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3
23화〉
하나의 질문
“헌터··· 전문 킬러?”
“킬러란 말은 알잖아? 단지 대상이 일반인이 아니라 헌터일 뿐인 거지. 여기 있는 영감탱이도 나름 유명한 프로야. 저 꼬마는 신입이고.”
볼크는 가족 소개를 하는 사람처럼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처럼 낯간지러운 사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같은 조직원으로서의 ‘식구’ 개념일 뿐.
“끌끌끌. 오늘은 새끼강아지치고 말이 많구먼. 적 앞에서 설명회도 하시고.”
“에이 씨발, 어차피 죽일 건데 무슨 말이든 하면 어때.”
“알았으니까 가서 마무리 지어라. 나는 주구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
볼크는 꼬마를 잠시 노려봤다.
그러나 꼬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씨발, 내가 해야 할 일이군.”
볼크는 진 위에서 짓눌리고 있는 시우를 향해 다가갔다.
듣기로 이 주구는 어마어마한 중력을 구현해 상대를 구속하고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기술이라 한다.
몇 번의 전투를 함께 해 본 결과, 저 기술에서 빠져나온 적은 본 적이 없었다.
“진 위로 직접 가 보는 건 처음인데··· 썩을 영감, 이거 나한테까지 데미지 오는 거 아니지?”
“쯧 처음 진이 형성될 때 있던 생명체에만 반응하니 걱정 말거라! 강아지 새끼도 아니고.”
볼크는 씨발 개발 소리를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벌레처럼 쪼그라져 있는 모습을 보자니 호송차 안에서 싸가지 없이 말대꾸하던 놈이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내가 그래서 누구 관인지 안 궁금하냐고 물었지? 혓바닥 잘못 놀리면 뒤진다는 게 이런 거다.”
볼크는 마력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없고?”
보통은 유언이라기보다는 살려 달라 비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살려 주는 일은 없지만 말이다.
“······정민준이란 헌터를 아나?”
“몰라. 그게 누군데? 내가 알아야 해?”
별 희한한 질문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볼크는 마력을 모았다.
대가리는 따서 차 위에 올려놔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너무나 가뿐하게.
“······어?”
“대답 들었으면 됐다. 이제 일 해야지.”
조금 전까지 중력과 압력에 몸을 못 가누던 녀석이 맞는 것인가.
볼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시우는 그를 흘끗 바라보더니 발을 박찼다.
모든 이에게서 시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퍽.
단출하고 짧은 타격음이 울렸다.
그소리를 ‘인식’한 건 노인이었다.
분명 중력의 주술에 걸려 쓰러졌던 시우였다.
보통 저기에 걸리면 그 누구도 허락 없이 일어나지 못한다.
마력을 해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구를 만드는 장인, 술식을 입력하는 술자, 거기에 마력을 입혀 시전한 자신까지.
총 세 명의 합공이라 여겨도 좋을 기술이다.
그런데 방금까지 바닥을 구르며 내려찍는 압력에 옴짝달싹 못 하던 녀석이 사라졌다.
정말 찰나의 순간.
빨아들인 담배 연기가 아직 폐를 휘돌고 있을 정도의 편각.
콰득.
다시 소리가 들린다.
뒤늦게 시선이 닿은 곳, 꼬마의 몸에 피 분수가 일어나며 몸이 불꽃처럼 스러졌다.
그 흔한 단말마조차 없는 죽음이었다.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치며 바닥을 흥건히 적신다.
“이, 이 개새끼가ㅡ!!”
볼크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마력과 뒤섞이며 터질 듯 분출됐다.
전신을 훑고 바늘처럼 날카롭게 세를 떨친 마력들이 몸을 감싸며 거대한 기운으로 뒤바뀐다.
– 카드드드
볼크의 근육과 골격이 뒤틀리더니 빵처럼 부풀어 오르며 점차 커다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베어볼프]【저놈 모습이 변했다! 끄악! 고기가 질기게 생겼다!!】
‘[이형계] 각성자는 흔하지 않은데.’
2m가 훌쩍 넘는 체구에 터질 듯 꿈틀대는 근육, 기다랗게 자란 회색 털과 날카로운 손톱까지.
볼크의 늑대를 닮은 얼굴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크아아아아아아!!”
반인반수형 늑대 인간이 시우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뛰어들었다.
각력마저 달라진 것인지, 몸짓이 맹수의 그것처럼 날쌨다.
까드득.
칼날처럼 벼린 손톱에 붉은색 마력이 모인다.
열 손가락 가득 실린 마력이 시우가 서 있는 곳을 할퀴듯 쏘아져 나갔다.
콰가가가가가가!!
거대한 짐승이 찢어발긴 것 같은 흉이 새겨지며 공간에 짙은 파열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볼크는 야성의 직감으로 시우가 맞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크르르르르! 쥐새끼 같은 놈!”
“볼크ㅡㅡ! 숙여라!!”
그때, 노인의 일갈이 들렸다.
또 다른 주구인 국궁을 꺼내 마력을 힘껏 때려 박은 뒤 시우가 피한 곳으로 활을 날리려는 것이었다.
벌써 두 번째 주구의 사용이다.
한 사람을 처리하기 위한 방편으로는 너무도 과한 지출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중력 주구를 사용한 것을 아깝다 여긴 것은 맞다.
남는 거 없는 장사라며 투덜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꼬마가 죽기 전까지 이야기.
엄청난 대결 끝에 죽은 것도 아니다. 그냥 느닷없이 목이 따였다.
늘 마력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노인 본인조차도 알아채지 못한 속도였다.
값비싼 주구를 쓰느니 마느니 할 처지가 아니다.
노인은 오만한 자신을 질타했다.
그래서 두 번째 주구를 재빨리 꺼냈다.
끼익ㅡ 투웅!
노인의 손가락에서 활시위가 떨어졌다.
거대한 뱀의 신,
[뇌벽섬: 마후라가]악신 마후라가가 전격을 몸에 두른 채 벼락처럼 날아갔다.
스치는 공간마다 번쩍거리는 뇌력이 사방을 난도질하며 거친 파공성을 일으켰다.
“크흑···.”
노인은 한꺼번에 마력을 소진해 텅 비어 버린 자신의 단전을 느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애초에 이 주구는 마지막 공격이란 마음으로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시우가 중력구에서 벗어나 동료를 죽이는 그 짧은 찰나, 노인은 이성을 압도하는 공포가 자신을 짓누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죽여야 한다!!’
파지지지지ㅡㅡ
뇌전으로 이루어진 마후라가의 형상이 흉측한 입을 벌리며 시우에게 날아왔다.
피하기엔 너무 빠르고, 그냥 맞기엔 데미지가 클 듯하다.
이게 만약 스킬이었다면 마력이 운용되고 마법진이 형성되는 과정이 있었을 터.
그러나 주구로 날린 것이기에 저런 과정이 생략되어 공격 속도가 빠른 것이었다.
시우는 눈앞에서 번쩍이는 강격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스킬을 쓸까··· 아니면 버티고 힐을 할까.’
마치 주마등이 스치듯 현 상황을 적절히 타개할 방법들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처럼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가장 간단하면서 탁월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단전에서 마력을 힘껏 뽑아낸다.
이계에서 돌아온 뒤 이제껏 해 본 적 없는 속도로 마력이 흘러넘친다.
전신으로 마력이 질주하며 선선하고 뻐근한 감각이 느껴진다.
시우는 그렇게 쏟아 낸 마력을 오른손에 그러모았다.
스킬을 발현해서 막는다면 시간이 조금 촉박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순수한 마력의 힘.
시우는 주먹을 쥐었다.
단전에서 뽑아낸 마력들이 그의 오른손에 새파란 건틀릿처럼 단단하게 씌워진다.
어깨와 팔을 뒤로 젖혔다.
정말 단출한 준비과정이었다.
마후라가의 입이 벌어지며 섬찟한 기운이 시우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날아왔다.
마력과 술식으로 구현된 뱀의 신 마후라가.
천룡팔부 중 악신의 뱀이 적을 멸하기 위해 주구에서 끔찍한 마력으로 드러난 것이다.
– 크아아아아아아!!!
수백 마리의 뱀이 울부짖는 것과도 같은 소름 끼치는 비명.
양손에 든 거대한 무구까지.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시우는 차분하게 자신의 오른손만 들었다.
무기도 없는 빈손이었다.
‘스킬을 발현한 것도 아니고, 주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짓을···?’
노인은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시우는 그저 손을 들었을 뿐이다.
그때 마후라가가 뇌력이 담긴 무기를 휘둘렀다.
저릿저릿한 마력이 공간을 가르고 적을 개미처럼 짓누르기 위해 들이닥쳤다.
– 파지·지·지·지·지·지·!!
시우는 몸을 틀었다.
공격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그를 비껴갔다.
뇌력이 스친 어깨가 찢어졌다.
시우는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팟ㅡㅡㅡㅡ쿠와아아아아아!!!!
당연히 마후라가의 전격이 시우를 구워삶아 버릴 것 같았는데, 그 섬찟한 뇌력이 상대의 모든 걸 태워버리고 창을 꽂아 놓을 것 같았는데.
눈앞에 드러난 장면은 노인의 예상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주먹을 내지르는 기합이 끝난 순간,
마후라가의 일그러진 얼굴이 퍼걱, 날아갔다.
그 뒤에 마후라가의 몸통과 사지가 믹서기로 갈아낸 듯 제멋대로 터지며 공중에 흩어졌다.
“이, 이럴 수가··· 마, 마후라가가···.”
그러나 그 끔찍한 마력파는 마후라가를 곤죽으로 만든 것에 멈추지 않았다.
주구의 시전자를 향해 매섭게 날아간 것이다.
콰가가가가가가···!!
노인은 다른 주구를 찾으려 보자기를 뒤적였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순수한 마력 덩어리인 저 공격엔 그 어떤 스킬도, 살의도, 속임수도 없었다.
오직 파괴하겠다는 일념만 가득한 강공.
노인은 이제 끝났단 사실을 알았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군.’
마후라가를 단 한 줌의 고깃덩어리로 만든 마력파가 발리스타의 격발처럼 노인을 향해 달려왔다.
그는 눈을 감았다.
퍼ㅡㅡ억!!!
노인의 일곱 구멍에서 핏물이 왈칵 흘러내리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털썩.
언덕 위로 바람이 불며 정적이 흘렀다.
“이제 너 하나 남았네.”
시우는 굳어 버 린 볼크를 향해 말했다.
볼크는 반인반수의 형태를 유지한 채 마후라가가 나타난 뒤부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주구 아이템을 두 개나 파훼하고··· 너 이 개새끼··· 정체가 뭐야?”
“HMCS 호송관.”
시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하,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러나 그 대답에 볼크는 이를 까드득 물었다.
동료애가 있거나 복수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킬러로서 무시당했다는 기분,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 같은 것이 자존심을 긁으며 분노로 치환됐기 때문이었다.
“같이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반드시 찢어 죽인다!!”
“꿈도 야무지군.”
볼크는 단전에서 마력을 닥치는 대로 그러모았다.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나가 들어차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근육이 뻐근하게 아려오며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끓어올랐다.
그는 발톱을 날카롭게 세워 시우를 향해 야생늑대처럼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그림자 군무]”
볼크의 주위로 마법진이 그려지며 검은색 늑대 다섯 마리가 이빨을 드러냈다.
늑대들은 그림자처럼 새까맣게 으르렁대더니 이내 시우를 물어 죽일 기세로 돌진했다.
“강아지 다섯 마리라.”
시우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 태연자약한 모습이, 볼크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했다.
“씨발 HMCS 따위가!!!”
분노에 찬 회색늑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적에게 겨눴다.
곧이어 검은 늑대 다섯 마리도 함께 뛰어들었다.
모든 분노가 한 사람에게 쏟아진다.
손가락보다도 더 큰 이빨이 시우의 목에 가닿는 순간,
“[삭풍 : 천 개의 바람]”
칼날 같은 바람이 그 모든 적들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
시우는 노인의 한쪽 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왔다.
그의 숨통은 끊어지지 않았다.
마후라가의 마력을 짐작하고 받아친 공격이었기에, 노인에게 치명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시우는 볼크 옆에 그를 던지듯 눕혔다.
볼크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간신히 뜬 눈으로 시우를 노려봤다.
마지막으로 당한 공격은 감히 피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뭘 야려.”
시우는 손바닥을 펼쳐 마법진을 연성했다.
두 손에 금빛 문자가 아로새겨지며 노인과 볼크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단순한 상처 봉합이 아닌 재생.
“이게 대체 무슨 짓······.”
볼크는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물어볼 게 있어서. 그냥 보내면 내가 일부러 풀어 준 의미가 없잖아.”
그는 시우가 말한 의미를 뒤늦게 이해했다.
애초에 습격을 당할 것도, 호송차에서 탈출할 것도 상대는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일을 방관했던 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이 HMCS 헌터는 자신이 상대방을 다 제압하고 이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던 거다.
시우는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건 정민준의 마지막 기억을 들춰 볼 때, 어렴풋이 나타났던 암살자의 얼굴을 스킬로 인쇄한 사진.
“너, 이 새끼 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