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15
219화〉
맹세 3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거대한 돌풍을 보며 채우담이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력과 마기가 뒤섞이기 시작하더니 흉악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건 단순한 힘이라기보단 진득하게 굳은 원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과 간절히 바라던 기망, 그리고 모든 미래가 파탄이 났을 때 닥쳐왔던 좌절이 여과지에 한데 걸러져 채우담의 마음에 쌓였을 터.
끈적거리고 탁한 증오.
시우는 놈에게서 짓쳐오는 강한 욕망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판데모니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으로 보일 만했다.
앞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추락할 사람은 아주 매력적인 그릇으로 보였을 거고, 거기에 그릇된 욕심과 마기를 담아 주기만 하면 환상적인 광기로 탈바꿈했을 테니 말이다.
콰드드드드드득!
사방에 부리를 박고 있던 가시나무가 채우담의 몸을 꿰뚫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개의 가지가 그의 몸을 칭칭 휘감고 거대한 나무를 형성한다.
“우워어어어어!”
가시나무가 채우담의 얼굴마저 감쌌다.
비바람이 뒤섞인 [용오름]에 맞선 채우담의 모습은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와도 같았다.
이윽고 돌풍과 나무가 몸을 부딪쳤다.
쩌저저저적ㅡ!!
[용오름]은 지반을 깨부수고 바람으로 모든 것을 할퀴며 나무를 야금야금 파먹었다.하지만 그것을 막아 내는 채우담의 나무는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았다.
한참을 뒤흔들던 돌풍은 이내 잠잠해졌다.
마치 거대한 동물이 한 입 베어 먹기라도 한 것처럼, 가시나무로 이루어진 형체는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무가 벌어지더니 그루터기에서 채우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놈.”
시우는 진심을 담아 읊조렸다.
놈은 이미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조차 할 수 없었다.
가시나무가 전신을 꿰뚫어 피부 겉을 싸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나무로 만든 인형이나 골렘과도 같았다.
채우담이 비틀거리며 나무 밖으로 걸어 나왔다.
힘이 폭주한 탓인지 흘러나오는 마기와 마력이 엉망진창이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 인간을 포기하더니, 이제는 외양마저 인간을 포기했군.”
“나··· 나는··· 지킨다··· 그녀를···.”
“이건 지킨 게 아니야, 병신아. 김은주 헌터의 숭고한 죽음을 더럽힌 거지.”
“네가··· 네가··· 뭘 안다고···. 그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
채우담은 가시나무로 틀어막힌 입을 억지로 벌리며 격렬하게 소리쳤다.
시우는 쯧, 혀를 찼다.
방금까지는 생포해서 정보라도 얻을 요량으로 나름 힘을 조절했었는데, 지금 놈의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정신이 붕괴되면 기억을 읽는 헌터도 붕괴된 정신을 봐야 한다.
따라서 놈에게는 기억 읽기 스킬을 쓸 수도 없을 뿐더러, 심문조차도 불가능하니 살려 둘 가치가 없었다.
시우는 발뭉에 마력을 그득 실은 뒤 채우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섬광이 쏘아진다.
콰가가가가가!!
하지만 검격이 나아감과 동시에 채우담의 전방으로 나뭇가지들이 뭉쳐지더니 시우의 공격을 막아 냈다.
“나··· 지킨··· 그녀···!”
가시나무가 빼곡히 그의 몸을 채워 갈수록, 채우담은 이지를 잃고 본능과 갈망에만 충실해져 갔다.
【저거는 좁밥이랑 같은 종족이 아니라 몬스터 같다.】
프레의 말에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망을 가지면 인간이 되지만, 욕망에 먹히면 괴물이 되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해치우기나 하는 것이다.】
“널 보고 있으면 나도 욕망에 먹히는 괴물이 될 것 같다.”
【왜 그런 것이냐?】
“죽이고 싶으니까.”
【프, 프레는 착한 것이다···! 죽이면 안 되는 것이다···!】
시우는 입술을 비죽이는 프레를 흘깃 노려본 뒤 마력을 재차 순환시켰다.
채우담에 대한 연민이나 안타까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와는 잘 모르는 사이였고, 이렇게 타락하는 인간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에게 연민을 가진다면, 채우담에게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피차 일이라 생각합시다.”
시우는 두 손 가득 마력을 모은 채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
그것은 고릴라와 어린애들의 싸움을 연상케 했다.
최대수의 주먹이 휘둘러지면 사람 머리통이 하나씩 터져 나갔고, 발이 휘둘러지면 상반신이 그대로 꺾여 버렸다.
문자 그대로 인간 병기에 가까운 모습에 죄수들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야! 고작 한 명한테 뭘 쫄고 그래!”
“미친놈아, 그 한 명이 최대수잖아!”
“에이, 썅! 최대수가 별거냐!”
그들 중에는 헌터 출신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만 저질러 온 흉악범들도 많았다.
그 때문에 각성 범죄자들은 몬스터만 상대하는 헌터들을 얕잡아 보거나 그 실력을 폄훼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최대수의 마력을 보고도 저런 소릴 지껄이는 놈들은 헌터와 제대로 붙어 본 적이 없는 놈들이 대다수.
최대수는 피 칠갑이 된 건틀렛을 빗물에 씻으며 비웃듯이 말했다.
“큭큭큭. 나한테 덤비다니 용기가 가상하군. 그나저나 평택 교도소에 있었다는 놈들치고는 약해 빠졌는데.”
그때 저만치서 전투를 바라보고 있던 세 명의 남자가 다른 죄수들을 헤치고 나타났다.
“이런 병신 같은 것들. 저런 중늙은이 하나 못 죽이고 뭐 하는 거야?”
“비켜. 거슬려.”
“키키키. 죽이자, 죽이자.”
척 보기에도 여타 다른 죄수들이랑은 격 자체가 달라 보이는 데다가 헌터와의 전투 경험도 있는지 빈틈없는 모습이다.
“뭐나, 너희들은. 이 햇병아리 무리의 리더들인가?”
최대수의 비아냥에 가장 앞선 남자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랭킹 조금 높다고 으스대지 마. 우리들은 랭킹이 낮은 게 아니라, 랭킹에 없을 뿐이니까.”
범죄자들은 원칙적으로 범죄 기록이 인정되는 즉시 랭킹에서 삭제되고 헌터 협회에서도 제명된다.
이건 대한민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큭큭큭. 입들은 살았군. 감옥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강좌라도 듣고 나온 건가.”
“재수 없는 주둥아리는 변하지를 않네, 빌어먹을 최대수.”
“네놈이랑 나랑 아는 사이였던가?”
“알다마다. 난 헌터질 했을 때부터 네 녀석이 존나 싫었어.”
“음? 그러고 보니 낯짝이 익은 것 같기도 하군, 햇병아리.”
“날 잊으면 안 되지, 싸울아비의 수장 나으리.”
최대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녀석의 얼굴을 지그시 노려봤다.
분명 어디선가에서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싸울아비를 들먹이는 걸 보면 내가 길드장이었을 때 활동했던 놈이라는 건데, 이상하게 기억이 없군.”
“[홍랑]의 세 번째 손가락 ‘염비’라고 하면 알려나?”
“···[홍랑] 이라고?”
“하하하! 이제야 기억이 나셨나 보네. 하긴, 잊으면 안 되지.”
염비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상대에게 눈을 거두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SS급 헌터’를 배출했던 곳이 [홍랑]이지 않나. 두 번째로 SS급 칭호를 얻은 당신이 잊으면 안 되지. 요즘 것들은 당신이 최초인 줄 알지만 말이야.”
“···놈도 이곳에 있나?”
최대수는 조금 전까지 머금고 있던 비웃음을 지우고 물었다.
그의 표정은 사방신을 마주했을 때보다, 채우담이 협회 직원을 다 죽인 걸 알았을 때보다 훨씬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염비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긴장을 깨닫고 조소를 머금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만약 그분이 계셨다면 당신이 나하고 정답게 노가리 까고 있지는 못하겠지. 그분이 당신을 찢어발겼을 테니까.”
“아직도 내게 원한이 많은가 보군.”
“하···! 당연한 개소리를. 네놈을 죽이겠노라며 날마다 다짐하셨다.”
염비의 외침에 최대수는 혀를 찼다.
어차피 놈이 이 자리에 없는 이상 더 떠들어 봤자 아무런 영양가 없는 설왕설래만 될 뿐이다.
“불만이 있거든 직접 와서 떠들라고 전해라. 어차피 네놈이 뒈지면 그것도 불가능할 테지만.”
“이 개 같은···. ‘그분’을 대신해서 찢어 죽여 주마.”
염비는 다른 두 명의 죄수와 함께 최대수를 향해 돌진했다.
최대수는 건틀렛을 해제한 뒤 곧바로 거대한 크기의 해머를 구현했다.
쩌저어어어엉!!
천지를 뒤흔드는 충격파가 울리며 달려들던 죄수 중 하나가 해머에 직격당해 골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염비와 다른 한 명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염비는 커다란 멧돼지의 모습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2m가 넘는 사마귀의 모습으로 변했다.
흔치 않은 이형계의 각성자.
“상당히 안 어울리는 조합이군.”
최대수는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해머를 휘둘렀다.
조금 전 내려찍을 때 냈던 굉음을 생각하면 저 해머의 무게는 수십 킬로그램이 될 터였으나, 최대수가 운용하는 모습은 마치 가벼운 막대기와도 같았다.
사마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해머를 보더니 재빨리 날갯짓으로 피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지반을 내려찍은 해머에서 불이 번쩍이며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온다.
주변 일대가 짓이겨지고 마력파가 사위를 휜쓴다.
“빌어먹을 힘은 여전하네!”
염비는 황소처럼 커다래진 몸을 내달리더니 최대수를 있는 힘껏 들이박았다.
덤프트럭이 전속력으로 부딪쳐 온 듯 어마어마한 충격이 뼛속까지 전해진다.
“크으윽!!”
최대수는 턱을 꽉 깨물었다.
두 다리에 힘을 줘서 씨름 선수처럼 놈을 붙잡고 버텨 냈다.
0.1초만 늦었더라도 균형을 잃어 바닥에 뒹굴었을지 모른다.
이형계 능력자들은 변화한 생물의 모습에 따라 신체 능력이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상승하고는 했는데, 염비는 멧돼지로 변한 덕인지 들이박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쉬이이이이익!
그 순간 최대수의 눈을 향해 날카롭게 벼린 물체가 빛살처럼 쏘아졌다.
단순히 어두운 밤이라면 알아채는 게 늦었을 것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장대비 덕분에 먼저 튕겨 온 물방울들이 최대수의 얼굴에 닿으며 다가올 공격을 미리 알렸다.
“ㅡㅡ!!”
최대수는 프로 복서의 무빙처럼 목만 틀어서 간발의 차로 공격을 회피했다.
공격이 스친 볼에서 얼얼한 느낌과 함께 핏물이 흘렀다.
“이 사마귀 새끼가.”
최대수는 순식간에 들이닥친 녀석의 앞발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감히 이 염비를 상대로 한눈을 파는 거냐?”
콰드드드득···!
염비의 기다랗고 단단한 엄니가 최대수의 옆구리 쪽을 파먹을 듯 짓쳐 왔다.
“크윽!”
뻐근하고 시큰한 감각이 갈비뼈에서 느껴진다.
아무래도 금이 간 모양이다.
그는 밀고 들어오는 염비의 머리통을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쩌어어억!!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놈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오랜만에 보네, 최대수.”
염비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상대를 조소했다.
“비공식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강했던 사내가 밀리는 모습을 보니 ‘그분’도 기뻐하겠어.”
최대수는 지끈거리는 옆구리를 붙잡으며 해머를 해제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날인 것 같다.
“염비라고 했던가.”
최대수는 팔찌를 매만지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뭐? 하하해 설마 ‘그분’이 더 강하다는 걸 인정이라도 하는 거야? 뒈지기는 싫은 모양이지?”
“큭큭큭.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예나 지금이나 내가 ‘진도화’보다는 강하다. 다만 놈이나 나보다 더 강한 자가 나타났을 뿐.”
“말도 안 되는 소릴!”
염비가 버럭 성을 내더니 다시 들이닥칠 준비를 했다.
“너무 노닥거렸군. 이제 제대로 해 볼까.”
최대수는 팔찌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눈부신 섬광이 피어오르며 그가 가진 최고이 무기, 환웅의 천부인(天符印) 청동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