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48
252화〉
공범자
“어ㅡ 씨발. 날씨 습하네.”
류지환은 칙칙한 로브 자락을 여미며 옷에 묻은 빗물을 털어 냈다.
건물에 들어선 그는 가장 먼저 참았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다.
“하, 이제야 살겠다.”
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더니 허공에 뜬 홀로그램을 휘리릭 넘겼다.
거기엔 박사에게 받은 아티팩트 리스트 수십 개가 펼쳐져 있었다.
모두 구하기 힘들다는 최상위 등급의 아티팩트로 이 중 절반 정도는 국가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관해 둘 정도로 보안이 삼엄한 물품이었다.
“이 미친놈의 영감탱이가. 이걸 씨발 어떻게 구해 오라고 나한테 떠넘긴 거야. 내가 사람 패는 딜러지, 무슨 도적이야?”
“그 영감 그러는 거 한두 번인가. 우리가 이해해야지.”
옆에서 지도를 보며 크롤이 대꾸했다.
“그래도 정도란 게 있어야지. 내가 지 따까리냐고. 염병 진짜. 팔 하나 달아 줬다고 유세란 유세는 다 떨어요, 그 영감은.”
“어차피 해 줄 거면서 또 그러네.”
“씨발, 이 테니스공 대가리는 대체 누구 편이야!”
류지환은 크롤의 녹색 머리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크롤은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한 말싸움을 해봤자 류지환의 쌍욕으로 끝날 걸 알기에,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한 것.
“그런데 여기에 아티팩트 있는 거 맞아? 이 지랄 쇼를 했는데 없으면 헛고생한 거 아냐.”
“아냐, 있을 거야. 이 집 주인이 IT 쪽으로 성공해서 세계 100대 부자라나 뭐라나 그러는데, 전직 헌터라서 아이템 모으는 게 취미라더라.”
“오ㅡ 그래? 어쩐지 벽에 걸린 그림이 으리으리하다 했어. 돈 많은 양반들 취미는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류지환은 복도를 거닐며 벽에 걸린 그림과 장식품들을 툭툭 건드려 바닥에 떨어트려 부쉈다.
옆에서 크롤이 혀를 찼지만, 굳이 간섭하지는 않았다.
현재 그들은 튀르키예의 거부 오스만 칸의 저택에 침입한 상태.
아니, 이 정도면 침입이 아니라 거의 습격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다.
“계십니까ㅡ 우리 존나 갑부 나으리를 찾습니다.”
“류지환. 지금 몰래 들어와서 아티팩트 들고 도망가야 하는 처지거든? 조금 차분하게 할 수 없을까?”
“문을 개박살 내고 들어왔는데 어떻게 차분해. 그런 갑부라면 경호 팀이라도 대기하고 있을걸? 낄낄, 저기 내려오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양복을 입은 일련의 무리가 그들을 향해 들이닥쳤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아, 씨발. 뭐야, 코미디야? 큭큭큭. 보통 보자마자 죽이는 게 정상 아니냐?”
“모든 사람이 다 너 같냐, 지환아.”
“닭살 돋게 성 떼고 이름만 부르지 맙시다. 내가 사람 많은 쪽 맡을 테니까, 네가 반대편 맡아.”
류지환이 손가락을 들어 복도의 좌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크롤이 고개를 끄덕이자, 류지환이 씩 웃으며 품에서 광대 마스크롤 꺼내 뒤집어썼다.
“낄낄낄. 역시 일할 땐 이걸 써 줘야 마음이 편하다니까.”
류지환에게서 뿜어지는 살기를 느낀 경호원들은 그 즉시 총을 격발했고, 몇몇은 마력을 끌어 올려 스킬을 구현했다.
타다다다다탕탕!!
류지환은 그들을 향해 뛰어가다가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벽을 타고 돌진했다.
허공에 뜬 수백 개의 기호와 문자가 뒤엉키더니 시뻘건 마법진을 구축한다.
[이프리트 : 염화의 창]“젠장! 막아!!”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시든가.”
광대가 기다랗게 찢어진 입으로 중얼거리자 활활 타오르는 붉은 장창 십여 개가 경호원들을 향해 폭격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그야말로 실내가 아수라장이 될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낄낄. 어디 살아남은 분이 계시려나~?”
류지환은 반파된 잔해를 치우며 경호원을 조사했지만, 그의 강격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약해 빠져 가지고.”
“네가 너무 강해진 거겠지.”
크롤이 다가오며 걸레처럼 짓이겨진 시체를 힐끔 내려다봤다.
“뭐라는 거야, 이 테니스공 대가리가. 난 원래 존나 강하거든?”
“그 오른팔 유지하려면 계속 마기를 흡입해야 하잖아. 결국 마족 비슷한 상태가 되는 거니까 강할 수밖에.”
“······.”
류지환은 대꾸하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쳐 2층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크롤은 그가 대답이 없자 자신 역시도 말을 하지 않고 같이 따라 올라갔다.
“야, 크롤.”
“왜?”
“너 정말 이 조직에 계속 남을 셈이냐?”
“···뭘 또 물어봐 ”
크롤은 몇 계단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류지환과 눈을 마주쳤다.
“정말 〈판데모니엄〉에 목숨을 바칠 생각이냐고.”
“그러면 류지환, 너 따라서 나가라고?”
“아무래도 나한텐 너 같은 놈이 필요하니까.”
류지환이 담배를 깊이 발아들이더니 허공에 연기를 내뱉었다.
크롤은 처음에 저 담배 냄새가 싫었다.
차라리 과일을 먹으라고 몇 번 사다 줬지만, 오히려 싸움만 났고 전자 담배를 건네도 내던져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포기하고 나니 저 담배 냄새가 익숙해졌다.
매캐하고 텁텁하면서 폐를 잔뜩 휘저어 놓는 듯한 쓴맛.
“대단한··· 칭찬이군.”
“난 〈판데모니엄〉이랑은 달라서 내 부하들에겐 한없이 관대하거든.”
“솔직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 순간 류지환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크롤이 받으라는 듯 손으로 제스처를 취했고, 류지환은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 나다.”
– 요즘 통화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보스.
“그야 안에 있을 때는 전화 받기가 어려우니까 그렇지. 무슨 일인데?”
– 누님이 정보를 얻어서 역추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의뢰인’한테도 시간에 대해서는 미리 말씀을 해 두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어차피 ‘의뢰인’도 오래 걸릴 건 예상하고 있어. 그런데 디데이가 잡혀 있는 모양이던데, 그때까지는 안 되나.”
– 그게 언제입니까?
“새로운 ‘미스틸 테인’의 승급식.”
– 날짜는··· 좋네요. 시선도 분산시킬 수 있을 것 같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보스.
“수고해라, 칼레오. 크로우한테도 고생했다고 안부 전하고.”
IZIZ의 수장, 류지환은 다시 한번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뒤에 상대를 바라봤다.
“크롤. 나는 너를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같은 ‘이지 고아원’ 출신은 모두 내 가족이야. 너도 마찬가지고.”
“···그건 고맙게 생각해. IZIZ 들어가면 모두 날 반겨 주겠지. 나미르 누나도 좋아할 테고.”
“시간이 얼마 없다. 얼른 정해. 〈판데모니엄〉은 조만간 무너진다.”
류지환은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걸음을 옮겼다.
계단 중간에 덩그러니 남은 크롤은 자신이 오르기 위해 계단에 섰는지, 내려가기 위해 섰는지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
“사장님··· 어디로 가십니까?”
“미국.”
시우는 한태치의 물음에 깔끔하게 대답했다.
“어··· 그러시군요.”
한태치는 떨떠름하게 대답한 후에 볼을 긁적였다.
갑자기 시우가 호출해서 사장실에 들어갔더니 그가 외국에 간단 소릴 한 것이다.
“뭐 하냐?”
“예?”
한태치가 우두커니 서 있자 보다 못한 시우가 물었다.
“미국 간다니까?”
“어··· 예. 잘 다녀오십쇼.”
한태치는 속으로 ‘여행 경비라도 챙겨 드려야 하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도 가는 거야.”
“저, 저도 말입니까?”
“그럼 내가 널 왜 불렀겠냐.”
“사장 대리로 일 부려 먹으시려고요.”
“···그럴 수도 있었겠군.”
시우는 납득 가능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미국 갈 거니까 그동안 했던 연구들 싹 다 챙겨. 특히 마기에 반응하는 아이템들이랑 마력 회로, 공격용 무기는 필히 챙겨야 한다.”
“이번엔 미국 갱이라도 상대하러 가십니까?”
“아니, 록히드 마틴에 가서 무기 거래하려고.”
“예??”
록히드 마틴이라면 마법 공학 방위 산업체로 명성이 자자한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
시우가 눈짓하자 한태치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부리나케 연구실로 뛰어갔다.
시우는 지난번에 멕시코에서 카르텔들에게서 뜯어낸 돈을 이용해 아이템을 생산할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아티팩트에 준하는 병기급 아이템을 만들어 활용 가능한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 한다.
전쟁을 대비하는 그만의 방법.
‘필요한 짐은 시온에게 챙겨 달라고 했으니 괜찮고. 길드 업무는 강율이랑 적귀 영감이 해 주기로 했으니까.’
시우는 이번에 나미르와 루안, 한태치를 데려가기로 했다.
나미르는 랭커 사냥이 끝날 때까지 보호하기로 했으니 데려가는 거였고, 루안은 일종의 한태치 호위였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손바닥으로 땀이 고인다.
어딘가 음습하면서도 쨍쨍하고, 기괴하면서도 산뜻하며 마치 맑은 바다 깊은 곳으로 그를 끌어 내린 것 같은 감각.
시우는 손아귀에 힘을 꽉 쥐고는 단전에서 마력을 빠르게 끄집어내 순환시켰다.
격을 열어 단숨에 공간을 장악하는 게 아닌, 층층이 마력을 쌓아 상대를 견제하겠다는 태도.
‘강하다, 그것도 엄청.’
이런 느낌을 이전에도 한 번 받은 적이 있다.
바로 간다르바가 느닷없이 습격했을 당시, 이것과 비슷한 기류의 압박을 느꼈었던 것이다.
시우는 무기를 빼 들진 않았다.
간다르바 땐 그녀가 ‘투쟁심’이란 본능이 있었기에 시우도 그만한 대처를 했던 거지만, 이번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은은한 기세만 뿌리며 시우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따위 장난질에 언제까지 맞춰 줄 시우가 아니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바로 공격하겠다. 셋, 둘, 하나···.”
시우가 먼저 손가락을 들어 하나씩 접으며 기세를 서서히 피워 올렸다.
살기가 치달으려는 순간, 누군가 창문을 열고 흰 손수건을 흔들었다.
“히ㅡ 장난 그만 칠 테니까, 살기는 좀 거두지?”
기다란 금발을 휘날리는 엘프 같은 미녀가 시우를 보더니 해사하게 웃음 지었다.
시우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살기와 마력을 천천히 거두었다.
“하핫. 그래도 내 얼굴은 알고 있나 봐?”
“모른다. 장난을 안 친다고 해서 거둔 것뿐이야.”
“그럼 다시 장난을 치면?”
“칼로 목을 벨 거다”
“후ㅡ 재미없어.”
그녀는 창틀에서 사뿐 내려오더니 시우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너희 ‘미스틸 테인’은 항상 이렇게 제멋대로인가?”
“내 얼굴을 모른다면서 내가 ‘미스틸 테인’인 건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강한 기운을 풀풀 피워 놓고서 어떻게 모르길 바라지?”
“햐ㅡ 똑똑하네. 난 로키야.”
그녀는 시우에게 희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시우는 떫은 표정을 짓다가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그래서 로키씩이나 되는 사람이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히ㅡ 충고 하나 해 주러 왔지.”
“충고?”
로키는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소를 흘리며 시우의 귀에다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스틸 테인’을 믿지 마.”
***
고급스러운 흑요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복도.
그 너른 복도를 걸으며 대화하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허허허. 참으로 기백이 넘치는 친구가 아닌가? 나는 그런 젊은 인재가 아주 마음에 들어.”
“어머나. 우리 멀린께서 누구를 이렇게 칭찬하는 모습을 아주 오랜만에 보네요.”
“바바는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런 것 치고는 민시우 헌터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
멀린의 짓궂은 말에 바바 야가가 붉은 입술로 빙그레 웃었다.
“후후후. 왜 아니겠어요. 제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허허허허. 아니, 자네는 지금도 충분히 젊지 아니한가.”
“농이랍니다. 왠지 민시우 헌터를 노리는 라이벌이 많을 것 같거든요.”
바바 야가는 붉은 손톱으로 머릿결을 넘기며 대답했다.
“원 참, 자네도. 혹시 모르지 않나. 시도라도 해 보게.”
멀린은 복도 끝에 있는 거대한 회의장에 들어서며 바바 야가에게 마지막 농담을 건넸고, 바바 야가는 대답 대신에 흰 웃음을 지었다.
의자에 앉은 멀린은 바바 야가를 제외한 다른 한 명의 ‘미스틸 테인’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제 〈판데모니엄〉 1위계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