우의 표정은 최대수의 설명을 듣기 전이나 들은 후나 변함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모습.
“저기 그러면··· 대통령님도 0위에 올랐을 때 그러셨나요?”
“큭큭. 내가 왜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 만약에 사장님에게 다른 나라에서 테스트를 다시 하자거나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떡하죠?”
“이미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선 번복할 수 없지.”
시우가 세계 랭킹 0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헌터 협회와 HMCS 총본이 인정한 마당에 딴죽을 건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으니까.
그러나 충분히 번거롭게 만들거나, 논란을 일으킬 수는 있었다.
“이참에 네놈이 ‘미스틸 테인’에 들어갈 생각은 없나?”
최대수의 질문에 시우가 처음으로 다른 표정을 보였다.
그는 조수석을 향해 눈길을 흘깃 던졌다.
“없다.”
“큭큭큭. 싫어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그런 경우도 있나?”
“그 헌터가 너무 강하면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미스틸 테인’은 세계 외교에 있어 중립인 자들이다. 어느 한 국가 편을 노골적으로 들 수가 없지.”
“네가 대기 명단에 있다며.”
“네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내가 최강이었으니까.”
최대수는 시가가 피우고 싶은지 불이 붙지도 않은 시가 끝을 깨물며 창밖을 바라봤다.
비가 쏟아지며 풍경을 뒤섞는다.
시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카이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각국 대통령의 위에 군림하는 열두 명의 존재들.
“지금 당장 생각은 없지만.”
시우가 입을 열자 최대수가 그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내가 필요하면 싫어도 들어갈 생각이다.”
“네놈이 필요한 일도 있나?”
“천외천을 상대로 조사하려면, 내가 천이천이 되는 수밖에 없겠지.”
“···미친 거냐?”
그건 선전 포고 이상이었다.
최대수는 시우가 말한 ‘조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저리 되묻는 것 외엔 할 말이 없었다.
저건 미친 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스틸 테인’을 상대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텐데. 자국 내에선 당연하고, 타국에서도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다. 놈들은 HMCS나 헌터 협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래? 그럼 이제 닿게 생겼네.”
시우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덤덤히 내뱉었다.
최대수는 어리석은 질문이었단 걸 깨닫곤 실소를 터뜨렸다.
“미친놈. 큭큭큭. 예나 지금이나 너만큼 미친놈은 없을 거다.”
“칭찬 고맙군.”
“우선 그 문제는 차치하고 채우담 문제부터 해결해 볼까.”
“아, 사장님 저기 목적지가 보입니다!”
한태치가 빗줄기 너머 보이는 국립묘지를 가리켰다.
***
“염병할. 다른 놈들 따라서 한탕 치나 했더니, 입구 지키기가 뭐야.”
“그냥 저 새끼 제끼고 도망칠까? 씨발, 이게 뭔 짓이지.”
“너보다 저 샌님이 셀걸? 븅신야.”
“으히히. 죽이고 싶다, 아무나.”
국립묘지 입구 근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평택 교도소에서 탈옥한 자들이었다.
“조금만 참아, 자식들아. 저 헌터 나리가 기가 막힌 작전을 세워 뒀겠지. 빵에서 빼내 줬는데 시키는 것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지랄이다, 지랄. 난 그냥 사람 죽이러 나온 거라고.”
“야. 닥치고 밖에 있는 거로 감사해라. 넌 사형수잖아.”
“하긴··· 그건 그렇지.”
몇 시간 전.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만 해도 그들은 밖을 나서게 될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 사람당 주어진 세 평의 공간.
전방이 방마 유리로 되어 있어 훤히 보이는 내부.
게다가 24시간 돌아가는 각방의 CCTV까지.
특히 평택 교도소는 각성 범죄자 중에서도 죄질이 무거운 자들만 모인 곳이었기에, 기본이 무기 징역이나 사형 판결이었다.
그렇게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찰나, 스피커가 지지직거리며 낯선 음성 하나가 울려 퍼졌다.
– 이 세상을 뒤엎고 싶은 사람들은 나를 따라오세요. 다시 말합니다. 한바탕 날뛰고 싶은 사람들은 나를 따라오세요.
죄수들은 교도소 내 스피커로 들리는 뜬금없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방송실의 실수이거나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일 것이다.
대한민국 최악의 범죄자들만 모아 놓은 교도소에서 ‘세상을 뒤엎고 싶은 사람’이나 ‘날뛰고 싶은 사람’을 찾다니.
사실상 전부라 여겨도 무방하지 않은가.
그런 짓만 벌이다가 잡혀 온 놈들이니 말이다.
죄수들은 낄낄거리며 웃거나 복도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목에 채워진 마력 제어 장치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또다시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이 세상을 활보하고 다녔을 거다.
그렇게 병신 같은 방송을 무시한 채 야유를 퍼붓고 있는 찰나.
뚜벅. 뚜벅. 뚜벅.
누군가가 중앙 홀로 내려왔다.
감방 전면이 유리로 된 덕에 죄수들은 그 사람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교도관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사람에게선 진한 피비린내와 살육의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죄수들은 이 남자가 자신들과 같은 부류란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덜컹. 덜컹. 덜컹.
그 순간 죄수들의 방문이 빠르게 열리기 시작했다.
죄수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방문을 열고 복도로 우르르 나왔다.
“당신 정체가 뭐야?!”
그때 앞쪽에 있던 죄수 하나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썩은 나라를 새로 부활시키고픈 사람입니다.”
“그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왜 우리를 풀어 주려 하는 거지?”
“당신들은 엄밀히 말해 구더기 같은 거죠.”
“···뭐??”
질문을 던진 죄수를 비롯해 수많은 자들의 눈빛이 살의로 돌변했다.
“이 세상은 썩었고, 당신들은 그 썩은 살점을 파먹어야 할 구더기인 겁니다. 세계를 다시 써 내려갈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신들의 도움도 기록해 드리겠습니다.”
“크하하. 이 미친 새끼가···. 그따위로 말해 놓고 지금 널 돕길 바라는 거냐!!”
그 죄수는 고래고래 소리치며 채우담을 향해 험악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퍼거어억, 콰드드득!
그림자에서 솟구친 가시나무가 그 남자의 몸을 사방에서 꿰뚫고는 칭칭 휘감았다.
가시나무에 쥐어짜인 남자의 시신에서 핏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죄수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당황한 듯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그 능력으로 채우담이 누군지 깨달은 사람들도 있었다.
‘헌터 협회 협회장··· 도경후 다음가는 S급 헌터잖아.’
‘그런 사람이 왜 탈옥을 주도하지? 혹시 함정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구더기는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각조차 없는 자는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살점을 파먹을 구더기를 원하지, 주인을 무는 개를 원하진 않습니다.”
채우담의 서늘하고 건조한 어투에선 그 어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죄수들은 일단 이 사람의 목적을 끝까지 들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마력을 쓸 수 없는 그들로서는 채우담에게 덤벼 봤자 1초도 되지 않아 개죽음만 당할 게 뻔했기 때문.
“좋습니다. 각오가 된 사람은 나눠 주는 종이에 서명하십시오. 그러면 마력 제어 장치를 풀어 드리도록 하죠.”
그는 가시나무를 이용해 복도 저 끝까지 종이와 펜을 흩뿌렸다.
“이 씨발··· 마나의 맹세잖아.”
종이를 받아든 죄수들은 해당 내용을 읽어 본 뒤 욕설을 내뱉었다.
이건 일종의 종신 계약에 가까운 불공정한 마나의 맹세였다.
심지어 그 복종의 대상은 〈판데모니엄〉.
이대로 평생 감옥에서 썩느냐, 놈에게 개죽음당하느냐, 아니면 미친 마족 숭배자들의 노예가 되느냐.
“빌어먹을··· 일단 난 나가야겠어.”
“나도 이 엿 같은 곳에선 하루도 더 못 살겠다.”
“나가면 사, 사람 주, 죽일 수 있나.”
죄수들은 마력 대신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로 서명을 마친 뒤 채우담에게 종이를 건넸다.
채우담은 흡족한 얼굴로 그들의 목걸이를 하나씩 풀었다.
“이제 나라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 보도록 할까요.
그는 퀭한 눈동자로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