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37
241화〉
랭커 사냥3
나미르는 성남 공군 비행장을 통해 입국했다.
타국 대통령이나 국제적인 외교 사절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곳이지만, 나미르는 반마족의 왕이라는 특수한 직위.
가장 조용한 새벽 시간대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나미르와 흰 가면에 흰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함께 내렸다.
공항엔 시우 홀로 그녀를 마중 나와 있었다.
“주인님! 오랜만에 뵈어요.”
나미르가 달빛 같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시우를 향해 환하게 웃음 지었다.
시우는 쪼르르 달려와 그에게 안기는 나미르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오는데 불편한건 없었고?”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잘 왔어요.”
“옆에 있는 사람은··· 호위?”
시우가 흰색 로브를 걸친 작은 체구의 사람을 가리키며 물었다.
“크로우가 하도 성화를 부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동행했어요.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쫓아내도록 할게요.”
그 말을 들은 호위가 흠칫 놀라더니 안 된다며 손바닥을 마구 흔들었다.
아무래도 크로우에게 신신당부를 들은 모양인 듯했다.
“뭐··· 괜찮겠지. 〈IZIZ〉인 거잖아? 그러면 실력은 어느 정도 있을 거니까.”
“알겠어요. 당신도 주인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호위는 그녀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시우가 끌고 온 차에 탑승했다.
원래라면 나미르가 뒷좌석에 앉아야 했지만, 그녀는 시우의 옆에 앉겠다며 조수석에 앉았다.
“그나저나 답답할 텐데 가면 벗지 그래? 이제 보는 사람도 없을 텐데.”
시우가 룸 미러로 뒷좌석을 보며 말했다.
흰 가면은 그 시선을 잠시 마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크로우가 절대 벗지 말라고 했어? 호저?”
“어···?!”
처음으로 가면 너머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의문 가득한 음성.
“호저, 들켰군요. 주인님께선 한번 본 사람의 마력을 절대 잊지 않으세요. 예전에 ‘베스티아’에 있을 때 주인님과 싸웠었죠? 그때 기억하셨을 거예요.”
조수석에 앉은 나미르가 시우 대신 그녀에게 설명했다.
“에이~ 그러면 진작 말 좀 해 주지. 나중에 짠~ 하고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호저는 마스크를 벗으며 김이 팍 샜다는 듯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IZIZ답지 않게 여리고 소녀같이 생긴 얼굴.
“그런데~ 오빠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한번 본 사람의 마력 코드를 다 외울 수가 있어?”
“호저···. 방금 오빠라고 불렀나요?”
나미르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으, 응? 아니··· 딱히 부를 호칭이 없어서···. 그렇다고 크로우처럼 당신이나 자기라고 부를 순 없잖아.”
“당신··· 자기···?”
호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에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
나미르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였다.
호저는 안절부절못하며 그녀를 외면하려 했으나, 감히 먹여 주고 키워 준 언니의 질문을 무시할 순 없었으니.
“크로우가 정말 주인님을··· 그렇게 불렀나요? 당신이나 자기로?”
“어? 어··· 그, 그렇게 불렀어. 마, 마음에 든다고도··· 했었어.”
“후후. 그렇군요. 오랜만에 크로우와 차 한잔 마셔야겠네요. 말해 줘서 고마워요, 호저.”
“하하···. 네.”
호저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크로우를 팔아야 했다.
‘미안해, 크로우! 언니가 너무··· 무서워.’
【암컷들은 정말 무서운ㅡ.】
“쉿! 조용.”
시우는 프레의 입을 막으며 조용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
“갑자기 오한이 드는데?”
“단장?”
크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사위를 살폈다.
“마력 감지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칼레오가 동그란 로이드형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수색 나갔던 애들한테선 아직 연락 없지?”
“네, 없습니다. 곧 돌아올 시간이니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겁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티베트와 중국의 접경 지역, 험준한 산맥 한가운데.
〈IZIZ〉는 크로우의 명령으로 전부 모여 현재 〈판데모니엄〉의 아지트를 찾는 중이었다.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판데모니엄〉의 수작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특히 이번 ‘랭커 사냥’은 그들의 심기를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
바로 나미르 때문.
IZIZ의 멤버는 대부분이 반마족 출신으로서 그녀와 작든 크든 인연이 있었다.
‘술트 오드’는 그들에게 고향 같은 곳이었고, 나미르는 큰누나나 큰언니 같은 존재였다.
다만 중립을 지키려는 나미르와 그들의 목표가 달랐기에, 〈IZIZ〉는 ‘술트 오드’와 선을 그어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 했다.
그 이후로 IZIZ 멤버는 뒤에서만 그녀를 도울 뿐, ‘술트 오드’에 방문하거나 그녀를 만나는 일을 최대한 자제했다.
하지만 ‘랭커 사냥’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우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미르는 이번 랭킹전에 참여하며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특히 마족이 아닌 인류의 편에 선다는 공식 선언 때문에 마족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판데모니엄〉 쪽에서 ‘랭커 사냥’이 시작되면 나미르를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게 분명했다.
마족이 ‘술트 오드’를 침략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탈옥한 죄수들이 멋대로 쳐들어갔다고 우기면 누가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크로우는 나미르를 현재 가장 안전한 곳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 역으로 〈판데모니엄〉의 위치를 파악해 급습하기로 한 것은 다른 IZIZ 멤버들의 아이디어였다.
성가시니까 이참에 잔뜩 죽이자며 말이다.
“라펠 와쪄염!”
눈 덮인 산악 지대를 뚫고 수색을 나갔던 일행이 하나씩 복귀했다.
“이야, 이런 첩첩산중에 아지트를 다 만들고. 하여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 사는 데가 없어요. 아마 저 하늘 위에서도 살 수 있을걸. 아차! 부유 섬에서 사는 것들이 있으니까 이미 가능하구나.”
갈시량이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들어오며 입을 나불거렸다.
“찾았습니까?”
“그러엄, 찾았지. 내가 누구야? 바로 갈시량 아니겠어? 여기 비카타울하고 산등성이를 내려가는데, 저 맞은편에서ㅡ.”
“짧고, 간결하게.”
칼레오가 딱딱한 말투로 갈시량의 긴 문장을 끊었다.
갈시량은 끙, 소리를 내더니 칼레오를 비뚜름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제가 대신 설명하죠.”
그때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온 멤버가 로브의 후드를 벗으며 크로우와 칼레오에게 다가갔다.
“그래, 여진식. 네가 대신 설명해라.”
[금강 길드]의 수장이자 〈나락〉의 주인이었던 클라운, 류지환의 비서였던 여진식이었다.그는 칼레오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짚어 가며 그들이 발견한 것을 설명했다.
“임시 아지트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판데모니엄〉의 최종 본거지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세계에 있는 여러 본부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군. 안에 있는 인원은?”
“전부 파악하긴 어렵지만··· 아티팩트로 확인한 결과 이백 명쯤 되는 것 같습니다.”
IZIZ는 ‘베를린 국제 아티팩트 경매’에서 훔쳐 온 아티팩트를 곧잘 활용해 전투에 써먹고는 했다.
지금 여진식이 활용한 건 마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드론으로써, 공간에 침투해 정보를 얻어 내는 형태였다.
“이백 명이라.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칼레오가 크로우를 향해 물었다.
원래대로라면 놈들의 아지트를 발견해서 시우에게 전달하고, 시우가 해당 국가의 HMCS나 헌터 협회에 연락해 처리하는 식으로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몇몇 IZIZ 멤버들이 그 의견에 반대한 것.
“흑흑흑··· 놈들에게 안식을 내려 줘야 합니다.”
알비노가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말했다.
“라펠이 다 먹어 치울 거예염!”
“저는 다른 분들의 의견에 따르죠.”
여진식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컨디션에 따라서 달라지겠는데, 이반?”
멤버들의 의견을 듣던 크로우가 동굴 가장 안쪽에 있는 남자를 향해 물었다.
남자는 크로우의 목소리를 듣더니 흰자위 없이 온통 새까만 눈동자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얼른 죽이러 가요~~~. 제 아이들이 배고파 죽을 것 같거든요오오~~~.”
***
대통령실.
시우는 나미르와 나란히 앉았고, 최대수는 맞은편에 앉아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동안은 헌터들에게 근무 시간만이라도 조를 짜서 다니라고 해야겠군. 그리고 상위 랭커들에게는 감시를 붙여야겠어. 숙소 근처에 저격수도 배치하고.”
“상위 랭커까지는 괜찮지 않겠어? 세이겐 영감이나 롤프도 무사했던 모양이던데.”
“아니. 어제 세계 랭킹 16위인 니콜라스가 죽었다고 한다. 우리 시각으로는 오늘 아침이지.”
최대수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16위면··· 꽤 높네.”
“들어 보니 수법도 아주 잔인한 것 같아. 살해 방법에 대해선 일절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더군. 다른 나라에 영향이 갈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미 정보가 퍼진 국가들은 초비상이 되어 자국 내 상위 랭커들을 보호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아예 용병이나 경호 헌터를 고용해 옆에 붙이는 일도 있었고, 어떤 나라는 사태가 끝날 때까지 지하 핵 벙커에 헌터를 가두겠다고 하기까지 했다.
“너도 그 ‘여섯 손가락’이란 녀석들 들어 봤냐?”
“아니, 네놈이 보내 주기 전까진 몰랐었다. 생각보다 위험한 놈들이더군.”
다른 네 명은 처음부터 범죄자였던 탓에 급을 알 수 없었지만, 두 명은 시작이 헌터였던 터라 급을 알 수 있었다.
진도화는 최대수 이전에 존재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SS급 헌터.
그리고 싸크르는 한때 ‘미스틸 테인’의 가입을 앞두고 있던 세계 랭킹 0위의 SS급 헌터였다.
나머지도 분명 그와 맞먹는 강함을 소유하고 있을 것임이 당연지사.
“그렇다면 세계 최정상급 헌터 6명과 그를 따르는 수천 명의 죄수를 상대로 싸워 이겨야 한다는 건데. 누가 싸우지?”
“큭큭큭. 글쎄. 하지만 최소한 네놈이 ‘여섯 손가락’ 중 하나는 처리해야 하겠지. 그리고 반마족의 왕께서도 하나 정도는 처리하지 않겠어?”
“저는 제 주인님의 명령만 따라요.”
나미르는 최대수를 보며 딱 잘라서 대답했다.
“상당히 관계가 친밀해서 부럽군. 그나저나 〈대한민국 헌터 협회〉 말인데, 자리가 너무 오래 공석이어서 이번에 새로 회장과 부회장을 뽑을까 한다.”
“그래? 정했어?”
“후우ㅡ. 도경후와 최성일을 생각 중인데. 어떤 것 같나?”
시우는 둘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둘 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이지만, 수작질과는 거리가 멀고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할 것 같았다.
“도경후가 처음에 질색을 하겠는데?”
“큭큭큭. 대신 협회 회장을 하면 매달 술을 보내 준다고 하려고. 거절하진 않을 거다.”
최대수는 웃으면서 스카치를 따라 들이켰다.
“그런데 너ㅡ 아직 〈세계 헌터 협회〉에서 연락받은 거 없나? 새로 랭킹에 오르면 받는 게 있을 텐데.”
최대수가 자신의 팔에 채워진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따로 없는데? 난 그런 거 필요 없ㅡ.”
순간 시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단전을 한껏 개방하더니 마력을 전신에 휘감고 양손에 소드 오프 샷건을 구현했다.
어리둥절하던 최대수와 나미르 역시도 한 박자 늦게 단전에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대통령실의 벽과 천장, 책상이 흔들린다.
쩌저저정!! 쩡쩡쩡!!
유리창이 모조리 깨지며 타오르는 듯한 거대한 기운, 모든 것을 압도하고 그대로 짓눌러 버릴 것 같은 마력의 대해가 공간을 잠식해 갈 것처럼 솟구쳐 들어왔다.
“씨발, 보고 싶어서 직접 왔네. 네가 민시우야?”
창문을 통해 성큼 들어온 구릿빛 피부의 여인.
천외천의 ‘미스틸 테인’ 간다르바가 시우를 보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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