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49
253화〉
공범자2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삼각 테이블 위로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허허허. 오랜만이군, 박사.”
– 〈판데모니엄〉 1위계의 존안을 뵙습니다.
박사의 주름 가득한 입가에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네의 연구 성과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지. 게이트에 대한 건은 잘 되고 있나?”
–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없다면 올해 안에 발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허허. 역시 박사구먼. 하면 이번에 실험한 ‘신인류’는 어떻게 되었나?”
멀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 그건 안타깝게도 실패했습니다.
“분명 IZIZ 상대로 테스트를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 맞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김은주만큼의 위력과 성능은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어떤 조건이 달라서인지 다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렇군. 마기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각성자의 시체가 필요한 것인지··· 혹은 하위 악마의 피로는 안 되는 것인지.”
멀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바바 야가를 쳐다봤다.
“어머나, 글쎄요. 주술에 강하긴 하지만 제가 직접 보고 만진 게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그러한가. 눈에 띌 걸 염려해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더니 이런 부작용이 있구먼.”
그는 고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기다란 수염 자락을 쓰다듬으며 박사를 향해 근엄한 어투로 말했다.
“박사, ‘신인류 프로젝트’는 앞으로 하게 될 마왕님의 인류 정복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니 반드시 완성해야만 한다.”
– 명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백작’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라.”
– 하지만 대마법사시여! ‘백작’과 저는 관계가···!
“그 알량한 관계가 마왕님의 대업보다 중요한 것인가?”
– 그건··· 아닙니다···!
박사는 입술을 짓씹었다가 곧장 고개를 젓고는 멀린의 말에 수긍했다.
“후후후. 웬일로 박사의 태도가 나긋나긋하네요. 예전 같으면 발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텐데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바바 야가가 턱을 괸 채 빙그레 웃었다.
– 너무 저를 자극하지 마시지요, ‘칠흑의 마녀’시여.
“어머나, 저는 박사를 칭찬하는 거랍니다. 오해하지 말길.”
박사는 바바 야가의 농염한 미소를 노려보다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마무리 인사를 했다.
-《모든 것은 〈판데모니엄〉의 아래로.》
“《모든 것은 〈판데모니엄〉의 아래로.》”
화면에서 박사가 사라지자 멀린은 혀를 차며 바바 야가를 향해 나무라는 듯한 말을 했다.
“그나마 좋게 좋게 달래도 부족한 판에 자네는 왜 그러는 게인가. 박사가 열이라도 받아서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후후후. 설마 그러겠어요? 저는 박사의 충성심을 믿는답니다.”
“하여간 사람이 못돼서는.”
“이제는 어디로 가실 건가요? 바로 ‘프로페테스’로 들어가실 건가요?”
“나는 그러겠지. 자네는 실험실에 갈 건가?”
바바 야가는 생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귓가에서부터 풍겨 오는 달콤한 향기.
조금이라도 깊게 들이켜면 취할 것처럼 진득하고 생화처럼 향기롭다.
시우는 고개를 돌려 로키를 바라봤다.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은 짓궂은 아이의 그것처럼 가느다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진심을 말하는 듯 보여도 그 해말갛게 웃는 표정을 보노라면 도저히 진심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장난꾸러기 신, 로키.
“지금 그러니까 ‘미스틸 테인’의 일원이 내게 와서 같은 ‘미스틸 테인’을 믿지 말라고 경고해 주는 건가?”
시우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헤ㅡ 이해가 빨라서 좋네. 정확해.”
“말해 주는 의도도 모르겠고, 목적도 모르겠는데.”
“그럴 수밖에 없지. 난 의도도 없고 목적도 없는걸.”
“이제는 이해마저도 안 되는군.”
시우가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를 가볍게 노려봤다.
더 어이가 없는 사실은 현재 그녀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력 감지로 그녀의 감정과 거짓을 파악하고 있는데,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로키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히ㅡ 장난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그녀는 자신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빙 감으며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시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와 타협, 특히 거래하기 제일 어려운 타입이다.
속을 알 수 없는 성격이기 때문에 주도권을 뺏기기 십상이며, 원하는 바를 제대로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혼란만 겪게 될 것이다.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라고 뽑아 놓은 것들이라면서 순 또라이들만 모아 놨네.’
시우는 자신이 보았던 ‘미스틸 테인’을 떠올리며 편견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판데모니엄〉이 있으니 믿지 말라는 소리인가?”
“···음? 벌써 알고 있었네?”
“그딴 건 이제 와서 중요한 정보도 아니지.”
시우는 로키에 대해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듯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래가 어려운 타입이니 어쩌니 하지만, 사실 시우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애초에 로키에게 바라는 것도 없었을뿐더러 목적이 있어 찾아온 건 로키였지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쉬운 건 그가 아니라 상대란 소리.
“어ㅡ 어디가?!”
“너 따위랑 노닥거릴 시간 없어.”
“잠깐만···! 나한테 흥미 없어? 재밌지 않아?”
“어.”
시우는 딱 잘라 대답했다.
로키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무래도 이런 취급이나 푸대접을 받은 게 처음인 모양이었다.
“그, 그럼 ‘미스틸 테인’ 중에 누가 〈판데모니엄〉인지 알고 싶지 않아?!”
그녀는 시우의 손을 붙잡고 말을 이었다.
“두 명은 알지. 바바 야가랑 멀린 아나?”
“···어떻게···?”
“조금 전까진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는데, 네 반응을 보니 맞나 보네.”
시우가 그저 떠본 질문에 홀라당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키는 입술을 꽉 깨물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그렇게 쳐다봐?”
“열받고 짜증 나서.”
“너무 그럴 거 없어. 그래도 80% 정도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었거든.”
화상 회의를 하다가 1위계를 조사해 달라는 시우의 부탁에 바바 야가와 멀린이 보인 표정.
그리고 미약하지만 달라진 마력 파장까지.
설마 〈판데모니엄〉 1위계에 속한 ‘미스틸 테인’이 여러 명일 줄은 몰랐으나, 그간 놈들이 다방면에 공들인 작업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재밌어 보이는 놈 하나 발견해서 이리저리 휘젓고 데리고 놀고 싶었나 보지?”
“···응.”
“미안하지만 너 같은 애는 한 트럭이 있어도 내가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칫ㅡ”
로키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잔뜩 토라진 얼굴로 시우를 노려봤다.
“다른 정보 물어 와. 그럼 놀아줄게.”
“정보··· 어떤 거?”
“마족의 다음 계획이라든가, 아니면 정민준의 암살을 지시한 ‘미스틸 테인’이 누구인지 같은 거.”
“정민준이 누군데?”
시우는 그녀의 마력 파장과 표정을 읽었으나, 그녀에게선 거짓이나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내 옛 제자다. 〈판데모니엄〉에 속한 ‘미스틸 테인’이 암살을 지시해 죽게 됐지.”
“그래? 그렇다면 그 정보를 캐 와야겠네.”
로키는 시우의 말에 구미가 당겼는지 샐쭉 웃더니 창가를 향해 폴짝 뛰어갔다.
“히ㅡ 다음에 보면 그땐 제대로 가지고 놀아 줄게.”
“정보나 가지고 와.”
그녀는 기다란 금발을 바람처럼 흩날리더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간다르바처럼 다루기 쉬워 보이진 않는데···. 다음에 뭘 물어 오는지나 지켜볼까.’
시우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다가 일단 미국부터 다녀와서 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여전히 짐승 같은 놈이군.”
우커신은 아지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우커신과 그의 수하들이 자리를 비운 며칠, 아지트에 돌아와 보니 온통 술과 도박, 마약, 그리고 여자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너희들은 입구에 대기하고 있어라.”
그는 자신의 수하들을 놔두고 혼자 아지트에 들어섰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발에 차이는 술병과 주사기, 나뒹구는 타이론의 부하들을 보며 우커신은 치미는 욕지기를 참아야 했다.
그는 정중앙에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여전히 그곳에서는 교태 가득한 여성의 신음과 타이론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이 아지트를 떠난다. 너는 너대로 〈판데모니엄〉의 명령을 받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순간 신음이 멈춘다.
커튼을 젖힌 타이론이 땀에 젖은 나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우커신은 욕을 내뱉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꺼억ㅡ!”
타이론이 배를 긁적이며 그의 면전에서 트림을 했다.
마치 거대한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타이론의 탄탄한 구릿빛 몸이 꿈틀거리며 우커신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주변을 압도하는 사나운 맹수처럼 본능적인 모습.
“섹스하느라 못 들었다. 뭐라고?”
타이론이 귓구멍을 손가락으로 후비며 우커신에게 되물었다.
“나는 이제 이 아지트를 떠난다고 했다. 그러니 너는 〈판데모니엄〉의 명령을 듣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아ㅡ 아ㅡ 이해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내 뒤치다꺼리를 안 하겠다, 이거 아냐?”
“애초에 그딴 건 한 적도 없다. 내 일도 아니고.”
“오ㅡ 그래? 이상하군. 난 네놈이 내 똥 닦아 주는 부하인 줄 알았는데.”
일순간 우커신과 타이론의 몸에서 격렬한 마력이 솟구쳐 나왔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
주변에서 마약과 술에 취해 자고 있던 타이론의 부하들이 놀라 일어났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커신의 부하들도 놀라 들이닥쳤다.
천장과 벽에 균열이 생기고 지반이 덜덜덜 흔들리기 시작한다.
“꺄아아아아!!”
타이론과 잠을 자던 여자들이 놀라 소리쳤다.
그 비명에 거짓말처럼 타이론이 기세를 거두었다.
“크크크. 사내놈이랑 피 터지게 뒹구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내 몸을 기다리는 여자들이 있으니 참도록 하지.”
“나도 여자를 죽이는 취미는 없다.”
“진도화는 호랑이를 잡으러 간다고 했고. 넌 어디로 가나?”
우커신은 타이론이 그런 질문을 던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잠시 그를 노려보았다.
“···구룡채성. 내가 주인이었던 곳을 되찾으러 간다.”
“그 슬럼가에도 주인이 있었던가?”
“내가 주인이다. 덧붙여 나는 아시아의 암흑가를 다시 장악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우커신은 타이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타이론은 굵은 드레드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이라도 미리 죽여 놓는 게 나을까? 장기적으로 보면 우커신이든 진도화든 훗날 라이벌이 될 존재일 텐데.’
그는 전설로만 전해지는 전 세계 어둠의 주인 ‘크립’이 될 생각이었다.
‘여섯 손가락’의 멤버는 잠정적인 경쟁자에 가까웠으니 후환은 미리 없애는 게 그로서도 유리한 선택.
특히 우커신은 감옥에 들어가기 전부터 타이론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악명 높은 범죄자였다.
아시아의 어둠 그 자체라고 평가받을 정도였으니, 전 세계를 아우르기 위해선 반드시 정리하고 가야 할 상대였던 것.
“보스. 〈판데모니엄〉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때 그의 부하 중 하나가 주춤주춤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아ㅡ 타이밍도 참 씨발이군. 우커신한테는 좋은 건가.”
타이론은 부하가 준 종이를 받아 들며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어? 아니, 이건 나한테 좋은 소식이네.”
“그, 그렇습니까, 보스?”
“흐흐흐. 취한 것들 다 깨우고 준비시켜. 고향 갈 준비하게.”
그는 ‘미국’이라고 쓰인 종이를 구기며 눈을 빛냈다.
〈