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19
223화〉
반룡
김은주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우의 양팔이 드래곤의 외피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단단하게 변한 것.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마기를 압도하는 힘도 걸리적거리는 판국에 상대가 웬 새로운 기술까지 선보이니 절로 긴장이 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장난인 거죠? 설마 겉모습이 조금 변한 걸 가지고 저를 위협하려는 수작은 아니겠죠?』
김은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기 위해 시우를 도발하는 듯한 말을 날렸다.
『드래곤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그런 짓은 저한테 통하지 않아요. 그냥 조용히 목을 내놓는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먹어 줄게요.』
그녀는 시우에게서 풍기는,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힘을 의식하며 주변의 마기를 그러모았다.
인간과 마족, 악마의 힘이 하이브리드 된 김은주의 육신은 저 세 종족의 힘을 감지할 수 있었는데, 시우의 힘만큼은 그 근원을 알 수가 없었다.
기감을 열어 시우의 내면을 파 보려고도 했지만, 시우가 가진 힘은 그녀의 간섭조차 허용하지 않아 튕기기 일쑤.
“······.”
하지만 시우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력보다 더 짙은 시퍼런 힘이 그의 단전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며 은은한 빛마저 뿜어냈다.
김은주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저 드래곤의 껍데기 같은 팔이 무슨 스킬인지 알아내려 마기 감지까지 펼쳤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가짜겠지요? 드래곤의 팔이라니, 말도 안 되는 스킬이니까요.’
그녀는 짐짓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린 채 시우의 빈틈을 노리려 했다.
그 순간.
“하.”
시우가 짧은 숨을 내쉬었다.
일순 사위의 공기가 달라지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조금 전처럼 빙결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주변의 공기가 살얼음 끼듯 얼어붙으며 지독한 냉기를 뿜어낸다.
김은주는 자신의 턱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미 죽은 존재인 그녀로서는 난데없이 피부 속을 저며 오는 공포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대체, 왜?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올바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절로 깨달아지는 감각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본능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간으로서인가 아니면 마족이나 악마로서인가.
김은주는 저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콰드드드드드득!
지반 아래 있던 모든 가시나무가 솟구치며 시우를 향해 화살처럼 나아간다.
공포나 두려움, 혹은 근원이 불분명한 존재에 대한 본능적 거부.
그 어떤 수식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녀가 현재 드는 감정을 설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은 있었다.
‘저자는 위험하다.’
이건 종(種)이 아닌, 한 자아가 내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이지 못한다면 김은주는 자신이 결코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반대쪽 손도 펼쳐 들었다.
이번엔 어둠 속에서 수백 마리의 그림자 소환수들이 나타나 시우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이 모든 준비가 불과 0.5초도 되지 않은 사이에 구현됐다.
『죽으세요.』
그녀가 중얼거리듯 읊조리자 순식간에 수백, 수천 개의 공격이 시우가 있던 자리로 퍼부어졌다.
콰가가가가가가가!!
마치 개틀링 건으로 쉴 새 없이 총알 세례를 들이붓는 것처럼 온갖 공격이 시우에게 쏟아져 내렸다.
돌무더기가 튀어 오르고 흐르는 빗물과 섞인 흙먼지가 금방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하이 랭커 두 명의 기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채 벌어진 공격.
김은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장담컨대 이만한 연격이면 악마조차도 벌집이 되어 죽었을 거다.
『그러게 그냥 얌전히 죽었으면 좋았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쩌어엉!!
그 순간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울리며 시우를 둘러쌌던 모든 것들이 섬광에 휩싸였다.
거대한 마력 폭풍우가 일대를 휘감고 삽시간에 지반을 초토화한다.
그녀는 팔을 들어 눈부신 빛살을 막아 냈다.
콰·가·가·가·가·가·가ㅡ!!
위력적인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지더니 그녀가 부린 모든 가시나무와 그림자 소환수들을 한 줌 재로 만들었다.
김은주는 눈앞에 펼쳐진 악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분명 주먹이었는데.’
놈은 그저 주먹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그 일격 하나에 김은주가 구사한 공격 전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당신은 정체가··· 뭐죠?』
김은주는 자신이 묻고도 실소가 터질 법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어볼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가진 의구심이 너무도 컸기에 무의식중에 건넨 말.
거대한 크레이터의 중심에 선 시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물끄러미 노려봤다.
찬찬히 벌어진 그의 입에서 한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헌터다.”
짤막한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시우의 몸이 용수철처럼 솟구쳤다.
『크으윽!』
김은주는 밀리초 단위로 끊어지는 시간의 조각 속에서 시우의 주먹에서 피어나는 광활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비심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짙은 파괴력.
‘저거에 맞으면 소멸한다.’
그녀의 본능이 비명을 지르며 경고를 날린다.
죽음을 한번 겪어 봤다고 해서 죽음이 익숙해지는 건 아니었다.
김은주는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짜 냈다.
그녀가 가진 전신의 마기가 한 점으로 압축되고 압축되어 구슬만 한 크기가 되었다.
기회는 단 한 번.
김은주는 전방으로 자신이 지닌 힘을 한꺼번에 분출했다.
콰르르르르르르!!
마치 새까만 화염 방사기처럼 짓쳐 나가는 마기 덩어리가 부근의 공기를 불사르며 시우를 향해 뻗어 나간다.
그야말로 죽음이 가시화되기라도 한 듯 이글거리면서 끈적이는 마기 덩어리.
그녀는 생명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존재였지만,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들을 전부 마기화해 앞으로 쏟아 내는 중이었다.
죽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죽이고도 남는다.
인간은 마족이나 악마와 달리 마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랭커라고 한들, 생명력을 갉아먹는 마기를 당해 낼 방법은 없을 터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화르르르르륵!!
전방으로 뻗어 나간 까만 불길 속에서 공룡의 두꺼운 외피 같은 시우의 팔이 튀어 올랐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피해 내려 했으나, 그러기엔 이미 늦은 상태.
시우의 단단한 주먹이 그녀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뻐어ㅡㅡㅡㅡㅡㅡㅡ억!!
『커허어억!!』
내보내던 마기가 단숨에 끊긴다.
김은주는 복부를 감싸 쥐고 허리를 앞으로 꺾었다.
그 순간 시우의 강격이 지반을 스치고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쩌ㅡㅡㅡㅡㅡㅡㅡㅡ엉!
강렬한 어퍼컷이 그녀의 턱에 꽂히자,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지반으로 추락했다.
『끄어어억···!』
분명 고통을 느낄 리 없는 몸뚱이건만.
환상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몸은 처절할 정도로 시우의 공격에 격통을 느꼈다.
『쿨럭···! 반드시 저, 저주할···!』
“잘 가라.”
시우가 그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비가 쏟아지는 어둠의 한편을 찢고 거대한 빛무리가 지상을 짓이길 듯 사위를 뒤덮는다.
반룡의 권격이 그녀를 무(無)로 되돌렸다.
***
사태 수습은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가장 우려했던 사방신의 도심지 파괴는 예상보다 덜해 다행이었지만, 교도소가 통으로 털린 것은 사정이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각성 범죄자들이 전부 탈옥한 것이었기에 국민의 불안감은 삽시간에 커졌고, 미국에서 일어난 랭킹전 테러와 맞물리며 그 충격과 파장은 삽시간에 부풀었다.
언론에선 다각도로 정부와 헌터 협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당과 야당은 날마다 서로를 향해 날 선 견제를 했고, 각 당을 지지하는 시위가 매일 일어났다.
특히 대한민국 헌터 랭킹 3위인 채우담의 배신은 전 국민에게 경악 그 자체로 다가왔다.
‘과연 다른 헌터들은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거짓말 탐지 헌터를 통해 모든 헌터를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등장했고, 당연히 헌터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호재로 등장한 건, 국립묘지에서 일백에 달하는 탈주범들을 최대수가 전부 소탕한 것.
그리고 세계 최초의 SSS급 헌터가 대한민국에서 등장했단 것이었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에 헌터 튜브와 언론사들은 난리가 났고, 시우의 이름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최대수는 거의 온종일 걸려 오는 축하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각국 정상들이 미리 좋은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서둘러 연락을 한 것이었다.
HMCS 국제 총본부의 에드워드도 같은 상황이었다.
총본 소속 헌터가 SSS급이 되었으니, 이건 에드워드의 등에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된 날개를 달아 준 격.
이 와중에 한가한 사람은 당사자인 시우 혼자였다.
격통으로 정신을 잃은 시우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최대수와 한태치.
그들은 전쟁터의 상흔 속에서 홀로 누워 있는 시우를 발견하고 헌터 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물론 시우는 힐을 가용한 덕에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사용한 ‘반룡의 술’ 후유증은 조금 달랐다.
에테르의 힘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한 까닭에 마나맥에 커다란 손상이 가해지고 만 것.
“이게 일반 헌터였으면 마나맥이 너덜너덜해져서 평생 불구로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헌터님은 힐러니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시우를 담당한 의사는 단지 약간의 휴식을 가지라 당부했다.
핸드폰을 포맷하면 메모리가 깨끗해 보이지만, 복원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포맷 전의 파일들을 복구할 수 있듯이.
시우가 수복한 것들도 사실 깨끗해 보이기만 할 뿐이지, 보이지 않는 후유증들이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시우는 그의 말을 대강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형, 괜찮아?!”
그때 문병을 온 사람들이 시우의 병실을 두드렸다.
민시준, 강여화, 루안, 나미르, 최강율이었다.
“주인님··· 너무 무리하신 것 아닌가요.”
나미르와 강여화는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시우를 바라봤다.
“···스승, 세계 랭킹 0위에 오른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야, 이 머릿속에 싸움만 가득한 놈아! 지금 그런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잖아!”
“사매. 무투가에게 이만한 부상은 훈장과도 같은···.”
“그럼 1년 내내 입원해 있지 그러냐? 훈장투성일 텐데?”
“···음.”
루안은 강여화의 타박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아냐, 나 아무렇지도 않아. 의사도 며칠 쉬면 낫는다고 했어.”
시우는 루안을 불쌍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걱정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이 멍청이는 내가 시킨 대로 싸우지 않아서 다친 것이다.】
“네가 시키기는 뭐를···.”
【그나저나 내 애제자는 어디 있는 것이냐? 맛있는 거는 아무도 안 갖고 온 것ㅡ 꾸아앙!】
프레가 두리번거리며 음식을 찾자, 시우는 프레를 잡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베네딕트는 잠시 독일로 돌아갔고, 아밍이랑 시온이는 학교 끝나고 온대요.”
“됐어, 문병은 무슨. 너희도 뒷수습하려면 바쁘지 않아?”
시우의 물음에 민시준과 강여화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우리나라랑 미국 말고도 교도소가 털린 나라들이 몇 군데 더 있나 봐. 〈판데모니엄〉에서 작정하고 계획한 것 같아.”
“일본도 한 군데 털렸대요.”
“중국도 털렸다고 들었습니다.”
제자들의 연이은 대답에 시우는 고개를 대충 끄덕거렸다.
놈들이 범죄자들을 통해 증원을 꾀했다는 건, 앞으로 그들이 벌일 일들이 더욱 잔인해지고 대규모로 커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 있는 헌터들로는 게이트 막기도 빠듯할 텐데. 우리도 좀 더 강력한 수가 필요하겠어.’
그때 시우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우는 핸드폰에 뜬 이름을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았다.
“병문안은 됐다.”
– 큭큭큭. 미친놈. 퇴원은 언제쯤 하나? 네놈이 해 줄 일이 있다.
최대수가 어이없단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