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33
237화〉
화풀이
시우는 전에 보인 적 없던 살기를 피워 올리며 부르데오스에게 향했다.
늘 귀찮아하고 나른한 얼굴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엔리케 대통령에게 부탁받은 SSS급 헌터로서의 얼굴도 아니었고, HMCS 준특급 요원으로서의 얼굴도 아니었다.
[광견 길드]의 수장이나 삼존으로서의 모습?그것도 아니었다.
최강율은 시우의 저런 표정을 처음 마주했다.
부르데오스처럼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것과는 다른, 정제되고 절제된 역증.
일반적인 사람들의 노여움이 불길처럼 홧홧하게 타오르는 모양이라면, 시우의 감정은 얼음처럼 차갑고 서늘하게 가라앉는 모양새에 가까웠다.
그것이 최강율에게는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왔다.
그는 시우가 했던 말의 의미를 퍼뜩 깨닫고 가장 먼저 한태치에게 달려가 아이템 박스에서 포션을 꺼냈다.
‘휘말리기 전’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얼른 대피시켜야만 했다.
“크윽··· 이 빌어먹을 새끼가···.”
부르데오스가 이를 으드득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구리와 목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충격에 아직도 골이 울리는 것 같다.
민시우가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은 베네노 카르텔에서 보낸 놈들을 처리했다는 뜻.
‘설마하니 그 분위기에서 놈들이랑 동맹을 맺었을 리는 없고. 이놈 혼자서 둘을 죽였다고 보는 게 맞겠지.’
잠시 칼을 맞댔을 뿐이지만, 부르데오스는 류싱과 알케술의 강함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고, 스킬의 상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부르데오스보다 조금 아래의 경지로 느껴졌을 정도였다.
‘그런 상대를 둘이나 처리하고 왔으면 이놈도 무사하진 않을 거다. 지금은 마력량도 형편없이 바닥을 치고 있군.’
부르데오스는 시우의 상태를 스치듯 파악했다.
시우는 그가 만난 적들 중에서도 확실히 손에 꼽힐 정도로 상당한 강자였다.
만약 자신과 시우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맞붙는다면 승리를 결코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우의 마력은 눈에 띌 만큼 약해져 있었고, 컨디션은 강한 놈들을 상대하고 오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
당장의 전력은 자신이 시우보다 훨씬 웃돌고 있었다.
‘병신같은 새끼. 방금 두 번의 공격으로 날 죽였어야 했어. 물론 그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은 탓이었겠지만.’
기이한 일이었다.
멕시코를 포함한 북미 카르텔 제왕이 되겠다는 건 그의 오랜 숙원 사업.
그런데 그 전환점이 될 가장 역사적인 순간에 나타난 걸림돌이 생전 처음 보는 헌터라니.
부르데오스는 지오바니나 쿠가 하루키와 맞붙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엔리케 대통령이 초하이 랭커들과 접선하고 있다는 소식은 정부의 끄나풀들을 통해 진작부터 들은 바였고, 그 때문에 부르데오스 역시도 그들의 전투 영상을 보며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렸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세계 최초 SSS급 헌터라는 민시우.
하지만 부르데오스는 그만한 급의 헌터가 얼마나 강한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랭킹전을 치러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
“하긴, 그딴 게 무슨 상관이겠어. 죽이면 랭킹 0위건 뭐건 똑같은 고깃덩어린데.”
부르데오스는 작게 중얼거리더니 단전에서 모든 마력을 끄집어 올렸다.
새빨간 뇌력이 섬찟한 소리를 내며 그의 전신에서 꿈틀거리고, 풀어 헤쳐진 격과 어우러지며 요란한 기세를 내뿜었다.
콰지지직ㅡㅡㅡㅡ!!
그가 선 바닥이 움푹 파이고 허공에 붉은 전류가 스파크를 튀기며 재해와도 같은 마력이 솟구친다.
자리를 피하던 헌터들은 그 기세에 눌려 턱을 딱딱 부딪치거나 다릿심이 풀려 주저앉기까지 했다.
근원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가공할 악(惡)의 힘.
조금 전까지 [엘레판테 연합] 헌터들을 상대로 발했던 힘은 말 그대로 심심풀이에 가까웠던 것인지, 전력을 다한 부르데오스의 격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했다.
그건 최강율이나 한태치가 느끼기에도 마찬가지.
“이길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생각은··· 우리의 오만이었군요.”
“아··· 그렇네. 견줄 수 있는 수준조차도 되지 않았어.”
“길드장님은 괜찮으실까요?”
“글쎄. 나도 왜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라서. 그런데···.”
한태치는 시우의 옆을 지키고 있는 제자들과 주변 인물들을 떠올려 보았다.
민시준, 루안, 강여화, 도경후, 황정구, 나미르, 베네딕트, 거기다 최대수까지.
“다른 사람들은 사장님이 지는 모습을 절대 상상하지 못하더라고. 웃기는 일이지? 그런데··· 그게 나한테도 옮아 버린 것 같아.”
“그렇습니까. 그럼 우선 믿고 피하시죠.”
그들이 다른 헌터들의 부상당한 부위에 대강 포션을 뿌리고 대피하려 발을 막 뗀 순간, 부르데오스가 시우를 향해 몸을 박찼다.
“크아아아아악!”
사나운 맹수가 먹잇감을 짓씹으려 하는 것처럼 포악한 몸짓.
시우 역시도 단전의 모든 마력을 그러모으더니 발뭉에 욱여넣었다.
푸른 빛으로 맹렬히 빛나는 검날.
부르데오스는 저 공격이 시우의 마지막 일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흐흐. 덤벼 봐. 덤벼 보라고!!”
“그럼 사양하지 않지.”
발뭉이 사선으로 내리그어지며 시린 빛살을 기다랗게 내뻗었다.
공간마저 절단할 것 같은 검격이 새하얀 궤적을 남기고는 부르데오스를 향해 예리한 속도로 뻗어 나갔다.
빠카아아아아아앙!!
날붙이가 터져 나가는 것처럼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그 시큰시큰한 눈부심 속에서 사람들은 꼿꼿하게 서 있는 부르데오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헌터들은 무릎을 털썩 꿇으며 좌절을 숨기지 못했다.
모든 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크흐··· 크하하하하하! 이제, 이제 멕시코는 내 것이다! 이 멕시코를 넘어 북미에 부르데오스의 이름을 널리 퍼뜨릴 것이다!”
부르데오스는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검격을 막아 내느라 손바닥 피부가 다 찢어졌지만, 이미 다 이긴 것이라 생각하는지 그는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시우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발뭉은 마력이 다 빠져나간 탓에 섬광을 잃고 본래의 투박한 쇳빛으로 돌아왔다.
‘이건 이거대로 피곤하네.’
마력통이 커져서 그런지 다 쓰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너,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시우의 질문에 부르데오스의 웃음이 뚝 멈줬다.
“곧 뒈질 놈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군. 죽기 싫다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걸해도 부족할 판에 말이야.”
“내가 더럽게 네 바짓가랑이를 뭐하러 붙잡냐.”
“크흐흐. 아무래도 너는 곱게 죽긴 그른 것 같다.”
부르데오스는 마체테 손잡이로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방금까진 전투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피를 갈망하는 살인마의 안광으로 돌변했다.
“먼저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잘근잘근 잘라 주마. 다음은 팔다리를 자르고 가죽을 벗길 거고. 그 모습을 찍어서 헌터 튜브에 올리면··· 한동안 나를 건드리는 멍청한 새끼는 없겠지.”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시우는 녀석의 눈빛과 표정에서 흔들림 없는 의지를 보았고, 저 발언은 실행될 확률이 높았다.
정말 다행이다.
구제 불능의 개새끼라서.
“넌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이란 말을 믿나?”
“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려고? 갑자기 살고 싶어졌나?”
“난 안 믿어.”
부르데오스의 대답엔 관심 없다는 듯, 시우는 목을 좌우로 우두둑 꺾었다.
“그런 걸 믿으면··· 살아남은 나쁜 새끼들이, 지들이 착해서 살아남은 줄 착각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뭘 믿는 줄 알아?”
다시 돌아온 질문에 부르데오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우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나쁜 새끼들이 흘리는 피를 믿어. 눈물과 달리 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아까부터 씨발 대체 뭔 개소리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짓은 단순한 화풀이야. 너는 한두 대 팬다고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거든.”
“이 미친 새끼···!”
부르데오스가 마체테를 휘두르려는 순간.
시우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용솟음치며 우악스럽고 거친 기세를 내뿜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정말 찰나를 마주한 것뿐인데도 피부가 찢겨 나가는 것처럼 뜨겁고 아리다.
“크흐으읍!”
부르데오스는 저도 모르게 있는 힘껏 전격을 방출했다.
그건 죽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
상대의 기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강한 고압 전류를 가격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 정말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고작 1초도 유지되지 못했고.
ㅡㅡㅡㅡㅡㅡㅡㅡ쩌어어엉!!
소리보다 먼저 내질러진 강권이 부르데오스의 복부를 미사일처럼 가격한다.
갈비뼈가 전부 으스러진 것 같다.
숨이 턱 하니 막히고 위액과 핏물이 동시에 역류한다.
비장과 대장, 췌장이 동시에 파열된 것 같기도 하다.
충격으로 몸이 날아가는 와중, 믿기지도 않게 시우의 신형이 따라붙는다.
대체 이럴 수가 있나.
발차기가 그의 얼굴에 내리꽂힌다.
너무 빨라 막을 수가 없다.
꽈ㅡㅡㅡㅡㅡㅡㅡㅡ앙!!
땅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고 돌무더기가 죄다 뒤집어엎어진다.
부르데오스는 타격보다는 충격에 가까운 감각을 느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따라잡을 여력도 되지 않았다.
현재 알 수 있는 건 복부가 터질 것처럼 끔찍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가격당한 턱뼈가 부서지고 코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시우의 목소리가 설핏 들려왔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아, 턱이 나갔네.”
“쿨럭! 우웨에엑···! 아으아···!”
뒤이어 그가 높이 뛰어오르더니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며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부르데오스는 팔을 들어 그를 막아 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어마어마한 폭풍우가 일며 일대가 삽시간에 초토화되었다.
시우는 흙먼지가 흩날리는 크레이터 밖으로 부르데오스의 멱살을 잡아끌고 나왔다.
만약 초하이 랭커급의 신체 구조가 아니었다면 부르데오스는 진작 죽고도 남았을 터.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인적인 육체 덕에 그의 목숨은 유지될 수 있었다.
시우는 술식을 전개해 그의 몸을 절반 정도 수복시켰다.
“커···허···억···!”
정신을 차린 부르데오스가 가슴팍을 감싸 쥔 채 핏물을 토해 냈다.
마지막에 시우의 주먹을 맞았을 땐 영락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지금도 몸에 퍼지는 격통에 온전히 정신을 차리기는 어려웠지만, 웬일인지 몸이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뭐지? 갑자기 상태가 좋아진 것 같은데?’
부르데오스가 숨을 헐떡거리며 시우를 노려봤다.
“좀 일어나서 덤비지?”
“끄으으! 이, 이 새끼가!”
“제발 심장 마비로 죽지 마라.”
시우가 노골적으로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소드 오프 샷건을 구현해 달려드는 그의 두 다리를 날려 버렸다.
콰ㅡㅡㅡ앙! 콰ㅡㅡㅡ앙!
“끄아아아아악!!”
맹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너절하게 잘린 단면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부르데오스가 끔찍한 절규를 지르며 자리에서 버둥거렸다.
“아까 뭐라고 그랬지? 팔과 다리를 자른다···였나?”
“크흐으으윽···!”
“손가락 발가락은 귀찮으니까 생략해 줄게.”
시우가 서늘한 음성으로 말하더니 한 발로는 부르데오스의 손바닥을, 다른 발로는 그의 몸통을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먼저 오른팔부터 하자.”
콰ㅡㅡㅡ앙
팔이 잘려 나가는 순간 부르데오스가 입에 게거품을 물더니 기절했다.
시우는 혀를 차며 다시 놈의 팔다리를 수복시킨 뒤 이번엔 왼팔을 쐈다.
콰ㅡㅡㅡ앙
“끄아아아아악!!”
“아, 시끄러워.”
“끄으윽··· 개새끼가···! 바, 반드시··· 주, 죽인다···!”
“아직도 입이 살았네. 우리 내기할까?”
시우가 부르데오스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네가 죽여 달라고 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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